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양종훈 〈제주해녀 사진특별전>

전시 장소 : 제주해녀박물관
전시 기간 :  8월 7일 - 30일


호주의 원주민 에보리지널, 아프리카의 에이즈 환자, 21세기 최초의 신생독립국가 동티모르 등 글로벌한 주제로 작업해왔던 양종훈 작가가 “제주 해녀” 사진으로 국내 전시를 열고 있다. ‘사진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왕왕 전쟁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역사의 흐름을 바꾼 예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종훈 작가를 보면 “사진가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로 바꾸고 싶다. 그는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서준 사람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진가들과 차별된다.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대상과 ‘우리’가 됨으로써 그들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되고, 그는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우리’의 문제 해결에 나선다. 사진 이후 그의 또 다른 작업이다. 그에겐 만족할 만한 사진을 찍는 것 못지않게 그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양종훈, 제주 해녀 ⓒ양종훈


작가의 고향에서 찍는 “제주 해녀”

그동안 제주 해녀를 찍은 사진가들은 많았다. 별다른 장비 없이 숨(호흡)을 담보로 하여 바다 깊이 잠수하는 해녀의 고단한 작업은 사진가들이 탐내는 좋은 소재였다. 그러나 제주 태생인 양종훈 작가에게는 어려서부터 가깝게 보고 자란 익숙한 이웃집 아주머니 같아서 욕심을 내지 않고 20년 전부터 틈틈이 촬영해오던 소재 중 하나였다. 그런데 몇 년 전, 외국의 유명 사진가들이 찍은 해녀 사진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스쳐 가는 이방인의 시각이 아니라 고향 사람의 진득한 시선으로 제대로 찍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해녀의 정면 인물사진을 본 적이 있나요? 그들은 결코 렌즈를 쳐다보려고 하지 않아요.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마지못해 카메라 앞에 설 때도 있긴 하지만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진 않아요. 저도 그렇게 되기까지 1년이 걸렸어요.”
 
양종훈, 제주 해녀 ⓒ양종훈


사실 해녀는 사진 촬영을 원치 않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작업한다는 극도의 긴장감 때문이다. “내려갈 때 발견한 전복은 따지만, 올라오면서 본 것엔 미련을 버리라”는 말이 있다. 물속으로 15~20미터 잠수하여 작업하다가 올라올 때는 호흡이 한계에 이르기 마련인데 그때 욕심을 부리다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극한 작업을 하는 해녀가 사진에 신경을 빼앗기고 싶어 할 리 없으니 대부분 스쳐 가듯이 찍은 표피적인 사진이 되기 십상이다.

 
양종훈, 제주 해녀 ⓒ양종훈

그러나 일단 해녀들과 제주도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양종훈 작가는 촬영에 앞서 그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처음엔 외면하고 쌀쌀하던 그들도 서울에서 내려와 사진은 찍지 않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려고 애쓰는 그를 보면서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쯤 지나자 이번에는 해녀들이 그를 염려했다. “오늘은 비가 와서 사진도 못 찍고 허탕 치네”라며 걱정하다가 다음날 날씨가 좋아지면 그들이 더 반가워하며 “날씨 좋을 때 어서 찍으라”고 독촉했다. 심지어 이것도 찍고 저것도 찍어보라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자신의 생업을 챙기듯 그의 작업을 챙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교감을 나누며 더 시간이 흘러 아예 사진가의 카메라를 의식조차 하지 않게 되었을 때쯤 그는 자연스러운 해녀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또한 해녀가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나 비 오는 날에는 탈의실 담벼락에 검은 천을 치고 해녀의 인물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촬영한 12명 해녀의 인물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 2016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했다.

 
양종훈, 제주 해녀 ⓒ양종훈

 
“역시 다큐멘터리 사진은 대상과의 교감이 먼저”라고 말하는 양종훈 작가는 지난 9월 19일에 서울시청 시티갤러리 전시에 사진의 주인공인 해녀들을 먼저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해녀들은 그에게 “고내어촌계원증”을 선사했다. 말하자면 명예 해녀가 된 셈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양종훈 작가는 마침 그 자리에 참석한 조현배 해양경찰청장에게 제주 해안에서 극성을 떠는 스킨스쿠버의 불법 어획물 채취 단속과 해녀의 안전을 위협하는 폐그물 제거를 청원, 해녀들의 숙원이 해결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사진가
 
 

동티모르 ⓒ양종훈


언제나 그랬다. 양종훈 작가는 그의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의 고민을 외면하지 못했다. 2001년에 소아암 환자를 찍은 “소희야”에서도, 2003년 동티모르에서도, 2006년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서 에이즈 환자를, 그리고 2008년 “강산별곡”을 발표하면서도 항상 그 뒷이야기가 풍성하고 훈훈했다.

 

“에이즈 환자를 촬영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즉석에서 쇠 난로에 물과 밀가루만으로 구운 빵을 먹으라고 주더라고요. 입에 넣는 순간 확 넘어오려고 했어요. 정말 맛이라곤 하나도 없는 밀가루 덩어리였거든요. 그래도 꿀꺽 삼켰어요. 그리고 하나 더 달라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그들이 ‘이번에는 진짜가 왔다’고 말하더군요.”



그들 나름대로 그를 시험했던 것 같다. 그들이 먹는 음식을 맛있게 먹자 사진가로 받아들였고 외부인을 금기시하는 곳까지 들어가 촬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동티모르 산부인과에서 출산 장면을 찍을 때는 아예 데리고 간 통역을 내보내고 산모와 독대(?)했다. 아마 산모는 촬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겠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음을 핑계 삼아 한구석에 앉아 기다렸더니 한 시간이 지나자 촬영을 허락했다.

 

“사진을 찍으려면 나와 네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야 진짜 속내를 내보여요. 그런데 그들의 속내를 알게 되면 그들이 당면한 어려움을 알게 되죠. 이미 ‘우리’가 되었으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사진을 찍는 이유가 사진가로서 남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소재로 좋은 사진을 만들어내겠다는 욕심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으며 그들과 친해지고 나면 사진을 통하여 뭔가 그들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가 20년 전에 서울대학병원에서 촬영한 다섯 살 소희는 이제 어엿한 숙녀로 자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도 소희 가족과 연락을 주고받는 그는 소희의 결혼사진을 찍어주겠다는 20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아마 처음으로 결혼식 사진을 찍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그가 촬영했던 스와질랜드의 에이즈 환자를 위해서는 ‘한울안’이라는 유엔 NGO 단체가 1억 5천만 원을 들여 그들의 재활을 돕는 건물을 지어주었다. 동티모르의 경우도 비슷하다. 명동성당 옆 가톨릭센터에서 전시를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성모마리아장학회에서 3억 원을 들여 동티모르에 학교를 지어주었다. 동티모르 국민의 94.7%가 로마가톨릭이라는 점을 들어 도움을 역설하자 신부님이 직접 현지조사를 한 후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사진을 가르쳐 전시를 열어주는 프로젝트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결과물인 사진의 내용을 떠나 그들의 약점을 뛰어넘는 자신감을 안겨주고, 또한 안으로만 움츠리던 그들을 전시의 형태로 대중 앞에 불러내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주자는 그의 의도는 사진을 넘어선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전시 오프닝에 방송인 박상원, 산악인 엄홍길, 야구선수 박찬호 같은 셀럽들이 참석하여 격려해줄 때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가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사진가 양종훈. 그가 사진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다고 카메라를 잡은 이후 30여 년간 지속하여 오고 있는 일들이다.


사진, 세상을 바꾸는 힘

그가 즐겨 쓰는 말이 있다. “그러면 왜 안 돼요?” 그에게 ‘포기’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남들이 다 안 된다고 말할 때 그는 왜 안 되냐고 되묻는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말하는 건 그의 사전에 없다. 1988년에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U)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상명대학교 사진학과 교수가 되었다. 30대 초반의 나이였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천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그는 ‘행동하는 사진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대학교수, 사진가라는 직함 외에도 십수 년 째 KBS ‘6시 내 고향’에 출연하고 NGO 활동 등, 사회참여에도 적극적이고 열성적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을 촬영한 후에 그 집에 전기가 들어오고 양봉으로 먹고사는 사람을 촬영한 후에는 꿀을 팔아주느라 바쁘다. 이렇게 사진 이후가 더 분주한 그에게 “그럼 사진은?”이라는 질문이 되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답은 명쾌하다. 사진을 위한 사진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세상이 조금이라도 밝아지는 그런 사진을 하겠다는 것.

 

에보리지널, 2002년 ⓒ양종훈
 

호주 멜버른 RMI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열심히 사진을 공부했고 또한 젊은 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사진 작업으로 그와 동시대를 사는 소외된 사람들을 열린 공간으로 끌어내는 양종훈 작가. 겁 없이 ‘사진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외쳤던 젊은 날의 목표를 30년간 망설임 없이 초지일관하는 그는 중국과 서울 전시에 이어 2월 제주 중문 제주국제 평화센터에서 전시를 앞두고 “이제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비가 내려 빗물이 천막에 고였다가 툭 치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듯 그동안 고인 힘을 한꺼번에 쏟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30년간 축적된 에너지를 이번에는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어서 제주해녀박물관에서 8월30일까지 〈양종훈 제주해녀 사진특별전〉이 열린다.



제주 해녀는 사진가로서 터닝 포인트

 

양종훈 작가


 
그는 방송에 출연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6시 내 고향’ PD에게 동영상만 내보낼 게 아니라 사진을 접목하면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지 않겠냐는 조언을 했는데, “그럼 양교수가 직접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고. 뭐든지 경험을 해보고 결론을 내는 성격답게 그 제의를 받아들여 10여 년이 흘렀다.
 

“사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에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방송에 출연하였는데, 오히려 나의 사진에 근육이 붙는 결과가 되었어요. 방송을 위해 정기적으로 오지나 험지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우리 땅, 우리의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생기고 그런 경험이 해녀 촬영에도 힘이 된 것 같아요.”

 
“강산별곡”은 KBS의 “6시 내 고향”에 출연하면서 시작된 작업의 일부다. 방송팀과 함께 우리나라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촬영하면서 이를 계기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기층민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다. 이는 또한 해외작업에서 국내로 시선을 돌리면서, 그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특히 제주 해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제주 출신의 사진가로서 제주 해녀 촬영에 추진력을 갖게했다. 45년 전에 떠나온 제주가 뭍에 살면서도 항상 그의 마음 속 버팀목이었던 것처럼 이번 제주 해녀 사진은 사진가로서 30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국내외 초대전 외에도 2020년 새해엔 미국 전시를 고민 중이다. 매그넘 회원으로서 제주 해녀를 촬영한 사진가 이라이 리드(Eli Reed)가 2인전을 제의해온 것.

 
“매그넘 멤버이고 텍사스대학 교수인데, 미국 전시로 제주 해녀를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일 것 같아요.”

 
아직도 자신의 사진보다 사진에 찍힌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그는 그러나 ‘제주 해녀’에서만큼은 사진적으로도 욕심을 내고 있다고 덧붙인다. 인생의 3분의 2를 살고 난 지금, 남보다 세 배는 더 열심히 활동해온 그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앞으로 사진작업에서 어떻게 분출될지 2020년이 기대된다.

 
양종훈(1961년~)은 제주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U) 대학원을 졸업하고, 호주 RMIT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소아암 환자를 촬영한 “소희야”를 시작으로 그동안 “아프리카 에이즈”, “신생국 동티모르”, “킬리만자로를 가다”, “히말라야 가는 길”, “강산별곡” 등을 작업했다. 2007년부터 매년 시각장애인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기획 “마음으로 보는 세상”을 진행하고 있다. 2019년 9월에 “제주 해녀”의 서울 전시에 이어 중국 핑야오 국제사진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전시했다. 또한 2020년 2월 제주국제 평화센터에서 "제주 해녀"전에 이어 8월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20년 현재 상명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