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서 예술까지, 패션사진 100년 ②

Erik Madigan Heck

미국 패션사진가 에릭 매디건 헥Erik Madigan Heck은 패션사진과 현대예술의 경계를 오가며 활동한다. 그의 패션사진은 하버스 바자나 베니티 페어 같은 패션잡지와 동시에 뉴욕 타임즈에도 게재된다. 그는 지난 2013년 ICP(국제사진센터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패션·광고 사진 분야 인피니티 어워드Infinity Award를 수상했으며, 2011년도에는 포브스 매거진이 선정한 ‘30 Under 30(30세 이하의 영향력 있는 인물 30인)’에 선정됐다.

에릭 메디건 헥은 스스로를 “카메라를 사용하는 화가”라고 정의하는데, 그의 패션사진은 패션, 현대 회화, 고전명화, 사진이 복합적으로 연계된, 카메라로 그린 그림과도 같다. 그는 주로 자연광을 이용해 촬영하고, 디지털 후반 작업을 통해 그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시킨다.

 
 
 

Without A Face(Ann Demeulemeester), 2013 Ⓒ Erik Madigan Heck / courtesy of Christophe Guye Galerie



Without A Face(Red), 2013 Ⓒ Erik Madigan Heck / courtesy of Christophe Guye Galerie


“진정한 우아함은 심플함에 있다”는 디자이너 코코샤넬의 말처럼, 에릭 메디건 헥의 패션사진은 우아하면서 동시에 심플하다. 그의 사진은 그 선명한 색감과 절제된 구도가 미국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패션 사진은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모델의 아름다운 신체를 부각시킨다는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그의 사진은 절제되고 심플하며, 모델의 신체적 특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기하학적인 의상의 형태를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나 조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의 패션화보는 기존 패션사진과는 다른 그만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패션 브랜드인 꼼데 가르송의 수석 큐레이터인 준야 와타나베는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의상을 주로 선보이는데, 에릭 메디건 헥은 이 의상의 매력을 조형적이고 단순하면서, 강렬한 색상으로 표현했다. 조지오 아르마니의 모자 사진은 모자의 조형적인 곡선이 도드라지면서 패션 사진이라기 보단 한 장의 추상화 같다. 인물의 구체적인 형상을 배제하고, 조형적인 곡선만으로 디자인을 살린 이 사진은 얼핏 봐서는 무엇을 보여주는지 잘 알 수 없다. 이는 상품의 디테일을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마케팅 전략에는 맞지 않지만, 조형적인 균형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형태로 보는 이의 시선을 잡고, 동시에 패션 브랜드의 고급스런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효과적이다.

 


The Absorbed Tradition, 2013 ⓒ Erik Madigan Heck / courtesy of Christophe Guye Galerie



Muse, 2013 ⓒ Erik Madigan Heck / courtesy of Christophe Guye Galerie



Junya Watanabe (Honeycomb), 2015 ⓒ Erik Madigan Heck / courtesy of Christophe Guye Galerie


에릭 메디건 헥이 찍은 미국 수영선수 케이티 레데키(Katie Ledecky)의 사진에서는 마치 회화처럼 컬러와 패턴을 다루는 그의 작업특성이 잘 드러나는데, 처음 이 사진을 봐서는 이 이미지가 회화인지 사진인지 구분할 수 없다. 수영장의 물은 마치 화가가 붓터치를 겹쳐 그린 듯 일렁이고, 물속으로 뛰어들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는 케이티 페리의 흰 등은, 깊고 파란 물과 대비돼서 선명하게 부각된다.

에릭 메디건 헥은 패션과 파인아트를 함께 다루는 잡지 〈Nomenus Quarterly〉을 창간하기도 했으며, 지난 2017년에는 사진집 〈Old Future〉를 출간했다. 또한 스위스 크리스토프 구예 갤러리Christophe Guye Galerie에서 개인전 〈Old Future〉를 5월부터 오는 8월 25일까지 열고 있다. 에릭 메디건 헥은 패션과 현대 예술 사이의 가능성을 시험하는데, 그는 패션에 대해 “미학적이고 창조적인 가능성을 가진 언어이자 예술”이라고 정의 내린다. 〈오래된 미래Old Future〉라는 그의 전시제목처럼, 그는 회화라는 오래된 형식을 빌어 패션사진의 미래를 새롭게 개척하고 있다.

 


Giorgio Armani, 2018 ⓒ Erik Madigan Heck / courtesy of Christophe Guye Galerie



Katie Ledecky, 2016 ⓒ Erik Madigan Heck / courtesy of Christophe Guye Galerie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Christophe Guye Galerie
해당 기사는 2019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