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든 세헤라자데, 《She Who Tells a Story》

엄격한 종교적 계율로 여성 활동을 제한하는 이슬람 문화권에도 여성주의가 존재할 수 있을까? 여기 이란, 아랍지역 여성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이런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다. 여성주의자는 여성의 시각으로 주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발언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뜻한다. 이란, 아랍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사진작가들은 여성의 활동에 제한을 두는 엄격한 사회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바라보며, 용감하게 사진을 통해 발언한다.

 
Mother, Daughter, Doll series, 2010 Ⓒ Boushra Almutawakel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세헤라자데는 여성을 불신해서 동침한 여인들을 죽이는 왕에게 1000일의 밤 동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때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그녀를 이끌어 가는 동인(動因)이자, 죽이려는 자와 살고자 하는 자 사이의 줄다리기이다. 이야기를 멈추는 순간 세헤라자데는 왕에게 목숨을 잃을 것이기에, 그녀는 1000일의 밤 동안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다. 왕의 절대 권력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야기는 그녀가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캐나다 전쟁 뮤지엄(Canadian War Museum)에서는 오는 3월 4일까지 아랍지역 여성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명이 인 점은 흥미로운데, 이란과 아랍의 여성 사진가들을 ‘이야기를 하는 여성’으로 지칭하고 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사진 그 자체로, 그녀들이 스스로를 침묵 속에 가두지 않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12명의 여성 작가들은 특유의 통찰력으로 아랍지역의 삶을 관찰하고, 이슬람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데, 이 작업들은 크게 ‘오리엔탈리즘의 해체(Deconstructing Orientalism)','뉴 다큐멘터리(New Documentary)’, ‘정체성 구축(Constructing Identity)'이라는 3가지 주제로 나뉜다.


Shirin Neshat는 시리즈에서 이슬람 혁명 시기 여성 전사들에게 영감 얻은 일련의 흑백 사진을 선보인다. 이란 태생의 그녀는 17년간 미국에서 공부했고, 다시 반정부 시위가 한창인 자신의 고향을 찾았을 때 큰 문화충격을 받았다. 이슬람 교도이자 아랍지역 여성, 급변하는 정치 현장에 선 여성이라는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을 그는 이슬람 혁명에서 활약한 여성 전사들의 초상을 통해 표현한다.

 

Speechless, from the series Women of Allah, 1996
Ⓒ Shirin Neshat
Courtesy Noirmontartproduction, Paris,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반면 (p.31) 시리즈에서는 11세기 페르시아 시인의 고대 비극 서사시 샤호네(Shahnameh)를 몸 위에 빼곡히 적고 사진 찍었는데, 이 작업은 2009년 이란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The Green Movement'(2009년 이란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해 일어난 반정부 시위)에서 희생된 익명의 시민들을 추모하며 자유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얼굴부터 발바닥까지 몸 위에 빼곡하게 적힌 글귀들은 기실 그녀를 보호하는 갑옷이자 또한 애도의 서(書)이기도 하다. 얼굴 위에 적힌 글귀와 그 얼굴의 바로 옆으로 삐죽히 나온 총구는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자유를 요구하다 폭력에 짓밟힌 시민들을 떠올리게 한다.

 

Bullets Revisited #3, 2012 Ⓒ Lalla Essaydi (born in Morocco in 1956)
Courtesy of Miller Yezerski Gallery Boston; Edwynn Houk Gallery New York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Lalla Essaydi는 모로코 출신의 여성작가로 그녀 역시 자신과 다른 여성의 몸과 옷 위에 이야기들을 빼곡이 써내려가는데 사진 속 여성들을 둘러싼 배경과 의복은 자세히 보면 총알들로 이뤄졌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총알 재고, p.35)이다. 항상 전쟁의 대치상황 속에 있는 아랍 지역 여성들의 정체성을 피부에 문신처럼 새겨진 글씨와 총알로 상징한 이 작업은 금속 위에 프린트되서 신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그 차가운 질감이 총알의 금속성 이미지와 어우러지며, 아랍 사회가 처한 모순을 연상시킨다.

 

Don’t Forget This Is Not You (for Sahar Lotfi), from the series Listen, 2010
Ⓒ Newsha Tavakoli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East Wing Contemporary Gallery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I Am Eve (for Mahsa Vahdat), from the series Listen, 2010
Ⓒ Newsha Tavakoli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East Wing Contemporary Gallery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이란 출신의 Newsha Tavakolian가 찍은 (p.36) 시리즈 역시 사회적 메시지가 강렬한 작업인데, 파도 치는 바닷가에 반쯤 잠긴 여성의 몸 위로 마치 기러기가 날아가듯 글씨들이 흩어져 있다. 작가는 사진과 영상으로 이란 여성들이 겪고있는 사회적, 정치적 제약을 시각화한다. 이 시리즈의 모델들은 여성 음악가들로, 이란 사회는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공연하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금지하기에 이들은 설 무대가 없다. 작가 역시도 이란사회의 엄격한 제약 때문에 사진작업을 할 때 큰 어려움을 겪었기에, 음악가이지만 대중 앞에서 공연할 수 없는 그녀들에게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사진 속 여성들은 비록 슬프지만, 강인한 눈빛으로 전면을 응시하고 있고 그것은 그녀들이 이 파도치는 현실 속에서도 결코 음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의지를 전해준다.


이 밖에도 Tanya Habjouqa의 시리즈는 가자 지역에서 제한된 공간에서 자유를 제약받으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기록했고, 레바논 출신의 Rania Matar는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는 소녀와 그녀들의 방을 촬영했다. 12명의 여성 작가들은 다큐멘터리와 개념사진, 콜라쥬 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슬람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냈다.


 

Rahim, from the series Our House Is On Fire, 2013
Ⓒ Shirin Neshat Courtesy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이들의 작업을 보면 유독 글을 몸에 적는다거나 벽에 적는 등 글자를 활용한 작업이 많아 눈에 띄는데, 이는 산문시가 발달한 이슬람의 문화적 전통에서 영향 받은 부분도 있다. 또한 여성들의 공적인 발언이 제약당한 사회에서, 그만큼 여성들이 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가슴에 넘치다 못해 밖으로 흘러넘치는 시각적인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슬람 문화권 같이 경직된 사회에서 여성이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불경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여성은 카메라에 찍히는 대상일 뿐, 스스로 카메라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고 파악하려는 시도는 불온한 욕망으로 간주된다. 이런 젠더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은 이란과 아랍지역 여성 작가들이 활동하는데 제약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더 날카롭고 깊어지게 하고, 풍부한 메타포를 함축케 했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죽음의 위협이 있었기에, 세헤라자데의 이야기가 더욱 치열하고 끈질기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끝내는 세헤라자데가 1000일 동안의 이야기로 왕을 변화시켰듯이, 아랍의 여성 사진가들, 카메라를 든 세헤라자데들도 결국은 자신들의 이야기로 경직된 사회구조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며 변화시키고 있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Canadian War Museum

해당 기사는 2018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게재일자 2020-12-15 17:48 수정일자 2020-12-15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