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어떻게 그림이 됐는가? ①베허 학파 - 사진이 회화가 되기까지

베허 학파 - 사진이 회화가 되기까지
FOTOGRAFIEN WERDEN BILDER - Die Becher-Klasse

독일 슈테델 미술관 Städel Museum

1976년부터 1998년까지 약 70여명의 학생이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사진학과의 ‘베허 클라스’에서 공부했다. 2017년 여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슈테델 미술관에서 이루어진 전시 <베허 학파 - 사진이 회화가 되기까지 (FOTOGRAFIEN WERDEN BILDER  - Die Becher-Klasse)>에서 베허 부부와 그들의 초대  제자 중 9명을 선발하여 그들의 작업을 선보였다. 큐레이터 마틴 엥글러(Martin Engler)와 공동 큐레이터 야나 바우만 (Jana Baumann)은 수 많은 제자 중 폴커 되네(Volker Döhne), 안드레아 구르스키(Andreas Gursky),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악셀 휘테(Axel Hütte), 타타 론콜츠(Tata Ronkholz),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외르크 자세(Jörg Sasse), 토마스 슈트루트(Thomas Struth) 그리고 페트라 분더리히(Petra Wunderlich)를 선발하였다.


 

ⓒThomas Ruff (1958) Portrait (G. Benzenberg), 1985, Chromogenic colour print, 41x33cm



ⓒThomas Ruff (1958) Interior 1 D, 1982, Chromogenic colour print , 47x57cm
 

“베허 부부는 독일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사진과의 첫 번째 교수였다. 1959년 권위 있는 예술 대학에서 사진을 기능적 도구 이상의 예술 장르의 한 매체로 여기고 독립된 전공과목으로 설립하였다. 이렇게 설립된 사진과의 첫 교수로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Bernd und Hilla Becher)가 임명되었다.” - 큐레이터 마틴 엥글러(Martin Engler)


그룹 사진전의 타이틀에 교수의 이름과 그의 반(클라스)이 명명되어 졌다. 엥글러는 '베허 클라스'는 오늘날 단순 어느 미술대학의 과를 지칭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의 예술 현상으로 일컬어진다고 말한다. 그들은 교수이자 작가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의미를 지닌 특별한 사진 세대를 창조한 두 인물로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베허 클라스가 만들어낸 예술 현상은 단순히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의 한 과에 여러 학생이 모여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전시를 통하여 이름만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베허'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배경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며 이들이 예술사에서 어떻게 기록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 명만으로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베허 클라스'의 특징과 그들이 나아간 방향을 9명의 사진가가 모두 모여 관객들에게 깊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베허 부부는 1960년대 독일 서부의 지겐(Siegen)지역의 독일식 공업 건물 시리즈를 촬영하였으며 이를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한 작업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유형학’이라는 사진의 새로운 양식을 완성하였으며 그들의 초대 제자들 역시 80년대 후반 현대미술에서 사진이라는 매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유형학’이란 존재하는 대상을 카메라 렌즈에 온전히 담아 어떻게 카테고리화 하는지에 따라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는 분류학적 기법을 말한다. 회화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복수 제작이 수월한 사진의 특성을 잘 살린 방식이다. 다수의 사진 작업을 항목에 따라 여러 가지 군으로 나누어 그 당시의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기록이 가능하여 시각적인 사회학 보고서로 여겨지기도 한다.

국제적으로는 물론 독일 내에서도 베허 부부와 그 제자들의 전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유명 사진가로 떠오른 그들의 작업을 한데 모아 감상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의미 있고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에 관한 몇 가지 질문에 큐레이터 마틴 엥글러는 간략한 대답으로 이해를 도왔다.

9명 제자의 작업을 단순히 ‘베허 스타일’이나 작업 배경 혹은 테마 등으로 분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베허 클라스’ 제자들의 작업을 전시하며 주로 초점을 맞춘 내용은 무엇인가?
엥글러_어느 시대나 예술가의 태도나 작품의 경향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이 붙는다. 즉, 예를 들어 '인상파(혹은 인상주의)'나 '기하학 양식'처럼 말이다. 이러한 이름은 각 화풍에 따라 회화 작품이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명확한 차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베허 부부가 창시한 '유형학'은 작품 속 오브제의 시각적 특징이 아닌 내용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 렌즈를 통하여 실제의 오브제가 얼마나 정확하고 동일하게 표현되느냐가 관건이었던 카메라의 전통적인 기능을 벗어나 실제 오브제의 비율과 그들의 관계를 주제별로 구분하고 알아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처럼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하여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며 그 당시에는 미미했던 예술사에서의 사진의 위치를 개념미술의 일환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Axel Huette (1951) Moedling House, 1982_1984 Gelatine silver print on baryta paper, 66x80cm



ⓒAxel Huette (1951) Castellina, 1992 (2015) Chromogenic colour print, 98.4x120.3cm


베허 클라스의 학생들은 기존 사진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엥글러_그들은 관객이 사진 작업을 감상할 때에 '무엇을' 보는가가 아닌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로 명확한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어쩌면 아름답고 인상적인 이미지를 기대한 관객에게 실망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사진 작업은 단순 '이미지'전달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을 보는 방법에 대해 제시된 그들의 아이디어는 1980년대와 90년대의 예술계에서는 새로운 시도였으며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제의 오브제를 어떻게 인지하고 표현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온전히 회화 작가의 것이었다. 회화에서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수 백 년 전의 전통적인 회화방식으로 여겨졌으며 오래전부터 작가의 의도에 따라 오브제를 표현하고자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 왔다. 사진사에서는 마침내 베허 부부로 인하여 오브제를 인지하고 표현하는 방식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제자 중 한 명인 안드레아 구르스키(andreas gursky)는 현재 동 대학에서 베허 부부가 있었던 자리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생으로 수업을 듣던 시절이 이미 수십 년 전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시간의 소중함을 값지게 회상한다. ‘베허 클라스’ 전시에 관하여 당연히 나오는 질문인 본인들의 교수에 대한 질문에 몇몇 작가들은 이미 알고 있기도 혹은 전혀 모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실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사진학과에 지원할 때 베허 부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어요.” - 토마스 루프 (Thomas Ruff)

“배허 클라스? 누가 베허 클라스에 있는데?” (베허 클라스 지원 당시) - 토마스 슈트루트 (Thomas Struth)

“베허 클라스의 학생이었던 것은 좋았다. 특히 베른트 베허는 선생 이상이었다. 그들 아래에서 공부를 마치고 많은 것을 배웠지만 무엇보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의미였다. 즉, 그것은 나에게 비젼을 제시해 준 것이다.“ - 캔디다 회퍼(Candida Höfer)

“처음 베른트 베허는 내 사진 속에서 원색의 컬러가 작업 내용과 어떠한 연결성을 지니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 폴커 되네(Volker Döhne)



ⓒVolker Doehne (1953) Untitled (Colourful), 1979 (2014) Colour print from colour transparency, 37x47cm





전시전경


큐레이터 마틴 엥글러는 그 중 폴커 되네(Volker Döhne)의 작업에 주목하였다. 폴커 되네는 베허 클라스 시절 처음으로 흑백이 아닌 컬러 사진 작업을 선보였다. 자동차와 건물의 빨강, 노랑, 파랑 등의 강조된 원색이 담겼으며 내용으로는 유형학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은 시리즈이다. 처음 베른트 베허는 그의 사진 속에서 원색의 컬러가 작업 내용과 어떠한 연결성을 지니는지 알지 못하겠다는 피드백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폴커 되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지 명확하게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자신의 확신 아래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제자들의 초반 작업은 비슷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베허 교수의 가르침 아래에 그들의 방식에 큰 영향을 받은 것임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대부분 장식 없는 흑백 사진으로 같은 구도의 건물이면 건물, 도로면 도로 등 같은 주제의 오브제를 분석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만들어 내고 개념이 더해져 각각의 힘 있는 사진가로 성장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있다. 유형학의 창시자의 제자인 만큼 개념적인 사진 작업을 추구하고자 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토마스 슈트루트는 ‘하나의 사진으로만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으며 토마스 루프 또한 ‘하나의 사진으로는 그 사진 속의 오브제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겠지만 여럿의 작업으로 구성된 시리즈는 작가가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진행하는지 관객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전달 될 수 있다’고 말한다. 10점, 20점 혹은 그 이상의 연속된 작업을 통해 작가의 의도가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카메라를 이용하여 복수의 작업이 가능한 사진 작업은 오랜 시간에 걸려 하나의 고유한 작업을 탄생시키는 전통적인 회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 매체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전 인터뷰에서 토마스 슈트루트 Thomas Struth 는 특히 인물을 찍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흑백의 거리 시리즈를 촬영하고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공장이나 병원 등의 쉽게 공개되지 않는 장소나 정글과 같은 자연을 기록적 형식으로 촬영하던 그가 어느 날 가족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는 자연스러운 계기로 인물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말한다. 1985-86년 에든버러에 3주, 일본에 7주 머물면서 낯선 지역에서 자신을 도와주었던 집 주인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가족사진을 찍어준 것이 시발점이었다.  
사진을 찍고 독일 뒤셀도르프로 돌아와 현상하며 뜻밖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 테마를 얻었다. 그는 온 가족이 한 공간에 모이고 사진가의 특별한 지시 없이 가족 구성원 스스로 자리 배치를 하고 포즈를 취한 체 정면의 카메라를 향하여 담백하게 응시하는 사진에서 큰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다이나믹한 작은 사회가 발생하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들 스스로 촬영을 위하여 서거나 앉는 위치를 정하고 포즈를 취하는 과정은 그들이 속한 작은 사회인 가족의 방식과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인 사진 양식으로 여겨진 가족사진이지만 그에게는 새롭게 보였으며 ‘가족사진 프로젝트’는 점점 확대되어 영국 엘리자베스 부부의 모습까지 담았다.

베허의 제자들은 영향력이 큰 베허라는 뿌리를 타고 자랐지만, 그것에 눌리지 않고 자신만의 것으로 발전시켰기에 사진 예술사에 하나의 주요한 현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공동 큐레이터 야나 바우만은 이 전시 역시 그 점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들은 모두 사진을 예술적인 매체로써 재발견 했다. 그들은 개념 예술, 미니멀리즘, 마지막으로 회화에서 사진으로의 변형과 그 매체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그들은 알맞은 시대에 알맞은 장소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야나 바우만

 

글 조희진 통신원 이미지제공 Städel Museum
해당 기사는 2017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