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드레스는 중요하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먹어서는 안 되는 금기의 선악과를 따먹었고 이를 통해 선과 악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선악을 구별하게 된 그들이 제일 먼저 인식한 것은 그들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옷은 일종의 타자를 인식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옷은 타인의 시선이 기입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옷은 많은 시간을 거쳐 기능적 장치에서 하나의 강력한 상징체계로 진화해왔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며,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경제적인 위치에 있는지 보여준다. 때문에 작가들은 옷과 예술의 상호작용을 통해 ‘옷’의 이미지를 젠더와 나이, 윤리, 역사, 경제의 개념으로 재배치한다. 

 

ⒸEbony Patterson, Entourage, 2010


드레스는 중요하다
<Dress Matter : Clothing as Metaphor>



2017년 10월 21일부터 2018년 2월 18일까지 미국 애리조나에 투손 미술관(Tucson museum of Art)에서 전시하는 <Dress Matter : Clothing as Metaphor>는 옷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 들여다본다. 옷을 바탕으로 여러 미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전 세계의 작가 50명이 이 전시에 참여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부터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는 떠오르는 작가들까지, 옷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주목한 작가들이다. 이들은 옷을 하나의 패션적 장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하나의 정체성을 구현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옷’이라는 하나의 큰 덩어리를 작가들이 집중하는 메시지에 따라 여러 갈래로 세분화해서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구성은 옷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따라 전시의 구조를 구성한다. 전시 기획에 따르면 옷은 ‘종교’이며, ‘사회’이고, ‘욕망’이며, ‘권력’이고, ‘정체성’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부재’를 드러내기도 한다.


 

ⒸSama Alshaibi, Wasl (Union), from the project "Silsila", 2017


이라크 팔레스타인 출신의 작가 사마 알샤비(Sama Alshabi)는 옷과 ‘종교’와 관계에 대해 들여다본다. 다양한 시대와 문화 안에서 옷은 종교적인 규율과 엄숙함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가령 이슬람 코란에 따르면 이슬람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는 부르카나, 히잡, 차도르 같은 천으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 이러한 의상은 여성의 자기 정체성을 제한한다. 때문에 그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영상을 통해 종교적인 이유로 옷을 통해 자신의 몸을 가려야하는 이슬람 여성의 복잡한 환경적·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인도 출신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라구비르 싱(Raghubir Singh) 또한 종교적 위엄을 지키기 위해 더운 환경 속에서도 사리를 입는 아시아 여성을 건조한 시선으로 담아오고 있다.

 
ⒸKate Daudy, The Diary, 2009


옷은 또한 사회적 ‘규범’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출근을 하거나, 사교 모임에 참석하거나, 공연장을 가는 등, 옷은 때로 어떤 장소와 시간, 그리고 그곳을 구성하는 사람들에 의해 엄격한 규칙으로 작용한다. 특히 그러한 규범이 가장 크게 형성된 곳이 결혼식이다. 결혼식의 모든 과정에는 엄격한 의상 스타일이 있다. 웨딩드레스는 여성의 로망이기도하지만, 행사의 순서마다 맞춰야하는 옷의 형태는 다양하고, 그것의 노출의 정도, 색깔 등은 하나의 규범이 되기도 한다. 특히 여성은 그 옷에 맞춰 몸의 라인을 만들어야하며, 자유로운 움직임을 제한당하기까지 한다. 런던 출신의 작가 케이트 도디(Kate Daudy)는 이러한 규칙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웨딩드레스를 비튼다. 하얗게 빛나야 할 순백의 긴 드레스 뒤에는 불만을 갈겨쓴 듯 빨간 글씨들이 수놓아져있다.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페미니스트적 시선으로 화이트 드레스 속에 가려진 강요된 처녀성의 신화를 비틀고 있다.

 

ⒸAgata Stoinska, Mirror 2, 2007


아리조나 출신의 조각가 로버트 브랙케티(Robert Bracketti)와 더블린에서 작업하는 사진작가 아가타 스토인스카(Agata Stoinske)는 옷과 연관된 ‘욕망’과 ’매력’에 대해 드러낸다. 로버트는 아름답지만 신을 수 없는 메탈 신발과 뷔스티에를 제작한다. 아가타는 옷과 판타지의 관계에 주목한다. 패션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가 담은 사진은 꿈처럼 몽롱하고 아름다운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자세히 보면 패션사진과는 전혀 디테일이 다르다. 흔히 패션사진에서 거울을 보는 여성은 나르시즘에 빠질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암시하지만, 그의 사진에서 거울 속 여인은 아이를 안은 채 피곤한 표정으로 거울 밖 자신을 응시하고, 거울 밖의 여인은 그런 자신을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외면하고 있다. 그는 마케팅 목적으로 환상을 보여주는 패션 사진과 같은 방식을 취하면서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이를 뒤집고 역전시킨다. 즉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우리의 꿈이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비현실적 욕망임을 패션 사진의 형태를 빌어 풍자하는 셈이다. 

 

ⒸClaudio Dicochea, De Libertad y el Generalisimo, un Eco
(of Liberty and the Generalissimo, an Echo), 2010


옷을 잘 입는다는 건 매력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권력’을 드러낸다. 즉 거기에는 자신감, 성공, 파워가 내재한다. 옷을 어떻게 입느냐는 우리 자신을 드러냄과 동시에 상대방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뉴올리언스에서 작업하는 윌리 버시(Willie Birch)는 옷을 통해 노동자와 고용주 간의 구분을 통해 문화적 역사를 추적한다. 멕시코 출신의 작가 클라우디오 디코치아(Claudio Dicochea)는 18세기 스페인 엘리트 집단에 의해 인종별 계급 구조를 묘사한 ‘카스타 회화’를 현대적으로 수정해, 의상을 통한 현대 사회의 사회 계층을 재현했다. 흥미로운 점은 가족 구성원들의 얼굴을 유명 미디어나 만화, 세계사 속 전형적인 얼굴로 대체해 개별 정체성이 소거된 가면 같은 현대인들의 얼굴을 풍자한 부분이다. 


ⒸMosse, Richard, Better than the Real Thing II, 2012
 

그리고 권력과 복종과 같은 힘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의상 중 하나는 군복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가장 흥미로운 작품 중 하나는 아프리카 콩도 군인의 유니폼을 담은 아일랜드 출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리차드 모스(Richard Mosse) 사진이다. 이 작품의 중앙에 서 있는 피사체는 사실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세워진 허수하비이다. 실체 없이 텅 빈 내부로 서있는 이 의상은, 권력만 남은 채 사라진 병사들을 연상 시킨다. 그리고 이 기이한 이미지를 통해 죽음과 전쟁의 무용함을 드러낸다. 
 

ⒸWendy Red Star, Four Seasons: Spring, 2006
 

ⒸWendy Red Star, Four Seasons: Summer, 2006



ⒸWendy Red Star, Four Seasons: Fall, 2006
 

ⒸWendy Red Star, Four Seasons: Winter, 2006


우리는 옷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옷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소속과 문화 등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가령 제이 듀사드(Jay Dusard)의 작품은 카우보이 의상을 입은 남성들이 그 옷을 통해 자신의 지위와 직업, 행동 또는 포즈를 어떻게 인식하고 드러내고자하는지 담아냈다. 한편 웬디 레드 스타(Wendy Red Star)의 경우 미국 인디언 크로(Crow)족의 의상을 입은 한 여성을 사진에 담는다. 그러나 중앙에 위치한 소수민족 여성의 뒤의 사계절 풍경은 모두 인위적인 사물들이다. 넓은 들판과 호수, 동물들은 모두 가짜다. 작품은 사라져버린 과거의 환경에도 소수민족의 모습을 재현하며 그 의상이 상징하는 자신의 소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화하려는 인물의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옷은 ‘정체성’이자 ‘권력’이고 ‘규범’이고, ‘욕망’이며, 시대의 ‘변화’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은 이러한 구분에 의해서만 설명할 수도 없고, 어떤 상징성은 퇴화되기도 하고, 어떤 상징은 새로운 환경에서 진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도 할 것이다. 또한 그 다양한 형태의 상징들은 서로 상호작용하기도 하고, 긴장을 유지하며 변하기도 한다. 


옷은 경계 없이 움직인다. 그것은 계속 변화하고,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이번 전시를 기획안 수석 큐레이터 줄리 잣세(Julie Sasse)는 이번 전시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매체로써 사용된다”고 말하며 “우리가 입는 모든 것은 우리가 누구고, 동시에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인식되기를 원하는지 보여주는 언어”라고 설명했다. 


옷은 말없는 대화이다. 옷은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것은 우리의 오래된 동반자로써 우리를 보호하고, 알리고, 정의한다. 이 모든 상징들 때문에 하나의 상징으로써, 옷은 중요하다. 


 
글 오은지 기자
이미지 제공 Tucson museum of Art


해당 기사는 2017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