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느 반 데르 우데 《Emmy’s World》

네덜란드 사진작가 한느 반 데르 우데는 50년 넘게 함께 살아온 예술가 부부 에미Emmy와 벤Ben의 삶을 7년간 기록했다. 에미와 벤의 집과 가족,  여행 등의 소소한 일상부터, 벤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긴 시간을 촬영한 이 시리즈는 ‘늙음’과 ‘죽음’, 그리고 결국 그 끝에 오롯이 남은 ‘사랑’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Hanne van der Woude, Emmy and Ben in bed ⓒ Hanne van der Woude



Emmy and Ben, Arles-sur-Tech, ⓒ Hanne van der Woude  


지난 4월에 방문했던 교토그라피 2018(Kyotographie 2018)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꼽는다면, 전시가 아니라 네덜란드 작가 한느 반 데르 우데(Hanne van der Woude)가 진행한 워크샵(Master class)이었다. 워크샵은 교토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1박 2일로 진행됐다. 워크샵 참가자들은 요양원의 노인들과 일대일로 짝을 지어 하루 동안 동행했다. 말벗이 없어 외로운 노인들은 자신에게 관심보이는 참가자들을 반겼고, 이런 교류의 시간 뒤에 비로소 촬영이 시작됐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단지 낯선 이의 이미지를 잠시 채집하는 사진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찍는 노인들의 인생을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그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촬영할지를 정했다. 그 과정에서 촬영된 사진은 단지 한 장의 결과물로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종의 다리로 존재했다. 이 모든 과정은 워크샵의 지도강사인 한느 반 데르 우데의  작업 스타일과도 닮아있다.

한느 반 데르 우데는 80대 노부부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장기 프로젝트인 <에미의 세계(Emmy's World)>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약 7년간 예술가 부부인 에미(Emmy)와 벤(Ben), 그리고 그 가족들의 삶을 촬영했다. 작가는 7년의 세월동안 그들과 한 가족같이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그들의 일상과 미묘한 감정을 마치 한 폭의 가족 초상을 그리듯 세밀하면서도 초현실적으로 기록했다. 한느는 자신과 에이미 부부가 사진을 찍고 찍히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진작가인 자신과, 화가인 벤과 에미, 이 세 명이 함께 참여한 일종의 협력 작업으로 기억한다. 에미와 벤 부부는 그녀를 종종 ‘자신들의 중간 딸’, 혹은 ‘여동생’이라 불렀고, 부부의 가족인 에드버그(Egbert)와 허맨(Herman)도 그녀를 한 가족처럼 대했다. 사진 속에서, 벤은 욕조 안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에드버그의 팬티나 부부가 사랑하는 뿔닭 클라라가 갑자기 주연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끝내는 50년간 함께 해 온 노부부가 벤의 죽음으로 헤어지던 그 마지막 순간까지, 한느는 그들의 곁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독일 포토그라피 포럼 프랑크프르트Fotografie Forum Frankfurt의 예술감독인 셀리나 럽스포드Celina Lubsford는 “이 프로젝트는 노년의 삶과 그들의 창의성, 열정, 독립심, 보살핌, 친밀한 관계, 세대를 넘어선 우정을 포착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 동화같이, 맑고 투명한 사진들은 ‘연약하고 의존적이고, 외로운’ 늙음에 대한 전형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80살이 넘었지만, 노부부는 유쾌하게 여행을 즐기며, 체온을 주고받고, 죽음을 앞둔 순간마저 따스하게 서로 의지한다. 벤의 마지막 순간에 그의 이마를 짚어주는 에미의 주름진 손은, 늙음과 죽음,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을 ‘사랑’에 대해 생각게 한다. 어떻게 한 인간이 한 인간을 반세기가 넘도록 변함없이 사랑하게 했을까? 그리고 작가는 어떤 심정으로 이미 가족이 된 이 80대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 그 이후의 삶을 기록했을까?


 



Brothers Ben, Egbert and Herman ⓒ Hanne van der Woude



Brothers in the tub ⓒ Hanne van der Woude



Ben at the seaside, Coillure  ⓒ Hanne van der Woude


<에미의 세계(Emmy’s World)>는 보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늙음’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시리즈를 작업할 때 그 부분을 염두에 두었는가?
내가 벤과 에미를 그렇게 오랫동안 촬영한 이유는 그들이 항상 에너지가 넘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코 (‘늙음’과 ‘죽음’을) 겁내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지 않으며 그들 자신의 삶을 살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기는 힘들다. 그들은 그들만의 삶의 방식으로 내게 영감을 줬다.


이 시리즈는 벤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됐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제목은 에미Emmy의 이름을 따서 인가?
이전 프로젝트를 끝내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1년 동안 카메라를 들 수조차 없었다. 사진촬영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아예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촬영하기로 결심했다. 거리에서 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의 독특한 외모에 반해서, 혹시 내가 그의 집에서 촬영해도 되는지 물었고, 그는 그날 처음 만난 내 부탁을 들어줬다. 그의 집에서 에미를 만났다. 처음에는 벤을 찍었는데, 벤은 자꾸만 포즈를 취하려고만 했던 반면에, 에미는 따로 카메라를 의식하며 포즈를 취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만히 오래 서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어했다.

에미는 1957년에 네덜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상 중 하나인 ‘Prix de Rome for painting’을 수상했던 화가였고, 벤도 그래픽 예술가이다. 에미는 강하고, 지성적인 여성으로, 그녀는 주변에 결코 휘둘리지 않는 솔직한 여성이다. 무심한 듯한 외모에, 결코 한 곳에 오래 앉아있지 않고, 항상 이 일을 하다 저 일로 분주하게 옮겨 다닌다. 에미는 그녀만의 독창적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녀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좋아했다. 사진작가로서 그녀를 촬영하는 일은 정말 흥미로웠는데, 과연 내가 그녀의 본질을 촬영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에미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매우 특별한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어서, 때론 직계가족조차도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회적인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고, 자신의 자유야말로 가장 큰 관심 사안이었다. 에미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했는데, 벤도 그 세계의 일부였고, 나중에는 에그버트Egbert도 여기 동참했다.


사진 속 등장하는 허먼Herman이나 에그버트Egbert는 이들 부부와 어떤 관계인가?
에그버트는 벤의 친형제로, 그 역시 조각가이다. 그는 자유를 찾아 프랑스 남부로 이주해 살고 있었다. 허먼 역시 예술가이다.


 


Egbert and his underpants ⓒ Hanne van der Woude  




Klara, the guinea hen  ⓒ Hanne van der Woude



Emmy on a mountain ⓒ Hanne van der Woude

     

이 작업에서는 투명한 색감이 두드러지는데, 사진을 찍을 때 빛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작업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자연광과 인공조명을 함께 사용했는데, 인공조명은 그 때, 그 때 이미지와 상황에 맞춰 사용했다. 예를 들어 를 보면, 촬영 때 인공조명을 사용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이미 우리가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어서, 내가 이른 아침에 그들을 방문했을 때 벤은 욕실에서 나를 불렀다. 이 사진은 조명 외에는 따로 연출하진 않았다. 벤은 욕조 안에서 편하게 쉬고 있고, 따뜻한 욕실 바닥에는 호두를 말리고 있었다. 그날은 매우 흐렸기에, 마치 여름에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집 박에서 욕실로 조명을 강하게 비춘채로 촬영했다.

신문과 박스가 창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은 에미와 벤, 나의 합작품이다. 당시 에미의 다락에는 에미가 오랜 시간 모은 종이들이 3톤 넘게 쌓여있었다. 에미는   그녀가 본 모든 것을 모아야 하는 저장 강박증이 있었고, 그래서 그것들을 버리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언젠가 이 것들을 한 번은 쓸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벤은 다락을 깨끗이 치우기를 원했다. 종이상자들을 밖으로 옮길 때 그냥 던질 수 없어, 일종의 튜브를 이용해 이 박스들이 미끄러지게 했는데, 그 결과 마치 창문으로부터 쏟아지는 종이의 폭포 같은 형상이 됐다. 사진을 찍는 것은 한 순간을 완전히 다른 새로운 순간으로 변화시키는데, 에미는 (이 사진을 찍음으로써) 그녀의 종이들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타협할 수 있었다.

나는 늘 벤과 에미를 관찰했지만, 때론 너무 아름다운 순간이라 그것을 순간적으로 찍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 때는 조명과 카메라를 얼른 준비해서, 에미와 벤에게 거기서 잠시 머물거나 다시 해달라고 요청했다. Mamyua RZ67과 Rolleiflex 필름카메라를 사용했다. 필름 카메라는 나를 그 상황에 좀 더 차분하게,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또 내가 쓰는 필름의 톤과 명암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Newspaper waterfall  ⓒ Hanne van der Woude  




Nuts on the floor ⓒ Hanne van der Woude


예전 인터뷰에서 “내게 에미의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일종의 꿈의 세계와 같았고, 그렇게 묘사하고 싶었다”고 언급했었다. 그처럼, ‘늙음’과 ‘죽음’을 다루지만, 어둡거나 무겁지 않고 노부부의 일상을 통해 그들의 행복과 존엄성을 보여준다. 한편으론 에서 밝은 햇빛과 푸른 잎, 그 사이에 걸린 벤의 카테터 용기처럼 삶과 죽음이 대조되기도 하는데, 이런 대조가 작가의 의도였는가?
나는 벤과 에미, 에그버트의 삶에 완전히 매료됐다. 벤과 에미와 함께 내가 이전에 알지 못하던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 그들은 Betuwe 지역에서, 마치 마법같이 독특하고 낡은 학교 건물에서 살았다. 내가 거기서 느낀 뭐라 말할 수 없는 독특한 공기는 내가 오랫동안 찍고 싶어서, 찾아 헤맸던 바로 그 느낌, 그대로였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나 역시 이렇게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할지 몰랐지다. 다만, 그들만의 삶의 방식에 매혹돼서 계속 그 곳을 찾곤 했다. 내가 처음 벤을 만났을 때, 그는 건강했었고, 나는 아직 에그버트와 허먼을 알지 못했다. 물론 벤과 에미는 점점 나이가 들것이고, 그들 중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었지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그런 ‘죽음’과 ‘늙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무거운 이미지나 밝은 분위기를 대비시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 삶에서 행복과 슬픔은 항상 함께하고, 나는 그저 내가 그 순간 느낀 것을 찍으려고 했을 뿐이다.

가령 에서 에미는 자신의 붓을 보관할 요량으로 벤의 카테터 백을 씻어서 말리고 있었다. 햇살 속의 카테터 백을 봤을 때, 나는 그 장면이 정말 아름답고 초현실적이고 재미있다고 느꼈지, 그것이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7년간 이들을 찍으면서 거의 가족처럼 가까워졌을 듯하다. 그래서 벤과 에그버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하는 것이 심적으로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벤과 에그버트가 둘 다 병에 걸려 죽어갔다. 나는 이미 사진작가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친구로서 그 시간을 함께 했다. 때로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사진 찍을 것인가? 아니면 친구로서 여기 있을 것인가?” 촬영대상과 매우 가까워졌을 때, 그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   

벤의 마지막 밤(Ben's Last Night)을 찍을 때,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그저 같이 머물지를 무척 갈등했다. 그때 내게 사진을 찍게 한 사람은 에미였다. 에미는 그 밤에 나와 벤을 촬영했고, 우리를 그렸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 역시 사진을 찍기로 결심했다. 나는 벤이 그날 밤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 예감했고, 매우 슬펐지만, 동시에 그 순간은 우리 세 명이 모두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함께 했던 특별한 순간이기도 했다.

7년의 시간 동안, 나와 벤, 에미는 서로가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내가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했듯이, 그들 역시 나를 관찰하고, 사진 찍고 그렸다. 예술은 우리 셋의 공통점이었다. 벤은 나를 딸과 손녀의 중간쯤이라며 ‘중간 딸(Middle daughter)’이라 불렀고, 에미는 나를 동생이라고 불렀다.


 


Ben's catheterbags ⓒ Hanne van der Woude




Ben's last night ⓒ Hanne van der Woude


이번 Kyotographie 2018에서 당신이 강사로 진행했던 워크샵(Master class)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참가자들이 노인요양원의 노인들과 한 명씩 짝을 지어 소통하고, 촬영한 후 서로 작품을 공유하며 자신의 모델과 그들의 삶을 소개했다. 이 워크샵의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했나?
그렇다. 워크샵 중 내가 한 일은 ‘(참가자들과 노인들을) 연결하고, 그들이 서로 소통하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시대에는, 사람간의 교류가 때때로 어렵고, 특히 노인과 젊은 세대 간의 연결고리를 찾기는 힘들다. 사람들은 일에 치여 바쁘고, 모르는 사람과 거리에서 우연히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 됐다. 특히 노인들은 사회에서 고립돼서, 관심과 교류가 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이 워크샵은 나에게도, 참여자들에게도, 요양소의 노인들에게도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 사진가는 자신의 모델과 대화를 나누다, 그녀가 캘리그라피 예술가라고 알게 됐고, 수년간 붓을 들지 않던 그녀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도록 도왔다. 다른 작가는 자신이 찍은 노인의 딸로부터,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줘서 고맙다’며 선물을 받기도 했다.
요양소의 노인들은 많이 외로워했고, 어떤 이들은 아예 가족이 없었다. 그렇기에 참가자들이 노인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며, 사진 찍었던 이틀 동안의 시간은 모두에게 매우 특별한 기억이 됐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
나는 사람들, 특히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조금 다른 사람들의 삶에계속 관심 갖고 있고,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친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작업하고 싶다. 를 촬영하는 동안, ‘비디오’ 라는 영상 매체의 가능성을 발견했는데, 앞으로도 사진과 영상을 함께 작업하고 싶고, 단편이나 혹은 더 긴 다큐멘터리 영상도 제작하고 싶다.


 

글 석현혜 기자 사진 Hanne van der Woude
해당 기사는 2018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