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작가] 제17회 동강사진상 수상, 황규태

 
사진가로서 자그마치 55년이다.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변화는 다채롭다는 표현을 넘어선다. 
흑백의 스트레이트사진으로 시작하여 최근의 픽셀 작업에 이르기까지 이 작가만큼 운동장을 넓게 쓰는 사진가가 있었던가?
작가는 지금도 새롭게 진화 중이다.


 

Ⓒ 황규태, 안내원 Usherette
 
 
호기심 천국

 
Ⓒ황규태, 이카루스 Icarus
 
 
Ⓒ황규태, 어떤 오후 One Day Afternoon

이미 그가 발표했던 작품들에서 나타난 것처럼 사진의 한 귀퉁이에 작게 찍힌 한 부분이 확대되어 떡 하니 주인공이 되고 B급으로 버려질 사진이 화려한 부활을 알리기도 한다. “블로우 업(Blow up)”이 대표적인 예이다. 확대, 합성, 필름 태우기, 몽타주 등 해볼 수 있는 것은 마음대로 다 해보면서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는 한편, 작품의 주제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우주로까지 무한 확장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갖는다. 거침없는 아이디어의 발현이 현란하고 다채롭다.

이번에 동강사진상 수상전으로 영월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 제목은 “묵시록 이후”이다. 작가가 사진으로 다시 쓰는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대한 환경 생태 사회적인 예언으로 가득 찬 20점 가량이다. 이 전시에서는 그동안 작업해온 것 중에서 작가가 새롭게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들과 신작이 들어있는데 최근 주력하고 있는 픽셀작업이 주를 이룬다.  
 

Ⓒ황규태, 픽셀의 진화 Evolution - Pixel
 
예를 들자면 사람이 하나의 픽셀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연작사진(p.45)은 그 메시지가 매우 철학적이다. 사람이 점차 픽셀로 치환되면서 마지막에는 그 알록달록한 픽셀마저 줄어들어 한 개의 픽셀로 남는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이 하나의 픽셀로 진화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하나의 픽셀이 사람으로 진화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 이쯤 되면 진흙 한 덩이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세기의 말씀이 연상된다. 작가의 디지털 개념으로는 하나의 픽셀이 점차 개수를 늘리다가 사람의 형상을 갖는 것이지만 태초의 아날로그적인 물성의 개념으로는 진흙이 뭉쳐지면서 점점 인간의 형상이 된다는 것과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처럼 자유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엉뚱하게 해석하며 짓궂은 메시지를 던져놓고 재미있어 하는 그의 모습은 작가가 이미 호기심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어린아이 같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성경의 한 구절처럼 작가는 무한한 상상력과 천진한 호기심과 치열한 단순함으로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세계, 픽셀로 환원되는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 세상은 의외로 아름답고 신비하며 즐거워서 당분간 작가는 픽셀의 세상에서 빠져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현실적인 현실
 
시작은 전통적인 의미의 사진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 잡지사에 보내는 등 공부보다 다른 것에 한눈을 팔기 시작한 황규태 작가(1938년 충남 예산 출생)는 서울로 유학하면서 본격적인 사진수업과 활동을 시작하였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사진하던 청년은 잠깐 경향신문 사진기자로 활동하다가 1965년에 미국으로 가버리면서 한국사진과 멀어졌다. 그러나 1992년에 미국생활을 접고 돌아올 때까지 그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사진을 놓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미국 현대사진의 흐름에서 그의 상상력은 더욱 확장되었고 흑백사진은 그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담아낼 컬러사진으로 바뀌었다.

 50대 중반의 나이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본격적인 황규태 작품의 발표는 그때부터였다. 한국과 미국을 경험하고 흑백과 컬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그는 세련된 표현기술 속에 그의 예술적 ‘끼’를 마음껏 발산하였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거리낌 없이 걸어갔고 그 결과는 풍부한 화제를 몰고 왔다.  

그의 사진은 관념화 추상화 되어갔지만 결코 시각적인 즐거움이나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주제가 무겁든 어렵든 유머를 잃지 않았고 서정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에겐 아무리 멀리 가도 되돌아오는 구심력이 있었다. 젊었을 적 훈련된 정통사진의 저력이다. 그는 지금도 본인의 사진은 아주 멀리 와있지만 스트레이트 사진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이것도 사진의 영역이냐?”라는 의문을 자아낼 만큼,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갈 데까지 가고 있다.” 사진이라기보다 현대미술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도 픽셀 작업을 하면서 그 결과가 러시아의 화가 말레비치의 “cross"와 같은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말한다. 이미지를 극도로 단순하고 추상적으로 파고 들어가니 말레비치가 손으로 그린 그림과 같은 형상이 되었다. 100년 전 손으로 그린 그림과 디지털 세상에서 이미지의 근본을 파고 들어간 결과가 일맥상통한다는 발견이 그를 기쁘게 했다.   

 

 “사진이 픽셀이잖아요. 안으로 깊게 파고 들어가니 픽셀에 이르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날마다 픽셀 속에서 살고 있어요. 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등, 픽셀로 이루어진 세상입니다.”


 우연성, 발견, 근저까지 파고 들어가는 집요함이 결국 픽셀 작업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 이미지의 근본을 찾아 표현한 결과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아이러니를 노출한다. 현실을 쪼개고 쪼개 가장 작은 단위로, 가장 근본으로 추적하면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된다는 재미있는 결과가 그의 호기심에 불을 댕긴 것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픽셀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어디에 이를까요?”라고 물으니 지체 없이 모른다는 답이 돌아온다. 사실 우문이다. 작가가 그 답을 안다면 아마 금방 시들해져서 색다른 작업으로 옮겨갔을 테니 말이다.   

 
무의미의 의미     

 
Ⓒ황규태, 익명의 아이 Pixel: Unknown Child

 

Ⓒ황규태, 익명의 아이 Pixel: Unknown Child
 
이번 전시 제목 “묵시록 이후”가 암시하듯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사실 녹록치 않다. 그러나 작가는 ‘의미’라는 말에는 서둘러 손을 젓는다. 굳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시각적인 즐거움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사실 황규태 작가의 작품의 특징은 일차적으로는 시각적인 유쾌함이나 가치의 전복에서 오는 쾌감, 의외의 반전 같은 요소들로 눈길을 낚아채지만 그 뒤에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사회고발 사진보다 더 날카로운 사회적 발언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픽셀 작업에서도 픽셀 자체가 주는 은유와 내재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대상의 표면이 아니라 형상을 구성하는 본질을 찾아 들어간다는 점에서 픽셀 그 자체가 이미 깊은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아무리 작가가 무의미의 의미라고 눙쳐도 작가는 분명 심각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황규태, 복제 Reproduction
 
작가가 자주 즐거움이나 유쾌함을 언급할수록 그 뒷면을 생각하게 된다. 달콤하게 코팅된 쓴 약처럼 그의 작품들은 화려하거나 현란한 색채와 파격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내재적으로는 무거운 질문을 안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이 가져다 줄 감당키 어려운 미래에 대한 예언은 미래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인간조차 바코드가 붙어 상품화 되고 환경파괴로 폐허가 된 황량한 지구에 내던져질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지, 그 진화의 끝이 낙관적이기보다는 두렵다. 왜냐하면 과학 발전의 속도를 조절할 방법을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묵시록’이란 단어를 쓴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황규태, 천상열차분야지도 Astronomical Map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의미 찾기를 하지 말라고 말한다. 굳이 말하자면 ‘무의미의 의미’일 뿐이라며 이미지를 그냥 이미지로 보라고 권한다. 선입견과 관념에 얽매여 이미지 자체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을 놓칠까 경계하는 의도가 아닐까?           
 
새로움의 미덕
 
황규태 작가
 
작가의 변신은 무죄다. 아니, 작가는 늘 변신을 해야 한다. 작가는 새로워지길 꿈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현실에서 번번이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 이에 대해 황규태 작가는 “새로워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노력해야만 한다면 더 이상 즐거울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과 새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다르다. 그는 오히려 오래된 것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눈을 갖고 있다. 과거의 사진에서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내고 전혀 연관성이 없던 두 장의 사진에서 이것과 저것의 융합으로 전혀 다른 무엇을 끄집어낸다. 오래된 잡지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길을 지나다가 이미지를 포획하기도 한다. 그와 함께 있으면 이미지를 사냥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커피를 마시다가도 탁자 위 컵과 휴지, 또는 얼룩이 진 탁자의 한 부분을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육안으로 함께 보고 있는데도 그가 찍어낸 화면을 보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미지가 담겨 있어서 내가 본 것과 작가가 본 것이 동일한 것인지 놀랄 때가 있다. 천성적으로 타고 난 감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황규태 작가에겐 “하늘 아래 그 모든 것이 다 새롭다.”는 명제가 적용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늘 보던 것들이 작가의 손을 거치면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바뀌는 마술을 목도하면서 그가 “인생은 즐거워”라는 전시제목을 썼던 것에 수긍을 하게 된다. 보는 즐거움이 8할이라고 하는데 어제 본 세상과 오늘 보는 세상이 달라 보인다면 인생이 즐겁지 아니할까. 55년을 사진을 하고도 사진이 항상 즐겁고 새롭다면,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 머리에 가득 들어 있다면 사진가로서 그보다 더 복된 일은 없을 것이다.  
 
전시장 설치 모습
 
너무 늦긴 했지만 2018년 동강사진상은 황규태 작가에게 돌아왔다. 이 시점에서 수상의 의미가 작가 자신에게는 무의미일지 모르지만 그의 가장 핫한 작품이 강원도 영월의 사진마을에서 세 달 동안 전시(6월 14일 ~ 9월 21일)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새로운 형태의 사진과 대담한 전시구성, 세련된 보여주기 방식 등이 사진가들에게 큰 자극이 되고 관람자들에게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강사진상 수상기념전 “묵시록 이후”/ 2018년 6월 14일 - 9월 21일 
영월 동강사진박물관 전시실 


 
글 : 윤세영 편집주간
이미지 : 황규태 작가


해당 기사는 2018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