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한미 삼청


 

뮤지엄한미 삼청이 지난 12월 21일에 개관하면서 한미사진미술관 20년의 역사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한미사진미술관 20년은 한국사진이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했던 시간이 된 셈이다. 2002년에 서울 방이동 ㈜한미약품 건물에서 가현문화재단이 설립되고 한미사진갤러리가 문을 열 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미사진미술관의 미래가 20년이 흐른 지금, 삼청동에 뮤지엄한미를 개관하면서 그동안 축적한 놀라운 결과물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뮤지엄한미 삼청 신축 개관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
 ‘예술사진’의 시대


‘INSIDE OUT’이란 안쪽에 가려져 있는 무엇인가를 겉으로 드러내는 일로, 사전에는 안과 밖이 뒤집힌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나온다. “한국사진사 1929~1982”라는 시기도 흥미를 일으키게 만든다. 왜 그 기간을 괄호 안에 묶어야 했는가, 우리가 모르고 있는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종로 삼청공원 근처에 새로 문을 연 뮤지엄한미 삼청은 아름다운 건물이지만, 전시 공간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크지 않았다. 전시는 조선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연 ‘정해창’에서부터 시작해서 ‘신흥사진’과 ‘1930-40년대의 국내 사진공모전’, ‘50년대 전후의 리얼리즘’, ‘한국전쟁 전후 르포르타주’, ‘1950-60년대의 해외 사진공모전’, ‘신선회’, ‘인간가족’, ‘1960-70년대의 신인상, 콘테스트,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싸롱 아루스, 현대사진연구회’, ‘1960년대 이후 주요 개인전 및 출판물’, ‘임응식 회고전’, 그리고 ‘고건축’까지의 13개 프레임으로 나뉘어, 한국의 사진사를 체계적이고 다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사진이 탐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취미’나 ‘도락’에서 벗어나 예술의 성역으로 진입하는 계기를 만든 공적인 예술공간에서 벌어진 두 개의 상징적인 전시, – 정해창(1929)과 임응식(1982)의 사진전과 그 기간 한국 사진의 장면에서 부침한 다양한 사진가들의 도전과 실천을 중심으로 ‘예술사진’의 동향을 중점적으로 정리하는 전시다. 마흔여섯 명의 사진가의 작품 196점과 100여 점의 관련 자료들을 집성해서 반세기에 걸친 한국 사진의 근현대사를 살펴볼 수 있도록 짜인 이 전시가 한국전쟁 전후를 기록한 사진과 문화재(건축물)를 다룬 일부 다큐멘터리를 제외한다면, 한국의 사진사 가운데에서도 ‘예술’ 지향의 표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의 핵심은 실제의 사건과 인물, 그것을 입증하는 자료다. 뮤지엄한미는 한국의 몇 안 되는 사진 전문 뮤지엄 가운데 가장 많은 아카이브를 축적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몇 사람 사진가들의 이름이 라인업에서 빠진 것은 미술관이 보유한 컬렉션 중심의 전시가 가진 한계였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된다. 사진사적 지위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몇 사람 사진가에 대한 기획자의 편향된 지지가 작용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오랜 기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진가가 작고했거나 원판과 프린트가 일실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는 기획자의 토로에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전시의 성격이나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했을 때, 특정한 인물에 무게가 실리거나 상대적으로 일부 사진가의 평가에 소홀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는 드러난 사건에 의해서 기술되지만, 그 안쪽에는 시대적 배경과 사람이 있다. 전시도록의 서문에서 ‘한국 사진사의 잃어버린 고리들을 찾아서 그 사이의 빈자리들을 메워’ 나왔다고 밝히고 있는데, 아마도 그것이 ‘INSIDE OUT’이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예술의 역사는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 이상으로, 그에 관여한 표현자들의 역사이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을 밝혀내는 일은 넓은 안목과 균형 잡힌 지성을 갖춘 사람에게 주어진 몫이다. 많은 역사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서 누군가의 선택적인 관점과 기술에 의해서 결정되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비록 주관에 의한 오류가 누구도 쉽게 피하기 어려운 함정이라고 할지라도, 그러기 때문에 공정성과 함께 시대를 관통하는 시야와 통찰력이야 말로 역사를 기술해야 하는 사람에게 요청되는 더욱 중요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적 문화적 개방이 진행되던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남산타워의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에 카메라를 맡겨 두지 않고는 전망대에 올라갈 수 없었고, 서울 시내의 웬만한 고층 건물에서 밖을 내다보며 사진을 촬영하려는 사진가는 안전에 관한 여러 가지 사정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예술의 이름은, 한국전쟁의 포화가 멈추고 사반세기 넘도록 계속된 극도의 군사적 이념적 대립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던 사진가들의 억제된 충동을 풀어낼 안전한 방법으로 착안된 것일지도 모른다. 주로 길거리 노동자나 빈곤층 등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전후 인간의 삶을 ‘리얼’하게 기록한 일부의 ‘거리 사진가’ 들이 해외의 공모전에서 출구를 찾으려 했다는 사실도 당시의 그런 분위기를 짐작하게 만든다.
 
굳이 한국이 아니어도, ‘리얼리즘’은 전후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사진가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했던 테제였을 것이다. 도처에 등장하는 ‘생활주의 리얼리즘’(Saenghwal-Juui Realism, 장나윤, 김지혜)이라는 생경한 ‘조어’는 여기서도 승인된 용어처럼 인용되고 있다. 이 모호한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 당시 사회주의 국가 들에서 공식화된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 김진수)의 예술 양식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 그리고 회화를 추종하는 탐미적인 ‘살롱사진’에 대한 안티로서 일어난 일본의 ‘리얼리즘 사진운동’과의 차별화에 대한 절실한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추론(박평종)은 설득력이 있다. 용어의 개념 정의는 물론, 그것이 당시의 사진가들의 인식과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이후의 사진사의 맥락을 형성시켜 나가는데 어떻게 작용했는가 하는, 그런 ‘고리’들에 관해서는 언젠가 다른 각도에서의 새로운 평가가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미술관’은 다른 형식의 미술과 동등한 가치와 지위를 사진에 부여하는 장소로서 뿐만이 아니라, 사진문화를 대중화해서 예술의 가치를 함께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지닌다. 이번 전시는 긴 식민지 통치가 끝난 후, 해방에 이어 숨 쉴 틈 없이 터진 전쟁,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 빈곤과 사회 정치적 혼란과 변혁이라는 질곡의 시대를 거쳐서 급속한 발전을 이뤄낸 한국의 짧은 사진의 역사에서 ‘예술사진’이 사진 고유의 기능과 표현으로 이행되어가는 과정의 일단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우리 ‘예술사진’의 역사에서 오래 기억되고 중요한 지표의 하나로써 참조될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뮤지엄한미가 기울인 이런 노력과 업적, 앞으로 한국 사진의 장면에서 펼쳐질 지향과 역할의 의미가 작게 평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 전시 일부 ⓒ뮤지엄한미


Section 1. 정해창, 《예술사진 개인전람회》
 

정해창, 1920s~1930s, Gelatin silver print, 16.5×12cm, 뮤지엄한미 소장 ⓒ정형식


정해창, 1920s~1930s, Gelatin silver print, 16.6×12cm, 뮤지엄한미 소장, ⓒ정형식 


 
Section 2. 신흥사진 / Section 3. 1930~40년대 국내 공모전
 

임응식, 〈포토그램 습작1, 부양〉, 1933, Gelatin silver print, 22.5×29.5cm, 뮤지엄한미 소장,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안월산, 〈기와굴의 아침〉 이형본, 1948, Gelatin silver print, 21.1×27.1cm, 1948 조선사진예술연구회 주최, 《제2회 조선예술사진공모전》 특선1석, 개인 소장, ⓒ안재선
 

Section 4. 1950년대 전후 리얼리즘


 

임석제, 〈반출〉, 1948, Gelatin silver print, 26.8×35.5cm, 뮤지엄한미 소장, ⓒ청암아카이브


임석제, c.1952, Gelatin silver print, 26.5×35.5cm, 뮤지엄한미 소장, ⓒ청암아카이브
 

Section 5. 한국전쟁 전후 르포르타주


 

이경모, 〈남편의 시신을 찾는 경찰관 부인〉, 전라남도 순천시, 1948, Gelatin silver print, 26.7×34.3cm, 뮤지엄한미 소장, ⓒ이승준


이명동, 〈호국의 꽃〉, 1953, Inkjet print, 25.9×25.8cm, 뮤지엄한미 소장, ⓒ이태웅

 
Section 6. 1950~1960년대 해외 공모전


 

신현국, 〈폭음에 지친 어린이〉, 1950s, Gelatin silver print, 23.8×30.7cm, 1955 『매일신문』사 주최 《제1회 어린이사진전》 특선,
1961 미국 U.S. 카메라 주최, 《U.S. Camera Contest》 7등 입선, 개인 소장, ⓒ신주철



최민식, 〈구걸하는 음악인〉, 1965, Gelatin silver print, 45×32.3cm, 뮤지엄한미 소장, ⓒ최유도

 
Section 7. 신선회
 
 

이형록, 〈건설〉, c.1957, Gelatin silver print, 40.5×26.2cm, 1957 《제1회 신선회》 출품, 뮤지엄한미 소장, ⓒ이명민


한영수, 〈야채시장〉, 1956, Gelatin silver print, 37.4×50.6cm, 1957 《제1회 신선회》 출품 추정, 예술의 전당 소장, ⓒ한영수문화재단 

 
Section 9. 1960~1970년대 《신인예술상》, 《동아사진콘테스트》,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홍순태, 〈갈치〉, 1971, Gelatin silver print, 29.4×46.6cm, 1971 문화공보부 주최, 《제1회 대한민국 건축 및 사진전람회》 금상, 개인 소장, ⓒ홍성희


육명심, 〈사별〉, 1974, Gelatin silver print, 29.3×45.7cm, 1974 『동아일보』사, 사진동우회 주최, 《제12회 동아사진콘테스트》 특선, 작가 소장, ⓒ육명심


 
Section 10. 싸롱아루스, 현대사진연구회


 

전몽각, 〈달맞이〉, 1963, Montage, Gelatin silver print, 25.4x17.9cm, 1963 《제2회 현대사진연구회전》 출품, 뮤지엄한미 소장, ⓒ이문강


황규태, 〈빅브라더〉, c.1968, Inkjet print, 45.5×31.5cm, 작가 소장, ⓒ황규태
 

Section 11. 1960년대 이후 주요 개인전 및 출판물


 

주명덕, 《PHOTO ESSAY 홀트씨 고아원》 중에서, 1965, Gelatin silver print, 17x25.2cm, 뮤지엄한미 소장, ⓒ주명덕


차용부, 《빙점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서, 1978, Gelatin silver print, 24.6x34.2cm, 작가 소장, ⓒ차용부


강운구,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면 수분리>, 1973, Gelatin silver print, 31.8x21cm, 뮤지엄한미 소장, ⓒ강운구


 
뮤지엄한미 송영숙 관장
한미사진미술관, 뮤지엄한미로 발전

인터뷰이 송영숙 뮤지엄한미 관장
인터뷰어 윤세영 편집주간



 

송영숙 뮤지엄한미 관장
 
뮤지엄한미 삼청이 지난 12월 21일에 개관하면서 한미사진미술관 20년의 역사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한미사진미술관 20년은 한국사진이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했던 시간이 된 셈이다. 2002년에 서울 방이동 ㈜한미약품 건물에서 가현문화재단이 설립되고 한미사진갤러리가 문을 열 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미사진미술관의 미래가 20년이 흐른 지금, 삼청동에 뮤지엄한미를 개관하면서 그동안 축적한 놀라운 결과물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뮤지엄의 주요 기능인 전시, 작품소장, 학술연구, 교육, 출판 등 각 분야에서 세계 유수의 뮤지엄에 버금가는 성취를 이뤄낸 중심에는 송영숙 관장이 있다. 송 관장의 사진에 대한 애정과 세계 최고 수준의 뮤지엄을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20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온 것들이 새로 둥지를 튼 삼청동에서 그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뮤지엄 한미의 시대로
2003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진미술관을 개관할 때만 해도 송영숙 관장은 오늘날 이렇게 큰 그림을 펼치게 될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사진가 송영숙’을 곁에서 항상 격려해주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이경성(1919~2009)선생이 문득 한국에 사진미술관이 한 곳도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사진미술관 개관을 제안했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남편(故 임성기 한미약품 선대 회장, 1940~2020)이 “당신 한번 생각해보지 그래?”라고 용기를 주지 않았다면 용감하게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사진미술관 허가를 받는 절차가 생각보다 까다롭고 길어지자 송 관장은 2002년 2월 가현문화재단을 설립하고 6월에 일단 한미사진갤러리로 문을 열었다. 소박하게 갤러리로 출발했지만 실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과 다름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다음 해인 2003년에 정식으로 사진미술관 등록을 마쳤고 20층의 기존 전시장과 함께 2006년에는 19층에 메인 전시장을 확장 오픈하면서 마침내 송영숙 관장의 내면에 잠재했던 진취적인 욕구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국내외 대표적인 작가들을 섭외해서 기획전을 열고 사진집을 출간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사진문화연구소를 열어 한국사진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사진교육을 위한 한미사진아카데미를 개설했다. 그리고 2019년에는 삼청동에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MoPS)을 개관함으로써 강남에 이어 강북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별관 옆에 독립적인 미술관 건물을 짓는 공사를 진행, 마침내 뮤지엄한미 삼청의 개관을 보게 된 것이다.
 
세계의 눈을 서울 뮤지엄한미로
“우리가 좋은 작품을 보기 위해 해외 유명 미술관을 찾아가듯이 외국인들이 독보적인 빈티지 프린트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오게 만들겠다.”
송 관장의 이 야심 찬 포부는 이번에 뮤지엄한미의 개관과 함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소장품의 규모가 어마어마하여 우리나라의 초창기 사진부터 현대사진까지, 그리고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는 세계적인 사진가들의 작품이 모두 합해 2만여 점에 이른다. 이에 걸맞게 작품수장고의 규모와 운영시스템 역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송 관장은 그동안 작가와 의견이 일치할 때까지 여러 번 찾아가기도 하고 또는 미술시장을 통하여 세계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컬렉션 했다고 말한다. 그런 과정에서 만난 미국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제리 율스만(Jerry Norman Uelsmann, 1934~2022), 체코 태생의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매그넘 작가인 요세프 쿠델카(Josef Koudelka, 1938~), 미국의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1926~2022) 등 그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오리지널 작품을 볼 때의 희열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사진사에 남을 사진가들을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소장한 일들이 사진미술관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사실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작가를 만날 때 관장이 직접 가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어요. 해외출장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대개는 실무자 혼자 가기 마련이죠. 그러나 나는 실무자는 물론 때로는 원로 작가 선생님까지 모시고 대여섯 명이 가니까 그쪽에서 좀 놀래요. 관장이 직접 왔냐면서 반가워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의기투합, 결국은 친구가 되곤 합니다.”

송 관장의 이런 접근방식은 세계사진계에서 까다롭다고 소문난 작가를 설득하는 데에 유효했고, 무엇보다도 송 관장의 작품에 대한 안목과 비즈니스 감각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남편인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었다.

“사람들은 돈이 있으니까 가능하지 않느냐는 말을 해요.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돈으로만 되는 일은 아니거든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예산은 한정적인데 작품은 꼭 갖고 싶으면 작품값을 세 번에 분할해 내겠다고 제의해요. 처음엔 고개를 갸웃하지만, 작품은 당신들이 갖고 있다가 마지막 잔금을 치를 때 주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하면 그들도 오케이 합니다.”
 
개관전 참여작가 유족들을 초청, 전시 관람 후 송영숙 관장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뮤지엄한미
 

국내외 작가들의 소장품이 2만여 점
그동안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전시한 작가들을 보면 국내 작가로는 강운구, 고명근, 구본창, 민병헌, 육명심, 이갑철, 주명덕, 천경우, 황규태 등이 눈에 띄고 해외작가로는 아론 시스킨드, 마리오 자코멜리, 제리 율스만, 요세프 쿠델카, 워커 에반스, 로버트 프랭크 등을 꼽을 수 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좋아했던 이탈리아 사진작가 마리오 자코멜리(Mario Giacomelli, 1925~2000) 사진전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펼친 것이 참 좋았어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초대하고 작품을 소장하는 일이 작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도 큰 보람입니다.”

송 관장은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유명작가뿐 아니라 우리가 잘 모르던 작가를 찾아내 전시하고 작품을 소장하는 일이 즐겁고 드라마틱하다고 말한다. 2014년에 한미에서 전시한 터키(튀르키예)의 사진가 아라 귈레르(Ara Güler, 1928~2018)가 그런 경우다.

“터키에 다녀온 강운구 선생님이 작은 사진집을 선물로 주시는데 얼마나 사진이 좋은지 보는 순간 소름이 쫙 돋았어요. 이런 다큐멘터리 작가가 있다니, 나 당장 이 작가 만나러 가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예요. 1928년생인 할아버지인데 터키에서는 ‘이스탄불의 눈’이라 추앙받는 국보급 작가였어요. 우리와 친해지니까 여기선 카메라를 하늘로 던지기만 해도 작품이 된다고 농담을 하셔요. 그만큼 터키가 유서 깊고 아름답다는 자부심의 표현이지요.”

작가는 한국전시를 흔쾌히 허락했는데 빈티지프린트 반출이 불가능하다는 규정이 걸림돌이 됐다. 마치 우리나라 문화재 반출이 어려운 것처럼 그의 사진작품은 그런 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작가소장 오리지널 작품 몇 점만 어렵게 갖고 오고 나머지는 서울에서 모던프린트를 해서 전시를 했다고 한다.

“미술관에서 소장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소장해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실감하고 있어요.”

초기의 한국 근대사진을 컬렉션 할 때의 일이다.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진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영국의 전문적인 컬렉터를 세 번이나 찾아갔으나 만날 때마다 값이 오르고 협상 기간 중에 환율이 오르면 그 차액까지 요구하면서 협상이 길어졌다. 그때 마침 청계천 골동품상으로부터 라면박스 두 개 분량의 사진을 갖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상인은 상자에 든 사진 중 한 장만 보여주며 ‘묻지마’ 거래를 요구해왔다. 송 관장은 통 큰 배팅을 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박스 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인 천연당 사진관의 사진을 비롯해 귀중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 후 골동품상들에게 소문이 나면서 귀한 사진이 나올 때마다 송 관장에게 가장 먼저 연락이 왔고 그 바람에 고종황제 장례식 앨범 같은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지금 활동하는 현대 사진가들의 작품은 전시를 통해 중요한 작품을 선정해 그때마다 컬렉션 해요. 이제는 소장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국사진사를 정립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컬렉션을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고 재미가 더해져 돈만 생기면 작품을 사게 된다는 송 관장은 목표의 90%는 소장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필요하다면 세계 끝까지라도 작가와 작품을 만나러 간다는 정신으로 치열하게 움직인 송영숙 관장은 “전문가들이 이 정도 컬렉션이면 지금도 세계 5위권 안에 들어간다고 평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오리지널 작품을 보고 싶으면 서울로 오라’는 말이 현실이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획기적인 새 출발
뮤지엄한미 삼청은 400억이 넘는 건축비를 투입해 전시 기능과 수장고를 위주로 공연, 교육, 휴식 등 복합공간의 성격도 함께 갖추었다. 한미사진미술관이란 이름 대신에 뮤지엄한미로 명명한 이유는 장르의 범위를 넓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일반인들이 가볍게 들어올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진미술관이 서울 방이동과 삼청동, 경기도 김포시 세 군데에 자리하니 이번 삼청동 사진미술관은 조금 더 범위를 넓혀 문화예술 공원 같은 기능이랄까요. 아래층은 약 100명 정도가 모여 발레도 보고 음악회도 할 수 있게 천장 높이를 높였는데 이것도 필요에 따라선 전시장으로 기능할 수 있게 설계했어요. 1층은 전시장이고, 2만 장의 LP판이 있는 2층 공간에서는 사진 크리틱도 받을 수 있고 차를 마실 수도 있고요. 사진 책을 굉장히 많이 갖고 있는데 ‘책이 있는 사진미술관’은 지금의 한미약품 뒤에 짓는 건물 1층에 따로 마련할 거예요. 즉 책을 위주로 하는 방이동의 사진미술관, 전시를 중심으로 하는 예술 복합공간으로서 즐기는 삼청동의 사진미술관, 수장고를 중심으로 한 김포의 사진미술관, 이렇게 성격을 달리하는 미술관들이 될 거예요.”

송 관장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본 루이지애나 뮤지엄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건물과 자연이 잘 어우러진 참한 미술관이면서 참여와 체험이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가족 놀이터 같았다고 했다. 열차에서 내리니 모든 승객이 한 방향으로 가는데 그들이 모두 뮤지엄으로 가는 사람들이란 것에 참신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

“삼청동 사진미술관이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앞으로 공간을 더 확보해가며 아기자기하게 필요한 집도 짓고 예쁜 정원도 만들고 휴식하며 예술로 충전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요. 미술관 실내는 최첨단이어도 외형은 조촐하게 간 것도 친화적인 건물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1968년에 숙명여대 사진모임인 ‘숙미회’에 들어가 사진을 시작했으니 송 관장이 사진과 함께한 세월이 50년을 훌쩍 넘었다. 그동안 《남매전》(1969), 《폴라로이드 사진전》(1980), 《또 하나의 진실》(2000), 《Meditation》(2018), 《Another Meditation》(2021) 등 여러 차례의 개인전과 동시에 사진집을 출간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비해 전시가 드문드문했던 것은 30대와 40대엔 자녀의 뒷바라지에 전념했고 50대 중반 이후엔 사진미술관을 운영하는 데에 진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진미술관 일로 출장을 다니는 틈틈이 대상과 마음이 조우하는 순간을 찍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해요. 사진미술관장이 이렇게 힘든 자리인 줄 알았으면 아마 시작을 못 했을 거예요. 그러나 궁극적으론 사진미술관이 내 개인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진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고, 어느덧 세계적인 사진미술관을 만드는 일에 뜻을 두었지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국무총리 표창도 받고,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도 받았네요. 다 공익법인으로 국가의 일을 대신하는 거예요.”

송 관장의 작품사진에는 만남과 인연이란 명제가 들어있다. 사진 자체가 대상과 만남이고 인연이라고 할 때 우리가 한평생을 살며 만나는 모든 인연이 결국 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1968년 꿈이 많던 한 여대생과 사진의 만남이 21세기에 들어와 한국사진사에서 획기적인 서사가 될 사진미술관으로 발전했다. 앞으로 송 관장의 원대한 꿈이 장차 어떤 예기치 못한 화려한 꽃을 피울지 그 미래가 무궁무진하다. 어느새 개인의 꿈이 아니라 한국사진의 미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 전시 일부 ⓒ뮤지엄한미

 
뮤지엄한미 최봉림 부관장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뮤지엄한미까지,
광화문빌딩에서 국립현대미술관까지


인터뷰이 최봉림 뮤지엄한미 부관장
인터뷰어 류지훈 기자


 

뮤지엄한미 최봉림 부관장
 
방이동의 한미약품 건물에서 일군 한미사진미술관의 20년 역사가 삼청동에 신축 개관한 ‘뮤지엄한미 삼청’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변화의 가속도가 갈수록 더해지는 사진 매체의 모든 것을 수용하는 전시 공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수장고까지. 이로써 뮤지엄한미는 한국 대표 사진 전문 미술관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듯하다. 신축 개관과 개관전에 얽힌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어보고자 개관전《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을 기획한 최봉림 뮤지엄한미 부관장을 만났다.
 
20주년을 맞은 ‘한미사진미술관’이 ‘뮤지엄한미 삼청’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2002년에 설립된 한미사진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이다. 개관 당시부터 전시와 소장품 수집, 작가 지원사업 등은 물론, 2009년에는 ‘한국사진문화연구소(현 뮤지엄한미연구소)’를 설립하고 2012년에는 ‘한미사진아카데미’를 개원하는 등 한국 사진계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힘써왔다. 올해로 20세 성년을 맞아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삼청동의 새 터에 ‘뮤지엄한미 삼청’을 신축 개관하여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다.
 
지난 20년 동안 수집한 작품만 2만여 점에 달하며, 이 소장품의 보존을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수장고를 마련했다고 들었다.
면적 317.4㎡, 높이 7m 규모의 수장고를 마련했다. 작품 보존의 핵심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최적의 항온·항습 체계를 갖추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였고, 그 결과 15℃에 상대습도 35%의 ‘저온 수장고’와 5℃에 상대습도 35%의 ‘냉장 수장고’를 구축하여 소장품을 안전하고 쾌적하게 보관하고 있다. 그간 쌓아온 지식과 연구에 최고 수준의 자문이 더해져 나온 결과다. 수장고에 보관된 소장품 가운데 한국 사진으로는 황철이 1880년에 촬영한 사진이, 외국 사진으로는 탈보트(William Henry Fox Talbot)가 제작한 1840년대 마우스 트랩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뮤지엄한미의 부관장이자 뮤지엄한미연구소장으로서, 신축 개관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3년 전부터 준비한 개관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아웃, 1929~1982》이다. 연구소에서 출발한 전시답게 많은 공부와 연구가 바탕이 되는, 공들인 전시를 하고 싶었다. 또한 다른 미술관들, 심지어 국립현대미술관도 하기 힘든 전시, 뮤지엄한미에서만 가능한 전시를 만들고 싶기도 했다. ‘사진’ 하나만 보고 달려온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서 20년과 학술 연구기관으로서 14년, 이 시간 동안 축적한 우리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아웃, 1929~1982》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전이다. 개요를 설명한다면?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진의 해’를 선포했던 1998년, 최인진 선생의 기획으로 《한국사진 역사전》이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한반도에 사진이 도입된 시점부터 전시 당해까지 1,000여 점의 작품과 함께 120년 우리나라 사진사를 돌아보는 전시였다. 그 후 지금까지 20여 년이 넘도록 한국사진사를 연대기별로 총괄하여 보여주는 전시가 없었는데, 이번 개관전을 통해 1929년부터 1982년까지의 우리나라의 사진사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 시기에 전시를 통해 사진 작품을 선보이며 예술가로서 성장했던 이들은 물론, 국내외 공모전과 함께 사진가의 예술적, 사회적 인정이 이루어진 것과 한국 사진의 외향성을 진작시킨 일 등 ‘제도’와 함께한 사진계 주요 이벤트를 소개한다.

 
 
개방 수장고 전경 ⓒ뮤지엄한미

전시는 1929년 광화문빌딩 2층에서 열린 정해창 선생의 《예술사진 개인전람회》로 시작한다. 그의 개인전이 지닌 사진사적 의의가 궁금하다.
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제도가 바로 개인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작가’ 탄생이 바로 1929년이다. 물론 그보다 수십 년 전부터 황철, 지운영, 김규진, 신낙균 등 사진계 선배들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사진관을 운영하거나 신문사진을 촬영하는 등의 사진 산업에 종사했다.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사진가는 없었던 것인데, 정해창은 한국에서 사진을 매체로 예술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최초의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국립미술관 최초의 사진 전시인 《임응식 회고전》으로 개관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임응식은 한국 사진계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인물이다.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회고전 개최는 그중 으뜸이라고 본다. 《임응식 회고전》에 전시된 작품은 기증되었고, 사진이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국내 최고의 권위를 가진 기관으로부터 사진이 비로소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고, 본격적으로 미술관 전시와 소장의 대상이 되는 계기가 바로 《임응식 회고전》이다. 이를 두고 사진가의 개인적인 성취에서 나아가 사진계에 대한 공헌으로 보고자 하는 이유다. 회고전 이후 사진의 위상과 사진가 대우는 눈에 띄게 달라졌고, 훌륭한 기획전이 하나둘 등장하게 되는데, 이 역사적인 전시를 《한국사진사 인사이드아웃, 1929~1982》의 끝으로 정했다.
 
제도와 권위에 의해 시작과 끝이 정해진 것이 인상 깊다. 그 이유가 곧 전시 전체의 맥락을 대변할 수 있을 듯한데
누가 작가냐 아니냐, 어떤 매체가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한 답은 사회 제도에 의해서 객관화된 후에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개인의 취향이나 미학적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한국 사진계의 거대한 전환점으로 여겨지는 두 전시 사이 50여 년의 한국 사진 흐름을 주관했던 국가 및 사회 제도와 주요 이벤트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를 구성했다. 중요한 건 역사적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이기에, 공적인 장소에서의 공적인 사건들에 대해 샅샅이 살펴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다시 보고자 한 것이다.
 
역사전인만큼, 전시의 바탕에 견고한 근거로써 ‘제도권’을 두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우리가 객관적으로 다시 볼 것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면?
그간에 1950-60년대 한국 사진은 구왕삼, 임응식, 이명동이 주도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의 선도 하에 일구어졌고, 그 대척점에는 ‘살롱사진’이라 불리우며 탈피의 대상이자 주류에서 소외된 사진들이 있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한국의 ‘살롱사진’은 생활주의 이후에도 제도권이 인정했던, 엄연히 영향력을 행사했던 또 하나의 주류였다. 대표적으로 《현대사진연구회전》에 출품한 전몽각의 <달맞이>를 예로 들면, 한 번의 셔터에 담긴 장면이 아닌, 잡지에 실린 달 사진과 아이들의 실루엣을 합친 사진이다. 리얼리즘이 주장하는 ‘객관적인 기록’과 거리가 먼 몽타주 사진이다. 이 밖에도 리얼리즘의 흐름과 관계없이 유럽의 ‘신흥사진’을 추종하는 사진가들이 많았고, 이들은 국전에도 입상하는 등의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기존에 정립된 역사와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 밝히기 위해 “inside out”하여 새로운 한국 사진사의 지형도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 이어 말하자면 실제로 ‘국전’은 역사에서 크게 조명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종종 누락되는 탓에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지하 전시장에 상영되고 있는 국전 영상에서 보다시피, 국전은 당시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여할 만큼 예술계의 핵심 이벤트였다. ‘동아사진콘테스트’나 ‘동아국제사진살롱’ 못지않게 명성 있는 행사였는데, 단연 최고의 작가들이 참여하지 않았겠나. 이처럼 그동안 누락되어온 중요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근거와 함께 이번 기회에 복원코자 했다. 국전은 두말할 것 없이 대단한 권위를 가졌다는 것, 리얼리즘의 주변부로 밀려났던 사진들도 그 권위를 공유했다는 것, 생활주의에 경도되었던 작가들도 사실은 픽토리얼리즘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소외된 역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특정 사건에 대한 기록물에 더하여 빈티지프린트를 전시했다. 마치 우리가 놓친 역사적 사실을 최종 검증하듯이
과거를 다루는 역사전이기에, 전시 작품 선정 시 작품 창작 당대의 사진적 조건이 반영되고 사진가 고유의 미학적 성향을 담지한 ‘빈티지프린트’ 확보를 최고 우선 과제로 삼았다. 전시를 준비하며 제도와 이벤트에 관한 사실 확인만큼 중요했던 것이 바로 작품의 ‘진본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빈티지프린트를 최우선으로 탐색했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유족 등이 소장한 필름을 받아 당대의 사진적 환경을 최대한 반영하여 인화했다. 그마저도 불가능한 작품 몇 점은 디지털 프린트로 전시하기도 했는데, 어떤 경우라도 발표 당시에 작가의 작품에 대한 입장을 오롯이 반영하여 ‘진본성이 확보된’ 작품만을 전시했다. 설사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도, 진본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면 전시하지 않았다.
 
작가의 정신과 작품의 원형을 추적한 노력, 그 사명감이 대단하다. 일반 관객에게 전시 관람의 팁을 주자면?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는 뮤지엄한미 신축 개관전으로서 새로운 역사의 지형도를 제시한다. 아무래도 역사전이기 때문에 한국사진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어느 정도 알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것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으니, 이와 함께한다면 더욱 입체적으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겠다. 또한 오는 11일에는 ‘미술관-박물관의 사진 컬렉션과 사진의 진본성’에 관한 주제로 전시 연계 세미나가 열린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이다.
 
뮤지엄한미의 신축 개관전, 그러니까 새로운 출발점에서 서둘러 나아가기보다 역사전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는 점이 신선하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뮤지엄한미는 “사진예술의 확장과 대중에게 다가가는 미술관”을 목표로 계속 전진할 것이다. 사진과 밀접한 모든 예술작품으로 전시 대상을 확장하여 21세기 급변하는 사진 매체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자 한다. 물론 전통적 사진예술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덧붙여 예정된 전시 하나를 미리 공개한다면, 미국 현대사진 거장 윌리엄 클라인이다. 개관전이 막을 내린 후 5월에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수장고 내부 ⓒ뮤지엄한미


 
글 김승곤 사진평론가
해당 기사는 2023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