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국제사진제 국제주제전 《Day to Morrow》 | 이탈리아 현대사진의 파노라믹 풍경



동강국제사진제는 매해 7월 뜨거운 여름의 한 가운데 국내 사진축제의 서막을 알리며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에서 개막한다. 올해로 21회를 맞이하는 동강국제사진제(7.21-9.24)는 국내 최초로 ‘사진마을’을 선포한 영월군에서 국내 사진축제의 역사를 가장 오래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사진제이다. 20여 년을 지나온 동강국제사진제는 2002-2004년 ‘동강사진축전’, 2005-2008년 ‘동강사진축제’ 시기를 거쳐 2009년 규모를 확장하고 ‘동강국제사진제’로 개칭하며 현재에 이른다. 동강사진박물관을 중심으로 영월군 전역에서 열리는 동강국제사진제는 크게 전시, 교육, 부대 행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제주제전은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국제공모전과 함께 동강국제사진제를 대표하는 주요 전시이다. 올해 국제주제전은 예술감독체제에서 큐레이터 체제로 변환되는 2019년부터 4년간 진행되어온 ‘아카데미 시리즈’의 마지막 전시이다. ‘전 세계 사진예술의 경향과 이슈를 중심’으로 그동안 영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의 현대사진계의 주요한 맥락을 짚어온 국제주제전은 그 마지막 회를 맞이하여 이탈리아로 넘어간다. 《Day to Morrow》는 이탈리아 사진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구축해온 11명의 작가를 통해 이탈리아 현대사진의 파노라마를 펼쳐내 보이고 있다.

 
 


《Day to Morrow》 전시 전경

 
《Day to Morrow》 전시는 두 층으로 나뉜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섹션의 구분 없이 11명의 이탈리아 작가들을 조명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이탈리아 사진전’으로, 자국의 외부로 소개된 적이 거의없는 그리하여 저평가되어왔거나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이탈리아 현대사진의 흐름에 초점을 맞췄다. 수천 년간 역사의 중심지, 르네상스 문화가 꽃핀 예술의 나라, 전 세계인들이 매해 찾는 남유럽의 대표적 관광지, 잘 보존된 고대 건축물과 역사적 기념비가 산재한 명소 등과 같은 고정된 수식어만이 이탈리아를, 그 역사적 풍경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Day to Morrow》 전시는 외부에서 내부로 그 시선을 전환시킨다. 관광지, 유적지, 명소, 전시장, 휴양지 등 외부의 ‘보려는 욕망’이 빚어내는 상투적 풍경을 해체하고, 내부로부터 심미적이고 미학적인 ‘보려는 욕망’을 통해 현대사진의 여러 면모를 재고해보려는 듯하다. 참여 작가들은 사진 미학을 기반으로 1960년대 전후부터 현재까지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오고 있는 이탈리아 대표 사진작가로, 이탈리아 풍경의 변천에 섬세하게 부응해왔다.

 

 
 


Milano, 1998 ⓒGuido Duidi

 
사진이라는 광학 매체를 통해 풍경을 대하는 관습적 태도에 새로운 시각적 접근을 보여주는 작가들이 있다. 풍경은 사진의 탄생 이래 사진이 오래 애호한 주제로, 사진은 도시나 자연 등의 풍경을 수없이 재현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특정 장소를 사진의 기록성에 기대어 포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들을 재구성하거나 타장르와 융합하고 시점을 변화시키는 등 다양한 시각적 면모를 통해서 새롭게 재현해왔다. 귀도 귀디(Guido Guidi, 1941~)는 이탈리아 실험 사진의 선구적인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가가 마주하는 풍경들을 기록한 스냅부터 도시 공간의 여러 건축들의 형태에 주목하고 성찰하는 <공간 아카이브> 시리즈까지 작가의 대표적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는 친숙한 거리, 일상적 풍경, 주변의 인물들의 재구성을 통해 풍경을 대하는 상투적인 시각, 무뎌진 감각을 거슬러왔다. 딥티크(diptyque) 형식의 거리 풍경 <밀라노(Milano)>(pp.72-73)는 같은 곳을 각기 다른 시간대에 촬영한 사진으로, 거리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두 장의 선후 관계는 알 수가 없다. 하루가 지난 후인지 미리 찍은 사진을 뒤에 배치한 것인지 관람객은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한쪽 방향에 익숙한 관람객은 두 장면을 오가며 아마도 혼란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은 사회적 규칙과 질서에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두 사진의 시간차를 통해 공간을 바라보는 선형적 태도 혹은 사진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지각에 위트를 가한다.

 

 
 
 
Capri, 2013 ⓒOlivo Babieri


Malaga, Spain, 2006 ⓒOlivo Babieri


귀디가 도시의 일상적 풍경을 사진적 대상으로 삼았다면, 올리보 바비에리(Olivo Barbieri, 1954~)의 사진은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나 주요 명소 등을 사진으로 다룬 장소특정적 연작이다. 그러나 바비에리가 포착한 풍경은 원근법적 규칙, 자연광, 정면성 등 일반의 촬영 방식에서 온전히 벗어나 있다. 그가 재현하는 이미지는 평면성, 인공광, 부감 촬영 그리고 포토샵을 통한 후보정을 거쳐 생경한 도시 공간, 언캐니의 풍광을 자아낸다(<카프리(Capri)>, <말라가, 스페인(Malaga, Spain)>(p.74)). 파올라 데 피에트리(Paola de Pietri, 1960~)는 폐허의 농가나 건축물 그리고 나무의 풍경을 흑백의 일정한 톤을 통해서 재현한다. <이 평원(Questa Pianura)> 시리즈(p.76)는 자본과 시장 경제의 논리에 따라 변화하는 산업화의 한 단편을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된 건축물과 기능에서 해방된 자연이라는 대조적인 두 대상을 통해서 투영해 낸다. 이때 피에트리는 대상을 사진의 중심으로 배치하고 정면성을 강조하면서 형식의 엄격성을 갖추고 있으며, 흑백의 중간톤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대상을 보다 조형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해 낸다.

 

Corpo latteo ⓒAntonio Biasiucci


Corpo Ligneo ⓒAntonio Biasiucci

 
사진의 조형성을 강조하면서 사진의 ‘증언적 지위’에 도전하는 작가는 안토니오 비아시우치(Antonio Biasiucci, 1961~)이다. 그는 사물의 형상을 탐구하고 현실의 이미지를 변형시켜 모호하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재탄생시킨다(). 작가는 “사진 안에 응결된 이미지는 경계적 차원에 있어 일종의 근접성을 불러 일으키는데, 물성은 매우 명료한 데 반해 감각적으로는 제대로 지각되지 않는 속성을 지닌다 (...) 누군가가 나타나 전생의 사건들을 소환하여 시간의 유물이 다시 깨울 때까지 기다림이 계속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사물의 물성과 자각 사이의 틈에 대해 언급한다. 작가는 물성을 변형시켜 그것이 지각되는 원래의 맥락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제대로 지각되지 않는’ 형상물로 전환시킨다. 크기와 형태가 변형되고 시공간이 전환된 사물은 이제 꿈과 환상 그리고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사진의 대상이 된다. 그의 사진은 사진의 기계적 재현을 나타내는 동시에 언캐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환상적인 소도시의 형상이 알고 보면 나무 조각이거나(), 우주의 탄생 장면이나 은하수의 광경이 알고 보니 우연히 포착한 모짜렐라 치즈에서 나온 액체(<우윳빛 몸체(Corpo latteo)>)를 포착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익숙함은 낯설음으로 변하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무너지게 된다.(p.75)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탐구하는 비아시우치는 ‘낯설게 하기’라는 강령에 따라 우리의 경직된 시각에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Questa Pianura, 2004, 2014-2017 ⓒPaola de Pietri


Ritratti reali, Tricarico, 1972 ⓒMario Cresci


비아시우치가 사진의 객관적 재현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다면, 페르디난도 시아나(Ferdinando Scianna, 1943~)는 현실과 꿈 그리고 무의식의 경계에 주목했다. 시아나는 오랜기간 매그넘(magnum) 에이전시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포토저널리스트로, 평소 자신이 잠든 사람들의 풍경을 의도치는 않았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 기록해왔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재구성해 <꿈을 꾸기 위해 아마도 잠을 잔다(To Sleep, Perchance To Dream)> 시리즈를 완성했다.(pp.80-81) 그는 수면을 취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 및 동물의 풍경에서 현실과 꿈 그리고 무의식의 경계를 발견했을 것이다. 각기 다른 곳에서 잠든 이들과 그들이 잠든 도시의 풍경은 서로 이질적인 관계를 이루며 기묘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그의 사진적 대상은 눈을 감은 사람들이다. 눈을 감고 무의식의 세계로 멀리 달아난 사람들은 화면의 응시로부터 영원히 분리되고 동시에 그들을 감싸고 있는 현실로부터 절대적 소외에 당면해 있다. 작가는 화면의 응시를 거부하고 현실에서 소외당한 인물과 현실을 대조적으로 혹은 기묘하게 구성함으로써, 그 인물에 내재된 꿈과 무의식을 보다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리 벤치에서 노숙하는 사람들과 그들 뒤로 와인잔을 마주하는 광고 전광판, 발의 조각상처럼 벤치를 좌대 삼아 조각처럼 누운 사람, 서로 등을 돌리고 누워 각자의 자리에서 잠에 빠져든 사람과 동물, 노상에 놓인 생선들과 그들처럼 거리에 놓여 잠든 사람 등은 로트레아몸(Comte de Lautréamont)의 산문시 중의 한 구절인 “해부대 위에 놓인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다운”을 상기시킨다. 현실에서 상호 무관한 관계에 놓인 대상들이 우연히 한 화면 속에서 조우하는 순간, 뜻밖의 아름다움은 화면에 내재한 무의식 속으로 깊숙이 빨려들게 만든다.

 



Monopoli Flash, 2022 ⓒMassimo Vitali


Rosignano Milk Maddalena Penitente, 2020 ⓒMassimo Vitali


반면에 이와는 다르게 사진의 객관적이고 기계적 재현을 통해서 현실 이면에 내재된 풍경을 다루고 있는 작가들도 있다. 마리오 크레시(Mario Cresci, 1942~)는 1967년 바실리카타의 트리카리코(Tricarico, Basilicata)의 도시계획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지역민의 가족초상 시리즈 reali, Tricarico>(1972)(p.77)를 제작했다. 작가는 가족의 모습을 단일한 초상의 모습으로 재현하는 대신, 세 장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을 이루는 트립티크(triptych) 형식을 취했다.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한 가족의 사적 공간인 집의 내부를 배경으로 가족초상을 기록했고, 다음으로는 현재 가족과 그들의 윗세대의 사진을 함께 촬영했으며, 마지막으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윗세대의 사진만을 재촬영했다. 작가는 초상의 전통적인 핵심 사안인 이상화와 유미화에서 벗어나 가족 초상이라는 보편적 과제 앞에서 트립티크의 형식으로 과거와 현재 즉 지금 현존하는 세대와 지나간 세대를 연결하고 공간의 지속성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가족사진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사진을 인류학적이고 사회적인 연구의 일환으로 실천하는 또 다른 작가는 마시모 비탈리(Massimo Vitali, 1944~)이다. 비탈리는 동시대 현대인들이 여가를 즐기는 광장, 해변, 시장 등 공공장소를 찾아다니며 전문적인 사진으로 재현해왔다. 그러나 그가 주목하는 것은 목가적 풍경이나 천혜의 자연이 아니라, 대중 여가 활동을 펼치는 ‘인간의 풍경’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봉쇄 기간 촬영한 (p.79)나 건강을 기원하는 전통적 의식으로서 새벽 목욕의 장면을 포착한 가 최근의 대표작이다.

 



To Sleep, Perchance to Dream, 1997 ⓒFerdinando Scianna


To Sleep, Perchance to Dream, 1997 ⓒFerdinando Scianna


이번 전시는 세계적으로 사진이 현대 미술의 주요한 매체로 수용되는 1960년대 중후반 이후 이탈리아 사진가들의 사진 미학에 대한 전통성과 확장성에 대한 탐구와 이에 대한 사진적 실천을 이해하는 주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덧붙여 국내외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이탈리아 현대사진의 흐름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국제사진제는 ‘세계 사진예술의 경향과 이슈’를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다. 다만 참여 작가와 출품 작품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나 전시가 학술적 논의로 이어지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 김소희 뮤지엄한미연구소 학예연구관
해당기사는 2023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