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유니 《YOSHIDA YUNI: Alchemy》 | 요시다유니의 연금술


 

분석(盆石)은 검은 옻 쟁반 위에 흰 모래와 돌로 특정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일본의 전통 예술이다. 검은 쟁반 위에 두 개의 돌을 놓고 앞으로 치고 나가는 장수와 배웅하는 이를 표현하는 식으로, 돌과 모래라는 일상의 사물에 추상적 개념을 얹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일본 예술에서 뿌리 깊은 전통이다. 모래 한 알에서 세계를 보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라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처럼 쟁반 하나에 모래와 돌로 우주를 담는 분석의 예술세계는 ‘축소지향의 일본’이란 해석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령 교수는 일본의 축소 지향을 언급하며 추상적이고 방대한 개념을 섬세한 기술로 작고 구체적인 사물에 응축시키는 일본의 정서를 언급했다.


 


Playing Cards, 2023_KC ⓒYOSHIDA YUNI

 
이런 은유와 축소의 정서는 현재 일본 예술과 문화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일본 아트 디렉터인 요시다유니의 사진에는 일상의 사물을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얹는 은유와 섬세한 수공예 기술로 응축시킨 상징의 세계가 담겨 있다. 파편적인 사물들로 얽어 놓은 작은 우주에는 재기발랄한 창의력은 물론, 아날로그적 수공예를 고집하는 장인의 숨결도 녹아있다.

 


착시의 즐거움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요시다유니의 《YOSHIDA YUNI: Alchemy》(2023.11.1.-2024.2.25. | 석파정 서울미술관)를 열고 있다. 2023년 5월부터 9월까지 1차 전시가 열렸고 현재는 2차 전시이다. 연금술(Alchemy)이란 제목처럼 일상의 이미지를 새롭게 치환시킨 기발한 상상력으로 약 10만 명의 관객이 찾았다. 이번 전시는 Freeze Dance, Hidden Pictures, Playing Cards라는 세 가지 주제로, 개인 작업과 함께 광고, 뮤직비디오, 앨범, 북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협업한 작품 등 모두 240여 점이 한국 관객을 만났다.


 

Playing Cards, 2023_RED ⓒYOSHIDA YUNI


Playing Cards, 2023_4H ⓒYOSHIDA YUNI

 
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시리즈로 작은 사물들을 모아 큰 그림을 구성한다. 일종의 착시 효과를 활용했는데 이는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과일 초상화를 연상시킨다. 주세페의 초상화는 가까이서 보면 과일, 꽃, 곡식 등을 세밀하게 그렸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인물의 얼굴 형상이 보인다. 권위의 집합체인 왕의 초상을 식물로 대체시켜 착시의 마법을 부리는 이런 유머 감각은 반전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마찬가지로 요시다유니의 도 멀리서 보면 트럼프 카드이지만 가까이 갈수록 그 형상들이 꽃잎이나 손톱, 찻잔 등 일상적인 사물의 집합체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시리즈에 대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티브들로 구성했다”며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사물을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마치 일본 분석(盆石)에서 쟁반 위의 흰 모래가 구름이나 파도, 바위가 출진 장수거나 산이 되어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듯이, 요시다유니의 사진 속 각각의 오브제도 절묘한 균형과 배치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로 변신한다. 보면 볼수록 디테일의 반전을 발견할 수 있는, 이런 착시가 주는 즐거움으로 그의 작업은 SNS상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인간의 손이 빚은 따뜻함
요시다유니의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반전은 CG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작업이 실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가장 먼저 과일이나 음식을 활용한 를 마주치며 ‘그대로 멈춰라!’ 라는 제목의 뜻처럼 발을 멈추게 된다. “CG가 아닌가?” 갸웃거리는 이들도 많다. 얇게 겹친 오렌지와 사과, 모자이크 처리된 사과와 바나나, 햄버거, 껍질이 녹아내리고 있는 바나나 등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PEEL, 2019 ⓒYOSHIDA YUNI


LAYERED, 2018 ⓒYOSHIDA YUNI


LAYERED, 2018(hamburger) ⓒYOSHIDA YUNI

 
요시다유니는 같은 자연 상태의 과일이라 해도 각 부분의 색감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과일들을 얇게 잘라 조합해서 모자이크를 만든다(Layered). 스티로폼으로 기본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자몽과 오렌지의 자른 단면을 붙여서 보석을 만들기도 한다(Fruits Jewels). 과일 껍질이 녹아내리는 듯한 작품(Peel)은 껍질을 정교하게 깎아 배치했는데, 시간이 흘러 껍질이 말라 오그라들면서 마치 물감이 점성을 가지고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 미리 의도하지 않았지만, 작업 과정에서 우연히 포착된 장면이었다.

 


섹션에는 상업 광고와 영상 협업 작업 등이 전시되었는데 여기서도 손수 모든 장면을 만들었다. 일본 패션 매거진 『SO-EN』의 창립 75주년 광고는 수백 권의 책등 위에 여성의 얼굴을 인쇄해 붙여서 가지런히 꽂은 후 무너뜨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형태가 흐트러지는 그 절묘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한 권 한 권 책을 감싸고 배치했을 노동의 양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일본 간사이 TV 드라마 ‘엘피스’ 포스터 역시 CG로 연출한 이미지 같지만, 사실은 세 명의 인물 사이사이에 서류철을 인물 실루엣 형태로 쌓아 올려 연출했다. 엘피스는 방송사 보도국에서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드라마로.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게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는 형태가 사건을 둘러싼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PEEL, 2019 (banana) ⓒYOSHIDA YUNI


Fruits Jewels, 2021 ⓒYOSHIDA YUNI

 
이렇게 섬세하게 손으로 만든 작업은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고 AI가 데이터를 계산해 몇 분 만에 수십 장의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대에 사진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지, 사진은 무엇을 가능케 할지 사유케 한다.

참을 수 없는 이미지의 가벼움 속에 부유하는 시대에, 요시다유니의 수공예 작업은 ‘실재했던 것의 증거’이자 ‘인간의 손으로 만든 따뜻함’을 담고 있다.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조합들이 모두 한시적이나마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


 

 

SO-EN 75 years of girls ⓒYOSHIDA YUNI


KTV Drama _elpis_, 2022 ⓒYOSHIDA YUNI


 


 
전시장 곳곳에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실재 사용한 소품 등 촬영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하게 배치되어 있다(p86). 메이킹 필름을 보면 꽃잎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배치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티베트 불교의 만다라를 놓는 승려의 수행 장면을 보는 듯 정성스럽다. 사물을 활용한 기발한 상상력과 깊은 관찰력이 꼼꼼하고 섬세한 수공예 기술과 만나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조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전시 작품


전시 전경

 
요시다유니는 “어릴 때부터 판타지보다 실제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 본 적 없는 것을 찾아내는 걸 좋아했기에 작품 역시 실제로 가능한 것을 형상화했다”며 “어떤 제약이 있고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이 전달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환상보다는 현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로, 중력과 시간의 제약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상상력의 극한을 실험하고 우연한 발견을 추구한다는 것. 이런 과정을 통해 익숙한 사물들은 마치 연금술처럼 낯설고 새롭게 변신하여 다가온다. 요시다유니의 작업은 이미지 범람의 시대에 사진은 무엇을 보여주고, 이제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작품 너머 무엇까지 보려 하는가를 다시 묻게 한다.

 
글 석현혜 사진에세이스트
해당기사는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