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사진의 성(城)

 
두 채의 건물 사이에 있는 정원에서 사계절 다른 풍경이 휴식을 준다고 말하는 구본창 작가.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위 건물이다.
 

공간이 작업을 부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의 작업실답다. 위아래 건물 두채를 합쳐 8개 층에 이르는 공간이 다양한 사진 관련 자료들로 빼곡하다. 한 작가의 작업량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구본창 작가가 40여 년 동안 촬영한 사진 원고와 그동안 전시했던 작품의 일부, 촬영에 필요한 소품과 사진 관련 자료와 책들이 공간 구석구석 가득하다.

작업실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그곳을 채우고 있는 방대한 분량의 사진 관련 자료들 때문에 ‘이곳이야말로 사진의 성(城)’이라는 생각이 든다. 1985년에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잠시 여의도와 홍대 앞에 작업실을 마련했던 때를 제외하면 1990년에 경기도 구리 작업실에서 10년, 그리고 2000년부터 지금의 성남 이매동 작업실에서 22년째다. 이매동 작업실은 처음엔 아래 건물뿐이었지만 작업량이 점점 많아지면서 2017년에 바로 위에 새로 집을 지어 두 채를 쓰고 있다. 그런데 두 채의 건물도 이미 수용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작가로서 본격적인 작업실이라고 한다면 구리의 작업실을 말해야겠지요. 저는 작가에게 작업실은 참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구리 작업실은 제게 자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환경을 제공해주었거든요.” 워커힐 호텔을 지나 구리 초입에 있던 그의 작업실은 당시만 해도 전원 분위기가 남아 있는 예쁜 동네였다.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이런 분위기는 1993년에 <굿바이 파라다이스> 같은 작품을 내놓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40대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이기도 한데, 그 결과 점점 불어나는 자료를 보관할 더 큰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마침내 2000년에 구리에서 지금의 성남 작업실로 옮기기에 이르렀다.

“공간이 커지니 작품의 규모도 커졌어요. 공간이 작으면 아무래도 큰 작업을 펼치기가 어렵고 조수들과 함께 일하기도 불편하지요. 이곳으로 오고 난 후 마음 놓고 대형작업을 할 여유가 생긴 셈입니다.” 그러나 그의 지속적인 작업량은 그 공간마저 꽉 채워버림으로써 추가로 건물 하나를 더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을 보면, 구본창 작가는 결국 10년을 주기로 건물 한 채를 채울 만큼 작업과 활동량이 엄청나다는 뜻이다. 작가는 공간이 커지면서 일을 더 많이 맡아서 하게 되고, 자료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둘 수 있으니 자연히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게 되더라고 말한다. 공간 자체가 내 몸 같아서 공간이 커진다는 것은 내 몸이 확대된 느낌이라고 말하는 그는 “하루 해가 너무 짧다”는 말로 그의 근황을 에둘러 표현했다.

 
 

대형 프린트한 조선백자 작품을 살펴보는 구본창 작가.


아래 건물에 있는 프린트룸에서 조수 두 명이 원고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하루가 짧다
구본창 작가의 첫 전시는 1983년, 아직 독일 유학 중이던 학생 시절에 종로 파인힐 갤러리에서 기획한 《해외사진가초대
전》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1985년에 한마당 갤러리에서 두 번째 전시를 하면서 비로소 사진가 구본창이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1995년 《숨》과 2001년 삼성 로댕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대한민국의 대표 사진가로 자리 매김을 했는데, 그 후에도 일일이 전시 횟수를 세기 어려울정도로 그는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지난 30여 년간의 활동을 익히 알기에 인터뷰가 없었던 최근의 활동만 파악하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버거울 만큼 그의 일정은 빡빡했다. 주요 전시만 꼽더라도 2021년 9월부터 중국의 3개 도시 베이징, 상하이, 샤먼에서 순회전시를 해왔
고, 2022년 5월엔 강릉단오제를 기하여 강릉시립미술관에서《탈 너머 : 강릉관노가면극》을 전시했다. 그리고 올가을에는 6개의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릴 예정인데 중국 샤먼, 미국 로스앤젤레스,일본 교토, 스페인 산세바스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캐논전시장에서 진행된다.

예술가의 꿈이 1년 내내 언제나 지구상 어딘가에서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구본창, 그는 거의 꿈에 근접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자니 그의 하루는 짧을 수밖에 없다. “이젠 더 이상 쌓아둘 수만은 없어서 그동안 작업한 것들을 꺼내 정리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또 끝이 안 보여요.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원고들을 다시 꺼내 살펴보고 선정된 것은 프린트를 하는데 조수 두 명이 도와줘도 진행이 더디기만 하네요. 게다가 자료정리를 하는 중에도 계속 새로운 일거리가 생기니까 하던 일이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되고...”올가을 여섯 군데의 전시 외에도 내년 6월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갤러리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도시를 스냅 한 사진으로 전시할 예정이라 요즈음 틈틈이 보충 촬영을 하면서 준비중이라고 했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아카이브를 구축하면서한편으로는 새로운 작업과 전시에 시간을 쓰느라 일의 끝이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제 와 돌아보면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디자인을 공부하고 서울로 돌아온 구본창의 등장은 한국사진에 새 역사를 쓰는 사건이었다. 한국에서 사진가가 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막연했다는 30대 초반의 이 젊은 작가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가능성을 미처 몰랐을 것이다.그런데 80년대의 풍요를 배경으로 한 서울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그의 타고 난 탐미적인 성향과 뛰어난 감수성과 미감(美感),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안목, 기획력, 해외 네트워크 등이 당시에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능과 일치했다.

사진가로서 채 이름을 떨치기 전에 이미 디자인과 미술 쪽에서 그를 주목했고, 이는 그가 8, 90년대에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기반이 되었다.특히 그는 아직 한국사진이 해외 진출에 어두울 때 동년배의 사진가들을 규합하여 해외 전시를 기획함으로써 한국사진의 국제무대 진출에 물꼬를 텄다. 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올해 제63회 삼일문화상 예술상 수상이라는 명예를 안겨주었는데, “사진이 회화와 경계를 넘어 현대미술의 중심에 자리잡도록 개척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지금 중국 샤먼에서 열리고 있는 구본창 사진전. 중국 3개 도시 순회전의 하나다.


 

HA 07 BW, 2005, 백자, 소장처: 삼성미술관 리움 / 2006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백자 촬영 중


달 항아리 작업을 하고 있는 구본창 작가. 그는 오랜 시간이 담긴 오브제를 좋아하다 보니 달 항아리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
70년대 대한민국 청년의 전형처럼 그도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당시의 획일적인 기업문화를 견딜 수 없던 그는 독일 주재원을 자원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회사에 사표를 내고 조형미술대학에 입학함으로써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길로 들어선 80년대 초의 그의 사진을 보면 오늘날 그의 작품의 단초가 보인다. 독일에서 학생 신분으로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 사람들의 뒷모습이거나 커튼이나 덮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물들이다. 그때에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시선이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경향은 본격적인 사진가가 된 이후에도 계속되면서 보이지 않는 것, 사라져버리는 것, 사라지고 남은 흔적과 자취등에 주목한다.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하얀 벽에 남은 스크래치 또는 나무의 그림자, 커다란 천막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뭔가 호기심을 자아내는 사물의 일부분, 오랫동안 사람의 손때가 묻은 그러나 쓸모를 다한 물건들이 사진가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조용히 살아난다. 이러한 작업은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아름다운 달 항아리와 조선백자를 찍는 작업으로, 또한 보이는 것 너머를 주시하던 그의 시선은 얼굴을 가려주는 <탈> 작업으로 발전한다. 또한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애잔한 연민은 <비누> 작업으로 이어졌다. 소재는 얼마든지 바뀌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일관성을 견지해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찍으면 비무장지대의 포탄, 철모 같은 것조차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사람의 흔적이 담긴 애틋한 정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제까지 제가 해온 작업의 핵심은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도 나름의 사소한 역사와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들과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다만 이러한 존재들을 감각적인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온화하면서 품위 있는, 궁극적으로는 숭고미가 느껴지는 그런 존재로 나타내고 싶습니다.”

유난히 그가 소소한 것들의 존재의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면에는 그의 어린 시절, 교실의 뒤편에서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는 소년이었던 점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그는 본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존재의 의미를 모르던 처지에 사진이라는 매체를 찾게 되었고 이를 통해 어린 시절 경험과도 연관이 있는,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굴곡과 역사에 관심을 드러내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KR 039 (금동관모), 2020, 유물소장처: 국립광주박물관
순백의 백자작업과 함께 그는 황금으로 만든 유물작업을 하고 있다.
황금이 갖고 있는 상징인 부와 권력, 즉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예술성을 놓치지 않는다.

나 자신의 끝을 알고 싶어
최근 그의 하루는 숨겨진 보물찾기 같다. 그동안 찍어놓은 네거티브필름과 슬라이드 필름 뭉텅이를 들쑤시고 있다는 그는 당시에 전시할 작품만 챙기고 덮어두었던 필름에서 재발견을 한다고 했다. “최대한 잘 정리해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인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을 쏟고 있는데 워낙 많으니 단기간에 끝내지 못할 거 같아 마음이 조급해지네요.”

다행인 것은 빡빡한 공간과 빡빡한 일정 속에 숨구멍 같은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3층에 있는 고즈넉한 방이 그것이다. 가구가 없어 적적해 보이는 방에 커다란 창밖으로 자연풍경이 들어온다. ‘명상의 방’ 같이 고요가 머무는 이 방에서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될 것 같다. 또 두 건물 사이에 옥잠화가 피는 정원과 아래채에 딸린 대나무가 있는 정원은 청명한 초록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일만 하지 말라고, 바람이 지나가는 대나무 아래에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숨통을 터주는 느낌이다.

“내가 가진 능력을 다 소진하고 가고 싶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거 다 하고 싶고 나 자신을 따라가 나 자신의 끝을 알고 싶어요.” 그러나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으므로 그가 대나무 바람소리를 들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낼 틈은 없을 것 같다. 엄청난 사진 보물의 성인 이곳에서 모든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아카이브를 만들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진 작업도 계속해야하기 때문이다. 위 아래채로 건너다니고 위아래 층으로 오르내리면서 든 생각은 구본창 작가의 이곳 작업실이야말로 작가의 삶과 그의 일생의 작업을 다 품을 수 있는 사진의 성(城)이란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한국현대사진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구본창 작가. 그의 무궁무진한 재능이 작가 자신에게도 한국사진사에도 빛나는 성과로 귀결될 것을 기대한다.

 
두 개 건물 8개층이 사진작품과 관련자료들, 그가 수집한 소품들로 가득차 있지만 텅 빈 이 방이 있어
그의 빡빡한 공간과 시간에 숨구멍 역할을 해준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작가는 휴식과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최근의 활동을 설명하는 구본창 작가.
우리는 30년간 만나 인터뷰를 해왔지만 10년 후에도 인터뷰를 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2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