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장소의 재발견②

망각된 장소
엄상빈, <또 하나의 경계>


 

ⓒ엄상빈 속초, 2007


우리가 지금 분단 시대에 놓여 있다는 것. 철조망을 맞대고 있다는 것. 그 아래에서 대치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늘 잊고 지낸다. 경계가 놓여있는 DMZ는 어쩐지 지금 여기의 우리 생활과는 조금 멀게 느껴지고 가끔씩 뉴스나 기사를 통해 서슬 퍼런 철조망을 보게 될 때마다 다시 분단의 상황을 상기하지만, 우리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엄상빈, 고성, 2016


엄상빈 작가의 새로운 사진집이자, 스페이스22에서 4월 14일부터 5월 2일까지 진행되는 전시 <또 하나의 경계>는 우리의 이러한 망각적 상태를 겨냥한다. 실향민들의 삶을 담은 <아바이 마을 사람들>의 연장 선상이기도 한 이번 작품은 동해안 해안가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 해안가를 따라 철조망과 같은 군 시설물이 놓여 있다. 하지만 사진 속 누구도 이 철조망을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1983년에 속초에 있는 학교로 발령 배치를 받았다. 거기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속초를 사진에 담았다. 그 당시 모두가 달력 사진과 같은 꽃 사진에 몰려 있을 때, 나는 속초의 바다 풍경이 눈에 들어왔었다. 그런데 그 풍경 속에 철조망이 있는데, 아무도 그 철조망을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엄상빈, 고성, 2016


엄상빈의 사진 속 주민들은 거기서 오징어를 말리고, 이불을 널어 두기도 하며, 심지어 철조망을 이용해 호박 넝쿨을 키운다. 관광 온 사람들은 거기서 여름 휴가를 즐긴다. 모두가 그곳에서 바다만 본다. 그러나 엄상빈은 바다보다 철조망을 먼저 보았다. 속초의 바다와 아바이 마을에는 철조망이 있다. 그러나 속초 바다와 아바이 마을은 사람들에게 관광상품일 뿐이다. 가을동화 촬영지이고 <1박 2일> 프로그램이 다녀간 곳일 뿐이다.

 
“우스운 이야기다. 분단이 70년이고 거기에 철조망이 있는데, 그걸 가릴 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가을 동화와 1박 2일만 이야기한다.”


이 경계의 지표는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떠한 위험 사인을 보내지 않는다. 비무장지대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도 경계가 드리워져 있는데 우리는 그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 장소를 보지 않는다. 분단의 의미는 은폐되고 이곳은 이제 동해와 설악산 관광 코스로 남아있다.

 
“이번 작업에서 큰 틀은 분단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이건 트릭이다. 나는 철조망을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들과 함께 배치함으로써 더 이상 위협적이지도, 무섭지도 않은 철조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기의 주민들은 오랫동안 철조망을 곁에 두고 살다 보니까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엄상빈, 양양, 2016


그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흑백 작업에 컬러 사진을 추가한 이유에 대해 “흑백 사진만 두면 사람들이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고 지금은 철조망이 없어졌다고 생각할까 봐 같이 배치했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너무 쉽게 철조망을 오래된 흑백의 역사로 치부하고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강원도에서 이 작업을 천착한 1983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철조망은 약간 녹슬고 허물어졌을 뿐 그대로이다.


군 경계 철조망은 여전히 우리 가까이에 있다. 당신이 여름 휴가를 즐기고, 가족들과 주말에 놀러 가는 그 장소에 말이다.


엄상빈은 1980년부터 20년간 속초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퇴직 후에는 상명대학교 등에서 사진을 가르쳤다. <생명의 소리>(2006)와 <학교 이야기>(2006), <아바이마을 사람들>(2012), <창신동 이야기>(2015) 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기획전 및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동강사진박물관, 속초시립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글 : 편집부
이미지 제공 : 스페이스22

해당 기사는 2017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