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작가 8인전《La Textura de las Promesas (The Texture of Promises)》│재현의 다의성을 푸는 열쇠
- 2024-07-25 12:30:22

스페인 북부의 해양 도시 산 세바스티안에 있는 Kutxa 문화 예술센터(Kutxa Kultur Artegunea)에서 그룹전 《La Textura de las Promesas (The Texture of Promises)》를 열었다. 전시는 사진의 재현에 담긴 다의성을 탐구하며, 한국, 중국, 인도, 일본, 싱가포르에서 온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덟 작가의 작업은 다양한 출신 지역과 세대만큼 폭넓다. 스트레이트한 사진부터 영상과 몽타주, 그리고 비단 인화 작품까지. 사진을 매체로 쓰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참여 작가
구본창 (한국, b.1953)
高波 (가오보, 중국, b.1964)
计洲 (지저우, 중국, b.1970)
Sukanya Ghosh (수칸야 고쉬, 인도, b.1973)
水島貴大 (타카히로 미즈시마, 일본, b.1988)
郭张 玮欣(웨이신 청, 싱가포르, b.1988)
王居延 (왕주안, 중국, b.1993)
黄淑婷 (웅 속 텅, 싱가포르, b.1994)
구본창 (한국, b.1953)
高波 (가오보, 중국, b.1964)
计洲 (지저우, 중국, b.1970)
Sukanya Ghosh (수칸야 고쉬, 인도, b.1973)
水島貴大 (타카히로 미즈시마, 일본, b.1988)
郭张 玮欣(웨이신 청, 싱가포르, b.1988)
王居延 (왕주안, 중국, b.1993)
黄淑婷 (웅 속 텅, 싱가포르, b.1994)
《La Textura de las Promesas (The Texture of Promises)》
재현의 다의성을 푸는 열쇠
재현의 다의성을 푸는 열쇠

한국 사진가 구본창은 대표작 중 하나인 시리즈로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한 평론가는 이 프로젝트를 두고 “백자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백자 감추기"1)라고 말했는데, 오브제에 담긴 미니멀한 아름다움이 자연스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구본창 작가는 백자를 통해 달의 차오름을 표현한 작업도 함께 전시하며 스페인 관객에게 조선백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베이징과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사진, 설치 미술, 건축까지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가오보는 작품을 선보였다. 80년대 중반부터 십여 년 동안 티베트를 드나들며 찍은 사진을 재구성한 이 프로젝트는 작가의 잠재의식을 따라 시간과 공간을 뒤섞고, 이미지 위에 핏빛 글씨를 휘갈겼다. 그는 티베트라는 장소의 상징성에 자기의 피로 글씨를 쓰는, 마치 고대 제사 의식 같은 행위를 더하면서 낡은 사진을 신에게 바치는 ‘공물’처럼 만들었다.

중국 작가 지저우는 전시장 한쪽 벽면을 채운 대형 작품 을 선보였다. 낱장의 이미지를 기워 붙인 몽타주는 여러 시간대에 찾아가 찍은 식물원 사진으로 구성한 것이다. 관객은 다양한 색감과 크기의 사진이 합쳐진 이 작품이 스트레이트한 풍경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는데, 그런데도 지저우는 자신의 이미지가 가장 진실한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온 수칸야 고쉬는 사진, 그래픽 디자인, 영상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낡은 가족사진 위로 이해하기 어려운 기호와 문양이 겹치는 비디오 를 내보였다. 고쉬는 영상에서 의도적으로 내러티브를 배제하고,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파편처럼 만들어 관객이 내면의 기억과 마주하도록 했다. 내러티브를 잃고 초현실적으로 병합되며, 원본성이 지워진 그녀의 작품은 몽환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일본 사진가 타카히로 미즈시마는 을 통해 도쿄의 행정구역 오타구에서 만난 홈리스들을 찍은 사진을 선보였다. 불안정한 플래시 불빛 아래 담긴 인간 군상의 모습에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는데, 그래서인지 꾸밈없이 거친 스냅샷에서 그들에게 동화하는 미즈시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지금 일본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평범한 이들이 살아가는 풍경을 보여주는 그의 사진은 그래서 문화를 막론하고 조금 더 쉽게 관객에게 다가선다.

싱가포르 작가 웨이신 청은 세계 최고 대리석 산지로 유명한 이탈리아 카라라 지방에서 레지던시를 하면서 를 만들었다. 그녀는 대리석 표면을 클로즈업한 이미지를 비단에 인화한 후, 유려한 물줄기처럼 보이도록 손길을 더했다. 돌의 단면이나 형태에서 산수풍경을 찾는 동양의 수석(suiseki) 취미처럼, 대상의 이면을 보려 한 작가는 단단한 성질의 피사체를 하늘거리는 실크 위로 옮겨 새로운 물성을 창조했다.

중국의 왕주안은 둔황 막고굴부터 신장 키질 석굴까지 고대 실크로드의 석굴을 찾아가서 찍은 을 선보였다. 작가는 유서 깊은 절을 가득 메운 채 공산당 혁명가를 부르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마주하며 기묘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역사)와 현재(이데올로기)의 대조가 불러일으킨 양가감정을 재현하려 했다. 병풍처럼 설치한 전시 방식은 2019년 출간한 사진집 『Uncharted+』에 적용한 방식을 빌려온 것이다.

싱가포르의 웅 속 텅은 선천적인 척추측만증으로 외과 수술을 받았던 개인적 경험을 길거리의 가로수를 지탱하고 있는 지지대에 투영하여 를 만들었다. 작가의 고향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라는 특성 때문에 가로변의 정비와 관리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 그녀는 이를 통해 자연을 컨트롤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했다. 흰색 배경에 지지대 중앙을 담은 이미지는 작가의 수술 경험과 이어지며 마치 엑스레이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덟 명 작가의 작업은 다양한 출신 지역과 세대만큼 폭넓다. 스트레이트한 사진(구본창, 타카히로 미즈시마)부터 영상과 몽타주(수칸야 고쉬, 지저우), 그리고 비단 인화 작품(웨이신 청)까지 사진을 매체로 쓰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이에 큐레이터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Alejandro Castellote)를 서면 인터뷰하여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와 작가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아시아 사진가의 그룹전을 기획한 계기가 궁금하다.
A. 이번 전시는 Kutax 문화 예술센터의 의뢰로 시작하게 됐다. Kutax 센터는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스페인의 주요 기관 중 한 곳인데, 내가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 기획을 맡은 적도 있고, 또 오랫동안 많은 아시아 작가에 관심을 갖고 주목해온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아시아 작가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재현 방식과 문법을 활용해 스토리텔링을 하고, (사진을 이용해) 현실과 기억, 세상을 다루는 작품을 모으려고 했다. 아시아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적은 스페인 관객에게 이번 전시가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랐다.
참여 작가와 작품을 선택한 기준이 있다면?
A. 지역과 세대의 다양성이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리고 전시 제목 “The Texture of Promises"는 사진이 우리에게 한 약속을 가리키는데, 2) 관객이 프레임 안에 재현된 대상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사진이 진실하고 정확하게 현실을 그리기(재현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명료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이러한 수사법으로 언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첫눈에 들어오는 사진의 레이어 - 시각적 질감 - 안에서 이루어진다. 작품을 선택할 때 이런 점을 고려했다.
사진이 언어의 한계를 넘어 시각적인 재현만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시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스페인 관객은 전시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A. 언어의 한계를 넘는다는 부분이 중요한데, (언어를 포함하여) 사진에 담긴 문화적 코드를 모르면 의미를 깨닫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서양 관객이) 아시아 문자를 볼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게다가 중국어처럼 하나의 문자가 여러 개의 뜻을 가지면 더 다의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서양의 경우, 종교 개혁 이후의 미술 - 이때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것이 곧 답”이라 할 만큼 명백함을 지향했다 - 과 달리 개혁 이전의 바로크 예술은 상징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당시의 그림이나 조각은 색상의 대비, 빛과 그림자, 극적인 화면구성 같은 시각적 장치를 활용한 이상적 형태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상징성을 띤 예술에 익숙한 서양 관객은 사진의 재현 이면에 있는 은유와 비유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이점 중 하나는 관객이 새로운 지식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예술은) 다른 문화의 뿌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양 관객에게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고전 그리스 미술이나 르네상스 예술에 바탕을 둔 기준에 의문을 품도록 할 수도 있다. 이번 전시가 아시아를 바라보는 상투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거로 생각한다.
작품을 볼 때 작업 노트 같은 서브 텍스트와 작가의 생물학적 배경(biological back story)이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3) 앞서 말했듯 문화 코드를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도 시각적인 재현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진 자체만으로 보편적 의미를 전달할 수는 없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이미지의 다의성은 글이나 (작품에 붙인) 캡션을 이용해 하나로 수렴되어야 한다. 전시장의 텍스트는 작품의 숨겨진 의미에 접근하게 해주는 암호가 될 수 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이 비밀스럽게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는 한,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아니면 최소한 해석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단서를 관객에게 주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적 코드를 접할 때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
요컨대 사진을 보는 관객은 텍스트를 읽기 전에 느끼는 감정과 읽은 후 새롭게 다가오는 감정을 복합적으로 겪게 된다. 이러한 감상 경험이 사진의 다의성을 강화하는 것일까?
구본창의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에는 그의 사진이 보여 주는 미니멀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조선 시대에 백자가 갖던 지위나 일제 강점기의 약탈 행위처럼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구본창은 해외로 유출된 백자를 찍음으로써,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을 모국으로 다시 데려왔다. 여기서 작업을 부연하는 텍스트는 이해의 폭을 넓혀 주고,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가오보가 찍은 티베트 사진을 보며 작가가 자기 피로 글을 썼다는 걸 알게 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타카히로 미즈시마가 노숙인을 찍은 것이 십 대 때의 가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에서 미즈시마는 관찰자가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과 공범이었다.
다양한 주제만큼 설치 방식 또한 제각각이다. 전시를 준비할 때 이런 부분은 어떻게 고려했는가?
무엇보다 관객이 자유롭게 작품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천천히 전시장을 거닐며 잠시 멈추기도 하고, 뒤돌아보기도 하고, 조금 떨어져 전체를 보았다가, 가까이 다가가 디테일을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 무의식중에 작품을 인지하게 된다. 마치 명상을 하듯 이미지에 접근하면서 작가가 관객과 공유하려고 했던 감정에 동조하는 것이다.
전시장에서의 경험은 화면으로 사진을 볼 때와는 달라야 한다. 지저우와 왕주안, 웨이신 청의 작업은 꼭 실물을 봐야 하는데, 화면 안에서는 그들의 작품이 주는 감각적 자극이 누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리소스를 활용하여 관객의 감상 경험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수칸야 고쉬의 비디오 옆에 몽타주 몇 점을 함께 걸어둔 건 서로 다른 형태의 시각적 작업을 이어주기 위해서였다. 타카히로 미즈시마의 사진들은 멀리서 보면 도쿄의 스카이라인처럼 보이게 배치했는데, 가까이서 보면 우리(서양)가 생각하는 일본의 풍경이 아닌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가오 보가 피로 글씨를 쓴 것이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사진에 남긴 것은 “해석 불가능한" 글씨인데, 그런데도 하나의 서브 텍스트로 기능할 수 있을까?
가오보는 깨달음을 기록하기 위해 자기 피로 동굴 벽에 글을 썼다는 한 고승의 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자신과 작품이 (피로) 맺은 관계는 분리될 수 없다고 했다. 가오보가 “영혼의 언어" 4) 라고 칭한, 해독 불가능한 글자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암시하는 제스처이다.
가오보는 중국의 전통적인 화법에서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글자를 하나의 제스처로 강조했다. 피를 이용한 행위는 작가가 사진에 담으려 한 의미를 강조해 준다. 시각 예술가인 그는 작품이 언어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거부하고, 사진이 가진 다의성을 중시한다. 가오보가 “무언가를 쓴다면 무언가를 제한하는 것이다. 읽을 필요 없이,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구본창 작가와 오래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그의 여러 작품 중 시리즈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작가와는 90년대 후반에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오랫동안 그의 작업을 봐왔다. 그 덕분에 다른 한국 사진가의 작품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구본창이 자신의 사진에서 되풀이하는 중심 주제는 시간과 자연, 그리고 한국적 전통이다. 나는 이러한 개념들이 프로젝트에 잘 드러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겸손과 연민, 검소함 같은 도교적 윤리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백자로 표현한 미니멀리즘의 미학은 비움과 채움, 순수함에 대한 은유이다. 귓가에 속삭이듯 이야기를 들려주며 명상에 빠지게 만드는 구본창의 이미지를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유럽 시장에서 아시아 사진가들을 어떻게 보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
유럽 시장에는 새로운 아시아 사진가를 발굴해 내려는 수요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유럽의 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 대부분은 아마도 잡지를 통해 아시아 작가를 접할 것이다. 최근에는 사진집이 좀 더 들어오고 있지만, 갤러리나 아트 페어 등지에서 직접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을까 싶다. 스페인도 비슷하지만,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또한 자국 예술가나 작품의 해외 진출을 위한 국가적, 정책적인 지원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럽에서 열리는 사진 축제의 오픈 콜 행사 등에 점점 더 많은 아시아 작가가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 또한 해외에 작품을 더 알리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글 최다운 사진에세이스트
인터뷰이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 큐레이터
인터뷰어 최다운
해당 기사는 2023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아시아 사진가의 그룹전을 기획한 계기가 궁금하다.
A. 이번 전시는 Kutax 문화 예술센터의 의뢰로 시작하게 됐다. Kutax 센터는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스페인의 주요 기관 중 한 곳인데, 내가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 기획을 맡은 적도 있고, 또 오랫동안 많은 아시아 작가에 관심을 갖고 주목해온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아시아 작가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재현 방식과 문법을 활용해 스토리텔링을 하고, (사진을 이용해) 현실과 기억, 세상을 다루는 작품을 모으려고 했다. 아시아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적은 스페인 관객에게 이번 전시가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랐다.
참여 작가와 작품을 선택한 기준이 있다면?
A. 지역과 세대의 다양성이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리고 전시 제목 “The Texture of Promises"는 사진이 우리에게 한 약속을 가리키는데, 2) 관객이 프레임 안에 재현된 대상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사진이 진실하고 정확하게 현실을 그리기(재현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명료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이러한 수사법으로 언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첫눈에 들어오는 사진의 레이어 - 시각적 질감 - 안에서 이루어진다. 작품을 선택할 때 이런 점을 고려했다.
사진이 언어의 한계를 넘어 시각적인 재현만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시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스페인 관객은 전시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A. 언어의 한계를 넘는다는 부분이 중요한데, (언어를 포함하여) 사진에 담긴 문화적 코드를 모르면 의미를 깨닫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서양 관객이) 아시아 문자를 볼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게다가 중국어처럼 하나의 문자가 여러 개의 뜻을 가지면 더 다의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서양의 경우, 종교 개혁 이후의 미술 - 이때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것이 곧 답”이라 할 만큼 명백함을 지향했다 - 과 달리 개혁 이전의 바로크 예술은 상징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당시의 그림이나 조각은 색상의 대비, 빛과 그림자, 극적인 화면구성 같은 시각적 장치를 활용한 이상적 형태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상징성을 띤 예술에 익숙한 서양 관객은 사진의 재현 이면에 있는 은유와 비유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이점 중 하나는 관객이 새로운 지식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예술은) 다른 문화의 뿌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양 관객에게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고전 그리스 미술이나 르네상스 예술에 바탕을 둔 기준에 의문을 품도록 할 수도 있다. 이번 전시가 아시아를 바라보는 상투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거로 생각한다.
작품을 볼 때 작업 노트 같은 서브 텍스트와 작가의 생물학적 배경(biological back story)이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3) 앞서 말했듯 문화 코드를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도 시각적인 재현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진 자체만으로 보편적 의미를 전달할 수는 없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이미지의 다의성은 글이나 (작품에 붙인) 캡션을 이용해 하나로 수렴되어야 한다. 전시장의 텍스트는 작품의 숨겨진 의미에 접근하게 해주는 암호가 될 수 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이 비밀스럽게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는 한,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아니면 최소한 해석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단서를 관객에게 주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적 코드를 접할 때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
요컨대 사진을 보는 관객은 텍스트를 읽기 전에 느끼는 감정과 읽은 후 새롭게 다가오는 감정을 복합적으로 겪게 된다. 이러한 감상 경험이 사진의 다의성을 강화하는 것일까?
구본창의
다양한 주제만큼 설치 방식 또한 제각각이다. 전시를 준비할 때 이런 부분은 어떻게 고려했는가?
무엇보다 관객이 자유롭게 작품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천천히 전시장을 거닐며 잠시 멈추기도 하고, 뒤돌아보기도 하고, 조금 떨어져 전체를 보았다가, 가까이 다가가 디테일을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 무의식중에 작품을 인지하게 된다. 마치 명상을 하듯 이미지에 접근하면서 작가가 관객과 공유하려고 했던 감정에 동조하는 것이다.
전시장에서의 경험은 화면으로 사진을 볼 때와는 달라야 한다. 지저우와 왕주안, 웨이신 청의 작업은 꼭 실물을 봐야 하는데, 화면 안에서는 그들의 작품이 주는 감각적 자극이 누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리소스를 활용하여 관객의 감상 경험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수칸야 고쉬의 비디오 옆에 몽타주 몇 점을 함께 걸어둔 건 서로 다른 형태의 시각적 작업을 이어주기 위해서였다. 타카히로 미즈시마의 사진들은 멀리서 보면 도쿄의 스카이라인처럼 보이게 배치했는데, 가까이서 보면 우리(서양)가 생각하는 일본의 풍경이 아닌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가오 보가 피로 글씨를 쓴 것이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사진에 남긴 것은 “해석 불가능한" 글씨인데, 그런데도 하나의 서브 텍스트로 기능할 수 있을까?
가오보는 깨달음을 기록하기 위해 자기 피로 동굴 벽에 글을 썼다는 한 고승의 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자신과 작품이 (피로) 맺은 관계는 분리될 수 없다고 했다. 가오보가 “영혼의 언어" 4) 라고 칭한, 해독 불가능한 글자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암시하는 제스처이다.
가오보는 중국의 전통적인 화법에서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글자를 하나의 제스처로 강조했다. 피를 이용한 행위는 작가가 사진에 담으려 한 의미를 강조해 준다. 시각 예술가인 그는 작품이 언어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거부하고, 사진이 가진 다의성을 중시한다. 가오보가 “무언가를 쓴다면 무언가를 제한하는 것이다. 읽을 필요 없이,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구본창 작가와 오래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그의 여러 작품 중
작가와는 90년대 후반에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오랫동안 그의 작업을 봐왔다. 그 덕분에 다른 한국 사진가의 작품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구본창이 자신의 사진에서 되풀이하는 중심 주제는 시간과 자연, 그리고 한국적 전통이다. 나는 이러한 개념들이
마지막으로 유럽 시장에서 아시아 사진가들을 어떻게 보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
유럽 시장에는 새로운 아시아 사진가를 발굴해 내려는 수요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유럽의 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 대부분은 아마도 잡지를 통해 아시아 작가를 접할 것이다. 최근에는 사진집이 좀 더 들어오고 있지만, 갤러리나 아트 페어 등지에서 직접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을까 싶다. 스페인도 비슷하지만,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또한 자국 예술가나 작품의 해외 진출을 위한 국가적, 정책적인 지원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럽에서 열리는 사진 축제의 오픈 콜 행사 등에 점점 더 많은 아시아 작가가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 또한 해외에 작품을 더 알리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글 최다운 사진에세이스트
인터뷰이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 큐레이터
인터뷰어 최다운
해당 기사는 2023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