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문, 춤을 통한 삶과 시간의 흔적

1994년 춤을 소재로 한 흑백사진 “풀빛여행”으로 첫 전시를 연 이후 2016년 “비천몽”에 이어 2018년 4월 “아리랑 판타지”를 발표하면서 춤을 소재로 했을 때 가장 양재문 작가다움이 드러남을 확인시켜준다.
 



Ⓒ양재문, Arirang Fantasy 14, 300x140cm, Pigment Print on public


벚꽃이 활짝 핀 길을 따라 남산 아래 필동, 양재문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니 곧 떨어지겠구나, 조바심이 앞선다. 봄바람에 흩날려 화려했던 자취를 감추어버리고나면 꿈을 꾼 듯 환상을 본 듯 아련해지리라. 작가의 작업실에도 꿈인 듯 몽상인 듯 여인의 춤사위가 화사하고 아득하다. 1994년 춤을 소재로 한 흑백사진 “풀빛여행”으로 첫 전시를 연 이후 24년 동안 작가는 시간의 흔적을 춤 외에도 다양한 소재로 사유하고 표현해왔다. 그러나 2016년 “비천몽”에 이어 2018년 4월 “아리랑 판타지”를 발표하면서 춤을 소재로 했을 때 가장 양재문 작가다움이 드러남을 확인시켜주었다.


춤과 사진
양재문 작가의 춤 사진은 곧이곧대로 춤 사진이 아니다. 춤을 기록하거나 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춤을 매개로 작가의 생각과 감성을 분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춤이며 어떤 동작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거나 뭉개지거나 생략된 사진은 춤에 대한 정보 대신 안개에 갇힌 것처럼 오리무중이어서 작가 자신조차 감당키 어려웠던 지난날의 자아를 대변해준다.

왜 하필 춤이었을까? 무대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춤꾼을 섭외하고 공간을 빌리고 안무를 정하고 촬영을 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춤을 통하고자 했을까? 그는 한국의 전통춤은 한국의 이미지를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소재이고 따라서 가장 한국적인 미와 한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내게는 한이 많았던 것 같아요. 삶이 늘 갑갑하고 모호했어요.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이... 위로 누님들만 계시는 7대 독자였는데 늦둥이이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어요. 그때부터 누가 뭐라지 않는데도 책임감, 의무감 같은 것이 나를 짓누르고 답답하게 했던 것 같아요. 사진을 공부하러 유학을 가고 싶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고...”


그에게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안 해본 것이 없는’ 극진한 어머니가 계셨다. 아들을 낳기 위해 백일기도를 비롯하여 온 정성을 기울였던 어머니가 아들이 태어난 후 얼마나 지극정성이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가 너무나 고맙고 소중하여 오히려 버거웠던 것 같다. 그의 영혼은 자꾸 외롭게 떠돌았다. 그런 그에게 사진은 ‘숨구멍’이었다. 답답한 세월, 내면의 안개를 헤쳐 나오게 한 것도 사진이었고 사진이 있어 숨을 쉴 수가 있었다고 말한다.
 

“내 사진에는 나의 어머니가 들어 있어요.”


춤을 추는 희미한 자태의 여인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일까. 어머니를 향한 안타까운 애정과 그리움이 설핏 돌아선 여인의 춤사위에서 배어 나오는 듯하다. 막상 현실에서는 자분자분하지 못했던 어머니와 아들의 깊은 마음 속 대화가 사진 속에서는 여인의 춤사위처럼 밀고 당기며 뻗치고 접으며 은밀하고 내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꿈을 꾸면 늘 어머니가 떠도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믿지도 않으면서 어머니를 위해 천도제를 지내드렸습니다. 그 후 어머니가 비로소 편안해지신 걸 느끼게 되면서 나도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느끼게 되었어요. 초기의 춤 사진부터 ‘비천몽’ 이전까지가 나의 한을 풀어내는 과정이었다면 올봄에 발표한 ‘아리랑 판타지’는 희망과 위로, 신명을 담으려고 했어요.”


 


Ⓒ양재문, Blue Journey 01, 60x50cm, Gelatin Silver Print on paper



Ⓒ양재문, Blue Journey 02, 142.5x95cm, 60x50cm, Gelatin Silver Print on paper



 Ⓒ양재문, Heavenly Dream 59, 142.5x95cm, Pigment Print on paper


시간이 의미하는 것
춤은 순간의 예술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린다. 마치 꽃이 피었다 지듯이 아주 잠깐이다. 사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사진은 순간의 선택이지만 오래 기억되는 장치를 갖고 있다. 춤은 눈에 잔상으로 남고 사진은 잠상으로 남는다.

“사진이 순간의 멈춤일까? 사진을 하면서 늘 시간에 대해 생각했어요. 물론 사진이 찰나의 순간을 고정시키는 것이지만 흘러가는 시간의 한 단면을 잘라낸다고 해도 여운은 남아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시간의 흔적을 표현하고 싶어 느린 셔터를 썼어요. 찰나의 앞과 뒤까지 담고 싶었거든요.”


젊은 시절 그는 국립극장과 MBC문화방송에서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하면서 춤을 알게 되었다.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춤을 경직되게 고정시키는 것이 춤의 본색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인 한스러움의 표현도 정지화면에선 깊이와 두께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흐림으로써 그 본질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여백과 은유를 통하여 상상의 공간을 넓히고자 한 것이다. 즉, 사진이 갖는 속성을 이용해 시간의 완급을 조절함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냈다.
 

“결국 이제까지 시간에 대한 고민을 사진에 담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과 더불어 한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 시간 앞에서 누구나 느끼는 유한성, 덧없음에 기인하는 것이겠지요.”


작가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춤으로만 풀어온 것은 아니다. “흐르지 않는 시간”을 비롯한 여러 번의 전시를 통하여 다양한 소재로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해왔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 문화유적지 또는 인물사진을 통해서 시간의 흔적을 좇았고 시간의 파편들을 보여주었다. 마치 영원히 흐르는 시간 앞에서 무력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갇혀있던 작가가 돌연 2013년에 “Free Again”이라는 선언적인 제목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사진이 나 힘들다는 식의 응석이었음을 깨달았어요.”


사진이 작가에게 숨구멍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의 사진이 모두에게 위로를 주는 숨구멍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들은 작가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나 혼자라는 생각, 모든 것을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자,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자.”로 바뀌면서 “비천몽” 작업은 한결 밝아졌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서로 통했나 봐요. 비천몽을 발표하고 거의 1년 반 동안 계속 초대전이 끊이지 않았고 소장자들도 많이 나타났어요. 신명으로 풀었더니 신명 나는 일이 계속 생긴 셈이었어요.”


그 과정을 통하여 더불어 가자, 한을 희망으로 바꾸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여럿이 함께 추는 군무로 나타났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어우러짐을 통해 작가는 한결 자유로워진 그의 의식을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양재문, Arirang Fantasy 03, 156x395cm, Pigment Print on public



Ⓒ양재문, Arirang Fantasy 13, 300x140cm, Pigment Print on public



아리랑 판타지
전시를 하면서 그는 작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이번 ‘아리랑 판타지’ 작업에서는 비천몽 후속시리즈 외에 아리랑 가락을 떠올리면서 작업한 군무시리즈가 더하여졌다. 아리랑에는 시대적 아픔을 겪어오면서도 슬픔과 한스러움을 넘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기운이 살아 있다. 나누는 마음으로 임한 작업이 누군가에게도 위안의 빛으로 전해지길 소망해본다.”


작가는 이제 자신의 한을 넘어서 시대의 한을 보듬고 공감하며 위로해주고 싶어 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춤의 질감과 감정의 깊이를 살리기 위해 사용한 대형 한지에 고스란히 프린트되었다. 전통춤이라는 소재와 한지가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질감과 두께가 있는 한지를 통해 다층적인 작가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경률 교수(중앙대)는 이번 전시작에 대하여 “작가가 보여주는 한국무용의 율동과 그 흔적은 자신의 무의식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말하자면 환상의 향연으로 나타난 흐린 춤사위는 지나온 삶의 회한과 더 이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이미지로 전이된 것들임과 동시에 응시자 각자의 심연에 내재된 기억을 자극하는 일종의 자극-신호가 된다. 예술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평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춤이 되고 사진이 된다면 춤도 사진도 흐릿하고 모호한 채로 꿈(夢)이 되고 판타지로 귀결되는 것이리라.

인터뷰 중에 작업실 한 구석에 북이 보이기에 한 가락을 청했다. 전에 사철가를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북채를 잡더니 그가 남도민요 “흥타령”을 구성지게 불렀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것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라는 꿈, 꿈을 꾸어서 무엇허리



인생이 한바탕 꿈인 양 부질없음을 일찍 알아버려 방황했고, 한스러움을 어쩌지 못하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육십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작가는 삶의 저릿한 슬픔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고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왕 모두가 꿈이라면 악몽 대신 길몽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사진 ⓒ곽명우



사진 ⓒ곽명우



한국의 정신을 찾아서
“내 나이 서른에 기도했어요. 사진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요. 사실 전업 작가라는 것이 막연한 꿈이던 시절이었잖아요. 물론 지금도 크게 바뀐 건 없지만요. 그런데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30년을 살아남았고 지금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으니 꿈만 같아요.”

그는 춤 외에도 진달래를 소재로 한 작업을 5년째 계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를 택하는 게 아니라 그 소재로써 한국인의 정신, 마음을 해석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는 한국의 토속신앙에서 한국의 정신을 포착해내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다. 종교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한국인의 마음에 깃들여져왔던 그 무엇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꼭 무엇을 해야겠다는 것보다 그냥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고 싶어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가고 싶은 길이라서 가고 싶은 거죠. 육십이 넘었으니 조금 더 자유로워져도 좋잖아요? 다만 한 가지,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일이길 바래요. 그런 사진을 남기고 싶고요.”


초승달도 달이고 보름달도 달이다.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춤을 찍든 진달래를 찍든 토속신앙을 찍든 양재문의 사진일 뿐이다. 그 달이 그 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내가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고집도 버렸고 마음부터 앞서는 것도 내려놓고 자신의 본질로 들어가 가장 나다운 작품을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펼쳐 보이겠다는 것이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양재문 작가에게 앵콜로 청해 들은 ‘사철가’를 흥얼거리며 작업실을 나왔다. 수없이 많은 봄을 겪어본 후라야 봄이 짧고 덧없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것을 안다. 인생의 봄과 여름을 지나 어느덧 가을 한복판에 선 양재문 작가. ‘풀잎’ 같은 여린 시절을 지나 ‘비천몽’에서 ‘아리랑 판타지’까지 이른 원숙한 작가가 앞으로 어디까지 가 닿을지 기대가 된다.

 

글 :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18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