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마르타 지에스카(Marta Zgierska), 우아한 상처

어떤 작가들은 사진 속에 자신이 살아온 생애와 감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마르타 지에스카(Marta Zgierska)의 사진이 그러하다. 마치 통조림처럼 한 장의 이미지에 그가 겪은 감정의 동요와 트라우마가 단단히 압축돼있다. 작가가 겪은 공포와 불안, 트라우마 등의 개인적 경험을 상징적인 오브제를 통해 시각화한 그의 사진은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일견 냉혹해 보이기조차하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자꾸만 안 보려 해도 결국 시선이 가는 상처 자국처럼.


불안, 트라우마, 그리고 사진
Marta Zgierska


 
 
“나는 내 안의 공포를 심미적인 이미지로 드러내고 싶었다”


Marta Zgierska는 'Post' 시리즈의 시작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얼어붙은 듯한 잿빛의 배경 속 단단한 오브제들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형상화한다. 보는 이에게 긴장과 침묵을 느끼게 하는 그의 고요한 사진들은 단순하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죽음과 공포, 불안 등 우리 삶에 남은 상처자국들을 돌아보게 한다.

 

Untitled, from the Post series, courtesy of Gowen Contemporary Gallery ⓒMarta Zgierska


폴란드 태생인 마르타 지에스카(Marta Zgierska)는 2015년 ‘Post' 시리즈를 발표하며 국제 사진계에서 급격하게 주목받았다. 그는 ‘Post’ 시리즈로 2015년에  LensCulture Emerging Talent Awards를 수상했으며, 2016년에 Prix HSBC pour la Photographie, Daylight Photo Awards 등을 수상하는 등 2년간 20여 개 넘는 국제적인 사진상을 수상하거나 후보로 선정됐다. 이전에도 작업은 해왔지만 전시경력은 많지 않았던 마르타 지에스카는, ‘Post’ 시리즈를 발표하며 프랑스, 일본, 스위스, 미국 등 전 세계를 돌며 개인전을 열었다. 


‘Post’ 시리즈는 마르타 지에스카에게 작가로서 행운을 가져다주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리즈는 그가 겪은 일련의 불행한 사고를 통해 완성됐다.


트라우마를 시각화하는 연구

 
“이 시리즈는 내가 부모님 집에서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써준 가정통신문을 발견하면서 시작됐어요. 당시 7살이던 나에 대해 선생님은 ‘모범적인 학생’이라며 주변에도 인기 있고 답을 잘한다고 했지요. 그게 성인이 된 후에도 나의 이미지였어요. 그러나 나는 그런 외부에서 보는 시선과 달리 내 안에서 웅성거리는 수치심, 불안, 강박 등의 감정들로 한계를 느끼곤 했어요. 나는 사진을 통해 이런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심미적 형태로 시각화하고 싶었죠.”

 

Untitled, from the Post series, courtesy of Gowen Contemporary Gallery ⓒMarta Zgierska


그래서 처음에 그는 자신이 발견한 선생님의 가정통신문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등 자신의 감정을 자극하는 오브제들을 촬영하는 데 집중했다. 몸에 안 맞게 너무 큰 성인용 재킷을 걸치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은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와도 일치했다. 여전히 자신은 7살 아이일 때 느낀 불안을 그대로 간직하는데 몸만 커진 듯, 뜻밖의 성장(成長)을 직면하고 어찌할 바르는 모르는 막연한 소녀의 시선은 그가 느낀 불안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나는 이 작업을 위해 트라우마에 대해 연구한 이론들을 조사했어요.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특히 ‘경험해보지 않은(non-experience)’이란 표현들을 수없이 많이 보게 되는데요. 이것은 트라우마가 그것이 닥쳤을 때, 나의 몸과 마음을 전혀 조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중압감을 겪는 순간, 즉 자신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상실하고 무력감을 겪는 순간이라는 것을 의미하죠. 마치 벽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을요.”


그는 이 트라우마의 개념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방법들을 고민했지만 좀처럼 작업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무언가 이 작업을 슬슬 마무리 짓고 완성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느낄 시점에, 그는 거대한 트라우마로 남는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교통사고 이후 바뀐 것들


 

Untitled, from the Post series, courtesy of Gowen Contemporary Gallery ⓒMarta Zgierska
 


2013년, 그는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에 충돌해 온 몸이 부서지는, 심각한 사고에서 그는 거의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튕겨 날아갔다 돌아왔다. 겨우 살아남기는 했지만 이 불행은 단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수술, 몇 달 동안 견뎌야 했던 물리적인 제약, 화학요법, 점차 악화되는 신경불안증세 등 한 번의 차 사고가 그의 인생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그 사고는 내 기존 작업을 멈추게 했죠. 내 마음은 날카롭고, 분열돼 있었고 단편적인 기억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몸과 마음에 고통을 겪으면서 나는 내 작업을 좀 더 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시각화할 필요를 느꼈죠. ‘Post’ 시리즈에는 그 때의 트라우마로 남은 얼어붙은 죽음, 침묵과 긴장의 감각 등이 반영됐어요. 아마도 대부분 이 작품에서 자기 자신만의 ‘텅 빈 구멍’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지치고 기진맥진한 꿈, 공포, 강박과 불안 등 개개인에게 남은 트라우마의 감각들은 말이죠.”
 

Untitled, from the Post series, courtesy of Gowen Contemporary Gallery ⓒMarta Zgierska


마르타 지에스카에게 교통사고는 거대한 트라우마였지만 이 시리즈는 단지 교통사고 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고 이전과 이후에 찍은 이미지들이 일련으로 나열되며 그의 삶을 관통한 사건들과 그 흔적들을 보여준다. 그는 사고 이후 좀 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오브제들을 통해 이를 시각화했는데 때로는 자신이 직접 겪은 사건과 관련된 오브제들을 촬영했다. 종이처럼 구겨진 자동차, 사고 당시 그가 입던 피에 얼룩진 코트, 치료 과정에서 빠진 머리카락 뭉치 등이 직접적으로 무엇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면, 완전히 엉클어지기 직전의 퍼즐, 여러 개의 의자 속에 갇힌 몸, 피를 흘리고 상처가 난 손금의 생명선, 끈에 매달린 바위 등은 당시 그가 느낀 감정들을 암시한다.


그 후에도, 삶은 계속 된다

 

Untitled, from the Post series, courtesy of Gowen Contemporary Gallery ⓒMarta Zgierska


그는 사고가 나기 전 찍었던 ‘이빨들 사진’을 유독 사고 이후 종종 떠올리곤 했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부상으로 의식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도 유독 이 이빨들을 찍은 사진에 대해 계속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했다고, 나중에 그가 의식이 돌아온 후 이야기해 줬다.


동양에서는 이빨이 빠지는 꿈은 누군가의 죽음을 상징하며 흉몽으로 여겨지지만, 서양에서는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듯이 이빨 빠지는 꿈은 새로운 변화와 시작을 의미한다. 이 이빨들이 죽음과 그 이후의 변화, 혹은 부활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그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굳이 자신이 찍었던 ‘이빨들’을 떠올렸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Untitled, from the Post series, courtesy of Gowen Contemporary Gallery ⓒMarta Zgierska


그에게 이 ‘Post’ 시리즈가 트라우마를 겪고 완성되고, 일단락 되면서, 또한 작가로서 새로운 시작점에 서게 했듯이 말이다. 

 
“나는 이 사진들을 대게 회색빛 톤으로 촬영했는데 그것이 내가 겪은 죽음과 침묵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죠. 또 사진 속에는 어떤 움직임도 없고, 단지 설치와 오브제뿐인데 그것은 사고 이후 차갑고 얼어붙은 내 상태를 반영해요. 그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이 작업을 마무리 짓지 못했겠죠. 그렇다고 그 사고 이후 사진을 찍는 것이 일종의 심리적인 치료(therapy)가 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것은 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기억들, 그 기억들의 정수를 사진이란 방식을 통해 보여주고 반영하는 과정이었죠. 사고 이전에는 단지 나의 공포를 심미적인 이미지로 풀어가려 했지만, 사고 이후 나는 막연한 공포가 아닌 물리적인 제약과 분열과 같은 다양한 문제들을 좀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려 했어요. 굳이 내 이미지에 대해 말이나 글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 이미지를 보았을 때 각자가 느낀 ‘이전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완전히 무력하고 갇힌 듯한’ 트라우마의 기억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요.”

 

Untitled, from the Post series, courtesy of Gowen Contemporary Gallery ⓒMarta Zgierska


이 시리즈의 제목인 ‘Post’에는 위치, 표식, 기둥이라는 뜻 외에도 ‘그 후에’라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트라우마는 우리 삶 전체를 뒤흔들고 그 일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트라우마는 일종의 표식이자 삶에 내리꽂힌 기둥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거대한 태풍이 지나가도 그 후의 삶은 계속된다. 비록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상처가 남더라도, 여전히 미지의 공포와 때때로 막연한 불안, 강박에 짓눌리더라도, 살아만 남는다면 그 후 Post가 있다. 길고 어두운 트라우마의 통로를 통과한 후 때때로 남아있는 상처자국을 더듬으면서, 그 상처를 통해 우리가 살아있음을 실감하곤 하는 것이다. 마리아 지에스카의 사진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가진 크고 작은 상처들을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고요하게, 때론 우아하고 냉혹하게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리라.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Marta Zgierska

해당 기사는 2017년 10월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