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리브 포에버, 현실 안팎의 사진

기이한 사진, 예측과 통제 불가능한 현실에 기반하지 않고 기이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들고 걸으며 현실 세계를 재현하기보다는 작가의 세계와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사진을 활용한다. <리브 포에버 Live Forever>(하이트 컬렉션, 10.18-12.14)는 정희승, 전명은, 이민지, 김경태, 오연진의 사진들로써, 디지털 사진 이미지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예술로서의 사진과 사진의 ‘영속(Live Forever)’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예술사진의 확장된 외현을 확인시키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의 예술성과 영속성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리브 포에버> 전시 전경 ,
이미지 제공 | 하이트컬렉션,
photo by Kyoungtae Kim
 

표현으로서 사진의 탐색
 

<리브 포에버>는 정희승, 전명은, 이민지, 김경태, 오연진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들은 각기 카메라의 기계적 기록성을 이용하되, 있는 현실이 아닌 구성한 현실이자, 인지하기 어려운 순간의 분위기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며, 경험하지 못한 것을 사진으로 구성한 가상의 시공간에서 감각하고자 한다. 또 카메라 렌즈가 구축해온 이미지의 관습화된 시지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며,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은 사진을 암실에서 광화학적 반응을 통해 얻는다.
 

정희승, Valley, 2011, archival pigment print, 141.5×70.3cm
ⓒ정희승

정희승은 그동안 해온 “스틸-라이프(Still-Life)”, “부드러운 단추들(Tender buttons)”, “사라짐(Disappearance)” 시리즈 등에서 ‘사물(Objects)’을 중심으로 개별 작품을 선별해 보여줬다. 작품에서 보이는 사물들은 현실의 일반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생경한 사물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커버를 씌운 매트리스, 책, 종이봉투, 나무토막 등 흔히 보아왔던 사물들의 기록이지만 촬영 시 사물의 배치를 달리하거나 클로즈업해 배경을 삭제하고, 전시장에서 사진의 상하를 역전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보여준다. 익숙한 사물에 대한 사고와 익숙하지 않은 사물의 이미지 사이 충돌은 규정된 의미가 아닌 모호한, 그로 인해 다양한 의미를 생산한다.
 

전명은, Floor#5, 2019, archival pigment print,108×144cm  
ⓒ전명은


 
전명은, Floor#9, 2019, archival pigment print,108×144cm 
ⓒ전명은

 
전명은은 기계체조 선수들을 촬영한 “플로어(Floor)” 시리즈를 선보였다. 어린 선수가 하는 기계체조의 한 동작, 하나의 움직임을 보여주기보다 짧은 시간 동안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자 하는 인물의 긴장과 집중, 몰두 등의 분위기를 드러낸다. 이를 위해서 배경을 단색으로 처리하고 동작 이전의 얼굴 표정 또는 동작하는 몸의 근육과 핏줄 등을 중심으로 프레임을 구성했다. 또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눈, 눈빛, 눈썹, 입술 등의 부위에서 드러나는 긴장의 신호뿐 아니라 순간적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 돋아난 솜털 등에 포커스를 맞춰 이를 포착했다. 전시장에서 대형 크기로 전시된 어린 소녀의 얼굴 표정과 몸의 제스처들은 상황의 제시 없이 얼굴과 신체만으로 상황의 긴장된 분위기를 제시한다.
 

이민지, 필드: 트립, 33 29’46.30N 126°57’59.70”E, 2018, digital pigment print, 150×120cm 
ⓒ이민지

 

이민지, Scan Type Blue, 2019, digital pigment print, 65×50cm 
ⓒ이민지
 
 
이민지는 2017년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한 “사이트-래그(Sight-lag)” 시리즈와 “필드: 트립(Field: Trip)” 시리즈를 보여줬다. “필드: 트립” 시리즈는 2017년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가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했던 곳을 1년 후 인터넷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통해 찾아보고 위성사진으로 확인 불가하거나 누락된 곳을 유사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찾아 여행하며 촬영한 것이다. 이 두 시리즈의 개별 작품들은 라이트 박스 위 필름에 출력된 사진, 포토샵에서 반전한 사진, 반전된 사진에 셀로판 종이를 덧대 스캔한 사진, 부분만을 확대해 형상을 알아볼수록 없도록 만든 사진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됐다. 각기 달리 표현된 풍경사진은 각 개별 작품에 지도상의 좌표 값으로만 장소성을 드러낸다. 제목을 읽지 않고 좌표값을 찾지 않는 한 작품 이미지로는 하나의 여행지로 보여, 끝맺지 못한 여행을 이미지를 통해 완성한다.
 

 

김경태, Serial Compositions 18, 2018, inkjet print, 133×100cm 
ⓒ김경태
 
 

김경태, Serial Compositions 9, 2018, inkjet print, 133×100cm 
ⓒ김경태
 

김경태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보이는 새로운 시지각의 세계를 “Printed Matter HW” 시리즈와 “일련의 구성 (Serial Compositions)” 시리즈를 통해 보여준다. “Printed Matter HW” 시리즈는 센물을 끓인 후 바닥의 침전물을 접사 촬영으로 확대해 새로운 형상으로 보여준다. “일련의 구성” 시리즈는 A4 판형의 백색 책자를 역시 접사 촬영해 실제 형상을 가늠하기 어렵게 하고,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 하나의 대상이나 풍경을 초점 거리를 달리해 촬영한 후 촬영된 여러 장의 사진을 한 장으로 조합해 피사계 심도를 깊게 하는 디지털 영상 처리 기법)을 활용해 접사 촬영 시 포커싱 아웃이 되는 부분이 없도록 만듦으로써 마치 그래픽 이미지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로써 인간의 시지각을 넘어서는 동시에 렌즈를 통해 보이는 시각 이미지에 새로운 변용을 시도한다.
 

 

오연진, Contact, 2017, gelatin silver print, 10 pcs, 35.6×27.9cm each 
ⓒ오연진


오연진, Account #4, 2019, chromogenic print, 210×127cm
ⓒ오연진, photo by Kyoungtae Kim
 

오연진은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은 사진, 암실에서의 광화학적 반응을 통해 완성한 사진을 보여준다. “Contact” 시리즈는 내장된 카메라 애플리케이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여러 SNS 애플리케이션의 촬영모드를 켠 스마트폰을 인화지에 감광시킨 포토그램을 보여준다. 또 신작 “Account” 시리즈는 특정 패턴을 포토샵에서 만들어 OHP 필름에 출력한 후, 이 필름을 확대기에 넣고 노광 시 확대기의 RGB 값이나 노광 시간에 변화를 주거나, 인화지에 현상액을 횟수를 달리해 발라 감광시킴으로써 나온 사진으로 구성됐다. 암실에서 이뤄지는 아날로그 컬러 인화 방식의 여러 변수를 활용해 예측을 빗나가거나 예측할 수 없는 결과의 조합으로써 사진의 광화학적 우연성을 실험했다. 대형 크기(210×127㎝)로 완성된 “Account” 시리즈는 마치 거대한 회화처럼 보이면서도 확대된 OHP 필름의 기계적 패턴들이 남겨져 장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현실의 재현으로서 사진


 

<리브 포에버> 전시 전경 ,
이미지 제공 | 하이트컬렉션,
photo by Kyoungtae Kim
 

정희승, 전명은, 이민지, 김경태, 오연진 작가가 선보이는 <리브 포에버>의 작품들은 그림 같은 사진, 즉 회화적 요소를 사진에 미적으로 더한 것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각자의 탐색이 담겨 있다. 카메라 촬영을 통한 사진의 기록성과 사실성, 아날로그 인화 시 변주할 수 있는 광화학적 특성, 포토샵 등의 디지털 이미지 처리 기술 등이 현실의 재현과는 다른 작가의 세계와 개념을 표현하는 맥락에서 활용됐다.

 

<리브 포에버> 전시 전경 ,
이미지 제공 | 하이트컬렉션,
photo by Kyoungtae Kim
 

전시는 디지털 사진의 시대, SNS 플랫폼 등을 통해 확산되는 사진 이미지와는 차별화된 예술사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현실의 재현보다는 작가의 표현에서 찾았다. 현실의 한 장면을 촬영한 사진 이미지이지만 현실이 보여주는 의미보다 작가가 구성한 현실의 의미가 앞서고, 또 그렇지 않은 탈현실적인 사진들은 이것이 사진일까,라는 의구심을 일으킨다. 이로써 사진의 여러 표현 방법에 시선과 관심을 머물게 하며, 궁극적으로 이 표현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리브 포에버> 전시 전경 ,
이미지 제공 | 하이트컬렉션,
photo by Kyoungtae Kim

 
또 한편으로 <리브 포에버>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의 예술성과 그 영속성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예술은 현실과 삶의 세계에서 출발하고, 세계를 재현하는 사진은 그 현실의 한 장면을 평면의 기록으로 남긴다. 과거의 기록, 실재의 사실적 재현으로서 이러한 사진의 힘은 지나온 과거 시간, 존재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환기시키며, 이를 환유적으로 확장시켜 세계와 삶을 새롭게 이해하게 하는 데 있다. 즉 사진은 현실의 이미지로 가득 찼으나 의미는 비어있으며, 그 의미는 곧 보는 사람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서 생산되고 확장된다. 이때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세계와 지금의 삶에 대한 이해와 통찰, 현실에 대한 관찰과 경험 그리고 그것을 카메라와 자기만의 프레임으로 남길 수 있는 직관과 감각이다.
 

사진은 카메라를 이용해서 촬영하기 쉽고, 현실을 촬영한 사진은 그 의미를 알아보기 쉽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인간이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것이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사고해야 하고 예측불가하기 때문에 상상해야 하며 불연속적이기 때문에 추리해야 하듯, 평면으로 만나는 현실의 한 장면인 사진도 그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인간의 표현이 다양해도 자연이 만들어내는 창조에 비할 수 없고 재구성된 현실이 만들어내는 의미는, 설사 그것이 단절된 현실의 한 순간, 한 장면이라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발견되는 의미를 넘어서기 어렵다.
 

 

<리브 포에버> 전시 전경 ,

이미지 제공 | 하이트컬렉션,

photo by Kyoungtae Kim
 


듣기보다 말하기를 원하고, 논픽션보다 픽션을 찾으며, 현실에서 가상과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시대다. 실재하는 세계를 목도하게 하고 현실의 자기 삶을 사유할 수 있게 하는 재현으로서 사진이 예술로서의 사진에서 더 위축된 시기이기도 하다. 고단한 현실을 살며 예술에서 그 현실을 다시 돌아보기란 녹록치 않고, 작가 또한 쏟아지는 이미지에 휩쓸리지 않고 차별화된 사진을 내보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요란하지 않게 우리 현실에 스며들어 세계와 대면 또는 대응하게 하는 사진들이 있다.
 

그 사진들에는 기법이 아닌 태도가 있고, 창조가 아닌 발견의 시선이 있다.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응하고 잊히는 것에 대항하는 사진의 힘이 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은 순간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셔터를 눌러야 하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은 작가가 쌓아온 온 삶이다. 사진의 역사 180여 년 동안 현실을 재현하는 수많은 사진이 보여준 예술성의 근간이기도 하다. 매 순간 잃어버리는 현실을 기록하고, 경험을 기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는 한 현실을 재현하는 사진은 영속할 것이다. 다만 현실을 대면하게 만드는 그 사진의 예술성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대항하는 작가들에 의해 지속될 것이다.
 

 
글 : 정은정 기자
이미지 제공 : 하이트컬렉션
 
 
해당 기사는 2019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