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이갑철 <적막강산-도시징후>

당신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도시에서 무엇을 느끼고 예감하는가? 사진가 이갑철이 신기(神氣) 어린 특유의 감각으로 포착한 도시의 징후가 그의 “적막강산”으로서 2019년 11월 8일부터 2020년 1월 15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에서 전시 중이다. “도시징후”라는 부제가 달린 이번 전시에서 26점의 흑백사진들은 각각의 사진이 서로 연관은 없지만 잘 짜인 각본처럼 하나의 결말을 도출해낸다. 사진가 이갑철의 독특한 더듬이로 잡아낸 도시의 장면들은 그의 전작(前作)과 다름없이 기우뚱하고 흔들리며 어둡고 모호하다. 도시의 빛은 어둠을 말하기 위하여 간신히 존재할 뿐, 그의 도시는 밝음보다 어둠이 깊고 넓다. 당연하게도 어둠은 모든 디테일을 삼켜버린다. 그래서 그의 도시가 뿜어내는 기운은 알 수 없는 덩어리로써 불안감을 유발한다.
 

 이갑철, 적막강산-도시징후Silent Landscape-City ofSymptoms
ⓒ이갑철LEE Gap-Chul


사진가의 눈으로 포착한 21세기 도시징후

사진은 어차피 빛과 어둠의 공존이다. 어둠은 빛을 빛나게 하고 빛은 어둠을 더 짙게 만든다. 그리고 짙은 어둠은 어쩔 수 없이 적막과 맞닿아 있다. 어둠의 도시는 침묵을 강요 당하며 끝 모를 적요 속에 숨죽이고 있다. 캄캄하고 막막한 도시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흘러왔으며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하되 정확한 답은 알 수가 없다. 관객들은 그저 흑백으로 표현된 침잠의 도시로 빨려 들어갈 뿐이다. 그것은 사진가의 의도인 것 같다.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진 속에서 답을 찾을 게 아니라 사진 속 검은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질문하고 답을 찾아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이갑철, 적막강산-도시징후Silent Landscape-City ofSymptoms 
ⓒ이갑철LEE Gap-Chul


이갑철 작가가 적막강산을 작업하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는다. 처음에는 산과 들로 쏘다니며 자연의 기운을 옮겨 놓더니 도시를 찍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갑철이 찍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실은 궁금하기도 했지만, 살짝 염려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다행이다. 자연과 도시의 이분법을 훌쩍 건너뛰어 자연이든 도시든 이갑철의 사진은 여일함을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포스터로 쓰인, 여러 사람이 흔들리며 걸어가는 사진을 보았을 때 자동으로 떠오른 시가 있다. 정희승 시인의 “숲”이다.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면 숱한 사람들과 만나지만 그들은 왜 숲이 아닌가.”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어도 숲을 이루는데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라고 시인은 물었다. 그것이 나무와 사람의 차이일지, 더 나아가 자연과 도시의 차이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분명 나무보다 더 외로움을 탈진데 도시의 사람들은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가면서도 어찌하여 숲을 이루지 못하고 외로운 섬으로 떠도는지, 사진을 바라보면서 막막하고 가슴이 시렸다.

 

 이갑철, 적막강산-도시징후Silent Landscape-City ofSymptoms 
ⓒ이갑철LEE Gap-Chul


그러고 보면 이갑철 작가의 사진에서는 사람들이 홀로 있어도 둘이 있어도 여럿이 있어도 결국 외롭고 고독해 보인다. 그래도 아직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접점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사진에서 빛이 암전되지 않고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는 것처럼 온기를 되찾을 희망은 남아 있는 것일까? 물론 작가는 징후만 보여줄 뿐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징후에 대한 해석 또한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본다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 이후 70, 80년대를 관통해온 다큐멘터리 사진이 가장 큰 미덕이었던 객관성을 버리고 주관적인 시각을 강조하기 시작한 시점을 2000년 전후로 본다면 그 대표적인 작가로 이갑철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주관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을 발표하는 다른 사진가와 차별점은 대체적으로 그들은 차갑고 이성적이며 냉소적인데 반하여 그의 사진에는 폐부를 찌르는 감성과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기운이 뻗친다는 점이다. “그립다. 외롭다. 가슴이 시리다.” 등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감성적인 코드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까지 시각화하는 마력을 보여준다.


그것은 작가가 늘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보고자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가 1980년대 이후 발표해온 작업들은 초창기 사진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의 정석에서 벗어나 있다. 사진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시선을 따라잡기도 어려울 만큼 그의 시선은 너무 짧거나 길고 너무 빗나가거나 비어 있다. 작가는 그의 도시징후에서 건물, 군상, 빛이 주요한 세 가지 요소라고 말하는데, 엉뚱하게도 건물은 어둠 속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군상은 익명성을 넘어 빛의 부스러기인지 먼지인지 흩날리는 눈발인지 존재 자체가 애매하다. 게다가 빛은 겨우 어둠의 윤곽을 더듬어보게 하는 들러리로 전락했다. 도시의 세 가지 요소가 아니라 그 너머, 시간과 공간과 사람이 서로 조우하며 부딪치면서 빚어지는 어떤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갑철, 적막강산-도시징후Silent Landscape-City ofSymptoms 
ⓒ이갑철LEE Gap-Chul


조계사에서 촬영한 승려의 뒷모습 사진은 이미 어떤 대상을 찍었다는 것을 뛰어넘는다. 유리창을 사이에 둔 사진가와 승려 그리고 승려의 눈앞으로 어지럽게 펼쳐진 거리, 마치 여러 각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곤충의 겹눈처럼 사진가는 여러 겹의 단면을 교차시키며 한 화면을 만든다. 그런가 하면 마치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처럼 느닷없이 거리로 튕겨져 나온 커다란 눈덩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흩날리는 눈발처럼 보이는 군상들도 작가가 대상을 지시한다기보다 아주 짧은 한순간에 그의 가슴으로 훅 치고 올라오는 어떤 것, 짜릿한 전율로 소스라치게 하는 그 무엇에 대한 감응을 보여준 것들이다.


그의 사진의 특징은 팽팽한 긴장감이다. 이는 찍는 순간 전율을 느끼며 셔터를 누른다는 작가를 보면 충분히 예감되는 결과다. 따라서 그 전율은 보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긴장감을 유발한다. 전혀 예기치 않은 순간을 낚아채 파격적인 구도와 거친 질감으로 표현하는 이갑철의 사진은 무의식의 세계까지 시각화하고야 마는 그의 저력을 보여준다.

 

 이갑철, 적막강산-도시징후Silent Landscape-City ofSymptoms 
ⓒ이갑철LEE Gap-Chul


그의 사진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날은 초미세먼지로 도시가 우울한 징후를 보이고 있는 날이었다. 마치 이갑철의 사진처럼 도시는 희미하고 몽롱하며 모호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초미세먼지가 단지 도시만을 덮치는 게 아니듯 그의 도시징후 또한 도시에 국한된 예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 즉 21세기의 징후일것이다. 또한, 작가의 예민한 촉이 포착한 천기누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갑철(1959~)
개인전 <거리의 양키들>(1984), (1986), <타인의 땅>(1988), <충돌과 반동>(2002, 2007), <기>(2007), <부산참견전-침묵과 낭만>(2015), <바람의 풍경-제주>(1980) 등을 가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미국 산타바바라 미술관과 아시안 아트뮤지엄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글 : 윤세영 편집주간
이미지 제공 : 한미사진미술관

해당 기사는 2020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