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페이스 ⦁ ⦁ 서대호 《기억에 다가서서: Approach Memories》



글 강성엽 객원기자
해당기사는 2025년 8월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빛, 색, 구조. 서대호의 사진은 단순히 피사체를 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각을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고, 중립화된 인물과 원형 구조 속에 정제된 감정의 레이어를 숨겨 놓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기억에 다가서는’ 과정을 작업으로 풀어내며 관람객이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과연 사진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기억에 다가서서: Approach Memories》(5.13.~7.18. | 캐논갤러리)를 감상하며 그 질문에 천천히 다가가 본다.


 

〈기억에 다가서서〉 시리즈, 〈기억의 산책〉 ⓒ서대호


〈기억에 다가서서〉 시리즈, 〈기억의 뒷모습〉 ⓒ서대호


‘기억을 상징하는 원형 구조’와 ‘감정을 배제한 중립적 인물 표현’이 전시 작품의 핵심이다. 이번 전시에 담긴 이런 시각적 요소들이 작가 개인의 ‘기억의 본질’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나?
이번 전시에서 강조한 원형 구조는 인간의 머리, 즉 기억 저장소로서의 상징이다. 그리고 감정을 배제한 인물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기억 또는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기억을 포착하려는 시도다. 기억이란 건 매우 모호하고, 때로는 왜곡되며, 쉽게 잊히기도 한다. 그런 ‘기억의 본질’을 추상적으로 시각화해 보고 싶었다. 감상자가 작품을 마주할 때 스스로의 기억 안에서 어떤 감정이 튀어나오는지를 느껴보는 것. 그것이 이번 전시가 던지는 질문이다.

작업 과정이 독특하다. 형식적으로는 사진을 활용했지만, 방법론적으로는 회화를 차용한다. 작업 과정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일반적인 사진 촬영과는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다. 말하자면 프레임을 구성하는 회화 작가의 태도에 가깝다. 작업의 시작은 우선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정한 뒤, 이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할지를 기획 단계에서 치밀하게 설계한다. 모든 세트는 실제로 제작하며 하나하나의 판 위에 천을 덧대고, 규격에 맞게 절단하고, 색을 칠하고, 질감을 구현하는 수십 번의 테스트를 거친다. 조명 세팅 또한 철저히 계산되어 있다. 사진이 회화적으로 보이기 위해 바운스 조명을 활용하고, 노출을 두 스톱 낮춰 촬영 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질감을 살렸다. 디지털 보정 없이 실제의 거친 질감과 그림자, 레이어를 통해 회화와 사진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회화적 접근과 사진 매체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있어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었나?
회화와 사진의 경계에 있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 중심엔 늘 ‘사진’이 있다. 회화적 요소인 직접 칠한 천, 구축된 세트, 색채감 등은 분명 회화적 성격이 강하지만 사진이기 때문에 가능한 요소도 있다. 실물 세트에서 조명을 받으며 생긴 그림자, 인물 피부에 닿는 질감, 레이어의 깊이감 등은 회화가 완전히 따라올 수 없는 사진만의 미학이다. 이러한 요소를 살리기 위해서 세트를 한 판으로 만들지 않고 레이어를 띄워 그림자를 연출한 것이다. 그것이 사진으로서의 존재감을 지켜내는 방식이다.

멀리서 보면 서대호의 작품은 회화처럼 보일 수 있다. 텍스처가 강하고, 색채도 회화적이니까.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진만이 구현할 수 있는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조명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나 레이어 간의 거리 차이에서 오는 입체감, 질감의 생생함, 암부의 디테일 등은 전부 실제 세트를 만들고 모델을 세워 촬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부러 남겨둔 거친 표면이나 균일하지 않은 칠, 마스킹 테이프 자국까지도 사진의 물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다. 작가는 디지털로 완벽히 정제된 이미지를 만들기보다 실제성이 드러나는 사진적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감상자가 이 회화적인 이미지 속에서 사진으로서의 존재감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서대호가 의도한 감상 포인트다.


 


 
전시 제목처럼 ‘기억에 다가서는’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과거 기억이나 경험에서 특별히 끌어온 장면이나 순간이 있나?
이번 작업은 나의 기억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작업 초기엔 수없이 많은 레퍼런스를 뒤지며 방향을 찾으려 했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철저히 무너졌다. 그러다 문득 ‘내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억을 천천히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선명한 장면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잊힌 기억들, 공백처럼 남아 있는 기억의 잔상들, 그것이 이번 작업의 출발점이다. 그렇게 작업을 하면서 오히려 나의 기억을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됐다. 감상자에게도 그런 정서적 환기를 전하고 싶다.

꽤 수고롭고 실험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런 투자와 창작의 동력은 무엇인가?
사실 작업의 동력은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상업 사진가로 20년을 살아왔고 나름의 커리어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진짜 내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다 어느 갤러리의 제안으로 시작한 첫 파인아트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고독한 길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지나고 나니 ‘이제야 진짜 내 작업이 시작됐구나’라는 감각이 들었다. 결국 창작은 자기를 증명해 가는 과정이다. 스스로 견뎌온 간절함 그리고 관람객과의 소통을 향한 욕구가 이 실험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기억의 행렬〉 시리즈, 〈memory_77613〉 ⓒ서대호


기억의 행렬〉 시리즈, 〈memory_77667〉 ⓒ서대호





 
말보다 이미지가 앞설 때가 있다. 특히 ‘기억’처럼 언어로는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의 영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서대호의 작업은 그런 감정의 잔상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시도다. 설명이 필요 없는 울림, 보는 순간 감정이 일렁이는 이미지. 그게 그가 추구하는 사진의 언어다. 감상자가 작품 앞에서 설명서를 읽지 않고도 자기 안의 어떤 기억이나 감정과 마주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작가가 바란 소통이다.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 없는 공명이 서대호의 사진을 통해 전달되길 바란다.

 
서대호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국내외 기업 프로젝트와 유명 인사를 촬영하는 등 상업 사진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4년 10월 발표한 <기억에 다가서서> 시리즈로 예술의 전당, 롯데월드타워 어바웃프로젝트라운지, 아트큐브2R2 등 활발한 개인전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