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외작가 ⦁ ⦁ 칸디다 회퍼 | 공공 건축 공간의 아름다움과 사회적 의미



 
국제갤러리에서 개최한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의 《Renascence》(5.23.~7.28.)는 파리의 카르나발레 뮤지엄의 내부 변화를 다룬 시리즈와 새롭게 리노베이션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을 다룬 작품을 소개하며, 각 건물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현대적인 개입이 이룬 변화를 조명한다. 카르나발레에 새롭게 설치된 계단과 복원된 벽화, 그리고 신국립미술관의 리노베이션 직후의 모습을 작가 고유의 시각으로 드러내는 회퍼의 작업은 건축공간에 대한 특유의 접근법으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한다. 또한, 베를린의 코미셰 오페라 극장의 빈 무대와 객석을 촬영한 회퍼의 사진은 공간의 물질성과 그 위에 쌓인 미세한 인간 접촉의 흔적을 드러낸다. 국제갤러리의 전시는 회퍼의 정밀한 대칭성과 구도를 통해 공공 건축물의 미적이고 사회적 의미를 심도 있게 탐구하며, 팬데믹 이후의 공공 공간 재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사진예술』에서는 이 전시를 계기로 회퍼의 작업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Neues Museum Berlin VII 2009〉, C-Print ⓒCandida Höfer / VG Bild Kunst, Bonn 2009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 예술사진가인 칸디다 회퍼는 공공 건축 공간의 내부를 예술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44년 쾰른의 에버스발데에서 태어난 회퍼는 1973년부터 쿤스트 아카데미 뒤셀도르프(Kunstacademie Düsseldorf)에서 수학했고, 1976년부터 1982년까지 6년간 베른트 베허(Bernd Becher)에게 사진을 배웠다. 회퍼는 베허의 제자로 구성된 뒤셀도르프 학파의 생존하는 대표적인 여성사진가로 건축사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베허 부부에게 수학하기 전, 회퍼는 쾰른에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여 함부르크 등지에서 10여 년간 사진 현장 경험을 쌓았다. 이후 뒤셀도르프로 옮겨가 아카데미에 교수로 임용된 베허에게서 사진을 수학하며 베허 부부의 건축 사진 작업의 영향을 받았다. 베허 부부가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존재하지만 인간에게 꼭 필요한 산업 건축물을 엄격한 기준을 세워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였다면, 회퍼는 뮤지엄이나 도서관 같이 많은 사람이 활용하는 공공 건축의 내부 공간에 집중하여 자신만의 주제와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베허 부부의 유형학적 건축물 사진 방법론을 독창적으로 확장하고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회퍼는 공공 건축 공간에서 인물의 존재를 제거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초기 작업에서는 사람들, 특히 터키 이민자들의 삶에 관심을 두었다. 〈Türken in Deutschland〉(1973-1979) 시리즈는 독일에 와서 삶의 터전을 일구는 터키인 이주민의 생활상을 5년 동안 기록한 작업이다. 이 시리즈는 회퍼가 일찍이 이주라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당시 이주 현상이 몰고 오는 사회 문화적 풍경의 변화를 포착하고 예견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수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독일을 중심으로 촉발된 이민, 인종차별주의, 국가 정체성 등 요즘에도 유효한 이슈를 일찍이 1970년대에 다룬 이 시리즈는 2019년 하버드 미술관이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Benrather Schloss Dusseldorf V 2011〉, C-Print ⓒCandida Höfer / VG Bild Kunst, Bonn 2011


〈Benrather Schloss Dusseldorf I 2011〉, C-Print ⓒCandida Höfer / VG Bild Kunst, Bonn 2011

 
베허 학파 중 최초로 컬러 작업을 한 폴커 되네(Volker Döhne)의 증언에 의하면 베허는 컬러사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 말 베허
에게 수학하던 제자들은 컬러사진에 관심을 가졌고, 회퍼 역시 1979년부터 건축물 내부를 컬러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강의실, 미술관, 갤러리, 식당, 버스 정류장, 극장 등 다양한 실내 공간을 촬영한 〈Interiors of Public Buildings〉(1979) 시리즈는 이후 회퍼의 사진을 대표하는 주제와 특징을 함축하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회퍼는 모든 공공 공간을 파노라마 뷰와 코너뷰, 정적으로 정교하게 세부를 드러내거나 스냅 샷으로 희미하게 초점을 맞추는 등 다양한 스타일로 촬영했다. 인물을 제외하고 공공 공간 자체에 초점을 맞춘 이 초기 컬러사진 시리즈는 공간의 사회적 의미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회퍼 작업의 주요 개념을 형성하며 회퍼는 이후 여러 시리즈를 통해 점점 더 특유의 정교한 건축공간 표현법을 구축해 간다.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동물원 내부와 외부 공간을 촬영한 <Zoologische Gärten〉(1991) 시리즈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 환경 속에서 동물의 존재를 고찰했다. 〈Douze-Twelve〉(2001) 시리즈에서는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 12개의 캐스트가 소장된 각각의 박물관과 조각 정원을 촬영하여 동일한 작품이 다른 전시 환경에 놓이며 변하는 존재 방식을 조명했다. 이 작업은 작품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예술 작품이 놓인 맥락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회퍼는 또한 개념미술가 온 카와라의 작업이 전시되는 방식을 주제로 한 〈On Kawara: Datumsbilder〉(2004-2007) 시리즈에서 온 카와라의 날짜 그림을 소장한 개인들의 집을 촬영하여 작품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했다. 이러한 예술 작품이 전시된 공간 탐구작업은 2001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Museums〉 시리즈와 루브르의 여러 전시관과 실내 공간의 디자인과 장식을 탐구한 〈Musée du Louvre Project〉(2005)와 연결된다.


 


 
인간이 ‘부재’하는 건축공간의 의미
회퍼의 작업은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구조적 디테일을 강조하면서도, 그 공간이 지니는 사회적이고 문화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회퍼는 비어있는 공공건물의 내부를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으로 촬영하여, 공간 자체의 미적 요소와 기능을 부각하는데, 이 효과는 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공 공간에서 의도적으로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가능하다. 익숙한 공간이지만 사용자가 텅 빈 공공장소를 경험하는 일은 흔치 않다. 회퍼는 이 텅 빈 상태의 공간 경험을 시각적으로 제시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오로지 공간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이때 평소에 보지 못한 공간의 세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회퍼는 초기에는 35mm 카메라로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고 촬영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정적이고 선명하게 세부를 묘사하는 기술을 구사한다. 이후 4x5인치 혹은 8x10인치의 대형 포맷 카메라를 사용하여 형식적 요소와 색채에 집중한 회퍼의 사진은 무결점의 선명함을 갖추고 미니멀한 선적 요소나 색채가 강조되는 회화적 사진으로 태어난다.


 

〈Komische Oper Berlin VII 2022〉, C-Print ⓒCandida Höfer / VG Bild Kunst, Bonn 2022

 
많은 논평가가 칸디다 회퍼의 작업에서 공공 건축물의 사회적 의미를 읽어내지만, 회퍼는 자신의 관심이 형식적 요소에 있음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회퍼가 건축과 그 안의 사물들을 대면하고, 그 기능이나 용도 등 군더더기를 제거한 단순한 방법으로 촬영한 인간이 부재하는 공간은 순수한 형태를 드러낸다. 이로 인해 관람자는 익숙한 건물에서 평소에 간과했던 공간의 구조와 조각적, 디자인적 아름다움, 그리고 건물의 기능에 따른 사물의 배열 등 미적인 요소와 사회적 역할을 동시에 고찰하게 된다.

공간을 대상화한 존재로 제시하는 이러한 접근 방식은 베허 부부가 추구한 뒤셀도르프 스쿨의 객관적 기록 정신을 반영하면서도, 감상자로 하여금 공간의 미적
이고 철학적인 측면을 탐구하도록 이끈다. 베허 부부의 다른 제자들인 토마스 스트루트, 토마스 루프, 폴커 되네 등도 건축을 주제로 작업했지만, 회퍼는 30년 이상 가장 집중적으로 건축 공간을 탐구했다. 겉보기에는 일관된 회퍼의 작업은 한 시리즈에서 완벽하게 동일한 조건을 대상에 적용한 베허 부부와 비교하면 시리즈 내에서도 이질적인 요소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회퍼의 작업은 주제적으로 매우 방대하며 체계적인 것 같지만, 시리즈별로 양식적이고 기술적인 일관성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체계적이면서도 반-체계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회퍼의 지난 30년간의 작업은 오래된 건축 공간에 대한 집요한 기록과 그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회퍼는 각 공간의 고유한 건축적 특성을 통해 그들이 지닌 문화적, 역사적 중요성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문화 제도와 기관이 건축 공간의 시각적 효과와 표현에 미치는 복잡한 영향을 드러내어 공공 공간이 어떻게 설계되고 경험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이러한 요소는 사람의 부재로 더욱 부각된다. 때문에 회퍼의 작업은 ‘부재의 건축’이라 불린다. 회퍼의 ‘부재의 건축’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영국의 도서관이나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과 같은 공공 공간 그 자체의 고요함과 생동감 있는 색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녀의 사진은 공간의 텍스처와 재료를 섬세하게 관찰하여 부각함으로써 관람자가 웅장한 환경을 촉각적 감각으로 경험하게 한다. 회퍼의 작업은 단순히 건축의 기록을 넘어서, 제도와 기관의 문화와 사회적 지위, 그리고 이러한 공공 공간이 인간 활동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Stiftsbibliothek St.Gallen I 2021〉, Inkjet print, 180 x 162.9cm ⓒCandida Höfer / VG Bild Kunst, Bonn 2021
 

빛과 색채의 향연
회퍼의 형식적으로 정밀하고 구조화된 사진은 관객의 시각적 경험을 극대화한다. 그녀의 대형 사진은 도서관 공간의 본질을 포착하며, 건축적 아름다움과 정교한 내부 디테일,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회퍼는 정확한 대칭과 구도를 통해 시각적 충격을 강화하며, 이는 공간의 문화적, 역사적 중요성을 섬세하게 기록한다. 그녀의 작업은 건축 요소와 기관 구조를 중시하여, 건축과 기관의 규정 및 문화적 표현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회퍼는 텍스처와 재료에 집중함으로써 촉각적 요소를 부각하여 관람자가 이러한 웅장한 공간의 물리적 감각을 경험하도록 도와준다. 민족지학적이고 주제별 조직을 통해 기관 공간이 설계되고 경험되는 방식을 드러내는 회퍼의 작업은 이러한 환경 내에서의 생성되는 사회적 건축과 문화적 서사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한다.

회퍼의 사진 ‘Komische Opera Berlin VII’(2022)는 붉은 양탄자와 계단의 아름다운 곡선을 강조한 사진이다. 이 작품은 18년 전에 촬영한 ‘Biblioteca Nacional Rio de Janeiro V’(2005)와 주제, 구도, 색채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이 접근은 ‘Catherine Palace Pushkin St. Petersburg II’(2014)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 작품은 시기적으로 다르지만, 색채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화려한 공간 표현에는 회퍼만의 과장되지 않은 단순한 접근이 내재되어 있다.


 


 
회퍼는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역사적 장소를 촬영하는데, 이러한 작업은 각 지역의 도서관, 뮤지엄,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적 유사성과 차이점을 드러낸다. 그녀
가 촬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건축물의 광원이다. 회퍼는 자연광을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담아내며, 빛은 건축의 색채와 재질을 생동감 있게 드러내어 공간의 정체성과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킨다. 회퍼의 작업을 광원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정적인 분위기를 깨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Stiftsbibliothek St. Gallen II’(2001)와 ‘Österreichische Nationalbibliothek Wien X’(2003)에서는 각 층마다 내외부의 다양한 광원이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잘 드러난다. ‘Palais Garnier Paris XXIX’(2005)은 인공조명을 좋아하지 않는 회퍼가 인공광과 자연광이 어우러진 대범한 형태로 광원을 강조한 작품이다. 회퍼는 주로 대칭적이고 균형 잡힌 구도를 사용하여 건축적 공간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강조한다. ‘Palais Garnier Paris I’(2004) 같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구성 방식은 관람자에게 안정감과 동시에 공간의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Musée Carnavalet Paris I 2020〉, Inkjet print, 180 x 180 cm ⓒCandida Höfer / VG Bild Kunst, Bonn 2020


〈Neue Nationalgalerie Berlin XI 2021〉, Inkjet print, 180 x 246.5cm ⓒCandida Höfer / VG Bild Kunst, Bonn 2021

 
새로운 공간의 탐구
현재 80세인 회퍼의 최근 작업은 여전히 고유의 스타일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공간과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그녀는 기존에 작업했던 도서관, 뮤지엄, 극장같은 전통적인 공공 공간뿐 아니라 현대적이고 비전통적인 건축물, 사무실, 호텔, 심지어 스포츠 경기장 등 다양한 공간을 포착하여 작품의 영역을 넓혔다. 회퍼는 이러한 다양한 공간들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공간 사용과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회퍼의 사진들은 다채로운 빛과 그림자의 조합을 통해 공간의 분위기와 느낌을 극대화하며, 공간 자체의 미적 요소를 섬세하게 강조한다.

2018년 촬영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 ‘Villa Savoye [Le Corbusier - ©FLCADAGP] Poissy VI’(2018)는 현대적이고 단순한 디자인과 색면의 형식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또한 ‘Edificio Basurto Ciudad de México I>(2015)는 이전 사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간결한 곡선의 조형미와 전면적인 빛의 강조가 드러난다. 회퍼는 기존의 대칭적이고 정교한 구도를 넘어서 최근에는 비대칭적이고 다소 자유로운 구도를 시도함으로써 공간의 동적이고 다채로운 성격을 묘사하고 있다.

아날로그 대형 포맷 카메라에서 디지털 기술로의 전환은 프린트 스케일, 디테일, 정밀도를 높여 회퍼의 작업에 현대적 감각을 부여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디지털 촬영과 편집 기술은 공간의 디테일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하고, 사진의 질감을 풍부하게 만들어 전통적인 느낌이 강하던 회퍼의 작업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준다. 특히 2017년부터 시작한 <Opera de Paris〉 프로젝트에서는 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를 정밀하게 담아내었다. 이를 통해 회퍼는 전통적인 사진 기법을 현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 언어를 발전시키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회퍼의 최근 작업은 공간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그녀의 예술적 탐구와 기술적 혁신을 계속해서 세계에 선보이고 있다.

 
글 이필 홍익대 교수 
해당기사는 2024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