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根同枝異①

根同枝異

Tendance Floue 
Philippe Chancel


 

근동지이(根同枝異), 뿌리는 같지만 그에 파생된 가지는 서로 다름을 뜻하는 사자성어다. 이는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도 해당한다. 남북한은 경제, 정치, 인권, 환경 등 수많은 조건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민족 혹은 한 역사에서 갈라나왔다는 공통점은 둘을 묶고 있다. 남북한은 마치 등을 맞대고 붙은 쌍둥이 같다. 서로  결코 등을 돌아볼 수 없기에 서로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없지만, 오히려 타인은 이 둘을 동시에 볼 수 있기에 둘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수많은 영혼들, 사진, 2015 Ⓒ플로르-아엘 쉬렁


여기 두 종류의 사진들이 있다. 하나는 프랑스 사진집단인 땅당스 플루(Tendance Floue)가 지난 16개월간 남한에서 촬영한 사진들이며, 다른 하나는 프랑스 사진작가 필립 셩셀Philippe Chancel이 지난 2005년부터 북한을 방문하며 촬영해 온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을 통해 우리는 이방인의 눈으로 본 남북한의 모습, 그 생경함과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다. 빛과 그림자, 선과 악, 강함과 약함의 이분법적 대립이 아니라, 서로 닮았으면서도 그 닮음을 깨닫지 못하고, 서로 다르면서도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직시하지 못하는 두 나라를, 이방인의 시선은 때론 생경하게, 때론 날카롭게 담아낸다.


KOREA ON/OFF
Harmony and Swiring Particles
Tendance Floue

 
“처음 태극기의 의미를 들었을 때, 어떻게 한 나라의 국기에 그렇게 깊은 철학을 담을 수 있는지 놀랐다. 태극기에 두 개의 대립되는 항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것이 혼돈과 조화를 추구하는 우리 땅당스 플루의 철학과도 맞아 떨어졌다”
- Alain Willaume, Tendance Floue


“우리 작업이 한국의 역사를 백과사전식으로 이어가는 작업은 아니다. 우리가 진실을 이야기하는 작업도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이 더이상 자신의 실제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무단침임, 포토집 스튜디오,사진,2014 Ⓒ올리비에 퀼만


프랑스 사진집단 땅당스 플루(Tendance Floue)의 티에리 아르두엥은 자신들이 지난 16개월간 한국을 찍어온 작업을 전에서 공개하며 이와 같이 말했다. ‘한국인들이 더 이상 자신의 실제를 보지 않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날카로운 물음표와도 같은데, 이런 물음표는 이들이 현재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을 둘러보면서, 꼬리에 꼬리를 잡고 이어진다. 


왜 그들은 한국을 이리도 낯설고 생경한 모습으로 촬영했는가? 왜 그들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실제를 보지 않는다고 단언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촬영한 이 모습이 우리가 깨닫지 못한 실체인가?


땅당스 플루는 약 25년 전에 창립된 프랑스 사진집단으로, 14명의 사진작가로 이뤄졌다. 그들은 프랑스 사진계에서 유일하게 공동작업, 공동전시하는 팀이다. 14명의 작가 중 여자가 한 명, 남자가 대다수이고, 또 비슷한 또래로 동질성이 강한 이 집단은 매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몸으로 부딪히쳐 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땅당스(Tendance)는 지향성과 방향성을 뜻하며, 플루(Floue)는 ‘보이지 않는, 미지의 것’을 뜻한다. 결국 ‘어디로 가기는 가지만, 어디로 갈지 모르는’ 뜻의 땅당스 플루는, 한국이란 낯선 땅에서 저마다의 사진으로 미지의 세계를 더듬어가는 모험을 시작했다.  


 

텅빈가정,사진,2014 Ⓒ메이에


신아의 시선, 포토스토리, 2014 Ⓒ메이에



신아의 시선, 포토스토리, 2014 Ⓒ메이에

이들이 16개월간 작업한 이 모험의 결과가, 지난 12월 17일부터 2017년 2월 22일까지 약 2개월에 걸쳐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에서 전시중다. 이번 전시는 2015~6년에 걸쳐 2년간 진행된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인증사업으로, 한국-프랑스간에 열린 다양한 행사 중 한국과 프랑스를 통틀어 마지막 공식행사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달 17일 열린 전시 개막식은 한-불 상호교류의 해 폐막식을 함께 겸했으며,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 대사, 부산 프랑스 명예영사인 김형수 고은문화재단 이사장, 베네딕트 알리오 파리 국제예술교류센터장, 홍성화 부산시 국제관계대사, 이상인 고은사진미술관 관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번 전시의 큰 주제는 태극기의 태극과 사괘에 담긴 철학에서 나왔다. 전시 서문에서 땅당스 플루는 철학자 에드가 모랭의 “팔괘(역경)의 태고적 형상은-질서와 조화하며-본질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유와 대립의 원칙을 담고 있다”는 말을 인용해서, 이번 전시의 정신과 형식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한류, 드라마, 혹은 IT 강국 같은 표피적인 한국의 이미지보다는, 한국 국기인 태극기가 담고 있는 전통적인 철학에 매료됐다.


알랭 빌롬은 “우리가 한국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던 초기부터, 우리는 그야말로 태극기에 꽂혔다”며 “어떻게 한 나라의 국기에 그렇게 깊은 철학을 담을 수 있는지 놀랐다. 태극기에 두 개의 대립되는 항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것이 혼돈과 조화를 추구하는 우리 땅당스 플루의 철학과도 맞아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우리는 프랑스인이라 어쩔 수 없는 데카르트주의자이고, 분명하게 분별하는 것을 좋아하한다. 하지만, 결국 이런 이분법은 우리를 풍요롭지 못한 생각으로 이끈다”며 “태극기의 음양은 서로 대립하기는 하지만, 서로가 조화를 이룬다. 우리들은 이를 감안해서, 어떤 대립되는 주제를 찾되, 그것이 선악처럼 단순한 대립항이 아니라, 대립하되 동시에 조화를 추구하는 각 대항되는 개념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주)모르페우스,사진,2015 Ⓒ티에리 아르두앵


이처럼 각각이 대립되는 개념을 통해 12명의 작가는 한국을 시각화한다. 올리비에 퀼만은 나/타자, 메이에는 텅빔/충만, 파스칼 에마르는 존재/부재, 티에리 아르두엥은 수직/수평 등으로 잡아서, 각각 행인들 사이에 지워진 얼굴, 성형수술 시스템에 대입해보는 가상의 나의 이미지 등 구체적인 작품으로 형상화됐다. 


티에리 아르두엥은 대기업에서 출근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회사원들의 무리에서 한국 사회의 엄격한 위계구조를 보여주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풀어진 모습을 통해 수평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수직과 수평이라는 각각을 추상화한 두 무용수의 무용을 기록한 동영상과 함께 제시한다. 브르쥬는 전/후의 개념으로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실존하고 있는 전쟁의 공포와 흔적을 담았고, 메이에는 텅빔/충만의 개념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와 외면에 취해있는 한국인의 공허함을 담은 한 편의 포토스토리로 선보였다. 플로르-아엘 쉬렁은 샤머니즘을 소재로,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연결하는 영매의 세계를 촬영했는데, 검은 배경에 인물 하나만을 강렬한 컬로로 부각시키는 방법을 통해 샤머니즘의 신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알랭 빌롬은 위/아래라는 개념을, 방한 당시 메르스 공포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던 기괴한 지하철 안 풍경과 하회마을에서 발견한 전통탈의 이미지를 함께 병치시키며 풀어간다. 알랭 빌롬은 “안동에서 탈박물관에 우연히 들렸는데, 한국어로 ‘탈’이 가면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불행이라는 ‘탈’이란 뜻도 있다는 것을 듣게 됐는데 소름이 돋았다”며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돌 때,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끼고 있는 마스크가 -탈-불행이란 뜻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 함께 작업했다”고 회상했다.

 

수많은 영혼들, 사진, 2015 Ⓒ플로르-아엘 쉬렁

 

수많은 영혼들, 사진, 2015 Ⓒ플로르-아엘 쉬렁



달아나는 영혼, 사진, 2015 Ⓒ플로르-아엘 쉬렁



달아나는 영혼, 사진, 2015 Ⓒ플로르-아엘 쉬렁
 

이처럼 대립되는 개념들이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 시각화됐지만, 전시장은 소란스럽고 산만하기 보다는, 마치 보이지 않는 혼돈 속에서도 질서가 있듯 조화를 이룬다. 플로르-아엘 쉬렁이 촬영한 무당의 신기어린 굿 사진에 맞은 편 필립 로파렐 리가 찍은 소주에 취해 트랜스 상태에 빠진 여성의 사진이 화답하는 식으로, 여러 개의 다른 목소리가 서로 화음을 이룬다.


고은사진미술관의 이상일 관장은 “대한민국이란 한 주제를 태극이란 컨셉으로, 각 작가마다 개념, 감각, 상상력, 이미지 등으로 다양하게 풀어냈다.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이미지를 어떻게 한 공간에 가져올 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막상 전체 전시를 보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직접 몸으로 소통하면서, 융합하고 하나의 전시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 전시가 한국 사회에서 상당히 필요한 전시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철제의 삶, 사진 및 사운드 트랙, 2015 Ⓒ베르트랑 머니에
 

철제의 삶, 사진 및 사운드 트랙, 2015 Ⓒ베르트랑 머니에


때론 타인은 나의 거울과도 같다. 거울은 내가 원하는 모습만이 아닌, 숨기고 싶은 치부나, 혹은 미처 깨닫지 못하던 어둠까지 여과 없이 비춰낸다. 인간관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듯, 마찬가지로 한 국가와 민족에게도, 다른 국가, 다른 인종인 이방인의 시선은 거울이 될 수 있다. 땅당스 플루가 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이 거울 속에,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지는가? 그 답은 보는 이들이 찾아야할 몫이다.
 

전시일정 2016. 12. 17 - 2017. 2. 22
전시장소 고은사진미술관


 
글 :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 고은사진미술관

해당 기사는 2017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