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페이스 ⦁ ⦁ 이옥토 《Unlife》
- 2026-01-27 11:29:29

글 장진아 기자
해당기사는 2025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동시에 끝내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이옥토는 《Unlife》(7.30.~9.30. | 캐논갤러리)에서 그 경계의 흐릿한 지점에 이름을 붙였다. ‘Unlife’라는 낯선 단어를 통해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순간들, 기억의 파편, 실감의 지연, 소외된 존재감을 하나의 세계로 불러 모은다. 그가 카메라로 기록한 사진과 영상은 ‘살아있으나 살아 있다고 부를 수 없는 상태’를 시각화하며, 모호하고 덧없음조차 존재의 한 형태임을 일깨워 준다.
해당기사는 2025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동시에 끝내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이옥토는 《Unlife》(7.30.~9.30. | 캐논갤러리)에서 그 경계의 흐릿한 지점에 이름을 붙였다. ‘Unlife’라는 낯선 단어를 통해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순간들, 기억의 파편, 실감의 지연, 소외된 존재감을 하나의 세계로 불러 모은다. 그가 카메라로 기록한 사진과 영상은 ‘살아있으나 살아 있다고 부를 수 없는 상태’를 시각화하며, 모호하고 덧없음조차 존재의 한 형태임을 일깨워 준다.


전시 제목 ‘Unlife’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 자체로 정의되어 있다. 이 개념이 담고 있는 의미와 전반적인 전시 소개를 부탁한다.
‘Unlife(언라이프)’는 우리가 쉽게 접하는 단어인 ‘Undead(언데드)’의 반대항이라 볼 수 있다. 죽었으나 제대로 죽지 못한 것들을 ‘언데드’라고 부른다면, 살아있지만 제대로 부를 수 없는 것들에도 ‘언라이프’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은 채 사라져 버린 무언가들, 지금이 아닌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는 실감, 개인이 지닌 소수자성으로 인해 사회 안에서 하나의 삶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생명들, ‘이곳’이라 부를 만한 토대 위에 발을 딛지 못하는 수많은 느낌과 비명을 호명할 이름을 정하고 싶었다.
등장부터 AI의 대두 이전까지 사진은 현실세계의 탁본처럼 여겨왔고, 예전에 흔히 쓰였던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실재의 견본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카메라를 사용해 보면 사진이 현상에 기반을 두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촬영자의 생각과 느낌이 강하게 반영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장에 놓인 사진들은 내가 나 자신의 살아있음을 믿지 못할 때, 상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때,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촬영된 것들이다. 모호함과 헛됨도 하나의 소속이 될 수 있다면, ‘언라이프’라는 이름 아래로 모여 함께 이마를 맞댈 수 있기를 바란다.
‘실감’이라는 감각을 작품 전반의 키워드로 삼은 이유는? 작가에게 실감이란 어떤 경험인지 들어보고 싶다.
어떤 한 사람을 오래 사랑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는 노인이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늘 즐거웠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알츠하이머가 발병했고, 처음에는 나의 이름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나라는 사람까지 잊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나를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던 눈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의 임종 이후 유대와 기억, 그리고 시간을 공유하던 상대가 사라졌을 때 나에게 외따로 남은 모든 파편을 내가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지에 대한 오랜 고민과 슬픔이 있었다.
그의 죽음을 실감치 못한 것은 부차적이었으나, 후에는 병처럼 커져서 단지 내 눈앞에 없는 것이라고, 어딘가에는 꼭 그가 있으리라고 무의식 중에 믿게 되었다. 몇 년이 흐르고 휴식차 방문한 타국에서 흰 나비 한 마리가 나를 계속 쫓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걸음을 멈추자 나비는 공중을 몇번 돌다가 나와 가까운 꽃 위에 조용히 앉았다.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자, 그제야 그가 죽었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실감은 너무나 또렷한 현실 앞에서는 시간차를 두고 도착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이 터무니없이 커다란 지금, 앞에서 거짓말 같다고 말하거나 진짜인지 되묻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앞서 말한 사건으로 인해 나는 실감이 사람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부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도착이 언제까지 지연될 수 있는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언젠가 이것을 공유하게 될 때, 실감을 느끼지 못하며 사는 많은 이에게 충분히 그런 삶이 있을 수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Unlife(언라이프)’는 우리가 쉽게 접하는 단어인 ‘Undead(언데드)’의 반대항이라 볼 수 있다. 죽었으나 제대로 죽지 못한 것들을 ‘언데드’라고 부른다면, 살아있지만 제대로 부를 수 없는 것들에도 ‘언라이프’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은 채 사라져 버린 무언가들, 지금이 아닌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는 실감, 개인이 지닌 소수자성으로 인해 사회 안에서 하나의 삶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생명들, ‘이곳’이라 부를 만한 토대 위에 발을 딛지 못하는 수많은 느낌과 비명을 호명할 이름을 정하고 싶었다.
등장부터 AI의 대두 이전까지 사진은 현실세계의 탁본처럼 여겨왔고, 예전에 흔히 쓰였던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실재의 견본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카메라를 사용해 보면 사진이 현상에 기반을 두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촬영자의 생각과 느낌이 강하게 반영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장에 놓인 사진들은 내가 나 자신의 살아있음을 믿지 못할 때, 상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때,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촬영된 것들이다. 모호함과 헛됨도 하나의 소속이 될 수 있다면, ‘언라이프’라는 이름 아래로 모여 함께 이마를 맞댈 수 있기를 바란다.
‘실감’이라는 감각을 작품 전반의 키워드로 삼은 이유는? 작가에게 실감이란 어떤 경험인지 들어보고 싶다.
어떤 한 사람을 오래 사랑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는 노인이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늘 즐거웠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알츠하이머가 발병했고, 처음에는 나의 이름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나라는 사람까지 잊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나를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던 눈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의 임종 이후 유대와 기억, 그리고 시간을 공유하던 상대가 사라졌을 때 나에게 외따로 남은 모든 파편을 내가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지에 대한 오랜 고민과 슬픔이 있었다.
그의 죽음을 실감치 못한 것은 부차적이었으나, 후에는 병처럼 커져서 단지 내 눈앞에 없는 것이라고, 어딘가에는 꼭 그가 있으리라고 무의식 중에 믿게 되었다. 몇 년이 흐르고 휴식차 방문한 타국에서 흰 나비 한 마리가 나를 계속 쫓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걸음을 멈추자 나비는 공중을 몇번 돌다가 나와 가까운 꽃 위에 조용히 앉았다.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자, 그제야 그가 죽었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실감은 너무나 또렷한 현실 앞에서는 시간차를 두고 도착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이 터무니없이 커다란 지금, 앞에서 거짓말 같다고 말하거나 진짜인지 되묻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앞서 말한 사건으로 인해 나는 실감이 사람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부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도착이 언제까지 지연될 수 있는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언젠가 이것을 공유하게 될 때, 실감을 느끼지 못하며 사는 많은 이에게 충분히 그런 삶이 있을 수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의 핵심 키워드는 ‘실감’이다. 작가가 부딪혀왔던 실감의 지연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겪어본 감각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돌이킬 수 없는 이별 혹은 세상을 바꿔버린 어떤 재난 앞에서조차 우리는 쉽게 ‘믿기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옥토의 언라이프는 바로 그 어긋남 속에서 태어났다.
양막, 신부의 흰 베일, 장례식이 검은 베일처럼 투명한 가림막을 언급했다. 베일의 의미와 이것을 전시에 어떻게 녹여냈는가?
유령에게 베일이 없다면 누구도, 심지어 그 자신도, 자신과 풍경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베일은 펄럭이고 얇고 이따금 벗겨지기도 한다. 《Unlife》 내에서 베일은 실감 없이도 현존하고 있는 자아의 연약한 테두리다. 전시 공간에 반투명한 흰 천을 통과해 영상 작품과 마주할 수 있게 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받은 감각을 비슷하게 공유하고 싶어 연출하게 된 것도 있지만, 관람객이 베일을 지나며 수없이 쓰다듬어지기를 바란 마음도 있다.
양막, 신부의 흰 베일, 장례식이 검은 베일처럼 투명한 가림막을 언급했다. 베일의 의미와 이것을 전시에 어떻게 녹여냈는가?
유령에게 베일이 없다면 누구도, 심지어 그 자신도, 자신과 풍경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베일은 펄럭이고 얇고 이따금 벗겨지기도 한다. 《Unlife》 내에서 베일은 실감 없이도 현존하고 있는 자아의 연약한 테두리다. 전시 공간에 반투명한 흰 천을 통과해 영상 작품과 마주할 수 있게 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받은 감각을 비슷하게 공유하고 싶어 연출하게 된 것도 있지만, 관람객이 베일을 지나며 수없이 쓰다듬어지기를 바란 마음도 있다.

백조의 날갯짓, 산길의 새 솜털, 풀잎 등 구체적인 장면을 담았는데, 이 장면들이 작가에게는 어떤 순간이었는지.
나에게서 내가 희미해지고 현상과 느낌만이 가득했던 순간들을 위주로 모으게 되었다. 주로 음악없이 산책하다 마주한 장면들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에게 새롭게 다가온 깨달음이 있었는지,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 어떤 ‘실감’을 가져가길 바라는지.
전시장에 걸릴 영상 작업을 하며 내가 가졌던 물음 하나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진들은 대부분 먼저 준비된 것이었지만, 영상 작업은 오롯이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것이어서 다소 밭은 일정이었기에 끝맺지 못한 글을 토대로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그 사랑이 사랑답게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영상을 완성하면서 내게 나비와 함께 찾아온 실감처럼 언젠가 그 사람의 환상이 이곳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라면, 내가 할 일은 ‘그 환상이 잠시 자리할 이곳을, 이 세상을 윤이 나게 닦고 아껴주는 것이겠구나’를 깨달았다.
어떤 감각이나 생각을 가져주기보다는 전시를 보고 어느 날의 괜찮았던 산책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나에게서 내가 희미해지고 현상과 느낌만이 가득했던 순간들을 위주로 모으게 되었다. 주로 음악없이 산책하다 마주한 장면들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에게 새롭게 다가온 깨달음이 있었는지,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 어떤 ‘실감’을 가져가길 바라는지.
전시장에 걸릴 영상 작업을 하며 내가 가졌던 물음 하나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진들은 대부분 먼저 준비된 것이었지만, 영상 작업은 오롯이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것이어서 다소 밭은 일정이었기에 끝맺지 못한 글을 토대로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그 사랑이 사랑답게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영상을 완성하면서 내게 나비와 함께 찾아온 실감처럼 언젠가 그 사람의 환상이 이곳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라면, 내가 할 일은 ‘그 환상이 잠시 자리할 이곳을, 이 세상을 윤이 나게 닦고 아껴주는 것이겠구나’를 깨달았다.
어떤 감각이나 생각을 가져주기보다는 전시를 보고 어느 날의 괜찮았던 산책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Unlife》는 사랑과 상실 이후에도 남겨진 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옥토는 “나는 이미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어떻게 사랑다운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조금은 다른 답을 얻었다. 그것은 부재를 붙잡으려는 집착이 아닌 ‘언젠가 환상이 이곳에 머물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리를 닦고 지켜주는 일’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전시가 남기고자 하는 메시지는 크지 않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건져 올린 그의 시선은 우리가 미처 실감하지 못한 오늘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이옥토는 2016년부터 활동했으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개정판 표지를 담당했다. 그 외에도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더디 있었을까』 리커버 특별판 표지에 참여했다. 개인전으로 《Unlife》(2025)를 선보였으며, 『사랑하는 겉들』(2017), 『처음 본 새를 만났을 때처럼』(2023), 『당신의 눈부심을 발견할게』(2023) 등을 출간했다.
수 있는 일은 자리를 닦고 지켜주는 일’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전시가 남기고자 하는 메시지는 크지 않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건져 올린 그의 시선은 우리가 미처 실감하지 못한 오늘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이옥토는 2016년부터 활동했으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개정판 표지를 담당했다. 그 외에도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더디 있었을까』 리커버 특별판 표지에 참여했다. 개인전으로 《Unlife》(2025)를 선보였으며, 『사랑하는 겉들』(2017), 『처음 본 새를 만났을 때처럼』(2023), 『당신의 눈부심을 발견할게』(2023)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