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국가는 어디에 있는가?②

국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My dear Country_국민을 위한 나라>


 

Restructure Climax Scene#3, Digital C-Print, 85X125cm, 2011

 
“국가에 대한 열망은 끔찍한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다.
- 동의하지 않는 자는 모두 멍청이로, 적으로, 이단으로, 타자로 간주된다”
<엔첸스베르거의 판옵티콘> 中


독일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가 쓴 사회비평집 <엔첸스베르거의 판옵티콘>에는 ‘책상 위에서 국가를 발명하는 방법’이란 흥미로운 제목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저자는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기원과 그가 지닌 배타성을 분석하며, 국가의 개념이 ‘우리’와 ‘그들’이라는 배타적인 구분 지음을 통해 시작함을 지적한다. 엔첸스베르거가 ‘국가’라는 개념의 발명에 의구심을 갖듯이, <My dear Country_국민을 위한 나라> 전시도 역시 국가의 실체를 의심한다.

 

깃발소리 시리즈1_한,일월드컵 축하행사_광화문, Pigment print, 110×150cm,2002


<My dear Country_국민을 위한 나라>는 지난해 12월 26일부터 1월 24일까지 부산시 금정구에 위치한 예술지구_p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예술지구_p가 2015년부터 연례기획전으로 시작한 ‘회동담화(回東談話)’의 두 번째 기획전으로, 곽윤주, 김경호, 오민욱, 임안나, 조준용, 채승우, 한정식 등 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김소희 기획자는 기획의도를 “이번 전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에게 각인되어온 민족과 국가,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질문해보고자 한다”며 “ ‘국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반어적으로 드러내고자 전시 제목을 ‘국민을 위한 나라’로 축약하였다. 전시작을 통해 한 국가가 다른 민족과의 변별성과 고유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만들고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한 ‘민족’과 ‘조국’,‘애국심’,‘영웅’,‘전통’ 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영웅의 초상 02, 45x45cm, gelatin silver print, 2010

 

영웅의 초상 06, 45x45cm, gelatin silver print, 2010


이 전시에서는 각 작가의 ‘따로 또 같이’ 할 때 얻는 증폭효과가 두드러졌는데, 단독 전시일 때보다 함께 배치됐을 때 갖는 의미들이 더욱 명확하고, 깊어졌다. 전시 입구에는 김경호의 ‘무궁화 대훈장’이 설치됐다.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받는 ‘무궁화 대훈장’의 이미지와 조명이 함께 박동하며, 故 박정희 대통령의 대통령 수락연설이 함께 재생된다. 김경호는 또한 전쟁의 광기로 인한 개인의 희생, 만들어진 영웅의 의미를 질문하는 ‘영웅의 초상’ 시리즈를 전시했는데, 이는 맞은편 조준용의 베트남 파병과 관련된 사진과 영상 작업 ‘Memory of South’, ‘416Km Series’나, 전쟁, 무기를 스펙타클한 연출로 촬영하며, 전쟁을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행위 전반에 드러나는 아이러니를 표현한 임안나의 ‘Restructure of Climax’과 함께, 전쟁과 영웅의 의미, 그리고 이면에 말살되는 인간성에 대해 생각케 한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1971-81, Pigment print, 60x40cm



서울 광화문 네거리,1971-81, Pigment print, 60x40cm


한정식은 1971년 4월부터 1981년 3월까지 같은 장소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찍은 20개의 사진을 전시했다. 그의 사진 속에는 똑같은 모양의 광화문 선전탑이 표어만 바뀐 채 나열돼있다. 유신 후반기에 세워지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철거된 이 선전탑에는, ‘故 박정희 대통령 각하 국장’(1979.11), ‘새질서, 새시대, 새사회’(1980.8.18.) 등 시대상을 반영하는 표어들이 쓰여 있다. 한정식은 이 사진들이 실렸던 사진집 <흔적>(눈빛 출판사, 2006)에서 “사진이 ‘시대의 증언’이라고 하거니와, 이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것도 그러하다”고 언급했다. 그 사진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시대상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깃발소리 시리즈2 _ 이순신장군 동상 수리 복귀, 광화문_Pigment print_2010


한정식의 ‘광화문 네거리’ 작품 근거리에는 채승우가 2010년 찍은 광화문 사진이 있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이 사진에서는,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척을 마치고 제 자리로 복귀한 것을 기념해, 군인들이 그 앞에서 예를 갖추고 있다. 군부정권이던 박정희 시대 건립된 이순신 장군 동상과 그 앞에 도열해있는 군인들의 뒷모습은, 현재까지 이어진 군부시대의 잔상들을 되새기게 한다. 채승우는 ‘깃발 소리’의 작가노트에서 “역사학에서 근대론자들은 근대가 형성되면서 ‘정체성’이 문제가 되고 ‘국가’와 ‘민족’의 개념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며 “한국에서는 몇 번의 정치적 이유와 관련하여 ‘국민’을 교육해내야했고, ‘한국적인 것’에 집착하기도 했다”고 비판한다.


곽윤주는 어린 여학생들이 부채춤을 추는 전경과 여학생들의 화장을 지운 개개인의 초상을 촬영한 <Triumpf of the Will, 의지의 승리> 시리즈를 선보였다. 부채춤은 애초 단체군무가 아니었다. 아니라, 월북한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 김백봉이 스승으로부터 전수한 부채춤 독무를 시연했는데, 이 춤이 멕시코 올림픽 출전을 계기로 군무로 변형됐고 이후 지금까지 ‘전통춤’으로 인식됐다. ‘의지의 승리’라는 제목은 풍자적이고 반어적인 의도를 담고 있는데, 곽윤주는 “한국 전쟁 후 국가의 성공적 재건 신화를 계승하는 이 근대성의 그로테스크함을 어린 무용수들의 인상에서 보았다”고 전했다.



 

Restructure Climax Scene#2, Digital C-Print, 85X125cm, 2011


작금 대통령 탄핵사태를 지켜보며, ‘이게 나라냐’는 분노와 자조 어린 한탄이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이게 나라냐’는 한숨에, ‘그럼 과연 당신이 생각하는 나라는 무엇이냐, 애초에 우리가 믿는 나라의 실체는 존재하는가’라고 날카롭게 되묻는다.

 
글 :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 예술지구_p

해당 기사는 2017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