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기 《기억의 형상들: Monuments of Memory》 7월 22일 - 8월 4일 | 강릉시립미술관


이 전시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기 위해 형상을 세우는가, 그리고 세워진 형상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는가.

김전기의 《기억의 형상들: Monuments of Memory》시리즈는 한국의 공공 공간이나 사람들의 부재로 닫혀진 공간에 산재한 동상과 조형물들을 대상으로 한 작가의 집요한 탐문의 기록이다. 작가는 강원도 고성의 철책선 인근 폐교의 교정에서부터 수십 년간, 철조망에 가로막혔던 동해안 해변, 군 초소가 해체된 경계의 흔적, 그리고 제주의 습한 숲속에 이르는 긴 여정 위에서, 이 땅 곳곳에 세워지고 방치되고 혼재하는 형상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나 이 작업을 단순한 기록 사진이나 사회적 다큐멘터리의 범주로 읽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작가의 시선은 단순히 기괴한 동상이나 조형물 그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공기-사람과 형상 사이의 침묵, 무관심, 혹은 무의식적 친숙함-에 오래 머문다.
 
작가가 포착하는 장면들은 의도적으로 불편하다. 폐교 운동장에 홀로 남겨진 인물상, 출처와 맥락을 잃은 채 공원 한편을 점거한 조형물, 군사적 긴장이 걷힌 동해안 해변을 빠르게 채운 소비의 구조물들-이 모든 것이 작가에게는 동일한 문제의 다른 얼굴이다. 이념은 특정 체제나 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며, 자본의 언어 역시 하나의 이념으로서 공간을 점령하고 몸을 유도한다는 인식이 이 작업 전반을 관통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작가가 사람들의 무의식적 행동을 포착하는 방식이다. 조형물 위에 올라 있는 관광객, 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 조형물의 존재를 아예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행인-이 장면들은 어떤 고발도 아니고 조소도 아니다. 작가는 그것을 우리 시대의 가장 솔직한 초상으로 제시한다. 기억이 풍경이 되고, 이념이 배경이 되는 시대의 감각이다. 작가가 카메라에 담은 이 형상들은 각기 다른 시대의 욕망과 이념과 무의식이 물질로 응고된 결과물이며, 서로 무관하게 세워졌음에도 한 프레임 안에 놓이는 순간, 기묘하고도 날카로운 긴장을 만들어낸다.


 
 
ⓒ김전기, Epoch's Mon.#3, Archival Pigment Print, 56x70cm, 2025
 

ⓒ김전기, Ideo's Mon.#6, Archival Pigment Print, 62x76cm, 2022

 
이번 전시에는 빛과 어둠이 반전된 중간 상태의 이미지로 만든 작품을 일부 선보인다. 작가는 이 불완전한 중간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어떤 시대적 사건이나 이념적 형상에 대해 아직 우리는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 옳고 그름이 아직 현상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것-그것들은 이미 완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소멸되거나 무효화 되지도 않은 채 이 땅 위에 여전히 서 있다. 현상되었으나 인화되지 않은 필름처럼, 어느 쪽으로도 확정되지 않은 이념의 잔상처럼. 정의되지 않은 역사, 아직 언어를 찾지 못한 기억은 빛과 어둠이 뒤바뀐 채로 벽에 걸린다.
 
《기억의 형상들: Monuments of Memory》은 이 땅의 근현대사가 물질화된 방식과, 그 물질 앞에서 점점 얇아지는 우리의 감각을 동시에 응시한다. 작가는 이 조형물들이 놓인 맥락의 불일치와 혼성,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균열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정지시킨다. 답이었던 것이 질문이 되고, 기념이었던 것이 증거가 되는 그 전환의 순간을, 때로는 포지티브의 언어로, 때로는 네가티브의 언어로 병치함으로써, 작가는 우리가 무엇을 세우고, 무엇을 남기며, 무엇을 망각하는가를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묻는다. 이 전시는 이념의 풍경화이자, 아직 현상 중인 이 사회의 역사를 향한 사진적 성찰이다. 이어 작가는 동상이 더 이상 절대적인 기념물이 아닌, 의미가 끊임없이 변형되는 기억의 매개체로 제시하며 시간 속에서 의미가 변화하는 ‘기억의 흔적’임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서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에게 작품 속 무언의 형상들이 건네는 침묵의 목소리를 깊이 경청할 수 있는 사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본 전시는 2026년 강원특별자치도 강원문화재단 전문작가 후원과 강릉시립미술관 지역예술가 전시공간 지원사업 후원으로 이루어진 전시이다.
 

 
강릉시립미술관
 
후원 : 강원특별자치도 강원문화재단
2026년 강릉시립미술관 교동 지역예술가 전시공간 지원사업

 
 

ⓒ김전기, Ideo's Mon.#8, Archival Pigment Print, 62x76cm, 2022


ⓒ김전기, Ideo's Mon.#9, Archival Pigment Print, 80x100cm,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