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외작가 ⦁ ⦁ 에이베 프란드리히 《카멜레온》 | 예술가를 기록한 예술가
- 2026-03-26 16:16:38

에이베 프란드리히의 전시 《카멜레온 Abe Frajndlich, Chameleon | 페지허룽스카머 쿨투어슈티프퉁 (Versicherungskammer Kulturstiftung) 뮌헨》(23.12.13.~24.4.1.)이 프랑크푸르트 포토그라피 포럼(Fotografie Forum, Frankfurt)의 큐레이터 셀리나 룬스포드(Celina Lunsford)와 뮌헨 페지허룽스카머 쿨투어슈티프퉁의 디렉터, 이사벨 지벤(Isabel Sieben)의 공동기획으로 선보였다. 몇 년 전 클리브랜드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 찾아온 셀리나 룬스포드 큐레이터는 이 전시를 계획하며 약 650점의 작품을 선정하였다. 그 후 몇 개월동안 프란드리히와 함께 신중하게 재선정하여 185점의 작업을 독일로 보냈으며 추가로 프랑크푸르트에 보관되어 있던 20점의 작품과 함께 총 200점 이상의 작품을 소개한다.

MinamPicasso, 145 Nassasu Street Studio NYC, NY 2010,2012/2020 © Abe Frajndlich
에이베 프란드리히는 194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차일스하임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가 수용소에 있는 동안 태어났기 때문에 무국적 아이로 분리되었다. 친척들 모두 대학살 시절 처형되었지만 그의 부모는 무사히 살아남았으나 얼마 가지 않아 그의 아버지는 일찍 운명했다. 그 후 어머니는 재혼하였지만 몇 년 후 죽음을 맞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부모를 따라 독일에서 이스라엘로, 다시 독일로 돌아와 파리를 거쳐 브라질로 이주하였고 결국 미국에 정착하게 된다. 새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일찍 여의고 새아버지의 누나에게 입양되어 고모부의 성을 따라 프란드리히(Frajndlich)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1970년도부터 1976년까지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와 나탄 라이온스(Nathan Lyons) 밑에서 사진을 배웠다. 초반 2년 반 동안은 마이너 화이트의 집이자 작업실에서 먹고 자며 그의 서재를 정리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는데 수많은 작업을 정리하며 ‘매체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한다. 사진을 막 시작하는 이에게 유명 작가의 집에서 함께 거주하며 사진작가의 삶과 작업을 통째로 옆에서 보조한다는 것은 아카데믹한 과정 이상의 경험이었던 것이다.
1970년도부터 1976년까지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와 나탄 라이온스(Nathan Lyons) 밑에서 사진을 배웠다. 초반 2년 반 동안은 마이너 화이트의 집이자 작업실에서 먹고 자며 그의 서재를 정리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는데 수많은 작업을 정리하며 ‘매체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한다. 사진을 막 시작하는 이에게 유명 작가의 집에서 함께 거주하며 사진작가의 삶과 작업을 통째로 옆에서 보조한다는 것은 아카데믹한 과정 이상의 경험이었던 것이다.

프란드리히의 영원한 멘토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1970년대 당시 저명한 미국 사진작가 마이너 화이트는 프란드리히가 살고 있던 지역인 클리블랜드에서 사진 워크숍을 열게 된다. 이 워크숍에 참여한 프란드리히는 화이트의 열정적인 에너지에 매력을 느끼고 서슴없이 자신의 풋풋한 작업을 보여주며 질문한다. 화이트는 사진이란 마치 하나의 의식이자 삶을 은유하는 것이고, 숨을 쉬는 것만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화이트의 사진에 대한 철학은 어린 프란드리히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그가 사진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과 관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83년 화이트의 초상 사진으로 전시를 하고 이 전시는 『나는 살아 보지 못한 삶들(Lives I’ve never lived)』이란 제목의 사진집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984년 뉴욕으로 이주한 지 몇 개월 후 독일 언론사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의 아트디렉터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에이베는 언론사에 기고를 위해 많은 유명인을 만나고 촬영하며 초상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로 자리 잡는다.
1970년대 당시 저명한 미국 사진작가 마이너 화이트는 프란드리히가 살고 있던 지역인 클리블랜드에서 사진 워크숍을 열게 된다. 이 워크숍에 참여한 프란드리히는 화이트의 열정적인 에너지에 매력을 느끼고 서슴없이 자신의 풋풋한 작업을 보여주며 질문한다. 화이트는 사진이란 마치 하나의 의식이자 삶을 은유하는 것이고, 숨을 쉬는 것만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화이트의 사진에 대한 철학은 어린 프란드리히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그가 사진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과 관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83년 화이트의 초상 사진으로 전시를 하고 이 전시는 『나는 살아 보지 못한 삶들(Lives I’ve never lived)』이란 제목의 사진집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984년 뉴욕으로 이주한 지 몇 개월 후 독일 언론사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의 아트디렉터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에이베는 언론사에 기고를 위해 많은 유명인을 만나고 촬영하며 초상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로 자리 잡는다.

Ono yoko © Abe Frajndlich

Cindy Sherman, Tabula Rasa, 1987 © Abe Frajndlich
에이베 프란드리히의 뛰어난 능력 중 하나는 자신의 카메라 앞에 앉은 대상에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언론사와 잡지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일을 했으며 당대 많은 사진작가를 비롯한 유명인의 초상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전시를 하거나 인터뷰를 할 때에 프란드리히가 매체에 소개하기 위해 작가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늘 그렇듯이 수많은 유명인을 촬영하며 매번 생기는 흥미로운 촬영 뒷얘기는 사진 작업만큼이나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낯익은 얼굴들이 몇몇 보인다. 혹은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아, 이 사람이구나!’라고 할 만한 인물들도 꽤 있을 것이다. 프란드리히는 전시장에서 사진에 대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직접 소개했는데, 70대 후반의 작가는 마치 어제 일처럼 재미있었다는 듯이 생생하게 설명했다.

잭 레몬(Jack Lemmon)
노란 레몬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잭 레몬의 사진은 1996년에 독일 언론사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 기고를 위하여 촬영된 작업이다. 미국 영화 배우 잭 레몬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 몇 주 전 할리우드에서 촬영 약속이 있었다. 촬영을 준비하며 에이베는 그가 출연한 여러 편의 영화를 보았다. 잭 레몬이 연기하는 다양한 장면들에 등장하는 소품을 눈여겨 보며 초상 사진에서 소품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였다. 잭 레몬과 촬영 약속이 잡힌 당일, 에이베는 어시스트에게 당시 할리우드에서 가장 비싼 식료품점에서 레몬을 사오라고 시켰고 노란색 티셔츠와 노란색 레몬, 검정색 모자를 소품으로 준비하고 잭 레몬을 맞이하였다. 아마도 잭 레몬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은 소품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다. 잭 레몬은 우스꽝스러운 소품을 건네며 초상사진을 찍자는 에이베에게 “나는 영화배우로 55년을 활동하였는데 지금까지 모든 사진작가들은 나의 새 영화홍보를 목적으로 촬영
하였다. 이렇게 레몬으로 사진 찍자는 경우는 처음이다. 에이베, 당신이 찍고 싶은 대로 마음껏 찍어도 좋다.”라고 하며 흔쾌히 촬영에 응하였다.
노란 레몬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잭 레몬의 사진은 1996년에 독일 언론사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 기고를 위하여 촬영된 작업이다. 미국 영화 배우 잭 레몬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 몇 주 전 할리우드에서 촬영 약속이 있었다. 촬영을 준비하며 에이베는 그가 출연한 여러 편의 영화를 보았다. 잭 레몬이 연기하는 다양한 장면들에 등장하는 소품을 눈여겨 보며 초상 사진에서 소품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였다. 잭 레몬과 촬영 약속이 잡힌 당일, 에이베는 어시스트에게 당시 할리우드에서 가장 비싼 식료품점에서 레몬을 사오라고 시켰고 노란색 티셔츠와 노란색 레몬, 검정색 모자를 소품으로 준비하고 잭 레몬을 맞이하였다. 아마도 잭 레몬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은 소품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다. 잭 레몬은 우스꽝스러운 소품을 건네며 초상사진을 찍자는 에이베에게 “나는 영화배우로 55년을 활동하였는데 지금까지 모든 사진작가들은 나의 새 영화홍보를 목적으로 촬영
하였다. 이렇게 레몬으로 사진 찍자는 경우는 처음이다. 에이베, 당신이 찍고 싶은 대로 마음껏 찍어도 좋다.”라고 하며 흔쾌히 촬영에 응하였다.

Jack Lemmon, Hollywood Studio, Los Angeles, California, 1996 © Abe Frajndlich

The Rolling Stones at the launch of “The Bridges Of Babylon”album under the Brooklyn Bridge, New York City, NY, July 1997 © Abe Frajndlich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84년 6월, 프란드리히가 뉴욕으로 이주하기 바로 직전의 시기에 미국 현대미술가이자 사진작가인 신디 셔먼의 첫 회고전이 그가 살고 있던 클리블랜드에서 개최되었다. 그는 신디 셔먼의 사진 촬영을 의뢰받고 촬영을 준비하며 그녀의 다양한 작품집을 찾아보며 조사했다. 준비 과정에서 신디 셔먼이 굉장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성격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초상 사진을 찍는 데에 조금이나마 어려움을 줄이고자 검정 가면과 하얀색 가면을 각각 하나씩 준비해 갔고 낯선 환경에서 신디 셔먼은 가면을 쓰고 자연스럽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몇 년 뒤 뉴욕에서 다시 한번 신디 셔먼을 촬영할 기회가 주어졌고 당연히 두 번째 만나는 자리는 훨씬 편안하게 얼굴을 가리지 않고 포트레이트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지금은 모두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서로 적절하게 알려진 예술가로서 촬영을 하는 사진작가와 모델이 된 사진작가의 인연이 흥미롭다.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전시장에 다른 사진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프린트된 롤링 스톤즈의 사진은 1997년 뉴욕 맨해튼에서 촬영했다. 영국의 대형 록밴드 롤링 스톤즈의 새 앨범(Bridges to Babylon)의 론칭 행사장이었는데, 프란드리히는 지금까지 자신이 촬영한 적 없는 조건의 촬영장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을 보아도 예상할 수 있듯이 롤링 스톤즈와 촬영을 약속하고 만난 것이 아닌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으로 촬영했다. 마치 영화를 찍듯 맨해튼 다리 위에는 모든 차량이 통제되고 믹 재거의 빨간 캐딜락 한 대만이 있었고 공중에는 헬기가 날아다니며 행사장을 촬영하고 있었다. 프란드리히는 무대와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많은 파파라치와 사진기자들에 둘러싸여 대형 카메라로 롤링 스톤즈를 렌즈에 담았다. 그가 말하길 쉽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최선을 다했고 그러한 작업 결과로 얻어진 작품은 컬렉터에게 팔리게 되었으며, 또한 이번 전시에도 대형 사이즈로 인화되어 전시장 입구에 전시되었다면서 애틋하게 이 작품을 설명했다.

요세프 쿠델카(Josef Koudelka)
1974년 우연한 기회로 체코 출신 프랑스 사진작가 요세프 쿠델카의 사진을 촬영했다. 프란드리히가 뉴욕 라파포트 인쇄소에서 그의 첫 작품집 『피그먼트(Figments)』를 출판하기 위해 인쇄소에 살다시피 지낼 때 요세프 쿠델카 역시 그의 첫 작품집 『집시들(Gypsies)』 출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젊은 사진작가는 며칠 몇날을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며 자신의 첫 작품집을 고대하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을 공유했을 것이다. 훗날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가 서로의 방식으로 사진계에 큰 영향을 주는 작가가 될 줄 예상했을까? 프란드리히는 짧지만 인상 깊었던 인연을 회상하며 쿠델카의 젊은 모습이 담긴 사진을 소개한다.
1974년 우연한 기회로 체코 출신 프랑스 사진작가 요세프 쿠델카의 사진을 촬영했다. 프란드리히가 뉴욕 라파포트 인쇄소에서 그의 첫 작품집 『피그먼트(Figments)』를 출판하기 위해 인쇄소에 살다시피 지낼 때 요세프 쿠델카 역시 그의 첫 작품집 『집시들(Gypsies)』 출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젊은 사진작가는 며칠 몇날을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며 자신의 첫 작품집을 고대하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을 공유했을 것이다. 훗날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가 서로의 방식으로 사진계에 큰 영향을 주는 작가가 될 줄 예상했을까? 프란드리히는 짧지만 인상 깊었던 인연을 회상하며 쿠델카의 젊은 모습이 담긴 사진을 소개한다.

Joseph Koudelka, Rapoport Printing Presses, NYC, NY, 1975 © Abe Frajndlich
오노 요코(Ono Yoko)
1994년 영국 잡지사의 요청으로 오노 요코 촬영이 잡혔다. 프란드리히는 늘 그렇듯이 자신이 촬영할 상대에 대한 조사를 하고 준비했다. 여러 기사를 읽던 중 오노 요코가 쉽지 않은 성향이라는 내용을 보았다. 그는 여러 방면으로 어떻게 자연스럽게 촬영할 수있을지 고민하던 끝에 주변 지인 중 오노 요코와 친분이 있는 친구를 알아내었고 그에게 연락해 “오노 요코와 사진 촬영이 잡혔어. 그런데 나에게 좀 친절하게 대해달라고 좀 부탁해 줘.”라고 요청했다. 촬영 당일, 오노 요코는 장장 5시간에 걸쳐 촬영에 임했고 그녀의 작업을 보여주기도 하고 점심도 준비해 놓았으며 심지어 촬영 이후 공원을 함께 산책했다고 한다(오노 요코의 보디가드도 함께였다고 덧붙였다). 프란드리히와 그의 조수는 그 어떤 촬영보다 환대받았고 우산을 들고 있는 오노 요코의 모습이 담긴 작업은 잡지사 측에서도 매우 만족했다. 그러나 촬영 이후 갑작스레 오노 요코는 비틀즈 해체의 주요 인물로 지목되어 영국 매체에서 질타를 받는 상황이 되었고 안타깝지만 이 사진은 언론에 게재되지 못했다.

그의 영원한 뮤즈, 로지(Rosie) & 미나미(Minami)
프란드리히의 작업에서 두 명의 행위예술가 로지(Rosie, Rosebud Conway)와 미나미 아주(Minami Azu)를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도 그는 배우인 로지를 만난다. 로지와 함께하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 함께 박물관을 가거나 시골로 여행을 하거나 아주 사적인 순간까지 매 순간의 로지의 모습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로지의 사진에는 그의 예술적 시도와 개인적인 감정이 모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지는 자신의 예술을 확장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자신의 신체를 희생하기도 하는 열정적인 예술가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약 서른의 이른 나이에 짧고 정열적인 삶을 마감하였다. 그 후 열흘 뒤 미나미 아주가 태어났다. 로지가 프란드리히의 첫 번째 뮤즈였다면, 일본 부토1) 무용수인 미나미가 그의 두 번째 뮤즈이다. 프란드리히는 한창 부토 무용에 매력에 빠져 있었고 우연히 뉴욕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미나미를 만나게 된다. 그 후 다른 촬영차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미나미의 고향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그녀를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그뒤로 오랜 기간동안 둘은 서로 다른 지역과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콜라보레이션을 하며 미나미는 그의 또 다른 뮤즈로 자리잡는다.

Minor White, Arlington Heights, Massachusetts, from the book, Lives I’ve Never Lived, 1976 © Abe Frajndlich
프란드리히는 관객들에게 “이 전시를 보는 이들은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 이상으로 그의 삶 전체를 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흑백에서부터 컬러까지 작품 안에 그의 모든 시간을 지나온 여정이 있고 각각의 인연과의 스토리가 담겨있기에 에이베 프란드리히를 잘 모르는 관객이어도 그의 삶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정성과 애정이 가득한 전시이다.
글 조희진 특파원
해당 기사는 2024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 조희진 특파원
해당 기사는 2024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