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이해선, 김한용, 전몽각, 육명심, 김녕만 동강사진박물관 소장품전 〈한국을 바라본 시선〉, 동강사진박물관

2002년 이후 해마다 강원도 영월에서 개최되었던 동강국제사진제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취소되면서 동강국제사진제의 주제전이 열리던 동강사진박물관 1, 2층 전시장에서 박물관의 소장품전이 열리고 있다. 6월 8일부터 10월 4일까지 계속되는 〈한국을 바라본 시선〉전이다. 참여 작가는 작고한 이해선(1905~1983) 김한용(1924~2016) 전몽각(1931~2006) 세 분을 포함하여 육명심(1932~ ) 김녕만(1949~ ), 5인이다. 해마다 뜨거운 여름, 사진애호가들을 들뜨게 했던 동강국제사진제의 다양한 전시 대신 조용하게 우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이번 전시는 축제 불발로 인한 아쉬움과 코로나 사태로 인한 어려움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치유의 효과를 건네준다.


각자 다르지만 일맥상통하는

 

김녕만, 고향 시리즈, 전북 고창, 1978, 동강사진박물관 소장
 

동강사진박물관은 2005년 개관 이래 꾸준히 작품을 구입해 현재 소장품이 1,400여 점에 이른다. 그 가운데 기획 의도에 따라 작품을 선별하여 해마다 “한국을 바라본 시선”이라는 제목하에 소장품전을 개최해 왔는데 올해는 특히 동강국제사진제가 열리지 못함에 따라 더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5명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작가의 개성이 매우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데 바로 ‘사람’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부터 70, 80년대로 다르다. 이해선 작가는 한국전쟁 이후 50년대의 서민들, 김한용 작가는 60, 70년대에 광고사진으로 촬영한 유명 배우들, 전몽각 작가는 딸이 태어나서 결혼하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기록한 그의 가족, 육명심 작가는 미당 서정주 선생을 비롯한 문단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 김녕만 작가는 산업화로 나아가기 직전 70년대 흙냄새 풀풀 나는 농촌사람으로 이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세계에 속해 있지만 삶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동등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해선, 1950년대 기록사진, 서울, 동강사진박물관 소장


이해선 선생은 우리나라 1세대 사진가로서 임응식 선생(1912~2001)과 함께 해방 이후 우리 사진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마침 6월 9일부터 한 달간 서울 스페이스22에서 임응식 선생의 〈부산에서 서울로〉라는 전시가 열려 두 분의 인연이 사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임응식 선생은 생활주의 사진운동을 펼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 관계로 작품을 볼 기회가 많았고, 사진의 기록성을 강조한 리얼리즘 사진의 경향을 띠고 있었음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던 반면에 이해선 선생은 왕족 출신이며 일본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화가로 활동한 경력 등등으로 회화주의 사진을 추구하는 작가라는 선입견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본 작품들은 살롱사진에서 벗어나 기록성을 근간으로 하는 매우 따뜻한 시선이어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작가 자신도 “사진은 사실적인 표현이어야 하되 작가의 감성적 해석으로 재창조하여 예술적 승화를 꾀한다는 신념”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음을 밝혔다. 즉 대상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작가의 감성을 더하여 예술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인데 그의 50년대와 60년대 기록사진에는 그러한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화가에서 사진가로 전향한 전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회화적인 조형감각을 기본으로 하는 예술사진을 추구하면서 임응식 선생과는 대척점에 섰던 작가지만,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새로운 그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김한용, 광고사진, 문희, 1969, 동강사진박물관 소장


김한용 선생은 익히 잘 알려져 있듯이 충무로의 1세대 광고 사진가이다. 50년 전 그 시대를 풍미하던 스타, 윤정희 문희 남정임 같은 여배우의 20대 젊은 시절의 인물사진은 세월의 무상함을 한눈에 보여준다. 그 시대에 달력용 혹은 광고용으로 촬영한 인물사진이지만 그들의 자세와 의상, 그리고 제스처 등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어 흥미롭다.

 

전몽각, 윤미네 집 시리즈, 1980, 동강사진박물관 소장
 


1층 전시장에는 김녕만 전몽각 육명심, 세 작가의 작품이 각각 10점씩 걸려 있다. 김녕만의 농촌사진은 작가 특유의 해학적인 시선이 만들어주는 정감 넘치는 사진이다. 재빠른 셔터 찬스로 결정적인 순간을 잡아내는 그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윤미네 집』은 전몽각 선생이 첫 딸 윤미의 성장과정을 사진으로 담은 가족기념사진집이다. 아빠가 딸을 촬영하는 일은 흔한 일상이지만 딸이 태어나서 결혼식을 하기까지 26년 동안 꾸준히 기록하기란 쉽지 않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 교복을 입은 사춘기의 딸, 첫 데이트를 나가는 모습,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 아빠의 사랑과 염려, 축복의 마음 등 여러 색깔의 애틋한 부성애가 감동을 준다.


육명심, 문인의 초상 시리즈, 서정주, 1973, 동강사진박물관 소장
 

마지막으로 육명심 작가의 “문인들의 초상”이 펼쳐진다. 작가는 처음에는 대상 인물이 시인이면 시인, 소설가면 소설가로 보였는데 촬영을 해나가다 보니 시인이나 소설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 보기 시작하자 그 사람이 본래갖고 있는 숨결과 체취, 삶의 흔적 등을 감지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그의 본래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당 서정주 시인의 경우, 사당동 그의 집 마당에서 쭈그리고 앉은 모습을 찍었는데 시인의 뒤로 관악산의 험준한 산세가 대조된다. 언뜻보면 대시인을 그저 평범한 할아버지로 만든 것 같지만(그래서 미당의 제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결코 관악산의 기세에 눌리지 않는 노시인의 기운이 강렬하게 뻗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이름도 없이 살다간 이들(이해선, 김녕만 사진 속 인물)이거나 유명한 사람들(김한용, 육명심의 사진)이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 같다. 이 땅에 태어나 동시대의 사진가에게 포착된 여러 시대 별 여러 계층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화두를 던져준다. 어쩌면 한 시대를 세밀하게 기록하는 일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지 모른다. 미래에 대한 답을 과거에서 찾게 해주는 힘이라고 할까.


코로나19로 인하여 사람들과 만남도 축소되고 많은 활동이 유보되고 위축되는 분위기여선지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전시가 잇달았다. 앞에 언급한 임응식 선생의 전시와 지금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주명덕 선생의 〈섞여진 이름들〉, 그리고 동강사진박물관에서 가을까지 계속되는 〈한국을 바라본 시선〉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화두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요히 사진 앞에 서면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확산 방지를 위해 동강사진박물관은 임시휴관 상태입니다.


 
글 :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20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