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획기사 ⦁ ⦁ 아트바젤 홍콩에서 만난 사진들



 
3월의 홍콩은 예술로 뒤덮인다. 빽빽한 거리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예기치 않던 작품을 마주친다. 지난 3월 20일부터 31일까지 11일 동안은 홍콩 예술주간Art in Hongkong으로 이 기간 동안 도시 전체가 예술로 물든다. 특히 26일부터 30일까지 약 5일 동안 열리는 아트바젤 홍콩은 홍콩 예술주간의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아트바젤 홍콩은 아시아 최대 예술시장으로 꼽혔으나 코로나로 인해 2020년부터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침체기를 겪다가 2023년부터 다시 예전의 규모를 회복했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은 모두 7만 5천 명의 관객이 찾았고 40개국 242개의 갤러리가 참여하면서 여전히 아시아 최대 미술 시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The Life’s Little Worries of Général Mellinet 2015, Chromogenic print, produced by the SPL Le Voyage à Nantes ©Tatzu Nishi and courtesy of ANOMALY


Kyoungtae Kim, Optical Sequence 3-4-6-8-10, 2024, Archival pigment print, 150x200cm ©Kyoungtae Kim, Courtesy of the artist and Whistle


지극히 공적인, 지극히 사적인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서는 아시아 작가들의 신선한 작업이 돋보였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어노말리 갤러리 Anomaly Gallery가 선보인 타즈 니시Tatzu Nishi의 작업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멜리네 장군의 사소한 걱정거리Little Worries of Général Mellinet 은 2015년 프랑스 낭트에서 진행한 설치 작업으로, 작가는 공원 한 가운데 있는 멜리네 장군의 동상 위에 피아노와 세면대, 의자, 히터 등의 온갖 잡동사니를 켜켜이 올려놓았다. 공공기물이자 역사적 의미가 있는 동상 위에 물건을 쌓아 놓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에 합성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작업이다. 사실 이 동상 위의 물건들은 하나의 중심축이 있고 그 축을 대형 크레인이 들어 올리고 있는 상태이다.

타즈 니시는 일본과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공공미술, 설치 미술 작가로 그는 공공 공간을 사적인 활용을 통해 개인과 공공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선보인다. 지극히 공적인 공간에 놓인 장군의 동상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기념하는 존재이지만 그 동상 주인공의 개인적 삶은 소거된다. 그런데 동상 위에 쌓인 피아노, 옷걸이, 책 등의 잡동사니들은 이 동상의 주인공에게도 일상이 있었을테고, 그의 일상이 이런 소품들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사물의 재발견

한국 휘슬 갤러리는 아트바젤 홍콩이 신진 유망 작가를 선보이는 디스커버리즈(Discoveries) 섹션에 김경태의 Optical Sequence를 선보였다. 작가는 육각 L자형 렌치의 이미지를 포커스 스태킹, 즉 작은 사물을 여러 초점으로 촬영하여 합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가 이런 작업 방식을 택한 것은 우리가 본래 사물이나 풍경을 바라볼 때 원근법을 적용하기보다는 파노라마 형식으로 관찰하기에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초점이 선명하게 유지되도록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손바닥보다 작은 사물을 1미터가 넘는 거대한 사진 설치작업으로 보여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사물을 다시 발견토록 한다. 휘슬 갤러리 측은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이 회화가 아니라 사진이라는 것에 놀라워 했다”며 “사물을 촬영하기 전 그 표면과 구조를 관찰하고 사진이라는 광학적 도구를 이용해 자신이 미리 관찰하고 발견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작업의 태도와 결과물이 회화적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Mario Giacomelli, I Have No Hands to Caress My Face, 1961-1963, printed ca.1971, BnF, Paris ©Mario Giacomelli Archives


Cecil Beaton, Dress, Balenciaga 1967, BnF, Paris Cecil Beaton Archive ©Condé Nast


Gilbert Fastenaekens Nocturne-The Haven 1982, printed 1983, BnF, Paris ©Gilbert Fastenaekens

 
흑백의 시

3월 홍콩의 예술 축제는 단지 아트바젤에서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홍콩을 방문한 예술 애호가들을 위해 대가들의 전시가 홍콩 곳곳에서 열렸다. 2021년 개관한 엠플러스M+ 미술관에서는 홍콩 저키 클럽과 프랑스 국립 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이 손잡고 대규모 흑백사진전인 《Noir&Blanc-A Story of Photography》를 선보였으며 센트럴의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는 현대 사진의 거장 볼프강 틸만스의 전시 《The Point is Matter》가 열렸다.

엠플러스는 홍콩의 서구룡 문화지구에 문을 연 근현대 시각문화 미술관으로 Museum +라는 이름 그대로 미술관 그 이상을 지향한다. 약 5천 평이 넘는 공간에 33개의 섹션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전시 공간으로, 이곳 1층의 전시장에서 엠플러스의 첫 번째 사진전인 《Noir&Blanc-A Story of Photography》(2024.3.16.~2024.7.1.)가 열렸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이 소장한 250여 점에 엠플러스의 소장품 30여 점이 더해진 초대형 전시이다. 만 레이, 로버트 프랭크, 다이도 모리야마, 윌리엄 클라인, 판호 등 동서양 대가들의 작업이 한 공간에 모였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은 마리오 쟈코멜리의 I have no Hand to Cares My Face로 흑백의 대조와 움직임이 마치 빛과 어둠이 어우러져 춤을 추는 듯 강렬하다. 전시 도입부에 놓인 이 작품은 흑백사진이 구현할 수 있는 깊이와 가능성을 자신 있게 선언하는 듯 하다.


 

Imogen Cunningham Two Callas 1925, printed ca.1970, BnF, Paris ©2024 Imogen Cunningham Trust


Flor Garduño, Basket of Light, 1989, BnF, Paris ©Flor Garduño


Zhang Hai’er Night Scene with the Photographer’s Left Hand, Guangzhou 1987, 1987, M+, Hong Kong ©Zhang Hai’er


Daido Moriyama, Japan: A Photo Theatre-Portrait of Actor, 1968, printed ,1970-1980, BnF, Paris ©Daido Moriyama Photo Foundation


Fan Ho, Smoky World, 1959, M+, Hong Kong ©Fan Ho


이번 전시는 모두 세 가지 섹션, 즉 대비, 빛과 그림자, 컬러 차트라는 흑백사진의 특성을 잘 설명하는 주제로 구성됐다. 먼저 ‘대비를 추구하다’ 섹션에서는 이모젠 커닝헴의 칼라 꽃송이나 세실 비튼의 발렌시아가 드레스처럼 흑백의 대비를 통해 이미지가 극명하게 대조되는 순간을 선보인다.

빛과 그림자 섹션에서는 흑백사진이 어떻게 빛과 그림자의 섬세한 뉘앙스를 포착해 질감과 분위기, 깊이를 풍부하게 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 섹션은 ‘밤의 포착’, ‘블랙 매직’이라는 두 개의 하위 섹션으로 나눠져서 매체의 발전사를 보여준다. 어떻게 어두운 밤에도 우리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기술이 발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 길버트 패스트네켄스의 녹턴- 더 헤븐이나 장 하이어의 사진가의 왼쪽 손과 밤의 장면, 다이도 모리야마의 배우의 초상 등을 보면 흑백 사진이 오히려 컬러 사진보다 더 풍부한 텍스쳐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컬러 챠트에서는 흑백사진에 단지 흑과 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계인 다양한 색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플로르 가르두뇨의 빛의 바구니나 판 호의 스모키 월드를 보면 어둠과 밝음이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이어지면서 미묘한 회색부터 미색까지 사물의 색채와 질감이 보다 더 풍부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있다. 엠플러스의 수석 큐레이터인 정도련 부관장은 “흑백사진의 형태와 톤은 현실을 포착하고 초현실적인 추상성을 드러내는 힘이 있다”며 “컬러와 디지털 이미지로 과 포화 지금 시대에서 흑백 사진은 여전히 강력하고 매력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한 편의 시詩와 같다”고 강조했다.


 


 
이미지가 거는 마법

엠플러스가 흑백사진의 깊이를 보여준다면 데이비드 즈위거 갤러리에서 열린 볼프강 틸만스의 《The Point is Matter》(2024.3.25.~2024.5.11) 전시에서는 컬러 사진의 가능성과 조형성을 탐구한다. 볼프강 틸만스는 사진작가로는 최초로 2000년 터너상을 수상했고 2023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현대미술 최첨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The Point is Matter》는 “시점이 중요하다”,“초점이 중요하다”는 선언인데 이는 그가 어떻게 현실을 바라보고 해석하는지 작가적 태도를 보여준다.


 

Wolfgang Tillmans, Ulaanbaatar Still Life, 2023
Courtesy David Zwirner, New York/Hong Kong; Galerie Buchholz, Berlin/Cologne; and Maureen Paley, London


Wolfgang Tillmans, Filled with Light, a, 2011
Courtesy David Zwirner, New York/Hong Kong; Galerie Buchholz, Berlin/Cologne; and Maureen Paley, London


Installation view, Wolfgang Tillmans: The Point Is Matter, David Zwirner, Hong Kong, March 25-May 11, 2024 Courtesy David Zwirner

 
틸만스는 변화하는 자연과 우리의 일상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연결 고리를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울란바토르에서 몽골인들의 전통 텐트를 창밖으로 바라보며 창틀의 노란 꽃과 대조한 정물 등은 외부와 내부의 대비, 서로 이질적인 세계의 충돌을 보여준다.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빛으로 가득 찬 방은 빛이 공간을 채우는 과정과 창틀에 드리우는 그림자까지 섬세하게 관찰한 결과이다. 벗어놓은 수영복을 찍은 사진은 수영복의 구겨진 주름이 마치 일종의 조각이나 추상화된 형태로 다가온다. 일상에서의 의미나 쓰임은 소거되고 순수한 시각적 인상만이 남기에 이를 통해 관객은 오롯이 ‘낯설게 바라보기’를 체험하게 된다.

흔히 틸만스의 작업은 전시장에서 직접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전시의 구성, 사진의 크기와 거리 등으로 이미지의 강약을 조율하며 리듬감을 주는 특유의 방식 때문이다. 빛과 컬러가 남기는 긴 정적이 리드미컬한 전시 전개와 맞물리면서 마치 각각의 이미지들이 악보 속의 음표처럼 전시장 안을 맴돈다.

이미지로 쓴 틸만스의 음악은 논리 이전에 감각이 있고, 예술은 그 감각의 세계에 있다는 것. 그렇기에 논리 너머 이미지가 이끄는 세계로 흠뻑 빠져보라고, 현실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해보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어쩌면 이것은 3월의 홍콩이 거는 마법과도 같다.


 

글 석현혜 에세이스트 
해당기사는 2024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