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Roger Allan Shepherd <일맥상통 백두대간>

뉴질랜드 사진가 로저 앨런 셰퍼드(Roger Allan Shepherd)는 1999년 남한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의 산을 등반했다. 백두대간은 등산객과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되었다. 북한의 백두산에서 남한의 지리산까지 한반도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긴 산줄기, 백두대간의 의미와 남북이 어째서 분단되었는지를 산을 걸으며 배웠다. 남한의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그는 백두대간 전 구간을 기록하는 일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해 평양 조선뉴질랜드친선협회와 함께 북한 백두대간 종주를 계획했다. 결국, 2012년에 그는 백두대간의 모든 정상을 밟았다.

 
Roger Allan Shepherd, 설악산, 강원도 속초시·인제군·고성군·양양군, 2012 ⓒRoger Allan Shepherd
 
그는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밝혔다.
 
분단 이후 70여 년의 시간이 오천 년간 함께 해온 한민족을 영원히 분리할 수 없습니다. 백두대간을 통해 이 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백두대간, 한민족, 하나의 나라’라는 메시지를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일맥상통 백두대간〉(근현대사기념관, 2019.11.19-2020.2.29)은 그의 활동을 알고 있던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한 전시다. 백두산부터 지리산 그리고 한라산까지, 끊어진 산길을 사진으로 연결하여 분단된 국토에 거주하는 우리에게 분단의 아픔을 일깨우도록 하였다.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손세영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원을 만났다.
 

Roger Allan Shepherd, 백두산 천지 전경, 함경남도 혜산군·함경북도 무산군, 2013 ⓒRoger Allan Shepherd


Q.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전부터 전시, 강연 등을 통해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일맥상통 백두대간〉을 주최하게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는 주로 일제강점기 역사를 연구하는 단체입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하는 등 일제 파시즘 잔재 문제를 다루는데요. 보통 일제 잔재, 친일 잔재를 얘기하는데, 그중 가장 큰 일제 잔재는 분단이라고 생각해요.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일본 제국주의 잔재를 없애는 길이죠. 그래서 저희의 최종 목적지, 목표는 통일입니다. 로저 셰퍼드는 2017년에 천안 시청 로비에서 만났어요. 그때도 백두대간 전시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좋은 뜻에 비해 전시가 마땅한 대접을 못 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좋은 작품을 좋은 곳에서 전시해야겠다’ 생각하다가 좋은 기회가 찾아와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Roger Allan Shepherd, 금강산, 강원도 회양군·통천군·고성군, 2011 ⓒRoger Allan Shepherd
 

Q. 전시장은 50장의 사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수백 장의 사진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배치하셨나요?

손세영: 가장 중요한 건 로저 셰퍼드가 다닌 발자취예요. 북한과 남한을 잇는 발자취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지도를 펼치고 백두대간 줄기에 가까운 산을 찾아 선택했어요. 마지막에 한라산을 추가했는데, 사실 한라산은 백두대간에 포함되지 않아요. 하지만 한반도 끝을 표현하기에 한라산이 좋다고 판단해 첫 번째를 백두산 천지, 마지막을 한라산 백록담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Q. 전시 의미가 궁금해요.

손세영: ‘한줄기로 흘러 서로 통하리’가 전시의 부제예요. 백두대간은 남과 북이 막힘없이 통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남과 북의 사람은 하나의 한반도에 있다는 걸 뜻해요. 현재는 나뉘어져 있지만 분명 한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만 이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있어요. 부당한 일이죠. 전시를 본 관람객이 통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어요.

방학진: 남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북한 백두대간을 갈 수가 없죠. 로저 셰퍼드는 외국인으로서 종주할 수 있으니까, 저희는 그가 부럽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산은 하나로 일맥상통한 데 남과 북 사람들은 어째서 서로 일맥상통하지 않을까요. 산과 자연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잘못이잖아요. 전시는 백두대간을 이어야만 한다는 영감과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거죠. 우리가 통일 이야기를 하면서 ‘북한 인구가 굶어 죽고 있어요’, ‘이산가족을 빨리 찾아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을 통해 통일의 절박함을 전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매체가 사진이죠. 백두대간 사진을 보며 ‘가보고 싶다’라는 구체적인 영감을 받는 거예요.

 

Roger Allan Shepherd, 한라산 백록담, 제주도, 2015 ⓒRoger Allan Shepherd

Q.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 느꼈으면 하는 점이 있을까요?

손세영: 중학생 관람객이 많이 와요. 이 친구들은 남북관계가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더라고요. 선생님에게 '왜 풍경 전시를 해요?’라고 물어보고, 외국인이 찍은 사진을 왜 전시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래서 “외국인은 갈 수 있지만 우리는 갈 수 없어서 이런 전시가 열렸고, 친구들이 못 보는 북한의 사진을 볼 수 있는 거야”라고 얘기하죠. 그러면 “그거 CNN으로 보면 되죠”라고 답해요. 남북이 왜 갈라졌는지,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생각을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아직 어렵게 느껴진다면 ‘북한은 이렇게 생겼구나. 남한과 다르지 않구나’ 정도라도 생각한다면 좋겠어요.

방학진: 학생들 입장에서는 ‘개마고원으로 소풍 가자’, ‘트레킹 가자’ 이런 식의 로망을 가져도 좋을 듯해요. 전시를 보고 ‘우리가 왜 트레킹 못 가. 외국인은 가는데. 우리 땅이잖아.’라는 구체적인 꿈을 꾸면 좋겠어요. 로저 셰퍼드는 백두산 천지 물고기를 잡아 회를 먹었대요. 와…. 아직은 우리에게 꿈이지만 언젠가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로저 앨런 셰퍼드(Roger Allan Shepherd)
2012년에 남북한 백두대간을 종주한 뉴질랜드인으로 서울 한국관광공사(2010), 서울 한국산림청(2011), 일본 오타니 대학(2015), 목포 김대중 컬쳐홀(2016), 서울시립미술(2017),  오클랜드 뉴질랜드 재단(2019)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글 : 장영수 기자

이미지 제공 : 근현대사기념관

해당 기사는 2020년 1월호게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