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장소의 재발견①

개인은 장소와 별개가 아니다. 그가 바로 장소다. 장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장소와 깊이 연루되며, 장소에 대한 애착은 대인관계만큼이나 필수적이고 중요하다. 장소는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는 심오하고도 복잡한 측면이다. 장소는 특정 위치로서 자연적, 문화적 요소들이 고유하게 통합되어 있다. 그리고 이동과 상호작용으로 순환하며 생성과 변천의 역사성을 갖는다. 장소는 개인마다 특정한 의미를 갖는다. 장소는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속성이며 정체성과 안정감의 원천이다.
 
- 이경희, Film-Map 작가노트 中

사진의 장소성은 결국 그 작가가 말하고픈 바를 직접적으로 대변해주는 무대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끊임없이 사진의 장소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실험을 시도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만나본다. 박진영은 치매 걸린 어머니가 꿈꾼 상상 속 장소를, 아들이 사진을 통해 재발견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이경희는 영화 속 한 장면에 나타난 장소를 직접 찾아가, 실재와 허구의 경계에 선 장소의 틈을 발견한다. 엄상빈은 분단이란 현실로 존재하지만, 일상 속에 은폐되는 강원도의 장소성을 재발견하고, 명이식은 ‘도시의 표면’ 시리즈에서 인물들이 사라진 풍경을 통해 도시의 물성을 재해석한다.


장소의 재발견


 

엄마의 창-이즈반도, 2016 ⓒ박진영


박진영 <엄마의 창>
엄상빈 <또 다른 경계>
명이식 <도시의 표면>
이경희
박진영, 어머니가 꿈꾸던 그 풍경

 
「창(窓) 내고쟈 창(窓)을 내고쟈 이 내 가슴에 창(窓) 내고쟈 - 잇다감 하 답답할제면 여다져 볼가 하노라」
- 작자 미상 -


우리 옛 선조들은 답답할 때 가슴에라도 창을 내고 싶다고 노래했다. 창은 다른 세상으로 열린 통로이자, 빛이 투과하는 통로이다. 막막한 벽과 같은 현실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렇게 창을 통해 다른 세상을 바라보며 가능성을 꿈꾸고, 빛을 찾는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그런 창(窓)을 내주고 싶었다. 어머니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환자이다. 스스로는 멀쩡하다고 믿지만, 집을 찾아오지 못하고, 손을 씻다 반지를 잃어버리고, 10분 주기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머니는 타인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고, 함께 공유했던 추억도 잃어버리며, 점차 자신만의 감옥에 갇히게 됐다. 어머니의 병실은 6인실의 가장 벽 쪽, 창도 없는 곳이었다.


일본에 사는 아들은 한국을 찾을 때마다 어머니를 만나 호텔을 잡고 좋은 풍경을 보여드리고, 좋아하시는 회를 사드렸지만 내내 어머니 병실의 흰 벽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를 가두고 있는 감옥 같았고, 때로는 하얗게 바래져가는 어머니의 기억 그 자체 같았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평소 가고 싶다고 동경하던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고, 그 사진으로 어머니의 병실 벽에 창을 만들려 했다.


박진영 작가의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 4월 11일부터 아트스페이스J에서 <엄마의 창> 전시를 열고 있다. 전시장의 사진들은 그가 어머니와 나눈 대화 중, 어머니가 가고 싶어 하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 촬영한 사진들이다. 어머니를 위한 창이기에 프레임을 넣고 창문처럼 연출했다.


 
“아트스페이스J 관장님이 이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이 작업은 꼭 5월에 전시하고 싶다고, 기다리시겠다고 하셨어요. 가족의 달이고 어버이날이 있는 5월에 하자는 거죠. 아직 어머니는 이 전시를 못보셨습니다. 전시 마칠 때 쯤, 살며시 모시고와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전시가 끝나면 작은 사이즈로 인화해서 어머니 병실의 벽에 걸어드릴 예정입니다.”


그의 작품 속 장소들은 미국 플로리다, 멕시코, 핀란드, 일본 등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어머니가 특정 장소를 지정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 만리장성도 한 번 보고 싶었는데’,‘멕시코나 북유럽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라고 지나가며 한 말이나, 몇 번이나 입에 올리시던 ‘후로리다’를 그는 기억해뒀고, 인터넷으로 그 지역을 찾아보고 친구들에게 수소문해서 어떤 장소를 촬영할지 물색했다. 어머니에겐 대중매체나 달력 사진에서 봤던 막연한 추상의 장소, 동경의 장소였고, 아들에게는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발견한,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혹은 선물하고픈 장소였다.

 

엄마의 창- 꿈에 본 폭포, 2017
 
“저 일본 폭포는 가장 최근에 찍은 사진이에요. 두 달 전에 어머니를 뵀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으셨어요, 어머니께서 꿈에 큰 폭포가 나오더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폭포를 찾아 헤매다, 보름 전에 일본 야쿠시마에서 이 사진을 찍었죠. 70m가 넘는 폭포인데, 어머니가 꿈에서 보신 폭포니까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대낮에 장노출로 찍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이 중 가장 잘 찍기도 했고, 폭포물을 뒤집어쓰면서 고생하며 찍은 사진이에요.”

 

엄마의 창-플로리다, 2016


이번 신작에서는 사진 속 붉은 점이 눈에 띈다. 마치 스티커를 붙여놓은 듯 도드라진 이 점은, 태양의 위치로 후반 작업에서 넣었다. 그는 이 사진이 “역광에 도전하는 사진”이라며 “태양을 직시한 역광인 상태에서 촬영을 했고, 태양이 사라져버린 그 곳에 상상 속 태양을 붉은색으로 집어넣은 것”이라 설명했다.

 

엄마의 창-멕시코, 2016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사진 속 장소는 각각이지만 모든 장소에 유독 돌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즈반도의 돌 섬이나, 멕시코의 바위산, 또 바위 속에 고인 물 웅덩이를 찍은 사진들도 있다. 바위와 돌은 그에게는 변하지 않는 물성이자,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매개체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 어머니가 김치를 누를 때 썼던 김장돌들을 하나씩 골라서, 가장 예쁜 돌을 찍은 사진 4장을 함께 전시했다. 그에게 어머니는 매년 소금 묻은 손으로 김칫독 안에 김장을 차곡차곡 넣고, 정성스럽게 돌을 올려놓던 그 모습으로 기억된다. 어머니와 보낸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그는 어머니가 쓰던 돌을 찍었고, 이 돌들은 그가 찍은 장소의 돌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박진영의 전시를 둘러보며 문득 질문 하나가 들었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왜 사진을 찍는가? 홀로 여행가서,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그 풍경에 압도당하다가도 문득 외롭고 서글퍼질 때가 있다. 당신은 왜 이 곳에 없는가? 함께 이 풍경을 보고 나누고픈, 소중한 누군가가 여기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


박진영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그가 어머니와 함께 보고 싶었던 장소들, 보여주고 싶었던 장소들을 그는 차곡차곡 카메라에 담아 사진으로 사모곡(思母曲)을 썼다. 그렇게 어머니가 꿈꾸고, 아들이 발견한 이 풍경들을 담은 전시는 5월 25일까지 진행된다.


 
글 : 편집부
이미지 제공 : 아트스페이스J

해당기사는 2017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