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노 피셔 | Arno Fischer




 












ⓒArno Fischer




지난해 6월,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린 해외교류전 《아르노 피셔 포토그라피》가 막을 내렸다. 1년여가 지난 지금, 성곡미술관에서 《아르노 피셔: 동베를린의 사진가》(6.23-8.21)가 열렸는데, 고은사진미술관에서와 다르게 이번에는 아르노 피셔의 패션 사진이 함께 전시되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여느 패션 사진과 달리 실제 삶의 현장에서 촬영되어 역사적이고 기록적인 가치가 강조된다는 것, 즉 아르노 피셔의 다큐멘터리적 시선이 패션 사진에 녹아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독특한 아르노 피셔의 작업세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성곡미술관의 이수균 학예연구실장을 만났다.

《아르노 피셔: 동베를린의 사진가》는 어떤 전시인가요?
우리에게 낯선 동독 출신의 사진가 아르노 피셔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고전입니다. 2009년, 아르노 피셔는 사진사가 마티아스 플뤼게(Matthias Flügge)와 함께 작품을 선별해 세계 순회전을 준비했어요. 그렇게 2011년부터 시작된 순회전이 이번 전시로 마무리되어 11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모든 작품이 베를린의 아르노 피셔 재단으로 돌아갑니다. 5개의 섹션 《베를린 상황》, 《뉴욕》, 《여행》, 《패션》, 《정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스트레이트 포토’를 기반으로 사진 작업을 이어간 피셔의 다양한 작품이 공개됩니다. 1927년생인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53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바로 직전부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을 거쳐 그가 세상을 떠난 2011년까지, 동독을 기반으로 사진가와 교육자로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전쟁 직후의 동·서베를린 구석구석을 촬영한 그의 초창기 습작은 현재 사료로써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요. 로버트 프랭크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헬무트 뉴튼 등 당대 최고의 사진가들과도 소통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넓혀간 사진가입니다.

아르노 피셔의 작품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차 세계대전부터 독일의 분단과 통일까지, 20세기 독일의 급변하는 상황을 모두 경험한 사진가입니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어느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스트레이트 포토의 매력에 심취해 사진 작업을 계속한 것인데요. 사진만의 고유한 속성, 그러니까 렌즈에 의한 날카로운 초점과 묘사, 짧은 순간을 포착해내는 능력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다른 매체와 다른 예술성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심지어는 선명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확대기를 사용하지 않은 밀착 인화도 많이 했다고 해요. 즉 당대의 정치적·사회적인 배경보다 사진의 속성에 더욱 집중했던 것입니다.

5개의 섹션 중 《패션》이 유독 새롭게 다가오네요. 전시 작품은 모두 동독의 패션 잡지 『지빌레』에 수록되었던 작품들이지요? 먼저 잡지에 대한 소개 부탁합니다.
프랑스에 『보그』가 있다면 동독에는 『지빌레』 동독의 『보그』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956년 창간해 1994년 폐간된 『지빌레』는 2.50마르크의 가격으로 1년에 6번, 각각 20만 부 이상이 발행되었는데, 나오는 즉시 절판되어 손에 넣기가 어려웠을 만큼 보급률과 영향력이 대단했어요. 잡지에 실린 예술적이고 화려한 이미지는 대중은 물론 패션에 민감한 지식인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독특한 것은 스타일리스트 없이 모델 스스로 그들의 외양을 꾸몄다는 것인데, 당시 동베를린을 포함한 동독에서 구할 수 없는 세련된 옷을 입고 촬영하곤 했어요. 새로운 유행을 소개했고, 기성복은 절대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화려한 조명과 함께 스튜디오 등에서 촬영된 전형적인 패션 화보 사진을 실었지요. 패션뿐만 아니라 문학, 여행, 연극 관련 기사도 수록되었고, 문화·예술계 관계자와의 인터뷰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빌레』는 꿈을 위한 재료를 제공한 것이지요.

그런데 말씀하신 잡지의 방향과는 다르게 아르노 피셔의 패션 사진은 화려하지 않네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르노 피셔는 굉장히 실험적인 작가였습니다. 1962년, 피셔가 『지빌레』에 합류하면서 선보인 패션 사진에는 1960년대 유럽의 진취적인 정신이 잘 녹아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인간의 자유와 여성의 해방을 갈구하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의 패션 사진 속 여성은 유행하던 미니스커트를 입고 가죽 부츠를 신은 채 당당한 자세로 남성과 나란히 바이크 위에 걸터앉아있기도 하고, 동베를린 야경을 배경으로 당시의 신기술로 만든 합성 섬유 원피스를 입은 채 단호한 표정을 짓고 서 있기도 하지요. 특히 영국 출신의 패션모델 트위기(Twiggy)를 연상케 하는 깡마른 몸매의 두 여성에게서는 지난 시대의 핑크빛 여성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검은색 무지 셔츠와 미니스커트를 입은 단발 여성 세 명은 사진 속에서 역삼각형의 기하학적 구도를 이루며 무심한 듯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글래머’는 등장하지 않으며, 남성풍의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가르손느(Garsonne)’처럼 중성적이지요. 지금 우리의 옷차림과 퍽 닮아 보여도, 촬영 당시인 1965년에는 매우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아방가르디스트였던 아르노 피셔의 작품 철학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패션 사진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한 것이 인상 깊습니다. 일반적인 패션 사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평범한 옷이나 일상적인 배경에도 눈이 가네요.
아르노 피셔는 화려한 조명의 스튜디오에서 나와 삶의 현장으로 향했어요. 일상의 공간을 패션 사진의 배경으로 삼은 것입니다. 마치 스냅 사진으로도 보이는 듯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또한 그의 패션 사진 속 모델은 현실 속 모습보다 조금 더 우아하고, 그들의 옷차림은 평소 거리에서 보던 차림새보다 조금 더 아름다울 뿐입니다. 말하자면 현실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지요. 특히 코트와 가죽장갑을 착용한 채 뛰어오는 여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는 인물과 옷차림, 배경까지도 일상과 큰 거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존 패션 사진과의 차별성이 드러나지요. 주름치마를 입은 또 다른 여성은 한 손을 바이크 운전자 등에, 다른 손을 자신의 허리춤에 놓고 당당하게 카메라를 바라봅니다. 백화점 앞을 지나는 여성은 미소를 띠고 있고요. 이렇게 피셔는 전쟁 후의 불안한 동독에서 정치적, 사회적 이념에 빠져들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내곤 했습니다.

정리해 보면,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유의미한 공간과 인물, 복장, 포즈 등이 아르노 피셔 패션 사진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언급했듯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성의 평등, 그리고 인간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했고,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아르노 피셔의 작업 세계가 정립된 것 같습니다. 야경과 공항, 공장지대, 백화점 등을 배경으로 한 패션 사진에서 ‘가장 (동)베를린적인 것이 무엇일까’ 하는 아르노 피셔의 고민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특히 비행기를 뒤로한 채 커다란 여행 가방과 함께 촬영된 두 여성의 사진은 마치 금방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린 워킹 우먼처럼 보입니다. 거기에 당당한 포즈와 직선이 강조된 의상으로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지요. 지금이야 공항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곳이지만, 촬영 당시인 1968년에는 그렇지 않았을 거예요. 외교나 국제적인 규모의 사업이 이루어지고, 자국의 문화가 수출되고 외국의 문화가 수입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공항은 특별한 장소입니다. 이렇게 공항이라는 장소가 가진 특성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을 더욱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지요.

《아르노 피셔: 동베를린의 사진가》가 가지는 사진사적 의의는 무엇인가요? 또한 아직 분단국으로 남은 한국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기를 바라는지요?
이번 전시에는 분단 독일의 GDR 체제에서도 혼란스러운 현실이나 이념에 타협하지 않고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굳건히 지킨 아르노 피셔의 작품 180여 점이 공개되었습니다. 그중 다수가 직접 인화한 빈티지 프린트로, 아르노 피셔의 진정성이 더욱 빛난다고 생각해요. 전시의 기획자인 마티아스 플뢰게(Matthias Flügge)의 말에 따르면 아르노 피셔는 동독을 넘어 20세기 후반의 세계사진사에 매우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한 ‘가장 유명한 무명의 사진가’라고 합니다. 사진이 고유한 예술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이어갔다고 해요. 아르노 피셔는 전쟁과 분단, 통일이라는 사회적·문화적·역사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사회적, 정치적 이념을 뛰어넘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보통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비슷하고,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작품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 분단 상태로 남아있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선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터뷰어 류지훈 기자
해당 기사는 2022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