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작가]“꽃의 초상”에서 발견하는 작가의 초상, 구성수

나는 꽃을 찍은 적이 없다는 구성수 작가의 말은 꽃을 꽃으로만 보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물론 꽃병에 꽂힌 실제 꽃이나 땅에 뿌리를 박고 피어 있는 꽃을 찍은 것이 아니라 여러 프로세스를 통하여 작가의 의도대로 변형된 꽃을 찍었으니 그것을 꽃 사진이라 부르기엔 망설여지는 여지가 남는다. 작가가 자신의 꽃 시리즈 작업을 “포토제닉 드로잉” “꽃의 초상” 등으로 부르는 것도 그러한 작가의도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오브제는 꽃이다. 그리고 벌써 한 10년을 지속적으로 꽃을 오브제로 하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젠 꽃의 의인화에 이른 구성수 작가의 꽃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볼 때가 된 것 같다.   


10년 후에도 유효한가?

 

꽃의 초상 <그린 수국>, 1540x1130mm, Inkjet Print, 2017


지금은 물론 알고 있다. 학교에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러나 젊은 시절 그는 뭔가 철저하게 공부하고 깨닫고 싶었다. 그래서 1993년에 대학을 졸업(경일대 사진영상학과)한 후에 대구에서 상경,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에서 공부하고 또 대구로 내려가 계명대 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 석사, 그리고 마침내 2005년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기까지 무려 십 수 년을 대학에 적을 두었다. 그 사이에 작가로서 많은 작업을 했고 작품으로 주목을 받고 큰 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그는 늘 배움에 목말라 했다. 뭔가 완벽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꽃의 초상 , 1540x1030mm, Inkjet Print, 2017


 그가 배움에 집착하고 완벽한 해답을 얻기 위해 노력한 지난 세월은 그러나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1998년에 월간 <사진예술>에서 주최하는 “젊은 사진가상”을 받았던 그가 ‘젊은’을 떼어버리고 오십을 바라보는 중견 사진가가 되면서 이제 그는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해답을 찾는 길을 터득하고 있다며 그는 말했다. “사진 작업에 있어서도 일단 기술적인 면에서 만큼은 완벽해지자고 생각했다”고. 기술이 표현의 세련됨을 뒷받침하는데 세련이란 말 자체가 갈고 닦는다는 의미 아닌가. 갈고 닦음이야말로 곧 기술과 일맥상통하는 단어다.

 
 “저는 작품을 만들 때 10년 후에도 유효한지 스스로 물어요. 당시엔 유명했어도 10년 후에 보면 허점이 보이고 힘을 잃는 작품을 자주 대합니다. 10년 전의 작품이 지금 봐도 기술적인 면이나 세련미에서 변함이 없으려면 그만큼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기술의 완전함과 함께 사진사상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것이 30대 중후반부터 독특한 방법론을 이용한 작품을 내놓는 바탕이 되었다. 오랜 이론공부와 초기의 스트레이트 사진의 시기를 지나 마침내 구성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완벽한 기술과 새로운 시도,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인 감성, 이 세 가지를 주축으로 그는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사람을 찍다가 꽃을 찍다


 

드라이 플라워 <루나리아>, 1540x1030mm, Inkjet Print, 2017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 대부분 그렇듯이 그 역시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출발했다. 탄광을 소재로 한 사진을 발표했고, “서른 살 아내”와 “영웅 시리즈” “서울에서 산다는 것” 등을 차례로 발표했다. 그렇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던 스트레이트 사진이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꽃으로 옮겨갔다. 그때쯤은 사진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가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열어나가고 싶은 욕망에 뒤척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생각했어요. 방법론이 창의적이면 그 결과물도 창의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프로 골퍼들을 보세요. 홀인원 한 번 했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애버리지가 중요하잖아요. 항상 어느 수준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죠. 사진가도 어쩌다가 운 좋게 몇 작품 건졌다고 프로가 되는 게 아니듯이 말입니다.”


 애버리지가 좋으려면 감이 내 입으로 떨어지길 바라면 안 되고 감나무를 심어야한다. 즉 사진가가 작정하고 예측하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시리즈가 포토제닉 드로잉이다. 그는 가장 좋은 계절, 가장 좋은 시간대에 꽃을 찍는 꽃 사진이 아니라 오래 기획하고 여러 번의 손을 거쳐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진을 생각했다.

 

드라이 플라워 <아네모네>, 1540x1130mm, Inkjet Print, 2017


 우선 꽃을 선택하여 찰흙에 넣어 누른 후 석고를 부어 양각으로 만들어서 그것에 색칠을 한 후에 사진으로 찍는, 즉 조각과 회화, 사진을 적절히 혼용한 기법을 고안했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마음대로 꽃을 변형시키거나 색감을 바꿀 수도 있음은 당연하다. 꽃의 드로잉이므로.


 결과물은 꽃의 화석 같았다. 그래서 살아있는 꽃에서 전달되는 생동감은 결핍되었는데 오히려 형태나 발색은 더 인공적으로 아름다운, 미묘한 부조화가 발현해내는 생경함을 느끼게 했다.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의 혼돈스러움과 마치 식물도감을 보듯이 뿌리까지 온전하게 드러낸 꽃의 적나라한 모습이 왠지 더 매력적이고 도드라졌다. 그렇게 구성수 작가의 꽃은 피어났다. 


꽃이되 꽃이 아닌

 

꽃의 초상 <아마릴리스>, 1030x840mm, Inkjet Print, 2017

 
 “포토제닉 드로잉에서는 기법이 독특했고 식물도감 형태를 차용했지만 그땐 꽃을 눌렀을 뿐 찍지 않았지요. 또 꽃의 화석이니 꽃이라고 할 수 없고요. 그런데 이번 꽃의 초상은 사람의 얼굴을 찍듯이 의인화 했습니다.”


 마치 사람을 찍을 때처럼 저 꽃을 어떤 배경 하에 어느 선에서 잘라 찍을 것인가, 연구를 하면서 사람의 자리에 꽃을 대입하여 초상사진으로 찍으니 점점 꽃의 표정이 보이더라고 덧붙였다. 어떤 꽃은 수더분하고 어떤 꽃은 고혹적이고 어떤 꽃은 웃고 어떤 꽃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고... 그런 게 보이기 시작하니 초상으로 찍기가 가능해졌다.
 

꽃의 초상 <실 거베라>, 1030x830mm, Inkjet Print, 2017

 
 “이상하지요? 꽃을 초상으로 찍으면서 인물작업도 더 많이 하게 되었어요.”


 사람을 꽃으로 본다면 인물사진을 더 많이 찍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이어짐일 것이다. 그는 미래의 대형전시를 위하여 타임머신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즉 고등학생의 인물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는 20년 후 어른이 되어서 20년 전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다만 그는 작가로서 스스로 전제를 하나 달았다. 20년 후에 봐도 전혀 힘을 잃지 않는 인물사진을 찍겠다는 것이다.  

 
 “그때는 어른이 되었으니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의 초상사진을 소장하겠지요?”  

 

꽃의 초상 <맨드라미>, 1540x1030mm, Inkjet Print, 2017



 그는 농담처럼 진담을 말하며 하하 웃었다. 아마 상업갤러리 사진가라는 한쪽의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구성수 작가는 그런 말을 들어도 쌀(?) 정도로 작품이 많이 판매되고 유명한 미술관에도 작품이 많이 소장된 작가이다. 사실 전업 작가에게 작품이 많이 소장된다는 것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는 일이다.

 
 “전업 작가에게 작업은 직업입니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할 것이고 전시가 일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3, 4년에 한번 전시하면 전업 작가가 아니지요. 지구상 어디에선가는 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그런 작가여야 전업이고 직업이 되는 것 아닙니까?”


집념의 노력파

 

From the Series of Photogenic Drawing 75x55 cm, C-print, 2011

 

그는 굉장한 노력파이다. 집념이 강해서 하나를 붙잡으면 끝을 볼 때까지 계속한다. 오죽해야 후배들이 “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탈 때까지 계속하면 돼.”라고 답했을까. 후배는 웃었지만 그에겐 농담이 아니었다. 한두 번 심사에서 떨어지면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 그것에 도달하도록, 즉 심사위원이 상을 주지 않을 수 없도록 노력한 작품을 내놓아야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상을 받을 수 있는데 대개 두세 번 도전하고 나면 포기한다는 것. 한 번만 더 냈으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는 2005년에 “다음작가상”을 받자 그 상금 천만 원으로 목공기계를 사서 목공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인천에서 원목을 사다가 액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액자집 기피인물이라고 말하며 웃는 구성수 작가는 50평 작업실 한 구석에 목공실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내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까닭도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 안에 만들 수 있는 장점과 함께 경제적인 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했다. 액자값이 거의 안 들고 재빠르게 전시준비를 할 수 있으니 1년 열두 달 끊이지 않는 전시가 가능하다는 것.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액자집에 가지 않았어요. 한 십년 만드니 전문가의 수준이 되었거든요. 제가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요.”
 

From the Series of Photogenic Drawing 75x55 cm, C-print, 2011


 
한때는 대형카메라를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무엇을 하든 차분하게 연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하는 구성수 작가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신수진 기획자의 말을 인용하면 “작가 활동을 계속하기 위한 여건을 자신이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건을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가 계속 생긴다는 것이다.


 필자가 구성수 작가를 처음 만난 지 20년이 훌쩍 넘는다. 그때 그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는 20대 중반의 청년작가였다. 그동안 그가 작가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이번에 거의 3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마지막에 그를 향해 떠올린 단어는 ‘정성’이었다. 아, 모든 것에 정성을 다하는 작가로구나! 그는 자신의 삶에, 작품에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 바치고 있었다. 


카메라는 행복의 도구


 

 그는 대중적인 사진을 추구한다. 누구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시대가 되면서 사진의 대중화는 현실이 되었다. 그는 주변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걸 즐긴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 친구가 되기도 하고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권위’를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 

 
 “내가 타인에게 나눠줄 수 있는 재능이 사진이잖아요. 그들도 사진가가 찍어주면 좋아하고요. 그렇게 하면서 사진과 가까워지고 사진에 대한 이해도 가질 수 있고, 저변확대랄까요? 그걸 떠나서도 아무튼 그냥 사진 찍어주는 걸 즐겨요.” 


 어느새 경직된 작가가 아니라 자유로운 생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의 “꽃의 초상”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게 아니라 그윽하고 기품 있는 사람의 초상 같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글 : 윤세영 편집주간
이미지 : 구성수 작가

해당 기사는 2017년 10월호에 소개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