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내작가 ⦁ ⦁ 민석기 《생의 여로에서 4-그 기억의 들녘》 | 사진가의 기억법
- 2026-07-09 09:35:33

강원 지역의 사라져 가는 일상과 산업의 현장을 누비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민석기. 그는 약 30년째 온화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삶의 여정을 기록한 <생의 여로에서> 사진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국내 3대 장터이자 강원도 최대의 재래시장을 기록한 작업인 <북평오일장>, 묵호항과 묵호 해변에 터전을 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묵호항 이야기>와 단종 및 노후화로 인해 서서히 사라져가는 15톤 덤프트럭과 함께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나는 덤프공이다>에 이어 네 번째 작품을 발표했다. 바로 《생의 여로에서 4 - 그 기억의 들녘》(2023.12.27-2023.12.31 | 동해문화예술회관)이다.
과거 세 차례에 이은 <생의 여로에서> 시리즈는 각각의 부제가 가리키듯 시장과 어촌, 운수업과 건설업의 현장을 담고 있다. 이는 모두 작가의 치열한 생의 현장이자 여정이기도 한데, 네 번째로 선보이는 그의 발자취는 바로 농촌이다. 강원도 정선군 원덕 농촌에서 나고 자란 배경을 감안한다면 작가에게 이번 작업은 고향으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겠다. 가까이에 있어도 고향이 그립고, 고향에 있어도 고향이 그립다고 말하는 민석기 작가를 만나기 위해 동해문화예술회관을 찾았다.
과거 세 차례에 이은 <생의 여로에서> 시리즈는 각각의 부제가 가리키듯 시장과 어촌, 운수업과 건설업의 현장을 담고 있다. 이는 모두 작가의 치열한 생의 현장이자 여정이기도 한데, 네 번째로 선보이는 그의 발자취는 바로 농촌이다. 강원도 정선군 원덕 농촌에서 나고 자란 배경을 감안한다면 작가에게 이번 작업은 고향으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겠다. 가까이에 있어도 고향이 그립고, 고향에 있어도 고향이 그립다고 말하는 민석기 작가를 만나기 위해 동해문화예술회관을 찾았다.

(사진 1) 삼척, 2000 ⓒ민석기

(사진 2) 삼척, 2023 ⓒ민석기
먼저 다큐멘터리 사진과의 인연을 묻고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6년에 입사한 첫 직장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며 사진을 시작했다. 처음 배울 때엔 여기저기 자연의 많은 풍경을 찍기도 했는데, 그러다 사람을 찍어 보았더니 이전에 촬영했던 풍경 사진과는 다른 것이 느껴졌다. 이를테면 추암촛대바위는 사진을 시작하던 때와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도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데 반해 사람은 누구나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지 않나. 사람과 사람의 주변을 지켜보며 변화의 순간을, 사라질 순간을 기록하는 것에 매료되었고, 그렇게 1997년부터 시작한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이 이어져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생의 여로에서 4 - 그 기억의 들녘》에서는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작업에 몰입하기 이전인 1992년부터 2023년까지의 농촌 기록이 펼쳐진다.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정선의 농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의 성장기를 먼저 언급하고 싶다. 새벽에 일어나 소먹이 주던 일, 지게질, 모내기와 추수, 돌담길에 풍기던 매캐하고 구수한 연기 등이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후 태백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시간이 날 때는 고향에 가서 손을 보태는 등 농촌과 밀접하게 자랐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어릴 때 마음에 새긴 농촌 풍경, 먼 기억 속의 고향 풍경을 선보이는 것이다. 또한 앞서 말했듯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다. 그 덕에 옷차림과 농기구 등의 변화와 함께 시대상을 한눈에 목격할 수 있는 작품이 나왔다. 1992년부터 2023년까지 촬영한 실제 나의 고향인 삼척을 포함하여 정선, 평창, 태백, 동해 등의 농촌 풍경을 선보인다.

30여 년에 걸쳐 기록한 농촌 풍경은 시대순이 아닌 계절에 따라 나누어 전시되었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뚫고 피어난 보리싹(사진1)이 이른 봄이 왔음을 알리고, 한해의 시작인 씨뿌리기 단계가 지나면 감자꽃이 피고 보리를 타작(사진3)하는 계절인 여름이 뒤를 잇는다. 여름의 영동 산간지방 고랭지 배추밭(사진4)을 넘어가면 추수철을 맞고, 각종 곡물을 거두고 손질하는 장면과 소가 끄는 쟁기로 감자를 수확하는 장면이 잇달아 등장한다. 힘에 부친 소가 입에 문 거품이 멍에 틈으로 새어나온 모습(사진5)은 그 현장의 고됨을 표상한다. 문득 추수가 끝난 겨울 농한기에 펼쳐지는 농촌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사진 3) 동해, 2014 ⓒ민석기

(사진 4) 태백, 2008 ⓒ민석기
이젠 거의 사라진 농촌의 풍경을 보는 것에 더해 계절마다 달라지는 농지의 쓰임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농한기인 겨울에는 농사지을 게 없지 않나?
모든 농사가 종료되고 빈 들판에 눈이 쌓이면 재밌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그것은 바로 삼척시 내 미로면과 하장면을 잇는 해발 810m 고지에서 펼쳐지는 ‘댓재 명태덕장’이다. 혹한과 폭설이 잦은 이곳의 기후는 명태덕장으로 최적의 장소였지만,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명태가 잡히지 않게 되자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사라진 풍경이다. 외지에서 온 덕장 업자들은 농번기가 끝나는 시점인 11월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빈 밭을 임차하여 덕장을 꾸렸다. 대개 팀 단위의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여기에는 간혹 현지의 주민이 합류하기도 했다. 너무 추운 나머지 몸을 꽁꽁 싸맨 채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틈이 날 때마다 불을 쬐며 몸을 데웠다(사진6).
촬영 과정에 관해서도 듣고 싶다. 특히 근접 거리에서 촬영 대상과 마주한 듯한 사진이 눈에 띄는데, 대상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던 바탕은 무엇이었나? 또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로 차를 타고 다니면서 눈에 밟히는 곳에 멈춰 카메라를 들었는데, 그 전에 사람들과의 충분한 대화가 먼저였다. 어떻게 지내는지, 자식들은 어떤지가 주된 내용이었다. 덧붙이면 《생의 여로에서 4》는 동명의 사진집 출판 기념 전시이기도 한데, 책의 표지에 사용된 사진은 옥수수를 심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사진2). 이들은 유독 쉬는 시간을 자주 가졌는데, 사실은 다리가 불편해서 농사를 못 지을 상태지만 둘이 함께니까 할 수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밖에도 카메라 앞에 서준 이들과 그들의 사연이 모두 눈에 선하다.

차로 이동하며 눈에 밟히는 곳이라, 이에 관해 자세히 듣고 싶다. 또한 긴 시간 심도 있게 농촌을 기록해온 사진가로서 어떤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는지도 궁금하다.
세대가 변하며 농사 방식이나 생활 방식 등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그것을 주의 깊게 관찰해왔기에 앞으로 농촌의 무엇이 어떻게 사라져갈지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내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카메라로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 또한 잘 알고 있다.
특히 농촌의 공동화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살던 동네도 많이 변했는데, 자식들은 외지로 나가고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어서 돌아가시거나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일이 많아 3분의 2는 빈 상태다. 그립던 고향에 가면 처음엔 반갑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적막함과 쓸쓸함이 밀려온다. 농지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우편함에는 수취하지 않은 우편이 잔뜩 쌓였다. 그래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 거의 농사짓는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들마저 손을 놓으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항상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사진 작업에 임하고, 나라도 남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사진 5) 평창, 1998 ⓒ민석기

(사진 6) 삼척, 1999 ⓒ민석기
민석기는 사진을 시작한 이후로는 줄곧 사륜구동 자동차를 고집하며 험지와 눈길을 마다하지 않고 동분서주한다. 치열한 생의 여로에서, 앞으로는 보지 못할 귀한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그는 바쁘게 움직인다. 지금이 아니면 사라지는 풍경, 고로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촬영 끝에 남는 시대의 기록. 그 귀중한 기록을 남기려는 사명 뒤에는 이촌향도와 지방소멸에 관한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그가 고향에 있어도 고향이 그립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촬영 기간이 길었던 만큼 방대한 양의 기록을 선별하여 이렇게 전시와 사진집으로써 선보인 소감은 어떤가?
촬영도 그렇지만, 30여 년간의 작업을 선별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고맙게도 전시장을 찾아준 많은 이가 귀한 작업이라거나 옛날 생각이 난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치를 관객과 함께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다음 작업의 든든한 자양분을 얻는 자리였다. 시간이 흘러 세기가 달라지면 이 작업이 지금과는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간 전시와 사진집 출판을 함께해온 이유이기도 한데, 이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의 동기가 되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짐’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난 그들을 기록해야 한다.
글 류지훈 객원기자
해당기사는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촬영 기간이 길었던 만큼 방대한 양의 기록을 선별하여 이렇게 전시와 사진집으로써 선보인 소감은 어떤가?
촬영도 그렇지만, 30여 년간의 작업을 선별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고맙게도 전시장을 찾아준 많은 이가 귀한 작업이라거나 옛날 생각이 난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치를 관객과 함께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다음 작업의 든든한 자양분을 얻는 자리였다. 시간이 흘러 세기가 달라지면 이 작업이 지금과는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간 전시와 사진집 출판을 함께해온 이유이기도 한데, 이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의 동기가 되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짐’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난 그들을 기록해야 한다.
글 류지훈 객원기자
해당기사는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