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전설들>앙드레 케르테츠 (1894-1985)


<20세기의 전설들>
알렉산더 로드첸코 (1891~1956)
앙드레 케르테츠 (1894-1985)


20세기 사진사를 대표하는 두명의 작가. 알렉산더 로드첸코와 앙드레 케르테츠.
동시대에 활동한 두 작가는 기존의 회화적 관습을 거부하고 사진 매체만의 새로운 관점을 실험했다.
그러나 각각 러시아과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한쪽은 사회의 풍경을, 다른 쪽은 내면의 풍경을 담았다.
즉 사진의 생산성을 실험하는 로드첸코와 예술성을 실험하는 케르테츠.
두 개의 다른 풍경이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하는 여전히 던지고 있는 질문은 다르고, 같다


도시의 산책자
<앙드레 케르테츠>


 

우울한 튤립, 뉴욕
Melancholic Tulip,New York, 1939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한 장면 속의 요소들이 내 눈을 만족시키는 구도로 정렬될 때까지 다양한 앵글로 주제를 관찰하며,
나는 그저 걸어 다닌다.”

- 앙드레 케르테츠


19세기 말 산업화된 파리의 도심 속에서 멜랑콜리한 시선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보들레르, 벤야민은 보들레르처럼 신문 가판대, 카페 테라스, 벽보 등 파편화된 도시의 주변을 카메라처럼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대적 인물을 ‘도시의 산책자’라고 불렀다. 거리의 군중 사이에서 혼자 부유하면서 근대적 시선으로 그 주변의 풍경을 담아내는 이 산책자의 무위無爲는 벤야민과 같은 시기에 파리를 중심으로 거리의 일상을 담아낸 앙드레 케르테츠에게서도 발견된다.

 

샹젤리제, Champs-Elysees, 1929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70여년의 활동 기간 동안 그는 부다페스트와 파리, 뉴욕을 옮겨 다니며 도시 곳곳의 일상적 이미지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 내면적인 풍경은 마치 일기와 같은 기록이었다. 그의 사진은 초현실주의적인 형태를 띠기도 하고, 사실주의적인 기록이기도 하고, 모더니즘적인 순수성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여러 사조에 의해 해석되어지지만, 케르테츠의 작품이 지닌 특별함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사조들을 가볍게 가로질러 간다는 점이다.

 

동물시장, 생미셸 선창, 파리
Animal Market, Saint-Michel Wharf, Paris, 1929-1928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사진을 독학으로 익힌 그에게 사진은 어떠한 해석적 틀에 의해서 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대상을 직접 찾아가는 대신, 그가 살던 도시를 산책하면서 천천히 대상을 기다렸다. 그래서 이번에 6월 9일부터 9월 3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앙드레 케르테츠의 전시는 그가 산책자처럼 걸어 다니며 머물렀던 각 시기의 도시별(헝가리1912-1925/파리 1925-1936/뉴욕1936-1985)로 구분되어 있다.

 

부다페스트, Budapest, 1915,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1894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그에게 피사체는 주변의 목가적인 풍경을 비롯해 가족들과 이웃, 친구들이었다. 본 전시의 <헝가리>(1912-1925) 섹션에서는 그가 초창기 시절에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일상에서 찍은 시적이고 서정적인 풍경들을 보여준다. 사소하지만 따뜻한 그의 초기 사진 속 시선은 이후 그의 활동 내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나타난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군에 징집된 상황에서도 그는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전쟁을 역사적인 한 장면이 아니라, 현장 안에 있는 군인들과 그들의 평범한 모습을 담았다. 그가 담은 풍경은 참호 속에서 기다리는 병사들의 모습과 긴 행렬을 이루며 걸어가는 모습들이었다.

 
포크, 파리, The Fork, Paris, 1929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 Mondrian's Glasses and Pipe, 1926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이후 1925년에 파리로 온 케르테츠는 다다,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등 모더니즘 예술 운동의 선구자들과 예술적으로 많은 교류를 나눴다. 그러나 만 레이, 몬드리안, 샤갈, 콜레트, 짜라와 같은 당대 최고의 아방가르드 작가들과도 교류 속에서도 그는 하나의 사조에 치우쳐 그 틀 안에 갇혀 있기를 거부하고, 일상적인 풍경 안에서 자기 자신만의 감성과 시선을 담은 이미지들을 담아왔다. 동시에 그는 형식적인 실험 또한 다양하게 전개했다. 전시장의 <파리>(1925-1936) 섹션에서 볼 수 있는 이 시기의 그의 작품 <포크>(1928)나 <몬드리안의 파이프와 안경>(1926)은 오브제의 배치와 화면의 구성, 음영의 대비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냄으로써 훌륭한 형식을 구현해냄과 동시에 형식을 꿰뚫는 명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시선을 순수하게 표현해냈다. 또한 소파에서 조각가 이슈트반 뵈티의 작품을 따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무용수 막다 푀르스트너의 모습, <풍자적인 무용수>(1926)을 통해 평면적인 사진 안에서 교차하는 각도와 기하학적인 구성의 역동성으로 새로운 형태를 계속적으로 실험하는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수영하는 사람, 에스테르곰, 헝가리, Swimmer Under Water, Esztergom. Hungary, 1917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그는 이러한 실험 정신을 1933년 <왜곡> 시리즈를 통해 더욱 극대화한다. 이미 1917년에 <수영하는 사람> 작품으로 물결과 빛에 의해 왜곡되는 몸의 형태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변형 거울을 통해 기괴하게 일그러진 몸의 왜곡 사진들을 작업했다. 그는 여성의 누드 사진을 아름다운 신체로 담아내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거울 반사를 이용해 뒤틀고 왜곡시킴으로써 자신만의 조형적 언어를 획득한다.

 
새로운 모더니즘의 실험적 조형 언어인 거울 유희, 반사, 그림자와 복제, 전면 구성, 혹은 야경과 명암의 대비 등을 표현기법으로 활용하면서 사진적 아방가르드의주역이 되었다
- 전시 서문 발췌


이 낯선 이미지들은 후에 다시 조명을 받고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1936년에 사진대행사 키스톤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뉴욕에 머물렀지만, 왜곡 시리즈와 새로운 작품이 연이어 실패하고, 케르테츠의 작업이 미국의 상업 사진 시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멜랑콜리적인 시선은 뉴욕의 거리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는 그 당시의 많은 작가들이 주목하였던 미국의 사회적 장면에 몰두하기보다, 주변의 일상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

 
케르테츠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처럼 시대적, 사회적 장면을 잡아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뉴욕의 황폐한 벽돌담, 그림자나 철근 구조물, 외부 계단의 얽힘 속에 자신의 멜랑콜리를 주입하였다. 그에게 뉴욕이란 마치 생각의 공명상자와도 같아서, 자신의 생각들을 사진으로 되돌려 주었다.
- 전시 서문 발췌

 

길 잃은 구름, 뉴욕, Lost Cloud, New York, 1937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깨진 원판, 파리, Broken Plate, Paris, 1929


그 당시에 그가 찍은 <길 잃은 구름>(1937)에는 록펠러 센터와 마주친 한 점의 구름이 담겨있다. 이 사진은 뉴욕의 거대함을 상징하는 건물에 부딪힌 한 개인, 케르테츠를 상징한다. 그는 뉴욕에서 느낀 외로움의 정서를 바탕으로 거리에서 이벤트나 사건이 아니라, 자신만의 사적인 일기를 기록해왔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1959년 <인피니티> 잡지가 실은 그의 기사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마침내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을 치루며 그의 작품이 지닌 예술성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70년이라는 긴 활동기간 동안 이 산책가가 우리에게 보여준 풍경은 거리와 실내, 사물과 초상화까지 다양하다. 그 형식은 사실주의적이며, 모더니즘적이고, 초현실 주의적이다. 그는 형식과 주제에서 자유롭다. 그 당시 회화적 관습과 규범에 메어있지 않은 그의 자유로움은 대상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는 그의 진정성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감상주의자의 것이 아니다. 그는 감정과 함께 구성과 형식, 배치의 아름다움을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드러냈다. 즉 완전한 형식적 아름다움 안에 자신만의 심미적 시선으로 대상을 들여다보는 진정성을 통해 그는 휴머니즘적인 감수성과 아방가르드적인 실험성을 획득했다.


 
글 오은지 기자
이미지 제공 성곡미술관


해당 기사는 2017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