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일본을 만나다 Encounter Japan①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아라키 노부요시, 모리야마 다이도, 쿠와바라 시세이, 호소에 에이코, 타쿠마 나카히라 등 일본 사진계의 거장들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국내 사진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전통적으로 일본 사진계는 전시보다는 출판이 강점인 특색을 살려 사진집 출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많고, 다른 한 편으로는 사진을 기반으로 개념미술과 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다. 시노야마 기신은 전자의, 히로시 스키모토는 후자의 대표적인 예이다. 현재 네덜란드 Foam Fotografiemuseum에서 열리고 있는 히로시 스키모토의 전시와 일본 요코하마 미술관에서 열린 시노야마 기신, 두 거장의 전시를 통해 일본 사진계의 현재를 만난다. 또한 지난 해 9월 재개장한 도쿄사진미술관(Tokyo photographic art muesum)을 찾아, 공립 사진기관의 역할과 의의에 대해 살펴본다.

 

Bay of Sagami, Atami, 1997 ⓒ Hiroshi Sugimoto
 


시간을 넘어 사유를 찍다

히로시 스키모토 Hiroshi Sugimoto, 개념사진의 거장, ‘사진으로 사유하는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히로시 스키모토의 사진전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Foam Fotografiemuseum에서 열리고 있다. 히로시 스키모토는 일본 사진계뿐 아니라, 현대 미술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로, 현재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일본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지난 2001년 세계적 권위의 핫셀 블라드 상(The Hasselblad Foundation International Award in Photography)을 수상했으며, 또한 영국의 『The Times』와 사치 갤러리가 함께 꼽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 200인‘( top- 200 artists of the 20th century)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사진은 “시간을 압축적으로 한 장의 사진에 담아냈다”고 평가받는데, 이는 흔히 사진이 한 순간을 영원히 포착한다는 개념과 반대로, 셔터를 개방하고 긴 시간 촬영해 시간을 압축해서 담아냈기 때문이다.

 
 

Hyena-Jackal-Vulture, 1976 ⓒ Hiroshi Sugimoto
 

히로시 스키모토는 1948년 전후 일본의 도쿄에서 태어나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고, 이후 미국 LA로 건너가 Art Center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순수예술을 공부했다. 당시 그는 미니멀리즘과 다다, 초현실주의 등에 영향을 받았으며 선불교와 동양철학 사상에 심취해 이를 자신의 작품세계에 적극 반영했다. 이 당시 그가 파고들었던 미니멀리즘과 동양철학사상은 그의 거대한 흑백사진들의 사상적 배경이 됐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스미스 소니언 미술관 및 테이트 모던 미술관, 모리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번 Foam Fotografiemuseum에서 열리는 전시는 히로시 스키모토의 주요 시리즈로, 총 5개의 섹션으로 이뤄져 있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극장 Theaters>(1976-현재)과 <디오라마 Dioramas>(1976-2012)부터 <라이트닝 필즈 Lightning Fields>(2006-현재), <초상화Portraits>(1994-1999), <바다풍경Seascapes>(1980-현재) 등이다. 이 중 <극장 Theaters>, <라이트닝 필즈 Lightning Fields>, <바다풍경Seascapes>은 여전히 작업 중인 시리즈이다. 5개의 섹션으로 나뉜 이번 전시는, 객원큐레이터인 Philip Larratt-Smith가 선정한 34점의 거대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El Capitan, Hollywood, 1993 ⓒ Hiroshi Sugimoto


<극장 Theaters> 시리즈는, 빈 극장에서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되기까지를 장노출을 통해 촬영한다. 긴 시간에 걸친 장노출 촬영 끝에 결국 극장 화면의 내용은 사라지고, 오히려 어둠속에 묻혀있던 스크린 주변의 의자와 장식 등이 선명하게 노출되는 초현실적 풍경이 그의 카메라에 담긴다. 이는 빛과 시간, 그리고 공간에 대해 ‘결국 무엇이 남는가?’라는 철학적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다. 이처럼 그의 사진은 보여지는 대상 그대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그 너머를 노출시켜 이를 통해 현상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렇기에 그는 ‘카메라를 통해 생각하는 철학자’로 불리기도 한다. <바다풍경> 시리즈 역시 전 세계의 바다를 긴 장노출을 통해 한 장의 바다풍경으로 담아낸다. 바다는 쉴새없이 파도치고 일렁이지만, 장노출로 촬영된 바다는 마치 정지된 사막과도 같이, 일직선의 지평선처럼 고요할 뿐이다.

 

Catherine of Aragon, 1999 ⓒ Hiroshi Sugimoto


<디오라마 Dioramas> 시리즈와 <초상화Portraits- Wax Museum> 시리즈는 ‘가짜 같은 진짜’와 ‘진짜 같은 가짜’에 대해 사진으로 내는 일종의 수수께끼이다. <디오라마> 시리즈는 자연사 박물관의 박제가 된 동물들을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촬영했고, <초상화> 시리즈는 밀랍인형들의 초상사진이다. 특히 <초상화> 시리즈는 헨리 8세 시대 인물들을 그대로 사진으로 담은 듯 보는 이에게 착시현상을 주는데, 사실 이 초상사진은 타임머신을 타고 헨리 8세 시대로 돌아가 그 인물들을 촬영한 것이 아니다. 헨리 8세 시대 인물들을 16세기 홀바인이란 화가가 초상화로 그렸는데, 이 초상화를 기반으로 정교한 밀랍인형이 제작됐고, 히로시 스키모토는 이를 다시 사진으로 찍었을 뿐이다. 실물에서 회화로, 회화에서 조각, 그리고 조각에서 사진으로 매체가 옮겨오며 일어나는 이 시간을 뛰어넘는 착시효과를 통해 그는 사진이 담는 시간의 확장성과 대상과 재현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Lightning Fields 327, 2014 ⓒ Hiroshi Sugimoto


<라이트닝 필즈 Lightning Fields> 시리즈는 ‘번개치는 들판’이란 뜻처럼, 마치 번개치는 자연의 한 순간을 포착한 듯한 착시를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40만 볼트가 넘는 전기를 금속판에 대고 발생하는 섬광을 포착한 작품으로, 사진발명가 탈보트의 ‛정전기와 전자기 유도실험ʼ에서 착안해 작업했다.


이처럼 히로시 스키모토의 사진은 철학적인 사유를 반영하는 개념적인 사진으로 관객들에게 사진을 통해 ‛보이는 것 그 너머ʼ를 사유하고 명상하게끔하는 선불교의 화두와도 같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인 Philip Larratt-Smith는 “그의 이미지들은 뛰어난 시각적 아름다움과 다양한 기술적 실험, 거대한 포맷의 사진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며 “히로시 스키모토의 작품들은 지각과 통찰(perception),환상(illusion), 재현(representation), 삶과 죽음에 대한 심오한 명상과도 같다”고 설명한다.


한편 이번 전시는 오는 3월 8일까지 진행되며, 전시 제목인 와 동명의 도록집이 Aperture와 Fundacion에서 공동 발행됐다.
 
글 :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 Foam Fotografiemuseum


해당 기사는 2017년 3월호에 소개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