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박종우, 아름답지만은 않은 풍경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다. 노인의 주름만큼 지난한 일이 되어버린, 그리고 잊히지 않는 굴곡이 되어버린 전쟁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전후 세대로서, 그 기억은 대부분 학교에서의 교육과 매스컴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글로벌 이슈에 맞닿아 벌어지는 북한의 태세전환과 정치적인 이슈들, 그리고 간혹 쏘아 올리는 미사일의 궤적과 핵폭탄 실험은 현실이라기 보단 오히려 판타지인 양 먼 나라의 일인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의 나라이자, 전쟁발발위험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에서 우리는 지난 한국전쟁과 분단의 현실에 대해 너무나도 무뎌져 있다.


 

DMZ_NLL #1, 2010, archival pigment print, 150×100cm 박종우



박종우 작가는 2009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를 기록하는 국방부와 한 신문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전쟁 이후 수십 년간 출입조차 할 수 없었던 비무장지대와 감시초소 GP(Guard Post)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오고 있고, 그 자체로 큰 가치를 담는 일이었다. 하지만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과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남북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프로젝트는 잠정 중단되었고, 그 후 작가는 수년 동안 개인 자격으로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분단의 풍경을 기록해 나갔다. 작가는 비무장지대를 촬영한 사진으로 2017년 독일의 사진집 출판사인 슈타이들(Steidl)과 협업하여 사진집 『DMZ』를 출간하였고, 2019년에는 국내 동강국제사진제에서 동강사진상을 수상하며 〈경계에서…(On The Border)〉 전시를 열었다. 그리고 올해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린 박종우 작가의 개인전 〈비무장지대 DMZ〉(5.12~8.26)는 그간 작가가 주목한 분단경관을 집대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DMZ_Recon #2, 2010, archival pigment print, 69×49cm



DMZ 내부, 정찰(Reconnaissance), 휴전선감시초소(GP), 공동감시구역(JSA), 한강하구 중립수역(HRENZ), 북방한계선(NLL). 작가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의 전시와 함께 2017년에 출간한 사진집의 아홉 범주를 여섯개의 범주로 재정리하여 한국어판 『비무장지대 DMZ』 사진집을 출간하였다. 공동감시구역(JSA)은 남북의 정상이 만난다는 시끌시끌한 뉴스 속보나 유명한 영화(공동경비구역 JSA, 2000년 작)로 그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위 단어들을 교과서로 공부하고, 수없이 매스컴으로 접해 들었지만, 그것이 금방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것은 그동안 그곳의 풍경이 노출되지 않고 숨겨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풍경에 어린 사연을 알지 못한다면 작품을 보더라도 그저 천혜의 자연 풍광 속 전쟁의 잔해와 GP, 철책선과 경계선이 펼쳐진 모습 정도로만 보일 것이다. 사진 속 그 모습이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것에 작가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사람들이 제 사진을 보고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름답게 찍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곳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답게 찍힌 것이죠.”

 

DMZ_SLL #1, 2010, archival pigment print, 90×60cm, 박종우



분단경관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지극히 중성적이다. 사진을 통해 어떠한 것을 이야기하고, 개입하려 하기 보다는 앞에 놓인 풍경을 하나씩 툭툭 던져 놓는다. 그리고 관람객에게 그 풍경과 직접 대면하게끔 유도한다. 이제 전후 세대는 70년이 지난 그때의 일을 복기함에 있어 간접적인 경험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응이 떨어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되려 작가의 작품을 보며 역사의 맥락이 아닌, 그저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독특한 분단경관에 빠져들다 보면 DMZ를 둘러싼 분단의 경과와 이유들이 작품에 무게를 더하며, 그저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경관이 생기게 되었나를 생각하면서 그로 인한 분단의 이유, 경과, 우리의 마음가짐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거죠. 비무장지대의 분단경관을 보면서 아름다움보다는 슬픔을 먼저 느꼈으면 해요.”

 

5DMZ_JSA #4, 2009, archival pigment print, 125×83cm ©박종우



2018년 9월 19일 군사합의를 통해 비무장지대에 설치되어 있던 GP의 일부를 철수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북한은 폭발물을 이용해 GP 10곳을 불과 4분 만에 폭파, 철거하면서 세계적인 이슈를 불러들였다. 이 일을 두고 남북 간의 평화를 향한 단계로 보는 견해가 많았던 것은 수십 년간 정체되어 있던 비무장지대의 풍경이 크게 변화한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남한 정부는 남북한 GP를 모두 철거하는 것을 목표로 협의하며, 통일을 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변화의 시점에서, 작가가 수년간 기록해 온 분단경관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무뎌져 있던 모습을 끄집어낸다. 그 모습이 또 수십 년이 지나서는 어떠한 형태로 남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작가의 기록은 아카이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DMZ_JSA #1, 2009, archival pigment print, 51×75cm 박종우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쟁의 시설물들, 즉 벙커나 용치1)와 같은 것들은 이제 지역민의 삶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전쟁이 종료된 후 필요성을 잃고 그대로 방치되어온 잔해들은 일부 철거되거나 변형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경우가많다. 작가는 이와 같은 전쟁시설물 또한 분단경관의 한 장면으로 작업의 범주에 끌어들인다. 한강하구 중립수역과 북방한계선의 모습, 이외에도 통일촌의 생활상 등 작가는 비무장지대 인근에 펼쳐져 있는 미시적인 풍경들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작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가 꾸준히 이어온 분단경관의 기록은 비로소 분단 이후 벌어진 수십 년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DMZ_GP #2, 2010, archival pigment print, 100×150cm 박종우


이제는 연 주기의 행사와 알림으로 전쟁을 지각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는 한국전쟁의 역사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한반도 분단의 원인이 된 한국전쟁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전쟁 발발 60주년이던 10년전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지 체감할 수 없겠지만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분단의 경관은 분명히 조금씩,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박종우 작가가 직접 바라보고 기록한 일련의 작업 또한 조금씩, 천천히 그 가치를 더해가고 있다.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의
전시와 사진집 『비무장지대 DMZ』를 통해 분단경관을 아우르는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가늠해보고, 혹자에게는 비로소 전쟁이 남긴 상흔을 마주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DMZ_SLL #4, 2019, archival pigment print, 120×150cm ⓒ박종우


박종우는 11년간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한 이후, 저널리스트에서 다큐멘터리스트로 전향하여 활동하고 있다. 〈Himalaya Monography〉(고은사진미술관, 2009), 〈임진강〉(스페이스 22, 2016), 〈경계에서…〉(동강국제사진상수상자전, 2019)를 비롯,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사진집 『Himalayan Odyssey』(2009, 에디션 제로), 『임진강』(2017, 눈빛), 『DMZ』(2017, Steidl)를 발간했다.


1) 용치(龍齒, Dragon’s Teeth)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의 히틀러가 연합군 기계화 부대의 진군을 막기 위해 고안해낸 사각뿔 모양의 대전차 장애물이다. 경기도, 강원도 북부 지역과 서해 북방 5도 해안에서 여러 형태로 변형된 용치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다.

 
글 정효섭 기자
이미지 제공 고은사진미술관

해당 기사는 2020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