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 단체전》 아지트미술관 | 6월 21일 ~ 6월 27일
- 2025-05-27 13:14:34
2025년 6월에 개최되는 《stranger 단체전》은 2024년 1월 열린 《몬테카를로의 사유》展에 이은 두 번째 통합 단체전으로, stranger 회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자리입니다. 이번 전시는 예술사진에 대한 각 작가의 고유한 접근 방식과 사고의 확장성에 주목하며, 각자가 자신의 작업 세계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화두를 드러내는 사진을 선별해 선보입니다. 이를 통해 향후 작업의 방향성과 지향점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예술사진 그룹 stranger는 오랫동안 여러 대학과 사진 아카데미에서 예술사진 교육을 해온 박현두 지도교수의 세미나식 강의를 통해 결성된 모임입니다. 이들은 사진 매체 고유의 특성을 바탕으로 각자의 화두와 주제를 설정하고, 낯설고 모호한 감각의 예술사진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stranger’는 사전적으로 ‘낯선 사람’ 또는 ‘처음 온 사람’을 뜻하지만, 이 그룹은 그 의미를 확장하여 ‘각자의 주제와 화두를 바탕으로 익숙한 현상이나 상황을 시각적으로 낯설고 모호하게 재구성하는 예술사진 작업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stranger’는 사전적으로 ‘낯선 사람’ 또는 ‘처음 온 사람’을 뜻하지만, 이 그룹은 그 의미를 확장하여 ‘각자의 주제와 화두를 바탕으로 익숙한 현상이나 상황을 시각적으로 낯설고 모호하게 재구성하는 예술사진 작업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강영남_영원을 품은 욕망의 여정#1_135x84cm_2025
영원성이 욕망을 녹인다! 감촉이 부드럽다. 부드러운 감촉에 매료되어 눈을 감는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산하는 보석들이 주인을 기다리듯 만물상의 표정을 지으며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꿈을 꾸는 듯하다. 나의 소유인 양 빛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갖고 싶은 욕망의 손을 뻗었을 때 비로소 기쁨과 놀라움과 함께 환상 속의 눈을 뜨게 한다. 허공에 무엇을 그리려는 걸까? 흙은 영원성을 상징하며 만물의 생성과 소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죽음 이후의 부활이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지금도 숨을 쉬고 있다. 영원성이라는 미학을 관조하면서 허공 속의 욕망을 채우려고 비현실의 무형 속을 더듬어 나간다. 무형의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고 형상을 만들면서 욕망의 시간과 마주한다. 욕망으로 온누리를 치장해 버리니 자연의 부드러운 곡선이 메마르고 딱딱하게 굳어지고 소름이 끼치듯 영원 속에 이름도 없이 묻혀버린다. 그리나~ 멈출 수가 없다! 심해의 쪽빛과 하늘의 구름은 동(生)과 서(死)를 잇는다. 생성과 소멸 사이에서 욕망이 아름다움이라는 미사여구에 현혹되어 소유하려는 탐욕의 늪에 빠져든다. 환상 속에 기쁨과 행복에 대한 염원을 품고 존재하려는 오늘도 숨 가쁘게 욕망을 탐닉하려는 이유를 묻는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소유하려는 환상을 심연 속에 새기면서 오늘도 내일도 심해의 쪽빛의 신비로움과 하늘의 흰 구름을 따라 ‘영원을 품고 욕망의 여정’을 떠나려고 한다!

김미자_I’m fine_가변size_2025
봄입니다. 속절없이 나부끼는 깃발에서 공허를 봅니다.
철없이 다투어 돋아난 새싹들이 바람에 부대끼어 제 살들을 부벼됩니다.
스며든 찬바람은 시린 속을 할퀴고 먼 산을 향한 눈길은 머물 곳을 잃습니다.
가슴 저 아래 저미는 감정을 담은 이미지들을 가변적으로 설치해 보았습니다. 하얀 여백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철없이 다투어 돋아난 새싹들이 바람에 부대끼어 제 살들을 부벼됩니다.
스며든 찬바람은 시린 속을 할퀴고 먼 산을 향한 눈길은 머물 곳을 잃습니다.
가슴 저 아래 저미는 감정을 담은 이미지들을 가변적으로 설치해 보았습니다. 하얀 여백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김성자_그 자리_ 126x92cm_2024
누구나 자연의 일부분으로 태어나 그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가는 그 자리.
미래의 그 자리까지도 즐겁게 행복한 마음으로 준비하시는 우리 아버지.
어제도 오늘같이, 내일도 오늘같이~
오늘 현재까지도 항상 새로운 도전으로 최선을 다하시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당당한 삶을 사시는 우리 아버지.
나도 훗날 우리 아버지처럼 ‘그 자리’를 그렇게 당당히 준비하며 맞이할 수 있을까?
미래의 그 자리까지도 즐겁게 행복한 마음으로 준비하시는 우리 아버지.
어제도 오늘같이, 내일도 오늘같이~
오늘 현재까지도 항상 새로운 도전으로 최선을 다하시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당당한 삶을 사시는 우리 아버지.
나도 훗날 우리 아버지처럼 ‘그 자리’를 그렇게 당당히 준비하며 맞이할 수 있을까?

김은영_Pareidolia #26.49cm×65.5cm_2024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일 때 사람들을 피해 인적이 드문 서울 근교 산을 자주 찾곤 했다. 산을 오르며 마주치는 수많은 바위들이 때론 사람의 얼굴로, 때론 여러 동물들의 모습으로 보였다. 어렸을 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강아지나 토끼 등 여러 동물들을 찾아내곤 했던 것처럼. 그러다가 저 바위들이 한 곳에 오랜 시간 붙박여 있다 보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타향에서 살아온 사람들처럼 바위들도 비록 말은 못하지만 자신들이 처음 태어난 곳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이 작업은 한 곳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바위들을 다른 환경으로 바꿔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떠나온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바다나 땅 속, 아니면 저 머나먼 우주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곳과 비슷하게 주변 환경을 바꿔보았다. 그럼으로써 상상 속에서나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고, 오랜 시간 한 곳에 있으면서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였다.
이 작업은 한 곳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바위들을 다른 환경으로 바꿔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떠나온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바다나 땅 속, 아니면 저 머나먼 우주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곳과 비슷하게 주변 환경을 바꿔보았다. 그럼으로써 상상 속에서나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고, 오랜 시간 한 곳에 있으면서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였다.

김주원, Untitled_9, Archival Pigment Print, 2025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일상생활에 모호함을 극대화하고, 나와 내가 아닌 다른 내면의 심리적인 그림자로 연출적 사진을 셀프 포트레이트 형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두 번의 수술에 대한 병원의 기억, 수술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내기 위한 어린 시절의 추억 소환과 같은 이러한 기억을 제 정체성과 당위성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진 작업의 확장 및 확대해석의 방식으로는 상황에 개연성을 넣고, 오브제도 연관성을 부여하여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제 작업의 시작은 기억의 색상과 나의 정체성에서 시작하였고, 기억을 재현하려 하였습니다. 색상, 질병, 상처, 기억을 심리적인 내밀함으로 극대화하고자 하였고, 조명의 드라마틱 함과 모호한 제스처에 대한 연출적 사진을 셀프 포트레이트 형식으로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김현중_내일 기억_가변size 및 사진설치_2025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점점 더 오래된 과거로 향합니다. 반세기 만에 미국에서 돌아온 어린 시절 친구를 통해, 70여 년 전 옥인동에서의 삶과 그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당시에는 어머니들이 일하러 간 사이, 친구 집을 놀이터 삼아 할머니들 품에서 자랐던 시절이었습니다. 할머님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나는 이제 그분들보다 더 나이 든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동네는 많이 변했지만, 그 시절의 길과 감성은 그대로였습니다. 문득, 앞으로도 이 아름다운 기억들이 내 안에 영원할 수 있을지 되묻게 됩니다.

박미례_겁_90ⅹ60_2025
삶과 죽음의 모든 순간 개가 자신을 지켜주리라는 믿음으로 생전에 자신과 함께 하던 살루키를 산 채로 생매장하며 육체와 함께 자신과의 영원한 삶을 기원했던 이집트인들처럼 요즘은 자신이 키우는 애견은 이미 자식이다.
10마일 크기의 바위에 천년마다 천을 스쳐 그 바위가 다 닳게 만드는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한 겁이라 했다.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 되려면 500 겁이라는 과거로부터 상상하기 어려운 긴 시간 동안 수많은 관계가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인연이다. 유한한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인연이 더욱 소중해지는 시간이다.
10마일 크기의 바위에 천년마다 천을 스쳐 그 바위가 다 닳게 만드는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한 겁이라 했다.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 되려면 500 겁이라는 과거로부터 상상하기 어려운 긴 시간 동안 수많은 관계가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인연이다. 유한한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인연이 더욱 소중해지는 시간이다.

박미정-보내야 하는 사물들을 위한 정물, Mourning_70X55cm_2023
박미정의 《보내야 하는 사물들을 위한 정물, Mourning》은 일상에서 쓰임을 다한 사물들을 조형적으로 재구성해, 그 존재와 기억을 애도하는 작업이다. 버려진 생활용품, 폐자재, 빈티지 꽃 그림 책에서 오려낸 종이꽃 등을 아상블라주 형태로 구성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함으로써, 사물에 깃든 시간과 이별의 감정을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시들지 않는 종이꽃은 죽음과 영원의 이중적 의미를 품고, 바니타스 정물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이 작업은 유한한 사물과 인간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환기시키며, 사라진 것들의 아름다움을 사진 속에 영원히 머물게 하려는 작고 단단한 애도의 시도다.

박원정_버려진 후_가변size_2025
사소하게 버려지는 것들을 내 공간의 일부로 들여와서 나와의 의미 또는 관계를 재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소소하고 무심하게 버려지는 것을 나의 내밀한 공간으로 들여와 설치적으로 구성하여 '나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무심하게 버려지는 것들을 같은 공간에서 다르게 사진적으로 설치적, 행위적, 셋트사진적인 방식으로 해봤습니다.

박재홍_겨울 연밭_45x45_2021
회화적 느낌으로 포착된 이미지를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로 구분하여 감성의 흐름을 내면적 갈등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박 준_광화문연가_126x92cm_2024
광화문은 언제나 무언가를 품고 있다.
기억과 다짐, 외침과 침묵, 그리고 그 사이에 피어나는 노래까지.
나는 이곳에서 마주한 합창단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각자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우리’가 된다.
광화문이라는 열린 광장에서 울려 퍼진 그 노래들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시대와 감정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으리라.
합창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연대이다.
고요한 준비, 울림의 시작 - 이 찰나의 기록을 남길 수 있어 무척 다행이었다.
기억과 다짐, 외침과 침묵, 그리고 그 사이에 피어나는 노래까지.
나는 이곳에서 마주한 합창단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각자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우리’가 된다.
광화문이라는 열린 광장에서 울려 퍼진 그 노래들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시대와 감정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으리라.
합창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연대이다.
고요한 준비, 울림의 시작 - 이 찰나의 기록을 남길 수 있어 무척 다행이었다.

박진완_밤으로 이끄는 달_5×7_2016
어두운 밤 홀로 영화 속의 장소 몬탁에 가고 싶어 외로이 가고 있는데, 나의 길을 비추어주는 달이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밤에 만나는 달은 너무 예쁩니다. 그래서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준 달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진 속의 속도 표지판은 마치 인생의 속도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무 빨리 갈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늦게 갈 것도 아니고.
중용의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달이 친구가 되어줘 외롭지 않듯이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아 마음속에 남는 사진입니다.
밤에 만나는 달은 너무 예쁩니다. 그래서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준 달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진 속의 속도 표지판은 마치 인생의 속도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무 빨리 갈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늦게 갈 것도 아니고.
중용의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달이 친구가 되어줘 외롭지 않듯이 진정한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아 마음속에 남는 사진입니다.

박한남_Schokoladenfabrik_drawing on archival pigment print_30x42cm_2025
나의 살던 고향은 봄이면 피어나는 들꽃과 시냇물이 흐르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서울 중심의 보신각 바로 뒤 한약방이 즐비했던 그런 곳이었다. 다시 찾은 그곳은 어린 시절 뛰놀던 모습들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아련한 추억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언 50년을 생활하고 있는 이 집... 이곳이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다양한 시간들과 기억의 보석들이 서로 어우러져 감미로운 하모니를 이루는 곳이다. 이곳은 우리와 함께 시간을 채워 온 은행나무가 우리를 안아주고 있고 그 아래에서 사소한 것들에게도 귀 기울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달콤하게
어언 50년을 생활하고 있는 이 집... 이곳이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다양한 시간들과 기억의 보석들이 서로 어우러져 감미로운 하모니를 이루는 곳이다. 이곳은 우리와 함께 시간을 채워 온 은행나무가 우리를 안아주고 있고 그 아래에서 사소한 것들에게도 귀 기울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달콤하게

배정화, Nothing Stays_D1, 52cm☓78cm, 2025
빛과 어우러지는 물의 질감,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 시간성이 마음에 들어 물을 소재로 작업 중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흐르는 물 위에 작은 개입을 시도해 보았다.
그 과정이 무심한 일상 속에 의미를 더하는 듯 해 흥미로웠다.
한강에서 뫼비우스의 띠(∞) 형태로 궤적을 그려보았지만,
물은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하며 흔적을 삼켰다.
Nothing stays..
모든 것이 흐르고 사라지더라도,
우리가 남긴 흔적은 그 순간을 살았다는 증거로 남는다.
나는 그 마음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흐르는 물 위에 작은 개입을 시도해 보았다.
그 과정이 무심한 일상 속에 의미를 더하는 듯 해 흥미로웠다.
한강에서 뫼비우스의 띠(∞) 형태로 궤적을 그려보았지만,
물은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하며 흔적을 삼켰다.
Nothing stays..
모든 것이 흐르고 사라지더라도,
우리가 남긴 흔적은 그 순간을 살았다는 증거로 남는다.
나는 그 마음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송은경_ 소리를 보다 4-류수도화(流水桃花)_80x65cm__2024
본인의 작업은 음악의 불가시적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탐구하는 사진 연작이다. 이번 작업은 스피커의 진동으로 야기되는 물결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음악의 파동을 시각화하였다. 여기에 각 악보의 본질을 선과 원이라는 가장 순수한 형태로 추상화한 그래픽 요소를 부가하였다. 원형 위에 중첩된 물결 사진은 마치 음악의 영혼이 시각적 형태를 통하여 호흡하는 듯한 인상을 자아낸다. 이는 소리가 공간을 진동시키고, 그 파동이 다시금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창조하는 음악과 시각간의 아름다운 교감을 담아낸 시도이다.

유경옥_마음시선_100×100cm_2024
이 작업은 ‘소통’에 관계한 사물을 다수 촬영한 후 사진들의 형태와 색, 명암을 재구성하며 조합해 특정한 형상을 가시화함으로써 ‘소통’에 관한 지향을 표현한 것이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 중 소통의 복잡성, 혼란 등에 집중하였고, 이것을 색각이상 테스트 형식을 차용하여 표현하였다. 그래서 개인의 시각적 지각이 다름을 통해 발생하는 오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 보았다. 오브제로는 접시, 단추, 동전 등을 사용하여 소통의 가치를 강조하고, 각 이미지의 표현 과정에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내면의 자신과 마주하는 경험을 전했다. 이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긍정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진정한 가치를 찾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윤종효_울림을 보다_비디오작업 화면캡쳐_2024

윤홍식_과거의 일상_100×60cm_2025
오래된 미래
이번 작업에 4천년의 깊은 잠이라는 중국 우남조시대의 다큐를 보고 작품에 들어 갔다.
오래전에 유럽에서 있었던 인종이 우랄산맥을 넘어 천산산맥을 거쳐서 타클라마칸사막에 정착하게 된다. 실크로드교역로 갈림길에 터전을 잡고 동서교역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융성한시대를 이끌어왔던 누란왕국의 공동묘지인 소하묘의 발굴 다큐였다. 천 여개의 미라가 잠드는 곳으로 2000년에야 발견되어 발굴이 시작되었다. 4천년전의 20대의 여성미라는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미인이었고 양모를 짠 훌륭한 옷과 소가죽장화 그리고 멋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곳은 4천전에는 호수가 있었고 숲이 있었던 풍요로운 곳이었지만 지금은 사막의 한가운데서 4천년간 사라졌다 나타났다. 우리의 육신은 썩어 없어지고 한중의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미라처럼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미래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50년후의 시각으로 우리의 일상을 작품으로 구상해 보았다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모리(Memento mori)을 외치던 로마인들처럼 100년후에는 우리는 사라져 잊혀지게 될 것이며 우리는 4000년후에 발견된 누란왕국의 사람들처럼 오래된 미래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이번 작업에 4천년의 깊은 잠이라는 중국 우남조시대의 다큐를 보고 작품에 들어 갔다.
오래전에 유럽에서 있었던 인종이 우랄산맥을 넘어 천산산맥을 거쳐서 타클라마칸사막에 정착하게 된다. 실크로드교역로 갈림길에 터전을 잡고 동서교역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융성한시대를 이끌어왔던 누란왕국의 공동묘지인 소하묘의 발굴 다큐였다. 천 여개의 미라가 잠드는 곳으로 2000년에야 발견되어 발굴이 시작되었다. 4천년전의 20대의 여성미라는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미인이었고 양모를 짠 훌륭한 옷과 소가죽장화 그리고 멋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곳은 4천전에는 호수가 있었고 숲이 있었던 풍요로운 곳이었지만 지금은 사막의 한가운데서 4천년간 사라졌다 나타났다. 우리의 육신은 썩어 없어지고 한중의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미라처럼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미래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50년후의 시각으로 우리의 일상을 작품으로 구상해 보았다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모리(Memento mori)을 외치던 로마인들처럼 100년후에는 우리는 사라져 잊혀지게 될 것이며 우리는 4000년후에 발견된 누란왕국의 사람들처럼 오래된 미래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이미경-심리박물관 Blissful, Archival Pigment Print, 76x104cm_2022
〈심리박물관〉은 일상의 소소한 사물들을 실리콘으로 본을 뜬 뒤 석고로 캐스팅하고, 이를 설치한 후 촬영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사물들은 단순한 기능적 도구를 넘어, 개인의 삶 속 기억과 정서를 담고 있다. 나는 이처럼 감정과 기억이 깃든 익숙한 사물들을 전유(appropriation)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석고로 재현된 사물은 고유의 질감과 색,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낯선 조형물로 변모하지만, 형태는 유지되며 기억을 환기시키는 매개로 다시 태어난다. 어떤 이는 석고 병에 감정과 스트레스를 담고 싶다며 ‘화병’이라 명명했고, 이는 개인의 내면이 사물에 투영된 사례이다. 이러한 상상은 사물에 새로운 정체성과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전유의 핵심을 보여준다. 작품에 새겨진 초성 기호(ㅎ·ㅂ·0·2·2)은 관객의 기억과 상상을 자극하며, 사물은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시간성과 심리적 서사를 담은 상징적 존재로 거듭난다.

이정미_<현실 속의 낯선 풍경, 헤테로토피아>_163x100cm_2025
나는 매일같이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 그러나 문득 멈춰 서게 되는 공간들에 주목한다. 바닷가에서 고요히 수평선을 응시하는 이들, 청계천 물가에서 저마다의 호흡으로 시간을 누리는 사람들. 이들은 내 사진 속에서 풍경의 일부처럼, 아주 작고 조용한 존재로 스며든다. 마치 현실의 틈새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세계처럼.
이렇게 채집된 이미지들은 단순한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사진은 인화되어 나의 작업실로 돌아오고, 공간 안에서 다시 배치되며, 때로는 의도된 연출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흐리는 또 하나의 세계, ‘헤테로토피아’를 시각적으로 구축한다.
내 작업은 익숙한 일상 속에서 낯선 감각을 발견하려는 시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삶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가 사진을 통해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그 풍경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열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채집된 이미지들은 단순한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사진은 인화되어 나의 작업실로 돌아오고, 공간 안에서 다시 배치되며, 때로는 의도된 연출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흐리는 또 하나의 세계, ‘헤테로토피아’를 시각적으로 구축한다.
내 작업은 익숙한 일상 속에서 낯선 감각을 발견하려는 시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삶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가 사진을 통해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그 풍경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열리기 시작한다.

이형순_인과연 401_39.5x50㎝_2024
부모님이 남기신 유산은 유형의 자산이 아니라 무형의 자산인 정신이었다. 그것은 살아가는 법, 나누는 마음에 대한 조용한 가르침으로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우리 집의 일상이었던 밥상머리의 한마디, 생일상 위의 명주실, 초하루마다 정안수에 담긴 기도, 계절 따라 피던 꽃과 과일들까지—이 모든 것이 지금껏 나를 지탱해온 정신의 뿌리였음을 깨닫는다. 〈인과연 因果緣〉 연작은 어머니의 삶에서 비롯된 우애, 성실, 배려, 나눔, 봉사, 화목의 정신을 정물에 깃든 기억의 언어로 되살린 작업이다. 이번 전시는 나눔과 봉사정신을 표현했다. 이 작업은 부모가 심어준 마음의 씨앗이 어떻게 나의 현재를 형성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미래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조용히 되짚어보는 시간이자, 모든 인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유의 기록물이기도 하다.

이호상, 이호상-역47-1, 20x30 inch, 2025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는 최근 1년의 기술 발전이 과거 몇 십년 심지어 몇 백년에 걸쳐 이루어진 기술 발전과 맞먹는다고 한다. 인공지능, 로봇, 모바일, 원자현미경 등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는 또 얼마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가?
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시공간에서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주역이라는 도구를 빌려 이들을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금년은 을사년이다. 여기에 맞는 택수 곤 [ 澤水 困 ]이라는 주역의 64괘중 47번째 괘가 선택이 되고 작업이 시작된다. 이는 [兌上, 坎下]의 괘이고, 乙→ (兌澤) ☱, 巳→ (坎水) ☵을 나타내고, 곤(困)은 연못에 물이 빠져나가고 말라있는 모습으로 온갖 곤궁하고 곤핍한 상태를 나타낸다.
이는 또한 형이상학적인 이치를 통해 제시된 미래와 이로부터 현재, 과거로 회귀하여 돌아보고, 또한 과거와 현재에서 이를 통해 미래를 엿보고자 하는 욕구를 이미지로 구현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연못과 물(澤水)의 변화하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세계 각 대륙 곳곳에서 여러 해에 걸쳐 찍은 호수, 연못과 구름, 비, 눈, 빙하, 안개, 하천, 폭포, 강, 바다 등 2,200장 이상의 사진 이미지를 포함하였다.
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시공간에서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주역이라는 도구를 빌려 이들을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금년은 을사년이다. 여기에 맞는 택수 곤 [ 澤水 困 ]이라는 주역의 64괘중 47번째 괘가 선택이 되고 작업이 시작된다. 이는 [兌上, 坎下]의 괘이고, 乙→ (兌澤) ☱, 巳→ (坎水) ☵을 나타내고, 곤(困)은 연못에 물이 빠져나가고 말라있는 모습으로 온갖 곤궁하고 곤핍한 상태를 나타낸다.
이는 또한 형이상학적인 이치를 통해 제시된 미래와 이로부터 현재, 과거로 회귀하여 돌아보고, 또한 과거와 현재에서 이를 통해 미래를 엿보고자 하는 욕구를 이미지로 구현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연못과 물(澤水)의 변화하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세계 각 대륙 곳곳에서 여러 해에 걸쳐 찍은 호수, 연못과 구름, 비, 눈, 빙하, 안개, 하천, 폭포, 강, 바다 등 2,200장 이상의 사진 이미지를 포함하였다.

임창준, <신구의연1 新舊依然1>, 70x50cm, 2025
기원전 20-15세기 경부터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어, 청동검과 청동 거울, 민무늬 토기 등이 사용되었다. 홍산문화와 하가점 하층 문화는 고조선 이전 문명과 연결되는 유물로 간주되기도 한다. 작가는 현재와 비교해 세련성과 실용성이 비슷한 고대 토기들의 아름다움과 고문화의 존재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정미경_적요의 풍경_87×112_2024
“시간의 강을 건너는 적요의 풍경”은 생명순환의 카테고리 중에서 소멸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생명은 생명의 순환을 통하여 생성되고 소멸 되며 다시 순환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것을 정물 작업과 로케이션 작업을 통하여 소멸을 표현하였다.
정물 작업은 박제 새와 부패 되어가는 씨앗. 시들어가는 식물, 테이블보의 칼라, 각종 오브제를 활용하고 사물을 얼리고 녹이며 시간의 흐름을 박제하였다
로케이션 작업은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일어나는 자연에서 작업을 하였으며
이 두 요소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소멸을 이미지화 했다.
소멸은 삶의 덧없음과 아득한 어둠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성을 위하여 나를 버리는 과정으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말한다.
작업을 통하여 나는 내게 일어나는 소멸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잔잔한 물에 비치는 달빛을 보듯 고요히 응시한다. 나의 사진을 보는 관람자들도, 아픔을 겪은 이들도 앞으로 겪을 이들도 소멸을 대하는 자세가 그러하기를 바라며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생명은 생명의 순환을 통하여 생성되고 소멸 되며 다시 순환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것을 정물 작업과 로케이션 작업을 통하여 소멸을 표현하였다.
정물 작업은 박제 새와 부패 되어가는 씨앗. 시들어가는 식물, 테이블보의 칼라, 각종 오브제를 활용하고 사물을 얼리고 녹이며 시간의 흐름을 박제하였다
로케이션 작업은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일어나는 자연에서 작업을 하였으며
이 두 요소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소멸을 이미지화 했다.
소멸은 삶의 덧없음과 아득한 어둠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성을 위하여 나를 버리는 과정으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말한다.
작업을 통하여 나는 내게 일어나는 소멸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잔잔한 물에 비치는 달빛을 보듯 고요히 응시한다. 나의 사진을 보는 관람자들도, 아픔을 겪은 이들도 앞으로 겪을 이들도 소멸을 대하는 자세가 그러하기를 바라며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정원녀, 특별한 간절함, 50×40cm, 2024
예순 즈음에 특별한 아픔이 다가왔다. 특별한 아픔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소한 일상이 되었고 점점 심해지는 고통이 쌓일수록 또 다른 일상은 특별한 간절함을 낳았다. 나의 작업은 고통 속에 하루하루 견뎌내며 처음 마주하는 복잡한 감정들을 사진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카메라에 담고자 했다. 투병 중에 느끼는 감정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은 상처를 꺼내 보이는 몸짓이며 세상과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이고 내 존재의 의미를 벅차게 느끼는 순간이다. 작품이 현대사회에서 환자로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전해지고 싶다.

정인성_영원의 경계_20 X 30 Inch_2023
〈영원의 경계〉는 그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한다.
멀리서 오는 빛은 수백만 년을 여행해 이곳에 도착하고,
그 빛을 바라보는 나는 순간 속에 잠긴다.
여기서 ‘지금’이란 무엇인가?
영원히 사라진 과거의 별빛을 보고 있는 우리는,
사실 언제나 과거만을 마주하는 존재는 아닐까?
작품은 우리를 시간의 끝자락으로 이끈다.
눈앞의 유르트, 차갑게 서 있는 대지,
그리고 그 위로 가만히 펼쳐진 우주의 벽.
이 모든 풍경은 인간이 직면하는 가장 심오한 질문으로 향한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
〈영원의 경계〉는 그 질문의 경계 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조난아, Palimpsest #24, 80x80cm, 2024
이 작품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받아 드러나는 철사의 선들과 그 교차를 통해 시간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탐구한 결과물이다. 얽히고 겹쳐진 선들은 마치 기억이 쌓이고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복잡한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Palimpsest”의 개념처럼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자국들로 이루어진 내면의 서사를 상징한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서 기억과 시간의 다층적 본질을 느끼고 사유하는 경험을 제안하며, 겹침과 간격을 통해 형성된 공간적 깊이가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조형호_나는 누구인가?_ 8×10inch 및 종이매체설치_2025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밭길을 걷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했고, 중학생 때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 ‘사랑을 나누며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고등학생 때는 ‘우리나라를 다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사랑으로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그 다짐들을 조금씩 실천해왔다. 이제는 세계로 향하는 삶도 어릴 적 꿈의 연장 같다. 가공된 것보다 날것의 진실함을 좋아하며, 느끼는 대로 살아가는 나는 희망의 기억들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최영귀 _Monologue 2(Pieta)_148x112cm_2024
최영귀의 ‘Monologue’ 시리즈는 상실과 고독을 직시하며 자아를 탐색하는 여정을 담은 사진 작업이다. 결혼생활 속 억눌렸던 감정과 정체성을 은유적 퍼포먼스로 드러내며, 애도의 시간을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 흐트러진 공간과 숨어 있는 몸짓은 내면의 상처와 연민을 시각화하며, 상실을 감내하고 삶을 다시 바라보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Monologue 2’의 일부인 전시작업은 남편의 유품인 칼들을 3d로 작업하여 촬영한 것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혹은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내적 외침을 시각화한 작품들이고 나비는 오래 전 기억의 회상과 가족의 매개체의 역할을 의미하여 상처 입은 이들에게 공감과 치유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넨다.

최재란_쿼크의 시간#111_100x100cm_2024
쿼크(Quark)는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에 따르면 원자핵의 양성자나 중성자의 구성요소이자 기본 입자로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입자이다.
“쿼크(Quark)의 시간”은 매일 산책하는 일상에서 시들고 스러져가는 자연물을 줍거나 채집하고 재조합하여 정물(Still Life)적 구성을 한 후 밤하늘과 무한한 우주의 시간을 상상하며 별자리, 우주, 물리에서의 시간, 전통문양을 드로잉 하여 시간의 방향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삶과 죽음이 혼재되어 있는 정물(Still Life)에는 유한한 시간성 안에 살고 있는 자연물을 애도하는 마음과 나의 우주안에서 영원하길 바라는 간절함이 스며 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 또한 흘러가는 유한한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은유하여 인간은 태어나서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질문하고자 하였다.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쿼크(Quark)의 시간”은 매일 산책하는 일상에서 시들고 스러져가는 자연물을 줍거나 채집하고 재조합하여 정물(Still Life)적 구성을 한 후 밤하늘과 무한한 우주의 시간을 상상하며 별자리, 우주, 물리에서의 시간, 전통문양을 드로잉 하여 시간의 방향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삶과 죽음이 혼재되어 있는 정물(Still Life)에는 유한한 시간성 안에 살고 있는 자연물을 애도하는 마음과 나의 우주안에서 영원하길 바라는 간절함이 스며 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 또한 흘러가는 유한한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은유하여 인간은 태어나서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질문하고자 하였다.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하복용_뿌리들의 초상화_ 60 x 85(84 x 110)_2024
우리는 식물을 볼 때 꽃에 먼저 시선을 둔다. 그러나 그 꽃을 피운 줄기의 끝에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지나친다.
나는 <뿌리들의 초상화> 시리즈를 통해 평소 주목하지 않았던 뿌리에 마음과 시선을 두고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에 다가가 보았다. 이 경험은 삶 속에서 미와 추,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여정과 닮아 있었다. 꽃이 만개한 아름다움을 위한 이전의 시간 ,혹은 그 화려함을 지탱하는 뿌리의 존재에 주목하는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놓치고 지나치는, 그러나 미를 가능하게 만드는 추의 존재까지 포용하는 과정이자 이 작업의 에너지가 되었다. 나는검 프린트 기법을 통해 뿌리와 꽃의 조화로운 형상과 색감을 정성스럽게 드러내어,간직하고자 했다.
나는 <뿌리들의 초상화> 시리즈를 통해 평소 주목하지 않았던 뿌리에 마음과 시선을 두고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에 다가가 보았다. 이 경험은 삶 속에서 미와 추,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여정과 닮아 있었다. 꽃이 만개한 아름다움을 위한 이전의 시간 ,혹은 그 화려함을 지탱하는 뿌리의 존재에 주목하는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놓치고 지나치는, 그러나 미를 가능하게 만드는 추의 존재까지 포용하는 과정이자 이 작업의 에너지가 되었다. 나는검 프린트 기법을 통해 뿌리와 꽃의 조화로운 형상과 색감을 정성스럽게 드러내어,간직하고자 했다.

하현주_Nature Human No.12_76x59cm_2024
신화 속 천지창조의 세계를 새롭게 해석한 디지털 콜라주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는 인간 중심적 시선이 배제되고, 나무, 새, 뱀, 꽃 등 자연의 오브제들과 인간 형상이 동등한 존재로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이질적인 것들이 자유롭게 합체되고 해체되는 과정 속에서 관계가 형성되며,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가 새롭게 탄생한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초현실적 이미지다.

한윤순_찬란과 영롱의 수다들_52.5cm x 70cm_2024
인간의 탄생 자체가 찬란하며 성장해 가는 모든 순간들은 영롱하다.
성장한 인간은 존재 자체가 찬란해지는 리즈시절, 자신의 가치가 최고치에 이르는 전성기를 맞는다. 이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원동력을 갖추어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음과 동시에 전성기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전성기가 끝났다면 다시 전성기때의 찬란한 모습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인간을 한층 더 성장시켜준다. 전성기를 추억하기 위하여 그때의 시대는 화려한 꽃으로, 나를 상징하는 것은 물건들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빛나는 나의 전성기를 표현하기 위해 일반적인 사물과 다르게 반짝이는 보석을 붙였으며 그는 찬란한 시절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표현하였다.(시기별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다뤄보았다. 유아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 노년기등 찬란함 표현)
성장한 인간은 존재 자체가 찬란해지는 리즈시절, 자신의 가치가 최고치에 이르는 전성기를 맞는다. 이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원동력을 갖추어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음과 동시에 전성기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전성기가 끝났다면 다시 전성기때의 찬란한 모습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인간을 한층 더 성장시켜준다. 전성기를 추억하기 위하여 그때의 시대는 화려한 꽃으로, 나를 상징하는 것은 물건들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빛나는 나의 전성기를 표현하기 위해 일반적인 사물과 다르게 반짝이는 보석을 붙였으며 그는 찬란한 시절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표현하였다.(시기별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다뤄보았다. 유아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 노년기등 찬란함 표현)

한현주, 무용(無用)의 소리, #04, 350x74cm, 2024
고령으로 청력을 상실한 채 변화와 관계의 단절을 겪고 있던 엄마는 방 안의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며 조금씩 당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그러면서 채 사라지지 않은 기억들과의 조우를 기뻐하며, 잊고 지냈던 삶의 모습들을 반추하기 시작하셨다. 각각의 물건들은 그렇게 엄마의 특별했던 어느 한순간을 고스란히 담은 채 그 자체로 소리가 담긴 이야기의 조각들이 되었다. 본질의 쓰임을 넘어, 무용(無用)했던 물건들이 엄마의 소리에 대한 기억과 감정의 보존이자 삶의 순간들이 투영된 것들로 재탄생된 것이다.
이 작업은 이렇게 소리가 사라진 엄마의 기억들이 담긴 물건들을 통해 또 다른 소통의 대안을 탐색해 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낡고 쓸모를 다한 잡동사니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엄마의 서사가 되었고, 엄마와 나 그 사이에서 새로운 형태의 소통의 매개체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유희 같은 대화가, 청력 상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희망과 수용, 공감의 장을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작업은 이렇게 소리가 사라진 엄마의 기억들이 담긴 물건들을 통해 또 다른 소통의 대안을 탐색해 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낡고 쓸모를 다한 잡동사니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엄마의 서사가 되었고, 엄마와 나 그 사이에서 새로운 형태의 소통의 매개체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유희 같은 대화가, 청력 상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희망과 수용, 공감의 장을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황승희, 부유하는 기억의 스펙트럼(the memory spectrum), 50*37.5cm, 2025
황승희의 부유하는 기억의 스펙트럼 작업의 세계는 낯선 형상들과 모호한 컬러들이 존재하는 현실 너머의 세계 ‘기억의 감정’이 존재하는 시공간의 세계이다.
기억은 선명한 듯 흐릿하고 머무는 듯 흘러갑니다.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떠다닙니다.
그 흐름 속에서 다양한 감정과 색이 피어 납니다.
그 변화를 몽환적인 색으로 시각화 했습니다.
이 전시는 그 색의 조각들을 담아낸 기록이자 부유하는 기억들이 만들어낸 스펙트럼입니다.

황임규, '離'괘, 가변size 및 사진설치, 2025
“음악가는 음악을 만들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써야만 궁극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진실해야 한다. 이것이 ‘자아실현’의 욕구다.”
-에이브러햄 H 메슬로-
본 작품은 ‘메슬로의 욕구 5단계’와 동양사상의 정신적, 철학적 의미를 연결시켜 인간욕망의 단계적 구조와 개념의 상징성을 시각화했다.
생성되고 성장하다가 소멸되는 자연의 기본 변화법칙은 반동(反動), 즉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렇듯 동양사상은 모두가 ‘비움’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