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만 《풍화된 기억》 KT&G 상상마당 춘천 | 1월 14일 ~ 1월 28일
- 2026-01-02 09:23:44

나는 늘 바다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해안에서 자라며 보아온 바다는 나의 기억 속에 익숙하고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영국 브라이튼 인근 세븐시스터즈 해안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그 익숙함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바다는 같았지만, 바람이 달랐다. 그곳의 바람은 살갗에 스치는 방식부터 달랐다. 더 침착하고, 더 오래 머물렀고, 말없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바람이 매일같이 스쳐 지나간 바위들은 단단함 속에서도 충만한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지만, 그 위에는 시간이 살아 있었고, 변화가 숨 쉬고 있었다.




그곳의 바위들은 희고 회색빛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수천 번의 밀물과 썰물, 수만 번의 바람과 파도, 그리고 그 위에 드리운 구름의 그림자들. 그 모든 것이 바위를 깎고 닳게 하며, 이끼를 입히고, 다시 씻어내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반복은 단조로움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움을 생성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그 바위들을 바라보며, 생명이 없는 존재에게서 가장 강렬한 생명감을 느꼈다.
이 시리즈는 그 감각, 그 찰나의 감동을 잡아두기 위한 기록이다. 바위는 말이 없지만, 분명히 어떤 언어를 품고 있었다. 빛과 소금기, 바람과 물결이 함께 써 내려간 문장들. 나는 단순히 풍경을 담으려 한 것이 아니라, 그 표면 위에 새겨진 시간의 문법, 자연의 순환을 따라가고자 했다.




침식은 파괴가 아니었다. 그것은 조각이었고, 기억이었고, 생존이었다. 바다는 떠나지만 흔적을 남기고, 바람은 머물지 않지만 결을 만든다. 그리고 바위는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다. 이 작업은 그러한 ‘부재의 흔적’들이 만들어낸 조용한 풍경에 대한 시적 연대기이다.
내가 본 바다는, 내가 몰랐던 바다였다. 그 낯섦은 곧 감동이 되었고, 그 감동은 사진이 되었다. 이 전시는 그 찰나의 감각이 누군가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