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의 기하학①
- 2020-11-25 16:30:29
균형이란 어느 한 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평형을 이룬 상태를 뜻한다. 또 다른 의미에서는 어느 한 지점과 다른 지점의 중간점을 뜻하기도 한다. 균형이 정지된 상태에서 영원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균형은 움직이고 있는 한 순간에도 포착된다. 사진은 근본적으로 재현이며, 한 순간을 프레임 속에서 정지시키기에 이런 순식간에 사라지는 균형 상태를 포착하기에 용이한 매체이다. 사진 속 균형은 아슬아슬하면서도, 또한 사진을 찍은 그 순간 후에는 이미 허물어질 것임을 예고하기에 일견 죽음의 속성을 띤다.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12, 2010 ⓒ신기철
신기철은 서양화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오브제 사진들을 통해 충돌, 파괴 직전의 균형을 보여준다. 실라 클렌얀스키(Csilla Klenyanszki)는 ‘Good Luckʼ 시리즈의 제목 그대로, 행운이 따라야만 포착할 수 있는 사물들의 미묘한 균형상태를 연출해 포착했다.
불안의 임계점
신기철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신기철의 작품을 가만히 보다보면, 제목 속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의 ‘병’이 질병을 뜻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깨지기 직전의 유리병을 연상케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최봉림 사진평론가는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의 ‘병’이 “마음 속 ‘병’이란 의미이자, 깨지기 쉬운 병(Bottle)의 의미를 담는 중의적 의미로 읽힌다”면서 “이 병이 깨지는 불안한 상황을 시각화 한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평했다. 그의 작업 속 사물들은 균형이 붕괴하기 직전의 임계점에 있지만, 오히려 그 임계점의 순간을 사진 속에서 직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닉하게도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17, 2017 ⓒ신기철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19, 2017 ⓒ신기철
탁자의 한 모서리에 마치 마술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유리잔, 잔 안에는 액체가 비스듬하게 들어있고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쏟아질 것만 같다. 세 개의 의자들이 불안정하게 균형을 잡고 서로 기대어 있고, 그 위에 유리그릇이 비스듬하게 놓여있다. 바람 한 점만 불어와도 그 균형은 무너지고 유리그릇은 떨어져 산산조각이 날 듯 하다. 이처럼 신기철이 사진 속에 연출한 이미지들은 ‘막 무너지기 직전’,‘산산조각 나기 직전’을 정지시킨 순간들이다. 만약 이 이미지들이 회화였다면 보는 이들을 그 정도까지 긴장시키진 않았으리라. 오히려 사진이기에 관객들은 이 한 순간의 전후를 유추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사진 속 균형이 찰나일 뿐, 사진이 찍히는 시간 이후에는 붕괴하고, 파괴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07, 2017 ⓒ신기철
신기철은 이런 아슬아슬함의 순간, 파국 직전의 고요, 터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을 사진으로 연출한다. 그가 7년간 작업한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의 초기작들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장르인 ‘바니타스 vanitas’ 회화를 연상케 한다. ‘바니타스vanitas’는 라틴어로 ‘공허, 허망, 인생무상’ 을 뜻한다. 중세 말 흑사병, 종교전쟁 등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바니타스 회화는 해골, 촛불, 과일 등의 오브제를 통해 죽음과 덧없음을 암시하며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때 각각의 오브제들은 단순한 회화의 소재가 아니라, 해골-죽음, 보석-부와 권력, 거울- 허영 등을 뜻하는 일종의 시각적 기호이다.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09, 2017 ⓒ신기철
신기철의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은 이런 ‘바니타스 회화’를 사진적으로 모방하는 스타일을 취하지만 그 핵심은 ‘죽음’ 이라는 결말이 아니라,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 속에 끊임없이 느끼는 ‘불안’에 있다. 그는 각각의 오브제들이 뜻하는 바를 전형적인 도상과 구도로 보여주기 보다는 오히려, 미끄러지고 깨지는, 동(動)적인 상태에서 잡힌 찰나의 균형을 포착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이를 통해 전해지는 이미지는 ‘덧없음’이나 ‘허망함’ 같이 이미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아슬아슬한 ‘불안감’이다.
“10대 때 함께 살던 할머니가 치매가 오셨어요. 항상 어딘가로 사라지는 할머니를 찾으러 다녔어요. 그래서인지 무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거나, 부재(不在)에 대한 공포가 컸어요. 어떤 일이든 하나의 원인이 바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원인들이 착착 쌓여지면서 임계점까지 쌓이다가, 아주 사소한 것들이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을 때 그간 유지된 균형이 깨지면서 와르르 무너지거나 부서지는 것이죠.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18, 2017 ⓒ신기철
그런데 그 지점이 어딘지를 모르겠다는 게 더 두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지점, 바로 무너지기 직전이라거나,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그 지점을 사진 속에서 보여주는 거죠. 이 시리즈를 계속 작업하면서 사물이 가진 부정성, 날 것의 느낌들을 제거하고 정제해서 상황의 본질을 볼 수 있도록 다듬어가고 있어요.”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20, 2017 ⓒ신기철
균형의 임계점을 시각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지지대를 쓴다거나, 실에 매달고 후보정으로 이를 지우는 인위적인 방식은 배제했다. 실내 스튜디오에서 빛을 맞추고, 노출을 조정하며, 수 십 수 백 번 같은 행위를 거듭하며, 사물들 간의 미묘한 장력과 균형점을 맞추는 시도를 거듭했다. 때로는 예상 외로 균형이 잘 맞기도 했고, 때로는 수 백번을 시도하기도 해야 했다.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21, 2017 ⓒ신기철
그런 노력 끝에 이 시리즈는 ‘The Original’,‘Semi Colon’,‘Colon :’ 등 3단계를 걸쳐 확장됐는데, 작업이 거듭되면서 초기의 서양정물화를 연상시키는 회화적인 연출과 구도보다는, 오히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불안한 균형 그 자체에 집중했다. 또한 단순히 사진으로 보여주는 작업에서 발전해, 사진을 찍고 이후 깨져버린 오브제의 파편을 수집해, 이 파편을 다시 정교하게 배열해 사진과 함께 설치하기도 한다.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1-1, 2017 ⓒ신기철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은 이번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2017 젊은 작가 기획전 <누군가의 오브제>(2017.9.9.-10.14)에서 성지연, 이동준 작가의 작품과 함께 전시됐다. 이 전시에서 그는 선반 위에서 미끄러지는 병의 사진과 함께, 그 깨진 병의 잔해,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깨진 병의 파편들을 크기순으로 일렬로 세밀하게 정리해 재배치한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깨지고 난 후 파편을 모아놓았는데 다시 이 파편들을 시각화할 수 있도록 설치했죠. 나도 모르게 안정을 찾아가기 위해 불안의 요소를 제거하며 무의식적으로 다듬어 간 것이죠. 그래도 불안은 끝나지 않아요. 그렇지만, 작업을 하고 있는 과정, 그 자체를 좋아해요. 하나하나 파편을 맞추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1-2, 2017 ⓒ신기철
모래로 세밀하게 도상을 그린 후 완성되면 그대로 쓸어서 물에 흘려보내는 티벳 불교의 모래 만다라처럼, 그의 설치작업은 세밀한 질서 속에 엄격하게 배치됐지만, 특별히 바닥이나 벽에 고정돼있지 않아 언제든 흐트러져 버릴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불안은 상황을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이미 깨진 병은 그 결과를 목도했다는데서 오히려 안정이 되지만, 다시 그 파편들조차 마음에 불안을 남긴다.

침착할 수 없는 마음의 병 #006, 2017 ⓒ신기철
관객들은 사진 속 아슬아슬한 사물들의 균형을 보며 깨지기 직전의 긴장감을 느끼다가, 아예 산산조각이 난 유리병 파편과 이것을 다시 편집증적으로 재배치한 설치작업을 마주하며 작가의 불안이 어떻게 확장되고 이동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탄생과 죽음이라는 시작과 끝의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한미사진미술관
해당 기사는 2017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미지 제공 한미사진미술관
해당 기사는 2017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