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획기사 ⦁ ⦁ 2024 대구사진비엔날레 특별전 《노 시그널(No Signal)》 | 기술적 인간, 사진적 사유



 
2024 대구사진비엔날레는 특별전 《노 시그널(No Signal)》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4월 26일부터 5월 3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5인의 사진작가 기슬기, 안준, 이순희, 서동신, 조성연 그리고 문소현과 휴키이스로 구성된 미디어 그룹 녹음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살펴본다. 이번 전시는 첫째 전통적 사진과 디지털 미디어의 조응, 둘째 사진의 재현성과 확장성, 셋째 정보화된 이미지와 인식의 관계를 다루는 세 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브 마노비치(Lev Manovich)는 디지털 사진에서 “역사적 연속과 단절”은 동시적이며 “그것은 근대적 시각 문화에 있어서의 기호학적 코드와 전시의 방식과 관람 유형이 짜 놓은 그물을 찢는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전통적 개념의 사진부터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까지 ‘역사적 연속과 단절’의 연상선에서, 기술적 인간이 구축해 온 ‘현대적 시각 문화로 짠 그물’을 어떠한 사진적 사유로 확장시키고 있는지를 심도 있게 들여다본다.

 

(작품1) 생명의 나무, 경주시, 2016, UV print on Korea traditional paper, 195×130cm ⓒ이순희


(작품2) 생명의 나무, 계림 II, 2013, Archival pigment Print, 146×105cm ⓒ이순희

 
이순희 작가는 대형카메라로 나무라는 자연의 대상을 탐색해왔다. 경주 출신의 작가는 우람한 고목들로 숲을 이룬 계림에서 <생명의 나무> 시리즈를 시작했다. 2천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낸 고목은 인간적인 시간을 뛰어넘는다. 아니 우리의 역사는 그들의 시간 안에 있다. 작가는 고목을 식물과 중 하나의 개체가 아닌 인간 너머의 존재에 대한 신성함과 숭고함의 대상으로 삼았다. 계림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당산나무> 시리즈로 이어졌는데, 계림의 고목처럼 당산나무 역시 마을
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는 믿음으로 신성시되어온 존재이다. 작가는 시간의 축적과 영함이 깃들여진 나무를 통해서 자연을 인간 너머의 힘을 지닌 신화적 존재로 바라보았다. 나무는 사진적 채집의 대상이나 미적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순환, 부활과 재생이라는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 재해석되었다. 작가는 우리의 시각에서 ‘익숙한’ 자연에서 벗어나고자 낮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밤의 시간을 기다렸다. 칠흑의 어둠이야말로 “오래된 나무가 가지고 있는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표상하기 위한 신성한 시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한된 빛과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재현된 나무는 <생명의 나무, 경주시>(작품 1)처럼 생명과 소생을
상징하는 혈관과도 같은 형상으로, 때로는 <생명의 나무, 계림 Ⅱ>(작품 2)처럼 뿌리가 셋 달린 전설 속의 동물을 연상시키며 ‘불현듯’ 낯설어진 형상을 불러냈다. <생명의 나무> 시리즈는 우리의 망막에 각인된 관습적 나무의 표상을 지워버리고, 대신 언케니한 풍경으로 인간 너머의 존재를 재발견한다.


 

(작품3) 청영 2024 ver., 2024, 2분 반복재생, 3채널 비디오 설치, 사운드 ⓒ녹음(문소현, 휴키이스)


이순희 작가가 사진의 지시성을 바탕으로 자연을 재현한다면, 그룹 녹음은 각종 기계 장치를 이용해 자연을 표상하는 유사자연(articical nature)의 형태로 재현한다. 〈청영 2024 ver.〉(작품 3)은 자연에서 수집한 여러 요소를 ‘전시 배치’하고 관객이 거닐 수 있는 인공의 정원 공간을 조성한 작업이다. 이들은 실재 자연 속 소음과 전자 악기를 이용하여 이질적 사운드를 만들고, 이미지의 흔들림을 통한 바람이나 물결의 형상과 교착시켜 자연의 풍경을 연상시키는데, 물, 빛, 소리 등 자연의 요소와 감각을 활용해 전시장을 하나의 ‘스펙터클한 현상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관람객은 미술관이라는 화이트큐브의 조건을 뒤집는 자연의 인위적인 세팅 속에서 걷고 체험하며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게 된다. 녹음의 작업에서 이러한 물리적 경험은 실재 자연과의 단절을 경험하게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신체적, 심리적 감각과 연결된다. 이들은 물질과 비물질,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술 지대 안과 밖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디지털 미디어와 설치의 형태로 재현된 자연은 조성연 작가의 <지고 맺다> 작품과 연결된다. <지고 맺다>는 자연과 물질세계 사이를 탐구하는 정물사진 시리즈이다. 작가는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있는 식물과 채소 등 자연을 곁에 두고, 직접 경작하면서 관찰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력이 소멸되어갈 때 그들을 다른 일상의 오브제와 배열하여 정물사진으로 재현했다. 이때 작가는 <잎채소, 지고 맺다>(작품 4)처럼 대상을 극적으로 클로즈업해 인간의 육안을 뛰어넘는 세밀하고 정교한 세부묘사를 보여주어 오히려 그들의 소멸에 대상성을 부여했다. 또는 <감자 싹, 지고 맺다>(작품 5)처럼 흡사 우주의 탄생과도 같은 착각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형태를 포착하기도 했는데, 작가는 서로 이질적인 대상 사이에 유사성을 발견하여, 자연과 예술의 형태가 서로 깊이 있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소멸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상태로 이동하는 운동을 가리킨다. 작가는 소멸의 이미지를 통해서 시간의 흐름 속에 남아 있는 생명의 흔적을 미학적으로 담아낸다.

 

(작품5) 감자 싹, 지고 맺다, 2018, Archival pigment print, 30×45cm ⓒ조성연

 
다음으로 이어지는 <우연한 때에 예기치 않았던> 시리즈는 시각과 인식 사이의 차이를 극대화하는 사진 시리즈이다. 작가는 일상의 오브제나 풍경을 이질적 사물과 ‘배치’하거나 현실의 장면으로부터 ‘분리’하여 대상이 가진 원래의 의미를 응축시키거나 확장시킨다. 예컨대 <불안정한 균형>(작품 6)은 서로 다른 돌 오브제를 하나의 조형물로 만들어 포착한 사진이다. 작가는 각각의 돌오브제를 실제 크기와 위치로부터 변용시켜 기존의 사물이 가진 의미를 제거하고 새로운 사물로 의미를 전환시키고 있다. 이처럼 기표와 기의 사이의 어긋남은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와 그것을 언어의 체계로 인식하는 행위의 균열을 일으켜 언케니한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작품4) 잎채소, 지고 맺다, 2018, Archival pigment print, 130×104cm ⓒ조성연


(작품6) 불안정한 균형, 우연한 때에 예기치 않았던 연작, 2021, Archival pigment print, 150×120cm ⓒ조성연


사진은 발명 이후 현실의 단면, 흘러가는 시간의 순간을 포착하여 대상의 현존을 증명하는 투명한 매체로 여겨졌다. 사진이 실재를 재현한다는 진실성에 대한 믿음은 사진이 재현 대상과 가지는 기호학적 특성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미국 철학자 찰스 퍼스(Charles Pierce)의 기호 구분에 따라 사진은 재현 대상과의 “물리적 연관성에서 생겨나는” 지표적 속성을 지닌다. 사진은 지문이나 발자국처럼 대상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접속의 상태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은 “‘실재’의 재현을 아무런 흔적 없이 순식간에 바꾸어” 버리며 사진의 리얼리즘이니 재현성이니 진실성이니 하는 사진의 오랜 개념들을 ‘과격하게 부수기’ 시작했다.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사진은 지시 대상의 현존을 증명하는 능력보다는 조작, 변형, 복제, 연결, 반복을 특징으로 삼는다. 사진의 지시성, 재현적 특성은 디지털 사진과 아날로그적 사진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말해준다. 조성연 작가가 시각과 인식 사이의 균열을 사진의 재현적 특성을 통해서 드러냈다면, 서동진 작가는 대상의 지시적 특성을 사진과 ‘단절’시키고 재현성을 ‘과격하게’ 해체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전통적 의미의 사진 이미지를 이미지의 병치(Eq u a t i o n ), 색의 제거와 중첩(Cacophony), 이미지 삭제와 병합(Arithmetic)이라는 세 가지의 디지털 구축 작업으로 재구성한 <Equation> 작업을 선보인다.(작품 7) 전통적 사진 이미지는 디지털로 전송되면서 정보화된 이미지로 교체된다.(작품 8) 디지털 단위로 정보화된 사진에서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본질적 관계가 전혀 성립하지 않게 된다. 이미지끼리 중첩되고 병치되는 구축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진의 지시성은 제거되고, 색 면만 남은 추상 이미지에 이르게 된다. <Equation>은 사진의 전통적인 개념에 저항하고 상투적 의미와 단절하면서 사진 매체의 경계와 그 확장 가능성을 실천해 보이고 있다.


 

 

(작품7) Equation 252, 2022, Archival pigment
print, 135×90cm ⓒ서동신


(작품8) Cacophony 121, 2022, Archival pigment
print, 135×90cm ⓒ서동신

 
안준 작가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해 생성한 이미지 시리즈 <굿모닝 존>과 <신과 당신을 위한 방>을 작가노트와 함께 선보인다. 작가는 인간과 기계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예컨대 인간이 눈앞의 대상을 인식하는 시간과 카메라의 셔터 스피드 사이에 발생하는 시간차는 세계를 인식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냈다. 사진에서 나타나는 속도라는 시간성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 주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굿모닝 존>과 <신과 단신을 위한 방> 시리즈는 고속셔터를 사용한 기존 작품과 다르게 인공지능의 생성 속도와 관련을 맺는다. 인공지능은 명령어가 입력되면 20-30초 내로 그것을 이미지화했다. 카메라, 재현 대상, 재현 주체 없이도 놀랍도록 빠르게 재현하고자하는 대상을 이미지로 구현해냈다. 프레드 리친(Fred Ritchin)은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자 1990년에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는 우리에게 들어왔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우리와 똑같지 않다.” 작가는 리친의 선언을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에게 들어왔다. 이미지는 과연 우리의 지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로 새롭게 되묻는다.

<굿모닝 존>은 2023년 작품으로, 작가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빙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Bing Image Creator, 이하 ‘빙’)이 차단어를 지정한 것을 발견하면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빙’이 유해 단어로 규정한 ‘yourself’, ‘god’을 이미지로 구현해 내기 위해 우회적인 묘사와 다양한 지정어 등을 통해서 집요하게 재요청했다. 빙은 일관된 나이대의 남성의 모습으로 자화상을 창조해 냈고 작가는 빙이 이미지를 회수해 가기 전에 모니터 화면을 촬영해 이를 디지털 프린트했다. 〈Untitled #28 from the series ‘Good Morning John’〉(작품 9)과〈Untitled #058 from the series ‘A Room for You and God’〉(작품 10) 등의 결과물이 그것이다.


 



(작품10) Untitled #058 from the series ‘A Room for You and God’ ⓒ안준


(작품9) Untitled #28 from the series ‘Good Morning John’ ⓒ안준


(작품11) System Sun, 2022, Archival pigment print, 100×100cm ⓒ기슬기


(작품12) Untitled, 2023, Digital print, 71.7×67.6cm ⓒ기슬기

 


 
작가의 ‘빙’ 프로그램 이미지는 단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이미지 창조 과정만 주목한 것은 아니다. AI 기술은 인간 지능을 너머 완전히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여겨졌지만, AI의 딥러닝 기술은 지금까지 축적된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AI는 사회적 시스템이 아닐 수 없으며, AI 이미지도 결국 인간의 상징체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이미지인 셈이다. 비특정적 성별의 자화상을 AI가 자동적으로 남성으로만 구현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으며, 우리 사회 축이 남성 중심으로 기울어져 왔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신의 형상은 믿음의 대상이 하나의 이미지로 환원될 수 없음을 은유적으로 대변해 보이기도 한다. <굿모닝 존>과 <신과 당신을 위한 방> 사진 시리즈는 인공지능 시대에 이미지가 작동하는 방식과 이미지 재현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인식 변화와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던져주는 흥미로운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전시 전경


기슬기 작가는 사진 매체를 중심으로 한 재현에 대한 사유를 다양한 작품으로 선보여 왔다. <시스템>(작품 11) 시리즈는 전시장 한 벽면을 규칙적인 타일 모양의 사진 9점으로 채우고 있다. <시스템>은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된 사진 이미지가 기술적 오류로 인해 온전한 이미지로 재현되지 않고, 불완전한 이미지 혹은 결함의 이미지로 나타난 것을 포착한 사진 작업이다. 작가는 미항공우주국(NASA)이 제공하는 태양계 행성의 이미지를 인터넷으로 전송받는 과정에서 전송 오류의 규칙을 발견했다. 작가는 이러한 규칙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했고, 이 시스템을 통해서 일정한 간격과 반복되는 선으로 구성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작가는 통제 밖의 영역을 통제 가능한 수단으로 있다.

불완전한 이미지에 대한 작업은 2022년 <그것은 당신의 눈에 반영된다> 작업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작가는 달 사진을 전시했는데 전시된 이 사진을 다시 재촬영했다. 재촬영한 사진에는 달 사진과 전시장 맞은편에 걸린 작품이 반사되어 담겼고 전시장을 거닌 관람객도 함께 전시장의 풍경이 되어 함께 담겨 있었다. 그 사진의 표현에는 반대편에 걸린 <시스템> 시리즈가 겹쳐지고 이를 바라보는 필자의 모습도 함께 포착되었다. 사진을 사진 찍은 이 메타 사진은 원래의 작품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의 중첩 속에서 희석되었고, 카메라 렌즈처럼 그 앞의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다음 벽면에 걸린 <인물, 정물, 풍경> 시리즈는 어떠한가? 이 작품은 미술관에 걸린 회화작업을 그림자까지 재현한 사진작업이다.(작품12) 작가는 전시장의 요소들, 작품, 액자, 그림자, 캡션, 전시장 조명까지, 우리가 전시장에 작품을 마주할 때 대하게 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평면의 사진으로 재현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이 재현하는 것과 우리가 시각으로 인식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사진적인 방식으로 탐색하고 있다.

 
글 김소희 뮤지엄한미연구소 학예연구관
해당기사는 2024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