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작가] 멀리 보면 오래 간다, 이규철


조미료 치지 않고 재료 본래의 맛을 살린 담백한 요리 같이 사진 본연의 맛을 살리는 담담한 사진을 추구하는 이규철 작가. 그의 사진은 상당히 서정적이면서 사적인 사유를 담고 있지만 자신이 발을 딛고 선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은 올 여름 전시작인 “눈 속에서 참 진을 찾는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규철, 눈속에서 참진을 찾는다.


은유적인 제목에서 감지되는 서정성


이번이 일곱 번째 개인전이다. 8월 말까지 <라이카 스토어 강남>에서 계속되는 이규철 개인전 “눈 속에서 참 진을 찾다”를 접했을 때 사진의 내용이 참 궁금했다. 전에도 “달빛, 소금에 머물다”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에서” “비온 날의 오후”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등, 이규철 작가의 전시나 사진집 제목은 사진에 찍힌 대상을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작가의 내면을 슬쩍 들추어내는 식이었다. 


비온 날 오후에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또한 소금에 머문 달빛은 더욱 희고 창백할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한밤중 하얀 메밀꽃을 마치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다고 표현했다. 소금처럼 하얀 메밀밭에 달빛이 벅차게 내려앉으면, 그런 날 밤이면 누군들 가슴 깊은 곳에 감추어둔 이야기 한 자락쯤 꺼내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번에는 눈 속에서 참, 진을 찾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시 포스터 사진에서는 눈 쌓인 들판에서 몽골 복장의 한 사내가 카메라를 눈에 대고 사진을 찍는 순간이 담겨 있다. 눈(雪)과 눈(目) 그리고 제3의 눈(카메라)이 교집합을 이룬 순간이다.



 
Ⓒ이규철, 눈속에서 참진을 찾는다.
 

이규철 작가는 열린 제목을 즐기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형성된 문학적 감수성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더 나아가서는 그의 작가적 태도와 깊게 닿아 있다.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무엇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냥 스며들고 젖어들게 하고 싶어 하는 성향 말이다. 군인의 이야기이든 굿이든 염전이든 또는 이 땅의 풍경이든 그의 사진에는 강한 톤의 웅변은 없다.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달려들어 기록하거나 고발하거나 파헤칠 법한 주제일 경우에도 그는 그냥 달빛에 젖듯이 은근히 스며들게 할 뿐이다. 


그는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글이 사람들에게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고 감동을 주듯이 사진도 그럴 수 있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에게 사진은 내면의 고백이고 타인에게 말 걸기의 방법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그래서 자신의 사진이 더 깊고 진실하기를 바라고 타인과 공유하고 공감하길 원하며 감정의 과장 없이 전달하려고 애쓴다. 


무엇이 참인가? 


사진에 대한 고민은 너무 많은 사진을 찍고 너무 많은 사진을 본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사진 시작은 고등학교 진학 후 사진반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하필 중동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외삼촌이 야시카 카메라를 선물했다. 그것이 고교 입학 후 특별활동으로 사진반을 지망하게 만들었고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는 아예 사진의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결국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진학으로 이어지면서 사진은 그의 평생의 업이 되었다. 자신이 사진으로 사회에서 어떤 쓰임새를 갖게 될까 시험해본 것이 졸업 후 시사저널 사진기자와 웅진출판사 근무였고, 5년 넘게 일한 후에는 잠시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하다가 2001년부터 지금까지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결국 30년 이상 사진을 품고 살아온 셈이다.



 
“그러는 동안 이미지에 조금씩 지친 건지도 모르겠어요. 특히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는 사진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잘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시각적으로 현혹하는 그런 사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반대욕구가 더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그런 내적 갈망이 2011년 그로 하여금 한 달 간 일정으로 몽골로 떠나게 했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것들에서 벗어나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생각으로 떠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카메라를 꺼내지도 않았다. 망망대해처럼 휑하니 펼쳐진 사막과 360도 어디서나 지평선이 아득하게 보이는 몽골의 들판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거나 몽골사람들이 휘파람처럼 뽑아내는 구음에 귀를 기울였다. 눈보다 귀에 의지하는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5월 5일 아침은 기적처럼 찾아왔다.


“자고 일어나니 온 세상에 눈이 하얗게 쌓여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마치 하얀 천으로 덮인 것 같았어요. 어제 본 들판이 아니었어요. 봄날에 느닷없이 내린 춘설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내들었지요.”



 
Ⓒ이규철, 눈속에서 참진을 찾는다.


봄날의 눈이었으니 곧 거짓말처럼 녹아 사라지고 막이 걷힌 듯 세상은 다시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루 사이에 완전히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참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사물을 바라볼 때 제대로 보아온 것인지 자문하면서 사물의 본질에 대해 더 많이 사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가로서 변화를 갖고 싶어서 찾아간 몽골은 봄날의 짧은 눈을 통하여 그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열어준 셈이다. 이제부터는 힘 빼고 조미료 치지 않고 사진 본연의 맛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 배경을 알고 몽골사진을 다시 본다. 대자연 속에서 사람들은 숨은 그림처럼 잘 드러나지 않고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로서 존재감 없이 존재한다. 몽골의 풍경이 대부분 그렇듯이 드라마틱하거나 황홀한 장관이라기보다 치장되지 않은 담백한 자연의 민낯이다. 아득한 시절부터 본디 그러했을 것 같은 자연풍경과 그것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인물의 배치는 싱거운 듯 하면서 은근한 끌림을 준다. 이미 그가 얻은 깨달음이 사진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을 컬렉션 하는 사진가     


 

이규철 작가
 

이규철 작가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본인의 개인 작업을 병행하면서 동시에 재능기부에도 열심이다. 인권단체라든가 사회단체에서 요청이 오면 흔쾌히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외국인 노동자의 인물사진 찍어주기다. 그들이 가족에게 잘 있다는 안부를 전하기 위한 사진이다. 또한 백혈병을 앓는 어린이들과 그들의 가족사진도 찍어주면서 사진이 누군가에게 위안과 위로를 준다는 것이 참 좋았다고 했다. 세월호 빈집을 촬영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차마 아이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가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각 집에 있는 아이들의 방을 촬영하는 프로젝트에 자원 봉사한 것. 아이들이 쓰던 방과 물건들을 촬영하여 남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방을 치우거나 이사 가지 못하는 부모에게 “그래도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위로를 줄 수 있었다. 사실 다큐멘터리 사진가라면 모두 욕심을 낼만한 소재들인데 그는 재능기부로 그칠 뿐, 개인 작업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애초에 자신이 기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최근에는 제주도를 드나들며 4.3사건 관련 촬영 기부를 하면서 오히려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재판정에서 피해자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제주도 특유의 사투리로 억울하고 한 맺힌 일생을 털어놓을 때, 그 진솔하고 투박하고 절절한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면서 사진가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재판정에서 두 세 시간씩 피해자들의 육성으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상처와 고통을 듣다보면 사진가가 아니었다면 들을 수 없었을 것이므로 봉사가 아니라 보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제가 지금 제주도의 기운생동을 촬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그 육성증언이 제 작업에 영감을 주고 제 영혼을 흔들어요. 제주도의 땅과 기운이 그분들의 삶과 무관치 않다는 느낌, 서로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제 개인 작업에도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규철 작가는 또한 다른 사진가의 사진을 컬렉션 하는 남다른 사진가이기도 하다. 그는 1998년부터 돈은 없지만 그래도 1년에 한 점씩 사진을 사자는 결심을 하고 실천해왔다. 그리고 2017년 3월에 20년간 모은 사진들로 이규철 사진 컬렉션전을 열었다. 제목이 “사진가가 사랑한 사진들”이다. 사실 사진가들이 본인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버거운데 타인의 사진을 소장하여 전시를 연다는 것은 사진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 같다. 그의 말대로 “내가 선택한 사진 또한 나의 사진이다.”라는 확실한 애정과 믿음이 없다면 “한 장의 사진이 찍혀지고 선택되어 전시장에 걸리는 길고 긴 시간과 작가의 노력이 눈물겨운 일”임을 뜨겁게 공감하고 인지하지 못했다면 현실화 되지 못했을 일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약력에서 개인전 7회 속에 이 전시도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누군가 나에게 해줬으면 원하는 것을 내가 먼저 하는 것입니다. 사진을 좋아하고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해요. 내가 잘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을 1년에 한 점이라도 소장했다가 나중에 소장전을 열면서 그 작가들을 모두 한자리에 초대한다면 얼마나 의미 있고 멋진 일인가.”



사진을 어떤 면에서는 발견의 예술이라고 한다면 내가 선택한 작가, 내가 발견한 작품을 ‘내 것’으로 하는 일, 어색하지 않다. 더구나 그 행위가 작가의 눈물겨운 작업에 용기를 주고 격려가 되는 일이라면 눈물겹게 소중한 일이 아닌가. 그 지점을 잘 알고 실천해나가는 이규철 작가의 진정성이 가슴에 와 닿는다.


멀리 보고 간다 


 

Ⓒ 이규철, 21군인841의 휴가, 2002

Ⓒ 이규철, 21군인841의 휴가, 2002

 
Ⓒ이규철, 달빛소금에머물다, 2007


그의 첫 전시작인 “군인, 841의 휴가”는 자신의 군복무 중 이야기다. 전시를 하기 위한 사진이 아니라 군인인 그의 일상이었던 것. “비온 날의 오후”도 그러하다. 마치 일기장을 보여주듯이 담담하게 일상을 내보이고 있다. 그러나 “달빛, 소금에 머물다”에 이르면 그가 사진가임(?)을 대뜸 알아볼 수 있다. 심미적인 태도가 자칫 작가의 마음을 더듬어보기에 앞서 이미지에 홀리게 함으로써 매끄럽게 좋은 이야기만 주고받다 헤어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굿-징소리”에서 불식된다.


 

photo-6 50x70 핑야오 Ⓒ이규철 전시도면 스몰1_8​


photo-3 50x70 핑야오 Ⓒ이규철 전시도면 스몰1_12

 
“울산에서 굿을 볼 때였어요. 칠십을 넘긴 할머니들이 굿을 보며 엉엉 울고 있는 것이었어요. 순간 ‘저건 뭐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의 삶과 겹치며 토해낸 절박함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저 할머니들의 마음을 사진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굿 사진을 찍은 유명 선배 사진가가 있음에도 그가 굿을 찍는 것은 “나도 할머니처럼 울 수 있을 때까지 굿판을 지켜보고 그 절실함을 사진으로 말해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사진에 자신의 소리를 담을 수 있게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굿을 사진의 대상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작가도 굿을 보면 저절로 굿판의 소리와 춤과 행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 그가 굿이란 제목 옆에 징소리라는 부제를 굳이 붙인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굿의 형태만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까지, 그 소리의 파동까지 전달하고자 하는.



 
photo-14 50x70핑야오 Ⓒ이규철 전시도면 스몰1_9



사진가로서 30년을 살아온 이규철 작가는 사진을 통하여 당장 무엇을 얻고자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을 믿기 때문에 당장의 결과에 흔들리지 않고 멀리 갈 수 있다고도 했다. 진리를 찾는 구도자처럼 먼 길을 가려는 사진가에게서 진정한 사진가의 자세를 느낀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일찍 답을 내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해보게 된다. 이제 오십의 나이가 된 이규철 작가. 지난 30년의 사진에서 반환점을 돌아 앞으로 30년을 향해 출발한 작가의 참 진을 찾는 작업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참 궁금하다.    
    
이규철 사진전 “눈 속에서 참 진을 찾다”
2018년 7월 5일 - 8월 31일 라이카 스토어 강남


 
글 : 윤세영 편집주간
이미지 : 이규철 작가


해당 기사는 2018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