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로버트 메이플소프 (Robert Mapplethorpe), 미(美)와 악(惡)은 같은 것이다

동성애와 가학-피학증, 흑인 누드, 남성 성기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루며, 독보적 예술세계를 쌓아온 천재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대규모 회고전이 이탈리아와 캐나다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 뮤지엄 오브 파인아트(Montreal Museum of Fine Arts)에서는 전이 진행 중이며, 이탈리아 Galleria Franco Noero에서도 전이 열리고 있다.



“미(美)와 악(惡)은 같은 것이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Robert Mapplethorpe) 

 

Robert Mapplethorpe (1946-1989), Ken and Lydia and Tyler, 1985, Gelatin silver print, Image: 38.4 × 38.2 cm,
Jointly acquired by the J. Paul Getty Trust and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with fundsprovided by the J. Paul Getty Trust and the DavidGeffen Foundation2011.7.19,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육체를 천상의 피조물로 검은 심연으로 끌어들인 순수한 영혼이 여기 있다
 
- 패티 스미스, 로버트 메이플소프 추모시 中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촬영한 패티 스미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애인이자, 평생의 지지자였던 패티 스미스(시인, 음악가)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죽음을 기리는 추모시에서 그를 ‘순수한 영혼’으로 추억한다. 그의 작품을 두고 선정성 시비와 함께 퇴폐, SM(가학성과 피학성) 작가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는 80년대 미국 아트씬을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된다.

<위대한 사진가들>의 저자 줄리엣 해킹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냉정하고 고전적인 작품으로 예술적 성취와 현대적 세련미를 모두 표현해냈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위해 자신의 성향(동성애적 성향)을 숨기는 대신 바로 그러한 성향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삶이 예술 그 자체였던 메이플소프는 그럼에도 자아와 자신의 경험을 분리했는데, 이를 사진을 통해 우아한 조형과 정물로 바꾸어 놓았다”고 평가한다.

1946년 뉴욕 퀸즈에서 태어난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프랫 인스티튜드에서 광고를 전공했으나 이후 시각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다. 이 시절 그는 게이 포르노 잡지와 마약 등 금단의 영역을 접하게 됐으며, 그의 애인이자, 평생 우정을 지속해온 소울메이트, 패티 스미스를 만났다. 패티 스미스는 이후 시인이자, 싱어 송 라이터로 성공해, 미국 펑크씬의 대모로 불렸지만, 그 당시는 시를 쓰고 드로잉을 그리는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이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도 80년대 그가 얻은 부와 명성은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한 끼 식사비용을 아껴야 겨우 집에 전화를 걸 동전을 마련할 수 있는 처지였다. 이 두 예술가 지망생들은 1960년대 브룩클린에서 동거하며, 그들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함께했다. 

 

Milton Moore1981, gelatin silver print ⓒRobert Mapplethorpe


두 사람은 예민하고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성향 뿐 아니라, 여러 공통점이 있었는데, 특히 둘 다 어린 시절 엄격한 종교적 교리의 집안에서 자랐고, 성장하면서 그 제도화된 종교에 반발했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어린 시절 독실한 카톨릭 교리의 집안에서 자랐고, 그의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냉정했다. 엄격한 교리와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평생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작품에는 성(聖)과 성(性)이 뒤섞였고, 비천한 존재가 고귀하게, 고귀한 존재가 비천하게 전복되는 카오스(혼돈)가  담겨있다. 
 

Robert Mapplethorpe (1946-1989), Melody (Shoe), 1987, Gelatin silver print, Image: 48.9 × 49.2 cm,
Gift of The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to the J. Paul Getty Trust and the Los Angeles CountyMuseum of Art, 2012.52.22,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Robert Mapplethorpe (1946-1989), Leather Crotch, 1980, Gelatin silver print, Image: 35.2 ×35 cm,
Promisedgift of The RobertMapplethorpe Foundationto the J. Paul Getty Trustand the Los AngelesCounty Museum of Art,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도발적이고 선정적으로 화제를 모은 동성애, SM(가학증-피학증)등의 작업들은,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강요되어온 억업과 권위에 대한 그의 도전이자, 자신의 욕망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분출하는 일종의 해방구이기도 했다.

줄리엣 해킹은 그런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작품세계를 “교회와 가족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려는 유년기의 충동은 완전히 독창적인 것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과 합쳐졌으며, 이는 그의 예술적 신조의 바탕이 되었다. 과거의 예술과 사진에 의지한 그의 이미지들은 1980년대 시각적 세련미의 전형으로 생생한 디자인, 화려한 결과물, 그리고 열망을 숨긴 차가운 감성을 보여준다”고 묘사한다.


 

Dennis Speight1983, gelatin silver print ⓒRobert Mapplethorpe


패티 스미스는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새로운 남자 애인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그와 헤어졌지만, 이후로도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평생을 연락하며 우정을 지켰다. 초기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작업 모델이기도 했던 그녀는, 그의 작업태도를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그는 단 한순가도 자신의 예술적 욕구에 대해서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의 식대로라면 신의 뜻에 따른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언어들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와 열을 이뤄 한 편의 시가 되고, 물감과 흑연이 서로 섞여 종이 위에서 휘갈겨져 신의 움직임을 확대한 한 점의 그림이 된다는 것이다. 신념과 수행이 완벽히 조화를 이뤄 걸작이 태어나고 영적인 안정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Robert Mapplethorpe (1946-1989), Derrick Cross, 1983, Gelatin silver print, Image: 48.5 × 38.2 cm,
Promised gift of The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to the J. Paul Getty Trust and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Robert Mapplethorpe (1946-1989), Calla Lily, 1988, Gelatin silver print, Image: 49 × 49 cm,
Jointly acquired by the J. Paul Getty Trust and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partial gift of
The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partialpurchase with funds provided by the J. Paul GettyTrust
and the David Geffen Foundation2011.9.26,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이처럼, 절대적이고, 권위적인 종교에 반발했던 로버트 메이플소프였지만, 자신의 예술 세계에서는 더 극단적으로 자신만의 질서와 절대성을 추구했다. 그의 누드 작업에서는 엄격한 황금비례율과 고전주의 시대의 조각상을 본뜬 포즈 그리고 빛의 질감을 연구해 마치 정물처럼 인체의 근육과 피부를 돋보이게 하는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꽃을 촬영한 사진에서도 빛에 따라 달라지고 도드라지는 조형미를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다. 꽃잎의 매끄러운 질감은, 흑인 남성 누드의 윤기나는 피부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그의 사진에는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끈적끈적한 에로티즘보다는, 오히려 인체를 정물, 혹은 조각처럼 보이게 하는 차가움과 거리감이 존재한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꽃을 찍을 때 내가 사진에 접근하는 방법은 남성의 성기를 찍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그 두 가지는 같은 것이다”고 말했다.

 

Robert Mapplethorpe (1946-1989), Thomas, 1986, Gelatin silver print, 60.5 x 50.4 cm, MMFA, gift of Guy Joussemet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1989년 40대의 나이에 요절했지만, 사후에도 그의 작품들은 전세계에서 전시돼고 있다. 현재도 캐나다 몬트리올 뮤지엄 오브 파인아트(Montreal Museum of Fine Arts)에서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회고전 이 진행 중이며, 이탈리아 Galleria Franco Noero에서도 전이 열리고 있다. 캐나다 MMFA에서 열리는 전은 지난 해 3월 로버트메이플소프 재단이 기획하고 LA카운티뮤지엄(LACMA: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게티 뮤지엄(Getty Museum)에서 동시에 열린 대규모 회고전의 캐나다 순회전이다. 그의 전생애에 걸친 회고전으로 약 300점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 전시는 동성애나 누드, SM 등 선정적인 논쟁이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가려졌던 그의 작품 속 미학적 의미를 재발견하고, 재평가하려는 기획의도에서 시작됐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미학에 근거한 예술로서의 조형주의’, ‘사회 윤리를 초월한 낭만주의 - 스스로 악마성이라 부르던 자의식’, ‘남녀가 가진 양성적 특성에 대한 시각화’ 등 세 가지 면을 주목했다.

 

Robert Mapplethorpe (1946-1989), Self-Portrait, 1985, Gelatinsilverprint, Image: 38.7 × 38.6 cm,
Jointly acquired by the J. Paul Getty Trust and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with fundsprovided by the J. Paul Getty Trust and the DavidGeffen Foundation2011.7.2,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Robert Mapplethorpe (1946-1989), Self-Portrait, 1980, Gelatin silver print, Image: 35.5 × 35.7cm,
Jointly acquired by the J. Paul Getty Trust and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with fundsprovided by the J. Paul Getty Trust and the DavidGeffen Foundation, 2011.7.11,
ⓒ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한편, 이탈리아  Galleria Franco Noero에서 열리는 전에서는 ‘극단적인 자유를 추구한 감각적인 누드’ 작품부터 그의 ‘예술적 영역과 사생활의 영역이 분리되지 않은, 그와 그의 동료들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면모’까지 만날 수 있다. 7~80년대의 자유롭고 퇴폐적인 삶을 구가했던 그와, 그의 예술가 친구들, 당대의 셀러브리티들의 초상들이 10개의 방에서 전시된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둘러싸고 당대에 예술은 과연 어디까지 금기를 허용할 수 있는가 논란이 일었으며, 그를 선정적이고 저속한 작가로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그는 어떤 악의적인 의도로 예술을 이용했다거나, 혹은 명성을 얻기 위해 스스로의 성적취향을 작품화하지는 않았다.


 

Robert Mapplethorpe (1946-1989), Phillip Prioleau, 1982, Gelatin silver print, Image: 38.8 × 38.8 cm,
Promised gift of The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to the J. Paul Getty Trustand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사진에 대해서는 엄격한 완벽주의자였으며, 끊임없이 빛과 구도를 연구했던 창조자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는 예술이든, 인생이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며, 패티 스미스의 회고처럼, ‘그저 어린아이’(Just Kids)같이 천진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검은 숲속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 모험했던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유혹도, 마녀도, 악마도 많았지만, 꿈꿨던 이상의 아름다움도 경험했다. 이 두 어린 소년, 소녀가 보내 온 많은 날들과 밤들에 대해서 비판하고 뭐라 말할 수 있는 자들은 어디에도 없다. 
- 패티 스미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Montreal Museum of Fine Arts, Galleria Franco Noero

해당 기사는 2017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