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KOWPA 기획전 《깊이를 탐하는 표면》 6월 4일 - 6월 13일 | 하갤러리
- 2026-06-02 09:51:02

강지미1_Nomad#01_Artluxe_53.6x74.5cm_2025
기획의 글
- 임안나 (상명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학과 교수)
사진 매체의 본성은 빛을 매개로 세계의 표면을 평면으로 불러와 안착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본다는 것은 다른 감각과 지각을 연동시키기 때문에, 그 평면이 붙잡는 것은 세계의 외피일 수만은 없다. 나아가 작가는 시공간의 교차점에서 빛의 현상을 조율하고 조형을 탐미하며, 감각과 의미가 생성되는 "장(場)의 깊이"를 갈망한다. 전시에 초대된 여섯 작가의 이러한 갈망은 사진과 글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으며, 세계와 이미지를 맺는 저마다의 방식은 그 미완조차 관람의 요소로 열려 있다. 이들의 작업은 기호가 충돌하고, 색채가 감정을 불러내며, 사물이 부재를 예고하고, 형식이 위계를 흔드는 탐색이다. 서로 다른 미학적 언어로 출발했음에도, 이들은 사진이 세계를 그대로 옮긴다는 전제를 함께 흔들며, 의미의 확정을 유보하고 보는 이의 감각과 정서를 호출하는 열린 표면을 만들어낸다.
강지미는 스티글리츠가 제시한 순수사진(Pure Photography)의 계보를 아날로그 필름의 물질성을 통해 현재적으로 잇는다. 디지털 기술이 이미지를 빛과 색의 수치로 자유롭게 변환하는 것과 달리, 필름은 대상과 시공간을 공유하며 빛과의 물리적 접촉을 흔적으로 보존한다. 작가는 이 모더니즘적 사진 언어를 통해 인간의 시지각을 넘어서는 자연의 색과 형태를 탐색하고, 나아가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김미자__책가의 일회용품#01_120x120cm_Pigment print_2021

이영화_원형탁자위의 색연필-Achival ink-jet print_100x150cm_2025
이영화는 사진 속 사물을 서사와 감정이 달라붙은 존재로 제시하며, 사물의 순수한 현존(presence)을 거부한다. 역설적으로 〈가위와 골무〉, 〈미국산 자물쇠〉와 같은 지시적 제목은 오히려 의미의 확정을 지연시킨다. 작가는 글을 통해 비로소 사람과 사물 사이에 형성된 라포(rapport)의 필연성을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정지라는 표식'은 의미를 향해 움직이는 동사로서의 사진 행위를 가리키고, '남겨진 정물'은 그 사물과 연을 맺었던 사람의 부재를 예고하며 기억되기를 갈망한다. 작가의 ‘이미지의 힘’에 대한 믿음은 이 작업의 동력이다.

정옥영_시간속의 기억#03_Pigment print_52.5x52.5cm_2023
정옥영은 색채가 단순한 시각적 자극을 넘어 감정과 기억의 언어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칸딘스키적 의미에서 색은 내면의 필연성을 지니며, 작가는 이를 사진의 지표성 위에 겹쳐 놓는다.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유보된 평면은 관람자에게 작가의 기억을 해석하게 하기보다, 각자의 감각과 기억을 호출하도록 열린 구조를 형성한다. "붉은 면은 저녁 빛의 잔향처럼, 노란색은 따뜻한 공기의 기억처럼, 푸른 그림자는 두려움과 그리움이 겹쳐진 감정"이라는 작가의 말은 평면, 온도, 감정으로 색을 감각하는 하나의 안내가 된다.

하지영_Layers of Memory#01_Archival pigment print_90x60cm_2025
하지영은 중첩이라는 사진적 방법론을 통해 단일한 시제(時制)의 이미지가 갖는 지시성을 해체한다. 사진 속 자연의 형상 위에 부유하는 숫자와 한글, 영어 알파벳은 바르트가 말한 '스투디움(studium)'의 안정적 독해를 교란하며, 보는 이를 의미의 확정이 불가능한 기호의 장으로 이끈다. 시간을 상징하는 듯한 숫자는 이미지의 푼크툼(punctum)처럼 작동하며, 보는 이의 시선을 불현듯 찌르고 개인적 기억과 감각을 깨운다. 원근법적 시선의 권위가 약화된 평면 위에서, 이미지와 텍스트가 충돌하는 시간과 시점의 층위는 비선형적으로 얽혀 새로운 공간을 열어 보인다.

Blond Jenny_Static Dreams_Archival pigment print_76x102cm_2024
Blond Jenny는 인간 감각의 한계 너머에서 인지 영역의 확장이 잠재의식을 깨우고 상상력을 펼치는 촉매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를 현현하기 위해 전자파동의 에너지에 대한 과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이중노출과 시아노타입을 결합한다. 우주적 깊이를 환기하는 공간 위에 음양이 반전된 꽃잎과 잎사귀들이 부유하고, 시각 장치의 관습적 체계를 거스르듯 필름에 가해진 불규칙한 노출은 자연의 이미지들이 일부 중첩된 채 프레임 사이를 교란하며 연속과 불연속의 풍경을 드러낸다. 셔터가 열리는 순간 가시화되어 고정되는 양자적 세계를 탐구한다는 과학적 인식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에너지를 예술적 이미지로 전화(轉化)하려는 실험정신은, 테크네를 도구적 기술이 아닌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재해석한 하이데거의 사유와 닿아 있다.
이 전시는 2025년 한국여성사진가협회와 함께하게 된 신입 회원들의 초대전이다. 여섯 작가의 작업은 각자가 지속해 온 탐구의 현재적 결실이자, 서로의 작업을 마주하며 확장되어 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협회는 이들의 새로운 시선이 기존 회원들과 만나 서로를 자극하고 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그 첫걸음을 회원 모두와 함께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