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작가]“착한 작가” 지향하는 이명호, 궁극의 목적은 휴머니즘 실현

폭풍 성장한 나무, 10년의 나이테

 

하얀방 / tree...#8'''


폭풍성장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다. 사진가 이명호, 그는 2007년 첫 전시이후 10년 동안 많은 작가들이 선망하고 동경하는 것을 거의 다 성취했으니 말이다. 전시를 열 때마다 작품이 거의 다 판매되고 데뷔 이듬해 뉴욕 요시밀로 갤러리의 전속작가가 되었으며,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교수이고 오는 9월엔 북한산 자락에 작업실을 지어 오픈한다. 지난 6월 뉴욕전시에서도 솔드아웃의 기록에 이어 9월에는 서울 사비나미술관에서 설치에 중점을 둔 전시가, 9월 17일부터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미술관(KUNST HAUS WIEN)> 전시가 그리고 12월에는 호주 멜버른 전시가 이어진다. 올해로 10년의 매듭을 짓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이명호 작가를 만나 지난 10년의 나이테를 세어보았다.


나무를 다시 보다

수백 년 시간을 품은 거목도 아니고 기상이 늠름한 잘 생긴 나무도 아닌, 아마도 수 십 번 지나쳤을지라도 기억 속에 없을 그런 평범한 나무가 갑자기 작가의 조명을 받는다.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흔한 나무 뒤에 하얀 휘장이 쳐지고 그것이 사진가의 카메라로 들어와 한 장의 사진이 되었을 때 그 나무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특별한 작품이 되었다. 이렇게 한 그루의 나무에 가치를 부여한 30대 초반의 젊은 사진가 이명호 작가, 그도 역시 자신이 선택한 나무처럼 하루아침에 주목 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2007년의 일이었다.


 

하얀방 / Tree... #7, 104x230cm, Ink on Paper, 2014


이후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나무 시리즈는 그 이듬해 뉴욕으로 진출했고, 나무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그의 재현 작업은 화제를 모았다. 사진을 찍는다는 자체가 사각의 프레임 안에 작가가 발견하고 선택한 대상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재현행위인데 작가는 아예 촬영 전에 이미 취사선택한 대상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배경(캔버스)을 설치했다. 배경으로부터 대상을 분리시켜 그 대상에 주목하게 만들면서 선택과 가치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엔 그저 아이디어가 좋은 ‘나무사진’인 줄 알았지만 그것에 함의된 철학이 깊었다. 나무시리즈가 10년이 지나도록 계속하여 지지를 받는 것도 그런 담론 덕분일 것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사진이었으면 생명이 길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무가 있는 풍경사진이 아니라 나무를 통해 사물을 보는 법을 생각하게 만드는 의도가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화제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특히 영국의 유명한 패션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가 이명호 작가의 나무 작품을 가방과 셔츠에 도용해 미국 법원에 소장이 접수되며 “저작권법과 랜험법에 근거한 저작권 침해와 부정 경쟁에 대한 소송”이 시작되었는데 지난 1월에 해당 법원 측의 중재와 조정에 따라 합의로 종결되는 사건도 있어 이명호 작가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사막에서 바다를 보다


 

까만방 / Mirage #4, 119x186cm, Ink on Paper, 2012


나무사진이 한 그루의 나무를 비로소 제대로 보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면 이어진 사막사진시리즈는 착시효과를 일으켜 사막을 바다로 보이게 만든 역발상의 작업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사막에서는 신기루 같이 나타나는 오아시스 외에는 물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는 사막에서 바다를 연출했다. 이 엉뚱한 프로젝트는 사막에서 엄청난 길이의 천을 펄럭거려 마치 사막 저 편에 바다가 있는 듯 착시현상을 부추긴다. 신기루를 의도한 것이다.

 

까만방 / Sea #2 100×265cm, Arabian Desert Ink on Paper, 2010


바다에서 바다풍경을 찍지 않고 사막에서 바다를 연출해 내다니, 그의 의도는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보려 하는 사람의 보편적 심리를 건드린 게 아닐까. 사막에서 가장 갈증 나게 원하는 것은 물이기 때문에 태양 아래 출렁거리는 그것이 바다로 보이는 것일 게다. 실은 사막작업은 고행이었다. 몇 백 미터에 이르는 헝겊의 무게만 해도 상당하거니와 천을 한 줄로 늘어서서 잡아야 하는 인원도 수십 명 동원해야 했다. 모래바람 부는 사막에서 영화감독처럼 메가폰을 잡고 일일이 지시를 해가며 촬영을 했다. 그렇게 눈이 부시는 햇빛 아래 오랜 시간을 몸을 숨길 곳조차 없이 고스란히 불볕을 맞으며 촬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진가의 눈에도 사막에서 시원한 바다의 물결이 보이지 않았을까?


까만 방, 하얀 방 그리고 그 사이 혹은 그 너머


 

회색방, 그 사이 혹은 그 너머 / Single Channel, 무한, 2017


이번 사비나미술관 전시(2017. 8. 30 - 9. 30)에서는 지하1층, 지상 2개 층을 이용해 “까만 방 하얀 방 그 사이 혹은 그 너머”라는 제목의 설치작업을 보여준다. 4년 전, 갤러리현대에서 개최했던 전시의 공식 타이틀이 '까만 방, 하얀 방...'이었기 때문에 이번 사비나미술관 전시가 갤러리현대 전시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미 그때부터 몇 년 뒤의 전시까지 구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개 층 전시는 하얀방과 까만 방 그리고 회색 방으로 나뉜다. 하얀 방에는 나무사진시리즈, 까만 방에는 사막사진시리즈가 들어가는데 회색 방에는 두 개가 다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있지 않기도 한, 공(空) 개념을 취한다. 이 3개의 방에 각각 카메라 옵스큐라를 설치하고 뒤에서 프로젝트 빔을 쏘는데 앞에는 캔버스를 설치하여 필름을 연상케 한다. 전통적인 사진에서는 사진가가 파인더를 통해 모든 것을 보고 조정하면서 셔터를 누르지만 막상 셔터막이 내려오면서 사진이 찍히는 순간에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사실을 볼 수 있지만 진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진사 초기의 어두운 방과 밝은 방이 까만 방과 하얀 방으로 개념화 된 것인데 사막작업은 비현실을 연출한 재연작업이고 나무는 있는 현실을 더 잘 보여주는 재현작업이란 점에서 그의 화두는 여전히 “재연과 재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얀방 / Tree... #10, 52x132cm, Ink on Paper, 2017


이번 설치작업은 지난 6월 뉴욕 요시밀로 갤러리에서 “Tree...”이란 제목의 전시에 이은 “...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이라는 말없음표에 말을 부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말없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법을 알아낸 것 같기도 하다. 사이와 너머는 경계이면서 경계를 넘어서는 상태다. 이것을 이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래서 말없음으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요즘 그의 작업은 나무작업에서 개념으로 더 나아가 들판에 캔버스만 세워놓은 작업을 보여준다. 전에는 대상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특정한 대상 뒤에 캔버스를 설치했는데 이제는 작가가 캔버스 앞에 대상을 세우지 않고 캔버스 자체로 말하려 하는 것이다. 그 캔버스 앞으로 바람이 지나갈 수도 있을 테고 민들레 홀씨가 날아갈 수도 있다. 아니면 구름의 그림자가 비칠지도 모른다. 경계를 넘어섰음이 느껴진다.


뉴욕에 사과나무 심기



 

이명호 작가는 지난 6월 뉴욕 요시밀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뉴욕에 자주 머무는 이명호 작가는 뉴욕시 관계자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뉴욕의 상징인 센트럴파크에 뉴욕의 상징인 사과나무를 심자. 그리고 뒤에 캔버스를 설치한 후 나무가 자라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는 프로젝트를 해보자. 그렇게 되면 센트럴파크의 사과나무가 뉴욕과 함께 늙어가는 과정을 촬영할 수 있고 해마다 사과가 열리면 그 사과를 경매에 붙여 그 돈으로 젊은 예술가를 지원해준다면 멋진 프로젝트가 되지 않겠는가. 관계자는 반색을 했지만 여러 행정절차들이 있어 아직 검토하는 단계인데 오히려 송도에서 먼저 그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송도는 말 그대로 소나무 섬이다. 지금은 섬이 아닌 섬이 되었지만 말이다. 마침 송도에 있는 공원의 이름도 센트럴파크다. 뉴욕이 미적거리는 사이에 송도에서 나무를 심고 뒤에 캔버스를 설치하는 작업을 완성했다. 그러자 이 자리가 포토존으로 유명해지면서 송도에서 기대했던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


 
“뉴욕에서는 비슷한 예를 제시해주길 원했거든요. 아마 송도의 사례를 보았으니 사과나무 프로젝트도 이루어질 것 같아요.”


최근에는 '국가대표 프로젝트(Player Project)'라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한 촬영을 진행 중이다. 라이카에서 작가에게 기증한 카메라로 동계올림픽 15개 종목의 한국 대표선수들을 그의 캔버스 앞에 세워 촬영하는데 12개 종목의 촬영은 끝났고 이제 3개 종목만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촬영이 끝나면 올림픽 홍보를 위하여 서울 7017길에도 그의 작품을 설치하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어떤 분들은 작가가 무슨 프로젝트를 그렇게 많이 하느냐고 비판하기도 하셔요.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달라요.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가 작품을 위한 작품은 아니거든요.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기를 원해요.”


궁극적으로 실현하고 싶은 가치는 휴머니즘

 

이명호 작가


착한 기업처럼 이명호 작가는 착한 작가를 꿈꾼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처럼 그의 프로젝트가 사회에 기여하는 공익성을 갖추고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가 굳이 전공을 바꿔가며 사진학과에 다시 입학하여 사진가가 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사진을 하는가, 곰곰 생각해보았어요.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명예를 누리기 위해서라면 사진가가 되기보다 다른 것을 선택해야 맞겠지요. 그러나 나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길 소망해요. 즉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도구로서 사진을 하고, 사람에게 다가가고 사회에 기여하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명호 작가는 후배들에게 수도승처럼 어느 화두를 갖고 자나 깨나 고민하고 고행하는 중에 깨달음이 오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고행이 따르지 않으면 결코 좋은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천천히 차근차근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해나갈 것이라 말했는데 그 중 하나가 “가라앉는 섬”이란 작업이라고 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는 섬이 생기고 있고 호주에서는 실제로 가라앉는 섬의 주민들을 호주로 이주시킨다고 해요. 지구 온난화로 그런 섬들이 더 자주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데 나는 섬의 한쪽에 시멘트 구조물을 설치하고 싶어요. 그리고 섬에서 떠나기 전에 주민들이 마지막으로 그 구조물 앞에서 기념촬영한 후 섬이 가라앉고 그 구조물도 조금씩 물속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모두 촬영하고 싶어요.”


그가 “꿈꾸는 프로젝트”는 무궁무진해 보인다. 그에게는 지구가 다 작업공간이고 작품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한 그루의 나무가 10년의 나이테를 그리는 동안 어느새 거목으로 폭풍 성장하여 지구를 다 덮을 기세다.

 
글 : 윤세영 편집주간
이미지 : 이명호 작가


해당 기사는 2017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