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내작가 ⦁ ⦁ 제13회 일우사진상 수상작가전 기슬기 《인물, 정물, 풍경》 문선희 《이름보다 오래된》 |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
- 2025-09-25 14:36:50

일우스페이스에서 제13회 일우사진상 전시 부문, 다큐 부문 수상자인 기슬기, 문선희 두 작가의 개인전이 10월 18일부터 11월 16일까지 진행되었다.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에서 주최, 주관하는 일우사진상은 2009년에 처음 제정되었으며, 그동안 유망한 사진가들을 발굴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인 작가로 육성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해왔다. 이번 수상작가전은 두 작가 모두 전통적인 의미의 사진 전시, 다큐멘터리 사진의 문법을 벗어나는 시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인물, 정물, 풍경》 전시 전경

무제 Untitled, 2023 ⓒ기슬기
기슬기,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는가
최근 다채롭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기슬기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 근대 구상 회화를 촬영한 이미지들을 선보인다. 회화 작품을 촬영한 사진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작가는 여기에 부차적이고 외부적인 요소를 더하여 사진의 실재성을 탐구한다. “인물, 정물, 풍경”이라는 전시 제목, 흰 벽면에 가지런히 걸린 클래식한 프레임 속 회화 작품들의 모습은 처음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으로 하여금 이 전시가 매우 ‘전통적인’ 전시의 문법을 따른다고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작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그것이 얇은 시트지 위에 프린트하여 벽면에 부착한 납작한 사진임을 알 수 있다.
기슬기의 작품에는 회화 작품의 액자와 그것이 벽에 드리우는 그림자, (회화 작품이 전시되었던) 전시장의 조명과 그로 인해 작품 유리 프레임에 반사된 관람객과 전시장 내부의 모습 등 일반적으로 사진에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요소들이 중층적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인물 섹션에 전시된 김종태의 <사내아이>(1929)를 찍은 사진을 보자.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되어 수십 년 만에 대중에게 소개된 이 작품에는 초록 저고리에 푸른 조끼 차림을 한 채 어딘가에 기대 잠이 든 남자아이가 묘사되어 있다. 기슬기의 작품에서는 여러 겹의 나무 프레임 속에 전시된 <사내아이> 한 가운데에 직사각형 형태의 빛이 환하게 반사된 모습이다. 맞은편 전시장에서 흘러나온 불빛으로 보이는 이 사각형 속으로 한 여자아이가 뛰어가는 뒷모습도 함께 보인다. 이 같은 이미지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실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하며, 나아가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최근 다채롭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기슬기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 근대 구상 회화를 촬영한 이미지들을 선보인다. 회화 작품을 촬영한 사진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작가는 여기에 부차적이고 외부적인 요소를 더하여 사진의 실재성을 탐구한다. “인물, 정물, 풍경”이라는 전시 제목, 흰 벽면에 가지런히 걸린 클래식한 프레임 속 회화 작품들의 모습은 처음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으로 하여금 이 전시가 매우 ‘전통적인’ 전시의 문법을 따른다고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작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그것이 얇은 시트지 위에 프린트하여 벽면에 부착한 납작한 사진임을 알 수 있다.
기슬기의 작품에는 회화 작품의 액자와 그것이 벽에 드리우는 그림자, (회화 작품이 전시되었던) 전시장의 조명과 그로 인해 작품 유리 프레임에 반사된 관람객과 전시장 내부의 모습 등 일반적으로 사진에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요소들이 중층적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인물 섹션에 전시된 김종태의 <사내아이>(1929)를 찍은 사진을 보자.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되어 수십 년 만에 대중에게 소개된 이 작품에는 초록 저고리에 푸른 조끼 차림을 한 채 어딘가에 기대 잠이 든 남자아이가 묘사되어 있다. 기슬기의 작품에서는 여러 겹의 나무 프레임 속에 전시된 <사내아이> 한 가운데에 직사각형 형태의 빛이 환하게 반사된 모습이다. 맞은편 전시장에서 흘러나온 불빛으로 보이는 이 사각형 속으로 한 여자아이가 뛰어가는 뒷모습도 함께 보인다. 이 같은 이미지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실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하며, 나아가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인성의 <사과가 있는 정물>(1940년대 초반), <주전자가 있는 정물>(1930년대)을 촬영한 사진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물화에 비춰진 건너편 벽면의 그림들, 작품에 비스듬히 반사된 전시장 밖 풍경과 그 앞에 선 사람의 모습 등은 보는 이의 시각 경험에 혼란을 초래한다. 관객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두 작품 위 벽면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질문이 적혀있다. “지금 이 시대의 매체로서 사진은 어떻게 변주되고 있으며, 무엇을 남기고 있고, 또 무엇을 유실하고 있는가?” 이 같은 질문은 그간 기슬기의 작품세계에서 심도 깊게 다루어져 온 보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과 닿아있다.

무제 Untitled, 2023 ⓒ기슬기

무제 Untitled, 2023 ⓒ기슬기

무제 Untitled, 2023 ⓒ기슬기
급변하는 사회적, 기술적 조건 가운데 ‘본다’는 행위가 담지하는 감각, 그리고 그것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작가의 질문은 최근작에 와서 더욱 정교한 방식으로 탐구된 바 있다. 예를 들어 2022년작 <그것은 당신의 눈에 반영된다>는 먼저 달을 촬영한 사진을 전시 공간에 설치한 후, 그 사진에 전시 공간이 반영된 모습을 다시 촬영하여 그것을 최종적인 작품으로 전시한 것이다. 1차로 설치한 작품에 반영되었던 전시 공간의 모습은 최종 작품에서 마치 환영처럼 나타나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사진 전시 관람 경험을 하게 되며, 나아가 오늘날의 생산 조건 하에서 ‘사진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에 다가가게 된다. 《인물, 정물, 풍경》은 이러한 철학적 질문에 한층 더 깊이 파고든 결과물로, 이처럼 작가는 흔히 말하는 ‘잘 찍은 사진’을 과감하게 거부하는 대신 신중한 독해를 요구하는 흥미로운 이미지들로 전시장을 채우는 편을 택하였다.

문선희, 사진의 시간, 시간의 사진
한편 문선희는 지난 10여 년간 천착해온 고라니 초상 사진 프로젝트인 <라니 Water Deer> 시리즈를 선보였다. 고라니의 정면 모습을 초상 사진의 형태로 촬영한 이 작품은 작가가 지난 10여 년간 만난 200여 마리의 고라니 초상 사진 50여 점을 토대로 완성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농작물을 훼손하는 유해 동물이라는 고라니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보는 이로 하여금 고유한 생명체로서의 고라니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작가는 초상사진이라는, 동물 다큐멘터리 사진으로서는 그리 흔치 않은 작업 방식을 선택하여 각 생명체의 고유성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라니08, 2023 ⓒ문선희

라니17, 2023 ⓒ문선희

라니03, 2023 ⓒ문선희

라니35, 2023 ⓒ문선희

라니81, 2023 ⓒ문선희
저명한 사진 이론가이자 큐레이터인 개리 배저(Garry Badger)는 초상사진이 보는 사람의 시선을 즉시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반응을 유발한다며, 이같은 반응은 감정적이고, 역설적이며, 또한 항상 이성적이지만은 않다고 설명한 바 있다.1) 그는 이러한 이유로 초상 사진이야말로 모든 사진 장르 중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는’ 사진이라고 주장했는데, <라니> 연작은 이 같은 초상사진의 힘을 증명하듯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 속 고라니의 강력한 응시를 느끼게 하는 한편, 그에 대한 감정적인 몰입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
작품은 카메라를 응시하는 고라니의 초상사진을 흑백의 둥근 프레임 속에 담고 있다. 작가에 따르면 이는 졸업사진을 연상시키고자 한 것으로, 보통 초상사진 밑에 이름이 들어가 각각의 졸업생들을 기념하는 졸업사진의 형태를 택한 것 또한 작가가 그들과 보낸 시간들을 기억하는 한편, 각 고라니의 고유성을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사려 깊은 선택일 것이다. 작품명 또한 ‘고라니’가 아닌 ‘라니’라는 친근한 명칭을 사용하여 그들에 대해 한층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하였으며, 나아가 낯선 명명 방식을 통해 고라니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흔들고자 하였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전시에는 촬영한 시기 등에 따라 사이즈를 구분하여 프린트한 고라니 사진들이 포함되었다. 대형 사이즈로 프린트된 사진들은 그 강력한 응시의 힘으로 하여금 보는 이들을 감정적으로 압도하며, 성인 눈높이에 맞추어 전시장벽에 걸린 사진들은 이 같은 야생의 존재들과 눈을 맞추는 희귀한 경험, 그리고 그러한 행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여러 장의 초상사진들을 한 자리에 모아둔 모습은 전시 자체가 마치 졸업 앨범의 한 장처럼 느껴지게 한다.

라니101, 2022 ⓒ문선희

라니109, 2022 ⓒ문선희

라니111, 2022 ⓒ문선희

라니115, 2022 ⓒ문선희
전시와 함께 발표된 사진집 『이름보다 오래된』(2023)에는 작가가 고라니 기록에 천착하게 된 경위와 고라니와 관련된 각종 통계적 정보는 물론, 작가가 각각의 고라니에게 붙여준 이름과 그들에 대한 기억들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라니> 연작에서 지속적으로 목도하게 되는 것은 작가가 고라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다. 물론 사진은 본질적으로 시간성을 담지하는 매체이며, 수잔 손탁(Susan Sontag)식으로 말하자면 ‘흐르는 시간을 정갈하게 자른 한 조각(a neat slice of time)’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라니> 연작은 사진에 포착된 단 하나의 순간 이면의 긴 기다림의 시간, 그러한 시간을 대하는 사진가의 진지한 태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1) Badger, Gerry. The Genius of Photography: How Photography Has Changed Our Lives (London: Quadrille, 2007), 169.
기슬기는 달의 위상 변화를 촬영하여 인화한 사진을 전시장 벽에 걸어 놓고 그 작품을 촬영하는 작가의 모습이 작품을 덮은 유리에 반사된 장면을 다시 촬영하여 보여주는 <Reflection in your eyes>(2022)와 검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모니터에 플래시를 터뜨려 반사된 빛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로 구성된 <Black Light>(2022) 등을 발표했다. 대표 개인전으로는 《Do Not and Cannot are Different》(2021, 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현재전시》(2021, 베를린 담담갤러리) 등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두산아트센터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름보다 오래된》 전시 일부

《이름보다 오래된》 전시 전경

《이름보다 오래된》 전시 일부
문선희는 발굴금지기간이 해제된 구제역, 조류 독감 매몰지 100여 곳을 살피고 기록한 <묻다>(2015), 5.18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살았던 동네와 기억을 엮어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2016), 지난 15년 간 고공농성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담아낸 작업 <거기서 뭐하세요>(2019) 등을 발표했다. 2022년에는 고라니 초상사진 연작인 <널 사랑하지 않아>를 발표했다. 대표 개인전으로는 《이름보다 오래된》(2023, 바아아트 갤러리), 《널 사랑하지 않아》 (2022, 신세계갤러리) 등이 있다. 이번 전시 출품작을 포함한 『이름보다 오래된』(2023, 가망서사) 외에 4건의 출판물이 있으며 광주시립미술관에 작
품이 소장되어 있다.
장나윤은 영국의 코톨드인스티튜트에서 동아시아의 집단기억과 동시대 렌즈기반예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대학 및 런던 소더비인스티튜트에서 아시아 현대 미술 및 다큐멘터리 사진사를 강의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글 장나윤 사진·미술사가
해당기사는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