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내작가 ⦁ ⦁ 김신욱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 | 지속되는 과거의 증식
- 2025-08-14 11:08:08

김신욱 개인전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10.13-12.31 |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이 열리고 있다. 김신욱은 괴물 네시(Nessie)나 한반도 호랑이와 같이, 공적 역사이기보다 설화나 전설로 남은 이야기를 탐구하고 이와 관련된 현재를 사진으로 담는다. 김신욱이 찍으려고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그는 사진의 역사에서 ‘피사체’라는 개념 자체를 바꾸고 있는 작가로 보인다. 전시의 부제인 “출몰하는 유령들”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보일 수 없는 것이 그의 피사체가 된다. 말하자면 그의 유령 사진은 사진을 통해 증명되는 유령의 존재가 아니라 유령의 존재라는 낭설이 우리 세계에 ‘여전히’ 작용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것은 사진가라는 관습적인 정체성으로부터의 홀가분한 자유, 그리고 사진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시제와 현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을 전제로 한다. 이를 통해 참의 증빙으로 기능해 온 사진의 기록성을 비가시적인 것에 대한 인덱스로 전환하여 포착하는 그의 사진이 가리키는 것은 이미지를 통해 인양되는 과거의 현시가 된다.

동해바다 돈스코이호 침몰 추정 위치, 2023 ⓒ김신욱
예를 들어 보자. 나는 망망대해를 찍은 어느 사진 한장을 보고 있다. 심드렁하니 온통 푸른 바다의 표면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가 나에게 그 사진 속의 바다가 러일전쟁 당시 돈스코이 함이라는 거대한 러시아 배 한 척이 침몰한 지점이며, 그 배에는 어마어마한 보물이 실려 있었다고 말한다. 갑자기 그저 바다 한 곳이던 이미지가 다르게 다가온다. 그 사진은 어느 사건의 현장이면서, 백여 년전 당시 배의 모습과 지금 그 안에는 보물이 얼마나 어떻게 들어 있을까 상상하기 시작한다. 뚜렷한 경계도, 표시도 없는 바다의 사진이 불현듯 이야기의 창고가 되어 관객을 포획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대로 돌려보자. 러일전쟁 당시 동해상에 침몰한 돈스코이 함이라는 배에 엄청난 보물이 있다는 떠들썩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것은 상상일 수도, 사실일 수도, 역사일 수도 있다. 그것은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참과 거짓의 혼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사진작가가 그 이야기를 꼼꼼히 리서치하고, 카메라를 들고 그 이야기의 연원을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망망대해에서 러일전쟁 당시 돈스코이 함이라는 거대한 러시아 배 한 척이 침몰한 지점에 다다른다. 그는 그 바다 위를 찍는다. 그 후 관객인 나는 그 작가가 찍은 그 바다 위 사진을 보게 된다.

선녀탕, 2023 ⓒ김신욱

가마오름 동굴진지, 2023 ⓒ김신욱
무한의 순환과 같은 이 과정에서, 작가와 관객이 서로 공유하는 것은 사진을 통해 발견되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사진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보았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이유는 ‘본다’는 것은 비단 보이는 사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는 대상이 맺고 있는 복합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결국 김신욱의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일어난 복잡한 사태와 그로 인해 나타난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의 몇 가지 명제들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4 실체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느냐와 독립해서 존립하는 것이다. 2.026 오직 대상들이 존재할 때에만 세계의 확고한 형식이 존재할 수 있다. 2.03 사태 속에서 대상들은 사슬의 고리들처럼 서로 걸려 있다. 2.031 사태 속에서 대상들은 일정한 방식으로 서로 관계 맺고 있다. 2.034 사실의 구조는 사태들의 구조들로 이루어진다.”

울릉도 전경, 2023 ⓒ김신욱

울릉도, 2023 ⓒ김신욱
이 점에서 김신욱의 사진은 단순히 사물이나 사태의 피사체를 찍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맺고 있는 구조로서의 사실을 포착한다. 그의 <선녀탕>이나 <가마오름> 등의 작품에서 티모시 오 설리번(Timothy O’Sullivan)의 <피라미드 호수의 피라미드와 투파 돔(Pyramid and Tufa Domes, Pyramid Lake, Nevada)>(1878)이나 <리몬 베이의 닙식호(The Nipsic in Limón Bay, at High Tide)>(1871)가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세기 말 조사 사진(survey photography)의 역사와 김신욱의 작업 방식은 분명 그 궤를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조사 사진은 그 숭고한 사진적 아우라에도 불구하고 고정된 시제의 사물과 사태를 기록하고 있다면, 김신욱의 사진은 “사태들의 구조”로 이루어진 “사실의 구조”를 향하고 있다. 사실의 구조는 시간과 공간의 지속적 형식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제와 변화를 포함하며, 이것이 역사라는 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김신욱의 작업은 사진이 지닐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시제를 통해 견인될 수 있는 잠재적 시간의 구조와 관련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여정은 마치 시간의 지도와 같이 펼쳐져 있다. 그는 돈스코이호의 침몰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울릉도-부산-대구-남해-제주도-쓰시마섬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의 리서치 과정으로 확대하며 사진의 지시성에 내재된 구조적 발화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발화는 사진의 명징한 현재와 대상 혹은 사람 등의 외피에 작용하고 있는 조밀한 얽힘의 관계를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적하고 분해한다. 그는 “실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아 일종의 유령과도 같은 동해 바닷속 침몰선이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세계에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궁금증이 생겨” 돈스코이호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했다고 말한다.2) 그렇게 그의 이미지들은 정확히 어떤 과정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명확히 드러낼 수는 없지만 조밀한 얽힘의 징후임은 분명한 상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즉 “출몰하는 유령들”이란, 징후의 현현에 다름아닌 것이다.

사고만 입구, 2023 ⓒ김신욱

취도, 2022 ⓒ김신욱
이번 전시에서 그의 사진은 리서치를 통해 얻게 된 많은 정보를 노출하고 안내하는데도, 오히려 관객에게 많은 것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마치 누군가는 아주 작은 징후에도 예민한 촉을 세우고 유령을 감지할 수도 있으나, 누군가는 아무리 유령이 눈앞에 있어도 유령 따위 있을 수 없다며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김신욱의 사진 앞에서 누군가는 그저 <울릉도>와 <가마오름 동굴진지>를 볼 것이며, 또 누군가는 <울릉도>와 <가마오름 동굴진지>라는 징후를 통해 복잡하게 엉켜 있는 시간의 타래를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그의 작업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사진이라는 매체의 완고한 시제를 통해 드러나는 투명한 시간의 작동, 곧 지속되고 있는 과거의 증식이다. 그것은 이제는 고전이 된 현존이라는 사진의 에이도스가 아니라, 인덱스의 불가능성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는 과거인 것이다.
글 구나연 미술비평가
해당기사는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