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이후의 프레임 : 한국 사진의 르네상스를 조명하다 ①

1990년대 한국 사진계의 흐름을 조망하는 전시가 열렸다. 지난 11월 2일 대구미술관에서 개최된 <프레임 이후의 프레임 : 한국현대사진운동 1988-1999>에서는 한국 사진 르네상스기 작품 250여 점과 아카이브 1,000여점 소개돼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 한국 사진계는 사진 본질론에 대한 논쟁, 아마추어와 전문 사진가의 분리, 사진학회와 사진집단의 등장, 사진전문 잡지사와 출판사 설립 등 이슈와 논쟁이 많았던 황금기이다. 대구미술관은 당대 일어난 다양한 이슈와 현상들을 정리하고 한국현대사진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이경민 대표와 함께 <프레임 이후의 프레임 : 한국현대사진운동 1988-1999> 전시를 기획했다.
 

김장섭_풍경을 넘어서-안면도Ⅱ_1997_crystal print, panorama, 101x145cm



김대수_Where I am nca1986892_1988_oil on photo_91.5×105cm

총 4부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프레임의 경쟁’ , ‘미술관으로 들어간 사진’, ‘탈프레임적 징후들’, ‘새로운 프레임의 모색’을 주제로 주요 전시에 출품된 사진 작품뿐만 아니라 기획과 공간, 집단, 출판, 교육, 학회 등 분야별 결과물을 아카이브로 재구성해 90년대 한국 사진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1부 ‘프레임의 경쟁’에서는 ‘만드는 사진’인 메이킹 포토(making photo)와 ‘찍는 사진’ 테이킹 포토(taking photo)를 양대 축으로 90년대 주요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을 모아 일부를 재현했다. 구본창, 이갑철, 이규철, 최정화, 한정식 등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당대 사진가들의 매체 인식과 표현 방식 간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김동휘, 김정수, 양성철, 이동준 작가 등의 작품을 통해 서울 중심의 대규모 사진전에 대항하며 지역의 사진문화를 견지하고, 현대 사진의 흐름에 동조하고자 노력한 1990년대 대구 지역의 사진운동을 소개했다.

2부 ‘미술관으로 들어간 사진’에서는 박홍천, 정재규, 황규태 작가 등의 작품을 통해 미술제도에서의 사진 수용 과정을 되짚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또한 미술과 사진을 넘나들며 사진을 표현매체의 하나로 활용한 미술가들의 혼합 매체적인 작업들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주목해야 할 전시는 1996년 열린 <사진, 새 시각>전이다. 국공립미술관 중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이 사진전은 국립기관이 사진의 새로운 위상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제도에서의 사진 수용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사진, 새 시각>전의 출품작 중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을 모아 그 당시 전시의 일부를 재현했다.

3부의 주제는 ‘탈프레임적 징후들’이다. 1990년대 중후반 사진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이 가라앉자, 기존의 프레임을 넘어서려는 새로운 경향들이 나타났다. 1999년 무렵 새롭게 등장한 작업들은 주제나 형식적인 면에서 2000년대 이후 한국 컨템포러리 사진의 전조를 보여주었다. ‘탈프레임적 징후들’에서는 권순평, 김수강, 어상선, 조성연 작가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오브제의 재발견’, 김장섭, 정동석, 정주하, 박홍순 작가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풍경을 넘어서’, 김옥선, 박영숙, 이선민, 전미숙, 홍미선 작가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여성주의 사진’, 김상길, 김진형, 조용준, 한수정, Meta4 작가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실재와 재현의 경계’ 등 4가지의 주된 양상을 소개했다.

4부 ‘새로운 프레임의 모색: 사진제도의 제 양상’에서는 사진집단과 운동, 전문기획자와 사진전문 공간의 등장, 출판과 저널, 학회, 교육 등 사진계에서 진행된 다양한 실천들을 제도적인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이경민 대표는 “90년대는 다방면에서 사진문화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지금까지 큰 흐름을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를 할 때는 작가 중심으로 기획을 해왔던 것에서 벗어나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뿐만 아니라 사진전시 기획자와 교육자, 사진평론가와 전문출판인, 사진전문공간 운영자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들을 분야별로 모아 아카이브처럼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제2부 “미술관으로 들어간 사진: 미술과 사진의 만남“의 첫 번째 섹션인 <미술제도로의 편입>의 전시 모습.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사진, 새로운 시각》전에 출품된 작품들과, 동시대 사립미술관에서 개최된 사진전의 출품작들로 구성되었다.



제3부 “탈프레임의 징후”의 첫 번째 섹션인 <오브제의 재발견>의 전시 모습.
왼쪽: 어상선의 <정물> 연작(1996), 오른쪽: 권순평의 <시간의 화석> 연작(1990-1992)과 <나의 기억들을 위한 정물> 연작(1993-1995)



제3부 네 번째 섹션인 <실재와 재현 사이>에 출품된 박영선의 작품 설치 모습.
폴라로이드카메라로 3년 동안 촬영한 인왕산(<인왕산과인왕산과인왕산과>,1997-1999)과
하루 동안 촬영한 인왕산(<인왕산의인왕산의인왕산의>, 1999)을 위아래로 구성했다


제4부 네 번째 섹션 <사진전문출판의 시대-출판사진으로 보는 1990년대 한국현대사진>의 전시 모습.
1990년대 사진 관련 도서를 발간한 출판사들을 소개하고, 주제별 도서전을 쇼케이스에 담아 구성했다.
 
또한 공간 연출이 돋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한눈에 1990년대 한국 사진계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각 분야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진적 실천과 이슈들을 조직적으로 연결하여 한국 사진이 어떻게 현대성을 성취해 나갔는지를 시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대구미술관 이계영 학예연구사는 “대구미술관에서 한국사진사를 심도 깊게 조명하는 첫 전시일 뿐만 아니라 대구의 사진 실천을 지역사를 넘어 한국현대사진의 흐름과 어떻게 호흡을 맞추어왔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 전시를 통해 사진자료의 체계적인 관리와 보전, 인프라 조성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사진의 르네상스기를 조명한 이번 전시는 2019년 1월 13일까지 대구미술관 1전시실에서 열린다.
 


구본창_탈의기04_1988_c-print_116x79.5cm



이규철_무제_연도미상_plastic, paper_22.5x22.5cm


 
글 김수은 기자,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해당 기사는 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