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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도사진전 60회 기념 좌담회

토론자 | 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박종우 사진작가, 이호재 한국사진기자협회장
사회 | 이기명 월간 「사진예술」 발행인 겸 편집인
정리 및 인터뷰 사진 | 서민경 기자

 



 
이기명 : 한국보도사진전 60회(4.18~4.22 | 광화문광장)를 맞아 좌담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예술」에서 매년 2~3회 라운드 테이블 행사를 했으며 올해 첫 좌담회입니다. 한국보도사진전 60회의 의미 있는 숫자 60을 기념하여 그동안의 한국포토저널리즘의 성장과 발전 과정 그리고 아쉬운 점도 이야기를 하고 그간에 수상작 및 올해 대상 작품과 최우수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이호재 한국사진기자협회 회장님 오셔서 감사드리고 박종우 작가님은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활동하셨고 지금 DMZ 등 활발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1.5세로서 AP 로이터, 로이터 통신 LA 타임즈 사진 기자를 역임하고 팀 수상으로 퓰리처상도 두 분이나 수상한 강형원 기자님 오셨습니다. 그리고 현직 사진기자로서 왕성하게 활동을 한다고 평가받는 조선일보 고운호 사진기자 찾아주셨습니다. 우선 첫 질문으로 올해 60회를 맞는 보도사진전과 한국사진기자협회 회장으로 재선을 한 이호재 회장의 말씀부터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호재 : 한국보도사진전을 사람으로 치면 이제 환갑이 됐는데 환갑이 됐으면 환갑 잔치를 하잖아요. 올해 보도사진전은 역대 우리의 역사를 보도사진전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 60년이라는 어떻게 보면은 짧다면 짧고 또 길다면 길 수 있는 시간을 한번 총체적으로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그런 사진전이 될 겁니다. 그렇게 지금 준비를 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급변해가고 있는 취재 현장에서 과연 우리 후배들과 지금 현직에 있는 사진기자들이 또 미래의 사진기자를 하려고 하는 세대들이 어떻게 사진을 해야 되는지 또 포토저널리즘을 바라봐야 되는지, 재정립을 하고 탄탄하게 다져갈 생각입니다.

이기명 : 특히 이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 보도사진전 심사를 굉장히 획기적으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바뀌게 된 계기와 그 결과 일어난 어떤 성과에 대해서 덧붙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호재 : 제가 협회장 취임하기 전에는 사진기자들이 출품하고 이해관계에 있는 사진부장들이 심사를 하는 그런 모양새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서로 간에 불신도 좀 있었고 사진부장들은 어느 정도 느낌상 자기부서 사진기자들이 출품한 출품작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일체 다 배제를 시키겠다. 누구나 다 블라인드에서 공평하게 심사를 받도록 한번 해보겠다 해서 외부 심사로 바꾼 거죠. 그 결과 의외의 마이너 언론사가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작년 같은 경우에 이태원 참사의 제사 지내는듯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대상을 받았는데 뉴스와 사진만 놓고 이 사진이 어느 언론사인지 어느 기자의 사진인지는 불문하고 평가를 했기 때문에 마이너 언론사에서 수상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기조는 아마 제 뒤에 사진기자협회장이 또 바뀐다 해도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왼쪽부터 박종우 이호재 이기명 고운호 강형원


강형원 : 객관성을 포함시키는 그 구조 자체가 신뢰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호재 : 그렇죠. 이것은 또 많은 선배님들이 도움을 주셨고 제가 자문을 구할 수 있는 분도 많았습니다. 이런 변화에 있어서는 결정을 했으면 획기적으로 한 번에 다 바꿔야 되는 거거든요. 협회 회원들도 누구나 다 공감을 하고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큰 반발 없이 잘 바뀌게 됐습니다.

이기명 : 사실 이 회장이 취임하면서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가 심사위원 구성이었던 것 같아요. 과거에 심사하러 가면, 각 신문 사진 데스크들이 주 심사위원으로 오시고 외부 심사로 오시는 분이 20~30%도 안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데스크들은 자기 신문사에서 나온 사진을 다 아니까 각자 소속된 신문사 사진들을 미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호재 회장이 취임하면서 협회 내 자체 심사위원은 줄이고 외부 심사를 다수로 해서 사실 공정성 객관성이 담보가 되고 그것을 통해서 마이너 언론사에서 수상자가 많이 나왔다는 것은 좋은 방향을 설정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혁신적인 심사위원을 구성하면서 올해 수상작도 마이너 언론사에서 수상했지요?

이호재 :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볼 수 있죠. 이번에 수상자 회사가 뉴시스인데, 더욱 뉴시스 대구거든요.

강형원 :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적인 유닛이 사실 그렇게 넓은 공간이 아니잖아요.그러니까 전국을 한 유닛으로 취급하고 그렇게 평가하는 생각 자체가 서울 중심에서 벗어난 큰 시각을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기명 : 그럼 올해 대상작 그리고 이제 또 경쟁 차점을 받았던 작품에 관하여 심사위원들이 고민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우선 그 대상작과 차점작인 스토리 부분 최우수작을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기명 : 올해 보도사진전 심사를 해준 강형원 기자님과 박종우 작가님께서 심사분위기를 전해주세요.

박종우 : 심사할 때 다른 여러 심사위원들이 계셨지만 강형원 기자하고 나하고 이 사진 갖고 조금 논쟁을 했습니다. 강형원 기자는 대상작을 추천하셨고 나는 좋은 사진이긴 한데 어떤 점에서 너무 정형화된 접근 방식이 아니냐 하는 것하고 그다음에 너무 순간적으로 딱 포착한 것이라서 오히려 사진기자가 자기의 열정을 바쳐서 오랜 기간 동안 작업한 작품을 줘야 되지 않냐, 서로 논쟁이 약간 있었고요. 또 다른 심사위원들 의견을 받아서 이 사진이 대상으로 뽑혔는데 결과적으로 좋은 사진인 것 같고 시간이 지나더라도 2023년에 어떤 일이 있었다라는 걸 기억하게 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사실 그다음에 우리가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다는 거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그런 점에서는 좋은 사진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강형원 : 이 사진은 그 맥락을 이해하고 봤을 때 하고 그냥 사진을 보면서 무슨 상황이지라고 생각하는 그 두 가지의 경험이 있는데 대부분의 90% 이상의 독자들이나 사진을 보는 사람은 사진을 보고서 이게 뭐지 하고 접근을 하기 때문에 사진이 결정적인 모멘트를 가장 잘 캡처를 해가지고 그것을 시각적인 언어로서 딱 이렇게 뭐가 와닿는, 보는 사람마다 이해가 되는 그 비주얼 메시지에다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한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이 보도 사진전 선정 과정하고는 별개라고 생각하고 그냥 사진으로만 우선 봐야 되고 또 세월이 지나도 2023년도에 일어났던 사건 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그 사건 중에 하나로 딱 이 사진을 내놓을 수 있는 그게 그 객관적인 가치를 이 사진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저는 이 사진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전우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뉴시스, 이무열기자


이기명 : 고운호 사진기자는 현직 사진기자로서 이번 대상작을 어떻게 봤나요?

고운호 : 처음 대상이 어떤 사진이 발표될까 크게 궁금했는데 이 사진을 보고 나서 아~ 라는 말이 먼저 나왔어요. 일단은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뭔가 아픈 사진이 나와서 가슴이 좀 찡했고요. 이전에 있었던 대상 사진 같은 경우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면 2023년을 함께 살았던 동시대의 국민이라면 이 사진을 보고 이 맥락들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병대 군복이라든가 이 군인의 어떤 포즈가 구구절절히 말하진 않지만 이 친구가 왜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사진으로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이 물론 뭔가 밝고 기쁜 순간을 조명할 수도 있지만 저널리즘 사진 같은 경우에는 뭔가 우리들이 뭔가 외면한 그리고 혹은 불편할 수도 있는 그런 아픈 순간들을 보여주는 게 더 의미가 있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이호재 : 저는 저널리즘 사진의 근본적인 속성 중의 하나인 역사성과 시간성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올해 대상도 그런 요소들이 충분히 있어서 저 사진이 15년 20년 뒤에 다시 우리가 봤을 때 이때 이런 사건이 있었지 하는 되새김질을 내놓은 사진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강형원 : 포토저널리즘에서 가장 높은 가치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이고 차별화되는 시각적인 스토리텔링을 해야합니다. 오래하면 할수록 내 자신에게 빛을 재현하고 있는 가라고 물어보는 걸 저는 항상 하거든요. 그리고 카메라의 기계를 제대로 익혀가지고 새로운 카메라의 기능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사용법을 터득하는 게 중요합니다. 목수가 연장을 완숙해야만 물건을 제대로 만들어내듯이 사진기자도 그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제 경험에 의하면 디지털 카메라의 뒤에 스크린으로 각도를 조절해서 이 카메라의 위치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더해지면서 앵글이 훨씬 더 풍성해졌어요. 그래서 옛날에 핫셀블라드 가지고 배꼽에다 놓고 찍었던 각도를 이제 디지털 카메라로 할 수가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변화하고 있는 카메라의 테크놀로지, 우리 사진을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야되며 뷰파인더만 보고 사람 키 높이에서만 찍지 않는 그런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운호 : 저는 이 보도사진상의 그 의미가 물론 단순히 열심히 취재한 기자를 격려하는 걸 수도 있고 기록적으로 남기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게 사진 기자들한테 뭔가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이전에 나왔던 대상 선정작을 보면은 기준이 매번 오락오락 하니까 난 열심히 취재를 했고 그럼 심사위원들이 알아서 평가해 주겠지라고 하면서 그냥 맡겨버리는 혹은 자포자기 했다면, 이제 이 심사위원들이 하는 메시지가 있다. 참사든 어떤 큰 뉴스가 있을 때 현장으로 정말 달려갈 수 있도록 독려를 하고 그 아픔을 보듬어주는 시선으로 독자들한테 울림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이렇게 취재하라는 어떤 메시지인 것 같다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걸 젊은 사진기자들끼리 대화를 나누면서 근데 올해도 또 무슨 일이 있으면 또 우리가 역할을 좀 해봐야겠다라고 다짐하는 시간도 가져봤었고요. 지금의 심사가 일관성 있게 유지된다면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종우 : 강형원 기자가 얘기한 독창성 그런 게 이제 굉장히 중요한데 양면적인 건데 또 우리 기자들한테는 마감 시간이라는 게 있단 말이에요. 이제 취재를 하다 보면 마감 시간을 맞춰야 되니까 빠지고 그러는 건데 그런 거를 다 양립시켜서 해나가는 게 뭐 능력있는 기자라고 생각이 되고요. 내가 현직에 있을 때 경험이 생각이 나는데 뭐 그런 독창성 그런 거의 문제인데 옛날에는 검찰청의 주요 인사가 불려 들어가서 들어갈 때 기자들이 거기서 진을 치는데 우리가 일할 때는 지금처럼 매체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을 때는 거의 150명 정도의 사진기자들이 진을 치죠. 그 당시에는 센터 자리를 제일 베스트 자리라고 생각하고 그거를 선점하는 데서부터 경쟁이 시작된다고요. 그렇게 해서 찍는 사진은 100명이 찍으면 100명이 거의 다 똑같은 사진이 찍히는 거예요. 어차피 저렇게 찍힌 사진은 외신 통신사를 통해서 들어오게 돼 있어요. 그리고 연합통신 기자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거기 똑같은 사진을 찍을 필요가 있겠나 싶어서 옆과 뒤로 움직이면서 찍어봤어요. 그랬더니 주된 피사체는 옆모습 또는 뒷모습이 되는 반면에 배경에 150명이 되는 사진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리는 게 찍혀서 굉장히 사진적으로 더 강렬한 이미지였어요. 그런데 신문사에 들어갔다가 데스크한테 엄청 깨진 거예요. “도대체 거기까지 가서 주인공 얼굴도 안 나오는 이 따위 사진을 찍어왔냐” 신문 사진이라는 게 정면 사진을 좋은 보도 사진이라고 규정되어 있구나! 그래서 독창적인 사진, 자기만의 사진을 찍으려면 참 굉장히 힘들구나 하는 거를 느꼈습니다.

이호재 : 제가 차장이라서 사진부장이 안 계실 때 가끔 데스크를 볼때에 편집국장한테 대놓고 그래본 적이 있어요. 아니 왜 여기서 딴 신문이랑 똑같이 그걸 답을 맞추려고 그러냐 답이 어디 있냐 근데 어쨌든 편집인들은 아직까지도 40년 전 생각에 그대로 매몰돼 있으니까 사진기자한테는 그런 것들을 계속 요구하는 거죠.

이기명 : 이번 대상의 경쟁작이었던 한겨레신문 김봉규 사진기자의 작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박종우 : 이 작업은 워낙 오래된 거고 그 의미도 있는 작업이고 그래서 또 작업 자체의 완결성 사진이 갖고 있는 품격 이런 게 다 좋은 사진이죠. 그래서 대상 못 받은 게 좀 안타까운데 우리도 이제 한국보도사진상에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잖아요. 근데 탑으로 주는 거는 딱 한 작품이란 말이에요. 퓰리처상 같은 경우를 보면 애초에 스팟 뉴스하고 지금은 브레이킹 뉴스로 바뀐 것하고 피처(기획사진)하고 해서 따로따로 하나씩 주거든요. 그러면 속 편한데 우리는 그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아 사람아-제노사이드의 기억, 한겨레신문, 김봉규기자

 
이기명 : 이 작품 오랫동안 많이 지켜봤던 작품이라 하시니, 이 작품 작업 과정이라든지 특징들에 관해 덧붙이면 좋을 것 같아요.

박종우 : 김봉규 기자가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게 회사 일로 시작한 게 아니고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시작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서 휴가 받아서 시간 내어가며 자비로 여러 나라 다니면서 그런 열성 그런 게 참 대단하다고 봐요. 월급쟁이 신문 기자를 하면서 그렇게 하기는 참 쉽지 않으며 하나의 주제를 잡아갖고 그것에 천착해서 작업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다고 보고요. 근데 전체적인 제목이 제노사이드로 돼 있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학자들 간의 의견이 다르겠지만 처음에 이 작업의 발단이 된 계기는 내가 김봉규 기자한테 언뜻 듣기로는 한국전쟁 당시에 골령골이라는 데서 우리나라 군경이 사상범들을 사형시키는 그 현장 발굴을 보면서 이거를 시작했다고 얘기를 했어요. 근데 1950년 전에 우리나라 정치 격변기에 사상범들을 처형한 거를 제노사이드라고 이름 붙이는 게 적합한지는 난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이제 그 뒤로는 그게 뜻이 넓어져서 진짜 순수한 의미의 제노사이드가 됐는데 지금 여기 사진에서 보면 삼방산 앞에 이런 거라든가 이거는 제노사이드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서 내가 보기엔 그건 조금 좀 빛나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강형원 : 4·3 학살이 제노사이드라고 정의를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박종우 : 물론 제노사이드지만 4·3을 그렇게 한 거는 좀 맞지 않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죠.

강형원 : 근데 제가 4·3을 취재해 보니까 애당초 사상적으로 서북청년회가 들어와서 경찰 들의 어깨로서 인민위원회를 없앤다고 하면서 주민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인민위원회라고 하는 조직하고는 별개인 주민들이 많이 죽었잖아요.

박종우 : 당연하죠. 끊임없이 죽었고

강형원 : 연좌제로 57년도까지 계속 사람들을 짐승 잡듯이 잡아서 죽이고 우리 역사에서 가장 20세기의 큰 비극 중에 하나였는데…… 그리고 이걸 제노사이드라고 어떻게 안 부를 수 있습니까?

박종우 : 근데 어쨌든 사전적으로는 제노사이드는 종족 간의 차이점에서 나오는 대량 학살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쪽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작업 자체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게 사진가로서 길게 작업을 한 것이지요. 이점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되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호재 : 제노사이드 작업의 결과물이나 또는 작업의 소재나 이런 것도 또 사진적인 가치나 퀄리티 뭐 이런 것도 상당히 좋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대상을 받을 만한 작업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과연 저게 뉴스적인 지금 현 시대 상황에서 뉴스적인 임팩트가 우리한테 얼마나 올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근데 그런 말씀도 일리가 있는데 이 사진을 취합하고 매달 사진을 접수받아서 심사를 하다 보면은 단편적인 일례만 가지고 바꾸기에는 힘들어요. 예를 들자면 드론 사진 부분을 바꿔보려고 1년 동안 서치를 해봤어요. 드론 사진 부문을 포기했어요. 이 네이처 같은 경우에는 다 드론으로 찍으니까 그래서 앞으로 한국보도사진상 카테고리에 변형을 주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기명: 카테고리에 관한 얘기가 나온 김에 강기자님 퓰리처 상 카테고리에 관하여 설명 부탁드립니다.

강형원 : 지금 퓰리처상 카테고리(CATEGORIES)에서는 퍼블릭 서비스(Public Service), 브레이킹 뉴스(Breaking News Reporting), 기획취재하는 인베스트게이티브 (Investigative Reporting)는 심층 취재한거고, 엑스프래내토리 리포링(Explanatory Reporting) 해석해서 역사적인 의미를 풀어내는 것, 그다음에 지역 뉴스(Local Reporting) 하고 전국뉴스(National Reporting)하고 국제 뉴스(International Reporting)하고 그다음에 피처 라이팅(Feature Writing) 한국말로 기획기사, 그다음에 코멘터리 (Commentary) 크리티시즘 (Criticism) 한국말로는 제가 조금 이해가 덜 가는데 하나는 시사적인 것을 코멘트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작품을 멋지게 평 하는것, 예를들어 책을 서평하는것입니다. 그 다음에 에디토리얼 라이팅 (Editorial Writing) 은 사설 잘 쓴거, 그다음에 일러스트레이트 리포팅 엔 코멘터리 (Illustrated Reporting and Commentary) 이것은 그림이나 그래픽아트가 되든지. 그 다음에 이제 뉴스 포토그래피(Breaking News Photography) 그것이 브레이킹 뉴스이고, 피처 (Feature Photography) 이 두 개는 변하지 않고 여기다가 오디오 (Audio Reporting) 기자들도 넣었습니다.



대지진에 무너진 튀르키예 242, 연합, 김인철기자


이기명 : 현재 한국보도사진상 기준은 월드프레스포토를 참고로 했는데, 앞으로 강형원 기자가 제시한 퓰리처상을 참고로 TF팀을 마련해서 카테고리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고운호 : 저는 김봉규 기자의 스토리가 대상 후보에 올랐다는 걸 보고 또 놀랐는데요. 일단 뭔가 비전을 제시해 주신 것 같아요. 보통 지금 발생한 일에 뭔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과정에 선임기자급의 선배가 자신의 어떤 경험과 관심사 철학 같은 걸 오랫동안 이렇게 창작해서 어떤 결과물을 후배들한테 보여줬다는 게 굉장히 의미가 있고요.그리고 사진 하나하나도 퀄리티가 상당해서 감명을 많이 받았어요.

이기명 : 작년 심사와 올해 심사를 비교해 봤을 때 작년에 비해서 스토리 부분에서 기획 사진의 구성이라든지 집중도 심층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것 그건 한국의 포트저널리즘의 어떤 가능성을 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스토리 부분들이 좀 주목받음으로 해서 신문사에서 좀 더 기획 기사 스토리 부분 쪽을 확대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이어서 이제 올해 각 카테고리별로 최우수 작품에 대해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들 위주로 좀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종우 : 터키 지진 사진이 인상 깊었는데 우리나라 기자들이 외국에 단기간 출장 가서 찍은 사진 치고는 굉장히 완성도가 좋았어요. 그래서 이 정도면 국제적으로 내놔도 손색없는 그런 게 아닐까...




 
강형원 : 그러니까 잠 안 자고 찍은 게 보이는 거예요. 시간대가 같은 자연광이 아니라 다양한 조명대에서 찍은 게 보여집니다.

고운호 : 외신에서 나오는 것만 저희가 이렇게 접하다가 직접 우리나라 기자의 시선으로 다른 나라의 뉴스를 커버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형원 : 제가 사진 배울 때 어떤 현장에 가더라도 광각, 표준, 망원의 장면을 가져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광각렌즈 사진이 있으면은 표준렌즈 사진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망원렌즈 사진이 있어야 되는데 이 기자는 광각렌즈를 많이 사용했는데 여기에서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얼굴에서 감정을 좀 잡아냈으면 완성도가 더 높았다고 생각됩니다.

이기명 : 와이드 앵글을 주로 많이 사용을 하지만 대상과의 거리에 있어서는 굉장히 가까이 가고 멀리 떨어지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기자입니다. 그래서 일단 프레임워크가 굉장히 숙련된 기자구나 생각합니다.

고운호 : 실제로 현장에서 같이 경쟁하면 긴장감을 주는 선배예요. 보통 사진기자를 말하는 게 요리사에 좀 비유를 하면 끝내주는 단품 요리 하나하나를 만드는 거였다면 이번 스토리 같은 경우에는 약간 셰프의 역할로 처음 시작부터 해가지고 메인 요리까지 골고루 담은 게 느껴졌어요. 여기서 무조건 계속 스테이크만 나오면 보는 사람도 힘든데, 골고루 뭔가 여운도 있고 여백도 있고 힘 있게 보여주고 이런 걸 적절하게 구성을 한 것 봐서 또 지면에 실릴 것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시각의 어떤 확장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것도 기자들한테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이기명 : 저는 한국의 신문사에서 어쨌든 해외 취재를 보내서 그런 스팟한 현장을 직접 기록하는 것이 뿌듯합니다. 그런 게 한국의 기자의 입장에서 세계적인 사건을 취재하고 전달한다는 바람직한 일이잖아요. 항상 우리는 외신에서 찍은 걸 받았었는데 세계적인 사건을 우리 기자들이 직접 가서 취재한다.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 아닌가 생각들구요.

이호재 : 기본적으로 국제적으로 큰 사고가 났을 때에 바로 급파할 수 있는 요건이 있잖아요. 첫 번째 우리나라나 우리 국민이 결부돼 있어야 되고 예를 들자면 우리 국민이 거기서 다쳤다든가 사망을 했다든가 이런 사건이라든가 근데 저 터키 지진 같은 경우도 어쨌든 대한민국 구조대가 신속하게 갔으니까, 취재진도 구조대와 거의 같은 시간대에 취재간 거였죠.



노란 양탄자 깔린 고령 은행나무 숲, 영남일보. 이현덕기자


내 어깨는 다 젖어도, 경기일보, 조주현기자


낚시꾼 방관 속 불붙은 남북(南北) 우주전쟁, 뉴시스, 우장호기자


하나 되지 못한 아시아인의 축제, 뉴스1, 민경석기자


이기명 : 그만큼 한국이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다 보니까 그런 세계적인 사건 사고에 대해서 지원하는 나라가 됐다는 것도 참 우리 입장에서는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그럼 그 작품 외에 올해 카테고리 최우수작 중에서 좀 더 언급하고 싶은 작품들을 좀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가려고 왜냐하면 이제 지면상 그게 좀 들어가줘야 되니까 또 뭐가 있었죠?

이호재 : 저는 이번에 좀 좋았던 작품이 우수상 네이처의 단풍 사진있잖아요.

강형원 : 아주 시각적인 이해도가 높은 사진입니다.

박종우 : 근데 이거는 정말 많이들 시도하는 포맷이며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사막의 낙타 지나가는 거라던가.

이기명 : 많이 본 듯하지만 우리 한국 신문 사진에서는 정말 새로운 시도인 것 같습니다.

이호재 : 몇몇 부장들은 저 사진들을 아마 바로 엎을 거예요.

이기명 : 뭔가 직접적이고 노골적이지 않지만 은유와 상징을 갖고 있는 상상하게 해 주는 사진입니다. 신문 사진에서도 좀 이런 시도를 이렇게 해보는 게 독자들한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종우 : 바지선에서 로켓 발사하는 사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게 사진 구도적으로도 굉장히 완벽한 사진인데 이게 발사되는 순간에 이 사람이 어떻게 뒤를 안 돌아보고 낚시를 할 수 있을까 너무나 신기합니다.

이기명 : 피사체뿐만 아니라 부피사체까지 기다려 앵글에 담았다는 노력이 대단합니다. 올해 보도상 중에 여기 할아버지 도와주는 여성사진도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고운호 : 작년에 서울역에서 노숙자한테 또 그 인류애를 보여주는 사진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었습니다.

이기명 : 다음은 스포츠 부분입니다.

고운호 : 판문점에 가보면 남북 관계를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잖아요! 스포츠도 마찬가지인데, 평창 때는 엄청 좋았잖아요. 지금 냉랭한 기류를 느껴지고 이 순간을 또 잘 포착했습니다.

강형원 : 친구들 표정 보면 야단 맞는 표정으로…

이호재 : 3등도 올라왔고 2등 보고 올라와라 그러니까 외면하는 거지. 근데 맨 끝에 있는 애들 갈까 말까 망설였어

이기명 : 동작과 표정에 갈까 말까 갈등이 보이고 3등은 올라왔는데…


 


 
고운호 : 재밌죠. 스포츠에서 환호하는 순간만 노리는 게 아니라

이기명 : 아버지하고 아들 선수의 포트레이트 사진이 있지요? 또 다른 사진 볼 만 작품으로 스포츠 부분인가요?

고운호 : 사실 이 구도는 많이 시도하는 것 중에 하나인데 그래도 많은 울림을 줬던 것은 결국에 스토리 때문입니다. 근데 이제 또 그런 것도 그거지만 이 두 부자의 담긴 어떤 스토리가 어떤 공감을…

이기명 : 아버지가 병이 있으신 것 같아요. 몸이 불편하신 듯 합니다. 이것도 참 훈훈하고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포토저널리즘이 우리 시대의 파수꾼으로서 또 감시자로서 치열한 사진도 많이 있지만 또 인류애가 담긴 훈훈한 이런 사진들이 같이 있어서 우리 사회에 어두운 부분, 밝은 부분 함께 보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일단 올해 수상작에 대해서 이 정도로 정리를 하고요. 올해 60회이다 보니까 역대 수상작 언급을 부탁합니다.

강형원 : 전두환 대통령의 손자 그렇죠 자기 옷으로 그 묘비를 닦아주고 있다는 것

고운호 : 상상에 없던 시나리오에 없던 일이 벌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손자가 와가지고 이렇게 사죄를 하고 이렇게 하는 장면, 물론 또 그 뒤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는 또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픔이 있는 사람들한테 의미 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명 : 어쨌든 촬영 대상이 갖고 있는 뉴스 주목성으로 중요한 인물이에요. 사실 당사자가 사죄하고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이제 죽었기 때문에 역사 앞에서 사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진 거잖아요.

이호재 : 그렇죠 또 재작년에는 또 저 사람의 할아버지가 대상을 받았으니까



195㎝ 배구선수 한성정과 아버지, 조선영상비전, 남강호기자


오월 영령 앞에 무릎 꿇은 전두환 손자, 경향신문, 권도현기자


수마에 삼켜진 강내면, 동아일보, 박형기기자


이기명 : 환경 파트에 관해 얘기를 나누지요.

박종우 : 이 사진 참 좋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보도 사진이 그래도 한 단계 높아졌구나 하는 게 이런 사진이 수상작에 포함된다는 게 좋아졌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호재 : 저게 외부 심사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될 수 없는 사진이었죠.

고운호 : 이걸 촬영한 기자가 서울에서 가장 먼저 내려갔었어요. 현장에 가서 드론도 띄우고 이것저것 촬영했는데 당연히 그때 침수된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출품하고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근데 이 사진이 수상한 걸 보면서 이제 설명적이고 적나라한 보도 사진을 넘어서 또 이렇게 뭔가 여운이 있는 쪽으로도 심사위원들이 평가해 주는구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종우 :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쓰나미가 났을 때 내가 인도네시아를 처음에 가서 그 반다아체를 갔었는데 나는 그때 태국에 있다 갔으니까 다른 기자보다 굉장히 일찍 가서 마지막 남은 집을 베이스로 잡았어요. 먹고 잘 수 있는 집이 다 무너져서 몇 채 안 남아서 그다음 날 세븐 멤버들이 왔다는데 우리 집에 같이있자 해서 이제 같은 방에 묻게 됐어요. 같이 먹고 아침이 되면 그다음 날 아침에 찍으러 다 같이 나가잖아요.같이 가서 보는 게 다 뻔하니까 다 같이 같은 걸 찍고 있는데 세븐의 존 스탠마이어(John Stanmeyer)가 따로 다니는 거야. 쟤는 뭐 찍는 거야 그러고 따로 다니더라고. 쟤는 신참인가! 저기서 찍으면 안 나올 텐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서울에 딱 돌아와서 뉴스위크와 타임을 딱 봤는데 사진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쓰나미를 이런 식으로 찍어놓은 거야. 근데 거기서 있는 우리가 시체 둥둥 떠다니는 거 찍은 거랑 다른 힘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거 대단한 기자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보는 시각을 좀 달리하는 것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죠.

 



 
이기명 : 그럼 이제 역대 대상 수상작 중에 정말 우리 역사에 남을 만한 사진이었다. 다시 한 번 되새겨볼 만한 작품에 대해서도 언급 부탁드립니다.

강형원 : 이게 남대문 화재 김영삼 대통령 얼굴에 토마토 케첩

이호재 : 아니요. 저 페인트 류입니다.

박종우 : 지지자에게 사진 찍히는 순간에 절묘하게 페인트류가 터지자마자 찍혀서 웃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 바로 1초 뒤에는 찡그렸겠지만

이호재 : 이제 비하인드 스토리 말씀드릴까요? 고용곤 기자 사진이잖아요. 남들보다 10분 늦었답니다. 저 출국하는 행사장에서 다른 사진 기자들은 먼저 찍고 다 가고 10분 늦게 도착해서 출국장에서 나가는 것이라도 한 번 찍어야 되겠다. 그래서 갔는데 날아오는 것까지는 확인이 됐대요. 근데 맞은 거는 확인을 못했다는 거예요. 당연히 확인 못하죠. 눌렀으니까요.

강형원 : 이거 경호원이 나한테 얘기해 줬는데 그때 금속 탐지기에도 안 걸렸대요.겨드랑이에다가 감춰가지고 들어와가지고 끄집어내서 이렇게 던졌습니다. 그 이후로 대통령 근처에서 조금만 이상하면 제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호재 : 이게 대통령일 때가 아니잖아요. 대통령 끝나고 나서

강형원 : 경호원들이 책임이 크지요. 그래서 이 사건으로 인해가지고 자기네들이 전·현직 대통령 경호하는 방식이 바뀌었대요. 그래서 주변에서 조금만 얼쩡거리면 이렇게 무조건 퇴장시킵니다.

박종우 : 그 당시에는 이런 게 꼭 상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이 사진은 전경환 뺨을 때린 건데

이기명 : 전두환의 무소불위의 권력 이후에 권력이 이제 끝남을 보여주고 있지요. 전두환씨의 동생이잖아요. 그러니까 당시에 충분히 대상을 받을 만 했습니다.

 


제36회, 김영삼 전 대통령 페인트 달걀 봉변


제25회, 분노한 시민


이기명 : 다음으로 화재 사진으로 역사에 남은 사건이 많지요?

박종우 : 여기서 불이 너무 올라오니까 위에 있던 사람들이 죽겠으니까 다 뛰어내렸어요.매트리스가 저렇게 잡고 뛰어 내린 거지요. 매트리스와 사람이 분리가 되고 뒤집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진하고 세종문화회관 화재 사건 때 소녀가 떨어지는 겁니다.

이호재 : 돼지도 진짜 논란이 많았었어요. 오래 안 되는 거 드론을 띄면 안 되는 군사 접경 지역인데 띄웠습니다. 그때 신문사에 항의 전화 엄청 왔다고 합니다. 양돈 농가 다 죽으라는 거냐 그런 사진을 꼭 썼어야 되냐 말이 많았습니다.

강형원 : 아니 왜 돼지를 죽이는 거야

박종우 : 전염병이 퍼지지 못하게 살처분한다고 그러지요.

이호재 : 숭례문 사진에서 현장을 끝까지 사진 기자가 지켜봐야 한다는 그 이유를 보여줍니다. 이 불이 다 진화가 돼서 많은 사진기자들이 또 갔어요. 근데 끝까지 남아 있던 기자는 다시 불이 붙어서 완전히 와르르 무너질 때까지 보게 된 것이지요.

박종우 : 저는 이사진이 개인적으로 최고라 생각합니다.

이호재 : 정원식 장관 옆에 있는 분이 전 국회의장 박병석입니다. 아니 저기 정원식 교육부 장관할 때 졸전제가 큰 이슈였지요.

박종우 : 학생들하고 트러블이 있어서 외대를 방문했는데……

강형원 : 아니 그걸 서로 협의해가지고 그게 단계적으로 뭐가 이해 불가능해 불통의 환경이다 보니까



제56회, 대상, 아프리카돼지열병 농가 살처분


제 10회, 매트리스에 건 삶의 안간힘

 
이기명 : 그럼 마무리로 강형원 기자께서 한국 포토저널리즘의 성장을 위한 어떤 제언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형원 : 한국적인 환경은 이 사진기자들이 신문사에 들어와서 사진을 배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테크니컬한 부분에서 조금 부족한 점이 옛날에는 많이 보였는데 최근에 와서는 테크니컬한 게 많이 업데이트가 되고 해서 아주 건강하게 지금 발전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옛날에는 결정적인 순간을 추구했다면은 요즘에 와서는 이 시각적인 사진을 갖다가 인문학적인 그런 해석을 더 많이 끄집어내는 사진들을 찍어야 하는 사진 생태계가 마련돼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우선 사진기자들이 날마다 사진을 찍어야 되고 카메라가 손에 익어야 되고 카메라의 기능을 잘 알아야 되고, 지금 가장 최신 카메라들은 사실 고성능 컴퓨터에 사진 찍는 기능이 더해진 거거든. 그래서 컴퓨터로 이것을 다뤄야지 옛날에 기계적인 사진기로 다루면 안 되기 때문에 이제 그런 공부를 계속해야 될 게 필요하다 생각이 듭니다.

이기명 : 박종우 작가님께서 또 일간지 기자로도 몸을 담으셨고 지금 왕성하게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사진 기자도 자기 작업 역량을 더욱 확대시켜 나가면 좋겠지요.




 
박종우 : 내가 현직에 있을 때도 그렇고 사진기자 일을 직업으로 생각한 선후배 동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는 평생을 끌고 갈 수 있는 거고 또 외국에는 나이 많은 기자들 많거든요. 특히 스포츠라든가 올림픽 때 나는 60대 사람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는데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다 젊을 때 일을 하고 사진기자를 그만두고 나서 사진을 그만둬서 안타까워요. 현장에 있는 기자들이 나중에 끝나고 나서 그런 직업을 유지를 안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를 기록하고 이런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요.이번에 심사로 모여서 60회라는 말 듣고 깜짝 놀랐어요. 벌써 60년이 됐구나. 월드프레스포토가 올해가 69년으로 알고 있는데… 불과 9년밖에 차이 안 나거든요. 미국엔 퓰리처가 있지만 다른 여러 나라에서 보도 사진전을 우리나라처럼 안 하는 나라도 꽤 많아요.그런 점에서는 우리나라 사진기자협회가 선구적으로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사진 기자 후배들이 앞으로 좀 더 열심히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기명 : 이호재 회장은 이번에 연임하게 돼서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지난 2년 동안에도 사진기자협회를 혁신으로 성장시켜왔는데 앞으로 2년 동안 더욱 기대합니다. 또 올해 60회 전시를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포부를 듣고 싶습니다.

이호재 : 우리 흑백 사진일 때랑 지금 10여 년 전 20여 년 전 사진 보고 현재 돌아가는 사진들을 보면 차이점이 딱 그런 것 같아요. 취재 현장이 바뀌어서 이런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취재 현장이 바뀌었다는 건 뭐냐면은 일단 매체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났어요.예전보다 비교해서 선배님 때만 해도 큰 사건 사고가 터지거나 중요한 취재 현장에서도 아마 20개 30개 매체 안 넘었을 거예요. 주간지 월간지 다 와도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그렇게 뭐 30여 개 정도 지금 너무나 많은 제약들이 있어요. 매체가 많아지다 보니까 취재 환경에서도 서로 간에 경쟁이 심하게 되고 취재 요건도 더 까다로워지게 되고 많은 것들을 옵션을 걸기 시작하는 거죠. 이제 그런 것들을 좀 슬기롭게 풀어가고 또 다 같이 공평한 현장에서 공평하게 취재할 수 있게끔 모든 것들을 좀 앞으로 남은 2년 동안은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제45회, 무너져 내리는 국보 1호


제28회, 정원식 총리 폭행


이기명 : 고운호 기자는 현장에 지금 열심히 뛰고 있는 기자로서 우리 한국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기대와 희망하는 새로운 방향이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고운호 : 이전에 수상했던 대상 사진들을 보면서 그 상황에 맞게 그 선배들이 정말 치열하게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셨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초반에 이야기했었지만 이 상이 과거에 뭔가 어떤 헤게모니 혹은 사적인 어떤 이익들의 충돌로 인해 그 의미가 좀 훼손이 되지 않았나라고 생각을 했었고 저와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도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근데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기틀을 잡는 데 있어서 단순히 우리끼리만의 자축을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한테 보여주는 거거든요. 시대 정신을 가지고 그래서 내용과 형식 기자 정신이 어우러진 것들, 이제 기틀을 잡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한테는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메시지를, 작년에 이렇게 중요한 뉴스들을 기록했습니다라고 보여주고 기자에게 경우에는 단순히 그냥 보도를 위한 사진이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임할 수 있게 동기부여해주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심사하시는 어떤 과정들을 보면서 좀 신뢰가 가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그냥 출품해가지고 그냥 운 좋아서 받았네가 아니라 내가 엄격한 어떤 심사 어떤 과정들을 거쳐서 받은 귀한 상이구나라고 스스로 귀하게 생각할 수 있게 자부심을 줄 수 있는 그런 상으로 더욱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기명 : 장시간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좌담회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I 제60회 한국보도사진상 대상 | 이무열 <전우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인터뷰이 이무열 뉴시스 대구경북본부 사진부 기자
인터뷰어 류지훈 객원기자


 
지난해 7월 19일, 집중 호우 피해지역인 경북 예천군에서 故 채수근 해병 상병이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같은 달 22일 경북 포항시 남구에 있는 해병대 1사단 김대식관에서 해병대장으로 엄수되었으며, 영결식에서 고인을 추도하는 동료 해병대원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뉴시스 이무열 기자는 제60회 한국보도사진상 대상을 받았다. 그날의 현장과 사진기자의 취재 과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를 인터뷰했다. 대화 내내 그는 먹먹함으로 말을 아꼈고, 때론 간절함으로 말을 이었다.

 

2023.07.19. 오후 해병대원과 소방대원이 경북 예천군 호명면 내성천에서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해병대원을 찾고 있다. 이무열 뉴시스 기자


2023.07.16. 오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한 마을이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에 휩쓸린 가운데 수색견을 동원해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무열 뉴시스 기자


2023.07.16. 오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한 주민이 산사태로 인해 토사로 가득한 주택 내부를 치우고 있다. 이무열 뉴시스 기자


예천군의 집중호우부터 피해 현장 복구, 그 과정에서 채수근 상병의 순직과 고인의 영결식에 이르기까지 취재했다. 이 기간 내 주요 사건과 그에 따른 이무열 기자의 취재 궤적이 궁금하다.
집중호우 피해 관련 취재는 일주일 넘게 예천과 포항 현장에 머물면서 진행했다. 7월 15일에 산사태와 홍수 발발했고, 나는 그날 오후에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은 효자면 백석리였는데, 산사태로 한 마을이 휩쓸려 내려갔을 정도였고 취재 차량 타이어에 구멍까지 났었다. 이튿날 오전에는 수색견을 동원한 백석리 실종자 수색작업을 취재하다가(p.75상), 오후에는 감천면 벌방리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동네가 휩쓸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해당 현장으로 향했다. 주민들은 집 안으로 들어찬 토사를 빼내거나 이웃집 내부를 살피고 있었다(p.75하). 7월 18일엔 해병대 1사단의 벌방교회 근처 하천 실종자 수색 작업을 취재했다(p.76). 다음날인 19일 오전 9시경 해병대원 1명이 호명면 보문교 일대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고, 그 뒤로는 실종 해병대원을 찾는 일을 취재했다. 한 소대는 수변을 뒤지고, 다른 대원들은 고평교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라진 전우를 찾았다(p.77). 수색은 야간까지 이어졌고(p.74), 실종 14시간 만인 오후 11시경 실종 해병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다.

당시 상황의 안타까움이 목소리에도 묻어나는 듯하다. 현장에서 어떤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수해 복구 현장과 실종자 수색을 취재하면서는 그저 빨리 실종자를 찾았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취재하는 동안 가장 기다린 소식이었고, 나아가 취재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채수근 상병이 물살에 휩쓸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순직이 아니라 잘 구조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그 마음에 이리저리 열심히 취재했던 것 같다. 어서 구조되기를 바라며 조금이라도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면 즉각 이동하고, 해병대원들의 수색 작업을 따라다니면서 촬영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채 해병은 고인이 되었고, 7월 22일에는 해병대장(葬)이 엄수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어려운 질문이지만, 영결식 현장에 관한 증언도 들어보고 싶다.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엄수된 영결식은 분위기가 매우 무거웠고, 취재 또한 아주 힘들고 내내 마음이 아팠다. 예천에서의 취재가 길게 이어지며 그 기간 현장에 있던 모두가 함께 고생한 걸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영결식 전에 유가족과 동료 해병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자주 보기도 했지만, 이날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여느 때보다 더 힘든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촬영은 계속됐다. 하지만 셔터를 계속 누를 수는 없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결식이 거행되는 동안 한 해병대원이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p.77중). 그가 속한 줄을 더욱 유심히 보기 시작했고, 얼마 후 같은 줄에 있던 다른 해병이 힘없이 주저앉았다(p.77하). 아주 잠깐이었다. 그는 유독 더 많이 힘에 부쳐 보였다. 이 사진은 젊은 군인의 죽음과 영결식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빨간 명찰과 곧은 대열, 그 속에 주저앉은 한 사람, 꼭 쥔 두 손과 떨군 고개는 그날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무겁고 어수선한 심정에도 사진기자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면?
사진기자 대부분이 아마 비슷한 마음일 것으로 생각하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점점 미쳐가는 것 같다. 비극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비극의 당사자를 지켜보며 카메라를 들고, 그들이 가장 슬프고 마음 아파하는 순간을 촬영한다는 것 말이다.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사람이니까, 속으로는 ‘사진을 찍을 게 아니라 더 슬퍼해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사진으로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다.


 

2023.07.18. 해병대 1사단 제3포병대대 장병들이 18일 오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교회 앞 하천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이무열 뉴시스 기자


2023.07.19. 오전 경북 예천군 호명면 보문교에서 해병대원 1명이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호명면 고평교에서 해병대원들이 사라진 전우를 찾고 있다. 이무열 뉴시스 기자


2023.07.22.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 관에서 엄수된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한 해병대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채 상병은 집중호우 피해지역인 경북 예천군에서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이무열 뉴시스 기자


2023.07.22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 관에서 엄수된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한 해병대원이 주저앉아 슬퍼하고 있다.
채 상병은 집중호우 피해지역인 경북 예천군에서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이무열 뉴시스 기자


당사자가 가장 슬퍼할 때를 기다렸다가 촬영하는 일이라, 물론 모든 취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몹시 어려운 일일 텐데, 왜 사진기자가 된 건가?
포토저널리즘이 좋았고, 그래서 사진 기자가 된 것 같다. 내가 찍은 사진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거다. 지금 상황이 어떻고, 현장의 분위기는 어떻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을 통해서 예천의 수해 현장을 알리고, 주민은 물론 해병대원과 구조대원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힘쓰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안타까운 현장은 피하고 싶지만, 시민의 볼 권리와 알 권리는 굉장히 중요하다.

최근에도 경북지역의 매우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문경에서의 소방대원 순직 소식이었다. 동아일보, 문화일보, 국민일보 등 7개 신문사가 1면에 게재한 사진을 촬영한 당사자이 기도 한데, 그날의 상황과 함께 사진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그 역시 기쁜 이야기가 아니라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이어가자면 올해 1월 31일 저녁에 문경 신기동의 육가공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나는 2월 1일 새벽 3시에 현장으로 출발했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소방대원 두 분이 순직한 상황이었다. 사진에는 불에 타버린 건물과 그 현장을 바라보는 소방대원들의 뒷모습을 담았는데, 그중에 한 분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앞서 말한 영결식의 한 장면처럼 한 장으로 그날의 많은 것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화재 현장과 소방대원들의 지친 모습, 그 속에는 동료를 잃은 슬픔까지 보이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질문 하나를 더 드리고 싶다. 당연히, 그저 기쁜 일만은 아닐 테지만, 제60회 한국보도사진상 대상의 수상 소감을 듣고 싶다.
큰 상을 받았다. 같은 사진으로 제247회 이달의 보도사진상 뉴스 부문에서 수상했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 대상은 더욱 마음이 무겁고 아프고 힘들다.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고, 결코 좋은 사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그에 따라 없었으면 더 좋았을 사진이다. 젊은 장병이 순직했고, 그에 관한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사진과 수상이 어떤 극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올해 상반기 안에는 최대한 올바른 방향으로 사건이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III 제60회 한국보도사진상 스토리부문 최우수상 | 김봉규 <사람아 사람아 - 제노사이드의 기억>

인터뷰이 김봉규 한겨레신문사 사진부 선임기자
인터뷰어 류지훈 객원기자


제주 4·3사건과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진 민간인학살 현장을 목도한 김봉규 기자. 그는 휴가가 생기면 캄보디아, 베트남 등 아시아에서 벌어진 민간인 대량학살 현장 폴란드, 독일, 네덜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등 나치 치하 강제 및 절멸수용소 등을 15년 넘게 찾아 다녔다. 그렇게 <사람아 사람아 - 제노사이드의 기억>이 세상에 나왔다.


 

와트 트마이 사원 중심 불상 옆에 시엠레아프 지역에서 크메르루주군이 학살한 이들의 두개골과 대퇴부 등 유해가 쌓여 있다.
불교 신자가 전체 인구의 95%를 차지하는 캄보디아에서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불교의 계율을 저버리고 어떻게 학살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시엠레아프/김봉규 한겨레 선임기자


대학살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느다히노 패트릭(2014년 당시 23세)이 은타라마 대량 학살 기념관 내 희생자들의 유골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다.
은타라마/김봉규 한겨레 선임기자


르완다 무람비 제노사이드 기념관은 희생자 848구를 미라 상태로 보관하고 있다.
무람비/김봉규 한겨레 선임기자

 
<사람아 사람아 - 제노사이드의 기억>은 한국전쟁 전후로 발생한 민간인 대량 학살에 눈을 뜬 것이 출발점이었다. 그 시작과 함께 약 20년에 걸친 취재 과정에 관해 듣고 싶다.
2007년 6월 28일, 한강대교 아래에서 열린 합동 위령 추모제를 취재한 적이 있다. 한국전쟁 발발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역에서 대전역으로 기차를 타고 피신한 이튿날인 1950년 6월 28일 새벽, 북한군 남하 늦추기 위해 한강 철교와 인도교를 폭파하면서 희생된 민간인의 넋을 달래는 추모제였다. 사건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니 대통령의 이동 경로를 따라 예비검속과 부역자 처벌이란 명분으로 민간인 학살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부산에 이르러서는 바다 건너의 제주 4·3사건이 보였다. 멈추지 않고 주변국으로 시선을 돌리니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군과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눈에 들어왔고(p.78중),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르완다 집단학살과 2차대전 당시 나치의 학살현장까지 가게 됐다. 2020년 1월 폴란드를 마지막으로 국외 촬영을 마치고, 국내에서 몇 차례 더 현장을 찾아다니며 제노사이드 취재 작업이 이루어졌다.

2007년부터 이어온 취재지만 기사 연재는 2021년에 시작했다. 둘 사이의 시차가 꽤 있음에도 마치 바로 전날 갔다 온 듯 생생한 글이 인상 깊었다. 특히 사진에 얽힌 이야기는 더욱 현장감이 강했다.
사진을 오래 하면서 몸으로 익힌 것 중 하나가 있다. 바로 매 순간 촬영할 때마다 그때의 감상이 머릿속에 세세하게 남는 것. 덕분에 찍은 사진을 볼 때면 마치 메타데이터를 보는 것처럼 당시에 했던 생각부터 그날의 냄새, 기온 등이 떠오르곤 한다. 녹음이나 메모도 적극 활용한다. ‘맑은 날씨’, ‘시큼한 흙냄새’ 등 기록된 것 하나하나가 참 소중한데, 이들이 모이면 말 보따리의 열쇠가 되더라. 그리고 디지털 사진 파일에 저장된 촬영 시간대와 화각, 조리개, 감도 등의 정보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사진 파일에 저장된 메타데이터와 함께 머릿속의 메타데이터, 메모장을 함께 올려놓으면 글의 얼개가 나오는데, 그렇게 역추적하는 작업을 거쳐 글을 썼다.

취재 과정에서 맞닥뜨린 예상치 못한 변수도 궁금하다. 특히 르완다의 무람비 제노사이드 기념관을 찾은 2014년 4월 16일의 일화에서는 희생자 미라를 촬영하기 위해 관리관을 설득하던 사연이 눈에 띄었다.
무람비 기념관은 1994년 르완다 대량 학살이 있기 전까지 기술학교였다. 기념관의 누리집에 따르면 이곳에서 투치족 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단 34명이 살아남았고, 그중 썩지 않은 시신 848구를 미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다(p.79). 도착해서 취재하려니 수도로 돌아가 문화부 장관의 직인이 있는 촬영 허가장을 받아오라는 관리관의 말을 들었다. 르완다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나의 짧은 영어로 며칠 내로 한국에 돌아가야 해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겨우 성공한 끝에 열쇠 뭉치를 건네받았고, 첫번째 문을 열자마자 풍긴 약품 냄새와 시신 냄새에 후각이 시각보다 먼저 반응했다. 지금도 그 낯선 냄새가 머리에 박혀 있다. 무람비 외에도 은타라마 대량학살 기념관에서는 뜻밖의 만남이 있었는데, 반듯하게 정리된 유골을 촬영하던 중에 어디선가 나타난 청년이었다. 대학살의 현장에서 식구를 모두 잃고 혼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는 취재할 당시 23세 대학생이었는데, 르완다 전체가 공식 추모 기간을 맞아 방문했다고 말했다(p.78하).




 
제노사이드 취재 도중 두 차례 경험했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사망률이 99.993%에 이르던 폴란드 트레블린카 절멸 수용소 터에 갔을 때였다(p.80). 이곳에는 나치가 연합군이 도착하기 전에 모든 흔적을 지운 탓에 어떤 증거물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진에 담을만한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내 발길을 돌렸다. 그 순간 뭔가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나뭇가지에 배낭끈이 걸린 줄 알았지만, 풀 한 포기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들어갈 때 10분 걸렸던 거리를 50분에 걸쳐 힘겹게 나왔고, 한참을 빠져나왔는데도 여전히 그 기운이 느껴졌다. 트레블린카에서는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끌어당긴 기운이 있었다면 제주도에서는 반대로 다가가지 못하게 밀어내는 기운이 있었다. 큰 도로에서 4·3당시의 학살터 가운데 하나인 도틀굴에 가는 길로 접어든 순간부터 한 발짝도 내딛기에 어려웠다. 4분 거리를 15분이나 걸려 쇠창살로 덮인 동굴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p.81좌). 기자생활 35년 차, 그간 많은 사건·사고 현장을 다니면서 이런 적은 없었는데. 헛웃음이 났다. 이 두 기운에 관해 이해경 만신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희생된 원혼이 트레블린카에서는 좀 더 소통하기를 원했던 것이고, 도틀굴에서는 나를 걱정하며 이제 그만 다니라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리고 만신의 말마따나 원혼에게 보호받을 만큼 아주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
힘들었다. 슬픈 역사의 현장, 그 안에서 보는 사람의 뼈. 기쁜 게 없지 않나. 연재를 준비하며 들여다보는 단어나 문장까지도 말이다. 인격적으로 그렇게 훌륭한 사람도 아닌데, 우울감에 삶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감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은 술을 많이 마셨다. 현장을 다니며 유일한 낙은 취재를 마친 뒤 숙소에서 그 지역의 저렴한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었다. 없는 돈으로 다니다 보니 밥도 별로 못 먹었는데 살은 10kg이 쪘다. 더구나 제노사이드 작업을 하는 동안 세월호 취재도 병행했는데, 그땐 울음을 참기 위해 이를 꽉 깨물다가 어금니가 다 빠졌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오랫동안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늘 잊지 않던 직업적 의식이 아닐까 싶다. 외롭고 힘든 일이지만 수도자의 자세로 독자에게 세상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왜 그런 생각을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초년 기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갖고 있는 생각이다.


 

90만 명이 넘게 학살당한 트레블린카 절멸수용소 터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1만 7000여 개의 돌덩이가 놓여있다.
일부 돌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김봉규 한겨레 선임기자


2017년 11월 도틀굴을 처음 찾았을 때, 나를 밀어내려는 강한 ‘기운’에 맞서 겨우 나아갈 수 있었다. 수직 형태의 굴 입구는 쇠창살에 가로막혀 있었다.
2023년 3월 16일에 촬영한 도틀굴의 모습이다./김봉규 한겨레 선임기자


2023년 3월 15일 제주 표선해변. 사진의 검은 테두리가 있는 것은 촬영 당시 렌즈의 화각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 트리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선해변에는 4·3 당시 학살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켜켜이 쌓인 물결 자국이 그간 세월을 상징하는 듯하다./김봉규 한겨레 선임기자


직업의식이 나온 김에, 기사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김봉규 기자의 사진적 고민과 반성을 이야기해보자. 현장 취재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저널리즘 사진의 거리감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일단 기본적으로 저널리즘이라는 것. 현혹되지 않는 사진을 찍기 위해 과한 광각이나 망원 화각 사용을 자제하여 육안을 통해 느껴지는 원근감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한다. 이에 더해 제노사이드 작업은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있는 곳을 다니는 일이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앞서 말했듯 학살 현장 대부분은 가해자에 의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저널리즘 사진의 장면에는 촬영자가 개입할 수 없다. 그리하여 사진으로 재현해 낼 수 없다는 것이 안겨주는 무기력감을 자주 느꼈다. 특히 제주 4·3사건 최대 학살터 가운데 하나인 표선해변에서는 더욱 심했다. 사건 이후 수십 년간 바닷물이 드나들며 그날의 총성이나 핏자국, 비명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는데 사진으로 무엇을 표현할 수 있겠나. 여러 차례 다양한 시도 끝에 대형카메라로 딱 한 장 찍고 돌아와야겠다 결심하고 작년 3월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사진은 아무냄새도 없이 그저 침묵하고 있다(p.81우).

올해 2월 7일, 40회차로 <사람아 사람아 - 제노사이드의 기억>연재를 마쳤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로 시작하는 이 기사에는 제노사이드 현장 취재 작업을 일단락한 계기를 소개했는데, 이에 관해 자세히 듣고 싶다.
폴란드의 마이다네크 절멸수용소에서 촬영을 마치고 카메라와 렌즈를 분리해 배낭에 넣었다. 이윽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발이 거세졌다. ‘이렇게 눈 내리던 날, 여기서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는 무서운 상상을 하며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찍을 필요 없다는 또 다른 내가 맞섰다. ‘눈 처음 봐? 안 찍어도 돼.’ ‘찍어야 해!’ ‘카메라와 렌즈를 결합하다가 이미지센서에 눈 들어가면 어쩌려고?’ 내 안의 두 심리가 치열하게 다투는 동안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그저 가만히 눈물만 흘렸다. 아마도 15년에 걸친 제노사이드 작업에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의 신호였을 것이다. 시간, 돈, 에너지 모두 소진된 상태였고, 개인의 역량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방대한 작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어 취재하러 다니기도 어렵게 되었고, 15년간 현장을 함께한 등산화와도 상을 치르듯 이별했다. 그렇게 제노사이드 15년 여정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폴란드 이후 국내 유해발굴 현장이나 위령제를 몇 차례 더 취재한 기간이 17년, 그리고 2021년 10월부터 약 3년간의 연재. 길고 어려운 시간이었다. 연재 종료 소회와 함께 수상소감을 들어보고 싶다.
한국전쟁 전후로 북한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은 기록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익이 희생당한 일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거의 모든 취재는 사비와 개인 휴가를 써서 다녀왔고, 연재하는 동안에는 휴가 하루 쓸 틈 없이 주말에도 기사를 준비했으니, 사실 많이 지쳤다. 철저한 사실 검증을 거쳤고 모든 글에 오리지널리티를 담아내려 노력했으며, 한 문장 완성에 한 달이 걸린 적도 있다. 연재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초고를 읽은 사람은 딱 한 명, 바로 아내다. 아내는 좋은 지적을 많이 해줬다. 글쓰기보다 어려운 건 사진 고르는 일이었는데, 40편의 기사 가운데 단 한 편을 제외하면 사진은 한 장씩만 실었다. 그 한 장을 결정하는 고민과 고통의 과정도 제노사이드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진 고르는 일에도 아내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수상 소감이라면, 하나의 주제를 두고 긴 호흡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으로 상을 받게 되었는데,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으로서 후배 기자들을 위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해당기사는 2024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