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국가는 어디에 있는가?③

허기진 영혼들의 굿판
조습, <네이션 Nation>


 

찜질


조습의 사진은 세다. 피가 튀고, 내장이 찢기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는 순간 ‘어?’ 하고 관객의 눈을 고정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그의 사진 속에 담겨있는 풍자와 아이러니, 그리고 시퍼렇게 서있는 비판의 칼날 때문이다. 가령 2002년 온 광장을 붉게 물들인 ‘월드컵’을 두고, 그는 1987년민주항쟁 당시 경찰의 최루탄에 사망한 이한열의 사진을 패러디한 ‘습이를 살려내라’(2002)라는 사진으로 비트는 식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두고, 이영준 큐레이터(김해 문화의 전당 전시교육팀장)는 <Eclipse> 전시비평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다.

 

 
조습은 야만적 현실을 특유의 유머와 야유가 뒤섞인 화면으로 표현해온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는데, 이처럼 강한 시각적 잔향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한국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고상함과 진지함, 그리고 난해함을 한 번에 전복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대한 야유를 유치함과 천박함, 그리고 냉소와 모독의 극단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전복과 냉소의 특성은 조습의 신작 <네이션 Nation>에서도 가감없이 드러난다. 그는 지난 2016년 12월 9일부터 25일까지 '인디프레스INDIPRES'에서 동명의 전시를 열었다. <네이션Nation> 시리즈 사진 속에서는, 폐허 위에 거지꼴을 하고 앉은인물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먹고 있거나, 탐닉하고 있다. 마치 허깨비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렬한 허기와 탐욕을 내뿜는 이들은 우유, 국수, 설탕 등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풍요보다는, 차라리 폭식증과 거식증을 오가는 불안에 가깝다. 그들의 허기는 아무리 먹어치워도 채워질 것 같지 않아서, 마치 아귀도에 떨어진 영혼들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최진욱 추계예술대 교수는 인디프레스 전시담론에서 <네이션 Nation>에 대해 다음같이 묘사한다.

 

 
“내가 조습에게서 본 것은 바로 그것이다. 불안감. - 한바탕 신나게 먹고 놀았는데 거지꼴로 쓰레기 더미 앞에 서 있는 기억 속의 국가. 먹어야만 한다. 웃어야만 한다. - 풍요해야만 한다. 씻어야 한다. 절대로 거지꼴이어서는 안 된다. 거지꼴일리 없다. 절대로. - 샤머니즘이 갖가지 의례적 형식을 중시하듯이, 전시는 완고할 정도로 정연하다. 흔들림이 없다. 관객을 압도하지 않은 샤머니즘의 의례는 실패한다. 소위 죽음의 욕망이 샤머니즘적인 의례와 결합하면 불안을 잉태한다.”
 

우유


<네이션 Nation>이 전시된 ‘인디프레스INDIPRES’는 종로구 통의동 도로변에 있는데,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린 날은, 촛불을 든 시민들과 이를 막는 경찰들의 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갤러리 안 그의 사진 속 ‘국가’와, 갤러리 밖 현실 속 어지러운 ‘나라 꼴’이 요지경처럼 충돌했다. 조습 작가는 불안한데도 ‘불안하지 않다’고 착각하고, 끌려다니는데도 ‘주체적’이라 생각하는 어떤 ‘착각’, 혹은 비이성적인 ‛믿음ʼ을 풍자와 야유를 통해 폭로 한다.

 
“어쩌면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국가가 국민을 바라보는 관점, 복지라 할 수도 있고, 인권이라 할 수도 있는, 주권자로 서 국민에 대한 대상화가 지금 저 모습 아닐까요? 제목을 ‘네이션 Nation’, 국가라고 한 것도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한다는 입장이 전혀 없다는 데서 시작했어요. 그 국가를 민중이 어떻게 살아가고 견디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죠. 그렇다고 완전히 민중이 위대하다, 시민들은 깨어있다 이런 것도 아니예요. 민주주의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작품 속 인물들을 우스꽝스럽고 코믹하게 만든 이유도,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이 사람들도 불행하지만, 속고 사는 너희들도 참 가관이라는, 민중성에 대한 야유도 있죠. 저보고 포스트 민중작가다 말하곤 하지만. 저는 민중성에 대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민중이 가지고 있는 무지함, 탐욕스러움, 그것들에 대해 반대해요.”

 



이번 연작들은 쓰레기 더미 위에서 촬영됐다. 택지 개발을 위해 재건축지역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마치 김치를 담글 때 숙성을 하듯이, 그 쓰레기를 모아놓은 땅이 폐허를 쌓아두고 숙성시키는 공간처럼 보였단다. 각 작품은 작가가 직접 모델로 등장해서 연출했는데 한 장을 찍고, 옆의 장면을 다시 찍고, 이렇게 이어 붙여가며 한 작품을 열흘 넘게 찍는 경우도 있었다고. 강추위 속에서 달랑 천 조각 하나 걸치고 덜덜 떨기도 했고, 닭발 목걸이를 건 스님을 연출하기 위해 닭발 300개를 일일이 손질해서 목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그가 이런 고행 같은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 찍는 과정부터가 하나의 의례와 같기 때문이다.
 


펌프


 
“이건 굿이죠. 예전에 명량교 부근에서 기독교 옷을 입고 찍었던 작업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다 일종의 굿인 거죠. 이 시대 사람들이 직접 말을 못하지만, 불편한 부분, 맺힌 부분을 풀어헤치는 씻김굿 같은 거? 그런 거죠.”


과연 그의 굿을 통해, 이 필사적으로 먹고, 삼키고, 소리치고, 웃고 구르고 있는 영혼들의 한은 풀렸을까? 그들의 게걸지고, 포한(抱恨)이 진 모습이, 지금 이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민낯과도 같아서 오랫동안 눈에 어른거린다.


조습

경원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최근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네이션, 인디프레스 2016>, <어부들, 갤러리조선 2014>, <일식, 팔레 드 서울 2013> 등이 있으며 참여한 기획전으로는 <대구사진비엔날레, 대구문화예술회관 2016>,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국립현대미술관 2016>, <새도림, 제주도립미술관 2016>, <경기잡가, 경기도미술관 2016> 등이 있다.


 
글 :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 조습 작가

해당 기사는 2017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