[공간]예술을 담은 ‘불룩한 자루’, 진주 루시다 갤러리

겨울 아침
집 앞 쓰레기통 옆에
낯선 자루 하나,
배가 불룩하다
-김기택, 불룩한 자루 中


진주에 위치한 루시다 갤러리에서 지난 4월 30일까지 전시 <불룩한 자루>가 열렸다. 사진작가 지성배, 회화작가 정연지, 도예작가 한정은, 영화감독 김세연의 작업이 한 자리에 모인 이 전시는 김용택 시인의 시 ‘불룩한 자루’에서 그 제목을 따왔다. 전시 기획을 맡은 이근정 기획자는 “여기서 ‘자루’는 실재가 아닌 은유다. 어떤 형태의 물건이든 담을 수 있는 수용력과 격식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변통성은 ‘자루’의 평범성을 유용성으로 격상시킨다. 격상된 것은 위력을 지닌다. 무엇이 담겼는지 모를 ‘불룩한’ 자루는, 그래서 궁금증과 기대를 일으킬 뿐 아니라 두려움마저 유발한다”고 기획의도를 적었다. 그는 “이번 전시에는 회화, 사진, 도예, 영화 작업을 하는 네 작가의 작품이 전시장에 차려졌다. 자루가 입을 벌리고 그 안에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놓듯이, 일상을 깨고 상식을 흔드는 작품들이다”고 전시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를 묘사하는 ‘불룩한 자루’는 전시가 열린 진주 루시다 갤러리에도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진주에 최초로 생긴 사진전문 갤러리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그저 평범했던 옛 목욕탕 건물을 지역 사진인들의 구심이 될 수 있는, 예술을 담은 공간으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루시다 갤러리는 예술로 ‘불룩한 자루’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진주 루시다 갤러리 외관,
예전 목욕탕 건물일 때 있던 굴뚝을 그대로 남겼다.

올해로 개관 4주년째를 맞은 ‘루시다 갤러리’는 이전에는 진주 호탄동에서 운영되다가 지난 해 5월 진주 망경동으로 옮기면서 재개관했다. 새로 옮긴 이 건물의 사연이 무척 재밌는데, 전시공간이 오픈하기 전에는 목욕탕 건물이었다고. 1982년 지어진 이 건물은 목욕탕으로, 그 이전에는 여관이자 다방 등으로 다양한 쓰임새 가진 공간이었다. 진주 중심가에 위치해있고, 진주 남강의 아름다운 풍광도 감상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예부터 진주를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한 여관이자 목욕탕이기도 했다는 것.

 



이런 건물의 오랜 역사가 흥미롭다고 생각한 이수진 관장은 건물 위로 솟은 ‘해운탕’이란 목욕탕 굴뚝을 그대로 남겨놓고, 건물 외관도 그대로 보존했다. 일본 교토에서는 옛 목욕탕 건물과 구조, 내부 장식을 그대로 유지한 카페가 유명한데, 루시다 갤러리도 목욕탕 건물, 구조를 유지하며 그 안에 전시장과 카메라 박물관, 사진집 도서관, 카페까지 다용도로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2층은 전시가 열렸을 때, 다른 지역 작가들이 머물고 갈 수 있는 임시 레지던시이자 작업공간, 제2전시실이며 3층부터는 일반 방문객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루시다 갤러리 전시 공간.
천장에 목욕탕 타일이 그대로 남아있는것을 볼 수 있다.


목욕탕 건물이었던지라, 천장과 벽면이 다 타일로 됐는데, 전시 공간은 이런 천장의 벽면을 그대로 살렸다. 통상 갤러리 안은 화이트 큐브로 전 벽면이 단일한 구조가 많은데, 루시다 갤러리의 전시 공간은 천장이 유독 높고 천장이 타일이다 보니, 전시 조명을 쏘았을 때 더 밝고 높게 공간감이 확장되는 효과가 있다. 가령 도예와 사진, 회화, 영화 작품이 함께 어우러진 <불룩한 자루> 전시의 경우 높은 층고와 타일, 조명이 어우러지면서 한정은 도예작가의 작업이 유독 도드라지며, 지성배 작가의 사진 작업이나 정연지 작가의 회화가 시원시원하게 보인다. 또 별도로 분리된 안쪽 공간에서 김세연 감독의 단편영화 ‘터’를 상영중인데, 각각의 작품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관람객들의 동선도 독립적으로 확보돼서 좀더 감상에 집중할 수 있다.

 

루시다 갤러리 안에 마련된 카메라 박물관에는 1000여점의 클래식 카메라가 소장돼있고, 이중 200여점을 전시중이다.
100년이 넘은 박스 카메라부터, 스파이 카메라, 폴딩 카메라까지 다양한 카메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집 및 사진관련 서적을 모아놓은 사진책 도서관


전시장 밖은 일반 손님을 위한 까페가 있고, 이수진 관장이 평생 모은 카메라를 전시하는 카메라 박물관과 사진책 전문서가 공간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카페 공간과 전시공간을 분리해서, 갤러리를 찾는 방문객들이 작품 감상에 방해받지 않고, 까페 방문객들 역시 전시 공간에 편하게 들어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까페 벽면에 작품을 그냥 전시할 경우, 자칫하면 살롱 사진처럼 작품이 그저 공간 장식용 오브제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진주 루시다 갤러리의 백미(白眉)로 꼽을 수 있는 곳은 옥상인데, 날이 따뜻할 때는 밤에 옥상에 올라 진주 남강의 유명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옥상에서 보면 바로 대나무 숲 너머로 푸르게 흐르는 남강의 경관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이수진 관장은 “진주 사진가들의 사랑방 격인 루시다에서는, 전시 오프닝을 하고 나면 다같이 이 곳 옥상에 올라 한바탕 뒤풀이를 한다”며 “진주 남강의 밤풍경을 감상하며 밤새 이야기하는데,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며 웃었다. 그는 “진주지역 사진 예술이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전시공간이 절실했다. 진주에서 몇 십 년 동안 사진을 찍어오셨어도 아직 공간이 부족해 개인전 한 번 하지 못했던 원로 작가님들도 많다. 작가에게 개인전을 한 번 한다는 것은 큰 의미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을 위한 사진 전문공간이 꼭 필요해 루시다 갤러리를 개관했다”며 “진주지역민들이 좋은 사진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도록 수준 높은 초대전을 기획해 운영하려 한다”고 전했다. 지역 사진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인 동시에, 좋은 작가들의 작업을 엄선해 전시함으로써 사진으로 다른 지역과 교류할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


이런 그의 바램처럼, 진주 루시다 갤러리에서는 지역 주민을 위한 사진가 특강, 지역작가 초대전, 기획전 등이 끊임없이 이뤄지며 진주 사진문화의 초석을 쌓고 있다.


 
“공간이 있으면 만남이 가능하고, 그런 만남이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진주 루시다 갤러리가 앞으로도 그런 만남이 가능한 공간으로 오래도록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글 편집부
이미지 제공 루시다 갤러리

해당 기사는 2018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