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션팍 <알려지지 않은 공간을 찾아서>
- 2020-06-02 14:51:39
〈알려지지 않은 공간을 찾아서〉(BMW Photo Space, 4.13~6.27)는 미국, 알래스카, 하와이, 영국, 아일랜드 그리고 호주에서 촬영한 “Unknown” 연작으로 구성된 전시다. 션팍 작가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도시로부터 밀려나온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외된 도시의 모습을 기록했다고 말한다.
Unknown Hawaii 1, 2016,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75×100cm ⓒ션팍
그는 자신이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공간,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찾아 사진을 촬영한다. 해가 지기 전까지 계획 없이 차를 몰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마음에 드는 곳이 눈에 띄게 된다. 그러면 근처에 숙소를 잡고, 밤이 되면 그 장소를 다시 찾아가 촬영을 한다. 보통 새벽 두 시경에 작업이 진행된다. 오직 가로등만 풍경을 비추는 빛으로 작용해 장시간 노출로 촬영해야 하고 어떠한 보정 없이 그대로 작품을 발표한다.
Unknown USA 3 #1, 2014,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75×100cm ⓒ션팍
이곳이 무얼 하는 장소인지,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서 활동하는지, 주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작가는 모른다. 다만, 주간에 이루어진 상황이 남긴 흔적이 작가가 셔터를 누르도록 만든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흔적이 나와 있잖아요.” 작품 속 공간과 시간에 형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낮에 움직이며 남긴 흔적이 새벽 두 시의 공간을 분명히 채웠다. ‘Unknown Hawaii 1’에서는 대관람차와 트럭이 눈에 띈다. 트럭에는 하와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행사 현장에서 대관람차를 조립할 수 있도록 기재가 실린다. 누군가 이곳에 도착해 대관람차를 조립하고, 누군가 비용을 지불해 즐겼을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이 장소에 남긴 흔적은 밤이 되어 작가의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겼다.
Healing house 6, 2013,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105×140cm ⓒ션팍
흔적은 이미 지나간 현상이 현재에 남긴 자국이나 자취이며, 미래에도 남아 지나간 사실을 밝힌다. 사진은 촬영한 순간부터 과거의 흔적이 되어 감상자마다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보통 옛 사진을 보며 지나간 추억을 느끼고, 소중한 사진을 간직한다. 그 사진이 사라지면 안타까워 울분을 느끼기도 한다. 과거로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이 흔적으로 남아 현재에도, 미래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작가는 옛 사진을 볼 때 느끼는 이러한 감정을 낮이 지나간 밤에 그리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감각한다. 주로 활동하지 않는 낯선 밤에 낮이 남긴 익숙한 흔적을 느낀다.
Unknown USA 2 #12, 2013,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105×140cm ⓒ션팍
그가 알려지지 않은 공간의 흔적에서 느낀 감정은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의 한 사진에서 시작됐다. “한 노인이 싸구려 모텔에 앉아 오른손에 권총을 쥔 사진이 있습니다. 이 사진 때문에 “Unknown”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요.” 작가는 이 사진을 보며 자식 유학비를 벌기 위해 지방 출장을 다니며 허름한 모텔에서 잠을 잤을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고생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지 못했지만, 이글스턴의 사진에서 전해지는 감각을 통해 생각하고 감정을 느꼈다. 작가는 이글스턴의 사진에 남은 흔적에서 아버지를 떠올렸듯, 관람자가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보며 각자만의 감상을 떠올리기를 바랐다.
Unknown USA 1 - El-Paso, TX, US, 2012,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105×140cm ⓒ션팍
그는 5년 동안 미국 대도시에서 유학 생활을 보내며 자본주의의 힘이 잔인할 만큼 크다고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잠깐 머물다가 즐기는 곳이지만, 그에게는 일자리를 구해야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작가는 내쫓기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작품에 자본주의에 대한 울분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이 순수할 때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사진을 찍는가에 집중했다. 사회적 시각을 제거하고 주관적인 감각에 따라 방랑했다. 작가는 “Unknown”이 스스로가 제대로 된 해답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말한다. “답을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주장을 설파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과연 정당할까요.” 그래서 작품에 명확한 메시지는 없다. 그는 사회에 개입하는 작품을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작가에게는 계속해서 발전하는 도시와 달리 오랜 시간 관리하지 않아 낡고, 자연스러운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이곳에서 누군가 남긴 흔적을 보고, 정직하게 바라본 그대로를 기록한다. 그 감정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희미하게 느껴지는 과거의 흔적으로 남아 관람자에게 전달된다.
션팍(박성욱, 1980~ )은 개인전 〈The inside and outside〉(가나아트 스페이스, 2011), 〈Healing house〉(갤러리 그림손, 2013), 〈Peephole〉(Art Space H, 2015), 〈Unknown Australia〉(램프랩, 2016), 〈Unknown Hawaii〉(Art Space H, 2017), 〈Unknown Alaska〉(Art Space H, 2019) 등을 개최했다.
글 : 장영수 기자
이미지 제공 : BMW Photo Space
해당 기사는 2020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미지 제공 : BMW Photo Space
해당 기사는 2020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