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根同枝異②

根同枝異

 
Philippe Chancel 
〈Kim Happiness〉, 〈DPRK〉


22세의 이른 나이에 지인의 도움으로 사진을 처음 접한 필립 셩셀은 소위 말하는 비주류 출신의 사진가이다. 파리 낭테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파리 CFPJ 저널리즘 학교를 졸업한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졸업후 이나 등 다수의 언론사에서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포토저널리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지만, 정보 전달이 우선이기보다는 대중들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현상적인 사진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항상 있어 왔다. 이렇게 시대를 바라보는 냉철한 사진가가 되기 위한 첫 걸음마를 2005년 <평양 아리랑 축전>과 시리즈로 시작하였고, 이듬해 2006년 아를르 사진 페스티벌에서 Raymond Depardon에 의해 첫 소개되면서 사진계의 큰 반항을 일으켰다. 

 
ⒸPhilippe Chancel-KIM HAPPINESS


이후에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에 걸쳐 완성한 아랍에미리트 (United Arab Emirates)의 하늘을 찌르는 듯한 고층 빌딩의 이면에 숨겨진 자본주의 사회를 초현실적인 감각으로 담아낸 작품이 53회 베니스 비엔날레 (pavillon d’Abou Dhabi)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밖에 2010년 뽕피두 센터의 ‘Dreamlands’ 전시와 파리 포토, 2013년 아를르 사진 페스티벌, 토론토 Scotiabank 사진 페스티벌 등 세계곳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쓰나미 피해지역을 방문해 촬영한 ‘Fukushima: The Irresistible Power of Nature’ 작품으로 2012년 ‘The Prix Pictet’와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엘리제 사진 박물관의 ‘The Prix Elysee 2015’에 노미네이트 된바 있다. 


2013년도 부터는 자연재해나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피해를 당한 지역, 종교차별, 이주민 거주지, 전쟁 등으로 고통받는 ‘피폐해진 메마른 세상 (appauvri du monde)’, 즉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북한, 후쿠시마, 카불, 아이티의 Port-au-Prince, 러시아의 Barnaoul, 카자흐스탄의 Astana, 등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Philippe Chancel-DPRK


오늘날 당신의 작품을 보면 예술, 다큐멘터리, 포토 저널리즘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실과 허구, 객관과 주관, 실체와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사실적인 기록 사진에 기반한 시선은 줄곧 흔들임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창기 포토저널리즘 프리랜서 기자 경험이 영향을 미친건가요? 

제가 사진을 처음 접했을 80년대 초에는 대부분 사진가들이 포토저널리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신문매체를 통해 경력을 쌓기 시작한 저 또한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았고요. 사실, 그 당시에는 신문이나 잡지의 업무를 통해서만이 유일하게 사진 작업 활동이 보장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업무적으로 르포타쥬를 촬영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80년대 초반 제가 취재를 하면서 커리어를 쌓았던 국가를 떠올려 보자면, 반(反) 러시아, 친(親)서방 정책을 공공연하게 펼쳤던 폴란드나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물리적인 전쟁이 아닌 특정한 집단의 의식에 작용하여 조작하는 전쟁 형태인 ‘심리전 (guerre psychologique)’을 겪고 있었던 지역에 더 이끌렸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즘 기자로서 언론이 요구하는 주문에 딱 맞는 정보를 가져와야했던 그런 현실은 제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촬영한 리포타주 사진을 예를들자면, 그 국가가 처했던 당시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큰 몇몇 이미지를 개인적으로 나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결국 잡지사에서 채택된 이미지는 보도 당시의 사회 특정 분위기와 이슈에 편승한 소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런 경험들은 오늘날 제가 성장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만, 포토저널리즘의 한계에 지루함을 느꼈고 저널리즘 성향을 벗어나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점차 방향을 틀게 만들었습니다. 


포토저널리즘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와의 교류가 오늘날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들었습니다.

80년대 후반 미술잡지인 에서 ‘예술가 포트레이트와 작업실’ 일거리가 들어왔어요. 아티스트 작업실을 방문하고 취재하면서 현대미술의 흐름을 접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죠.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Christian Boltanski),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Georg Baselitz), 로만 오팔카 (Roman Opalka), 안젤름 기퍼 (Anselm Kiefer) 등 유명 예술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취재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성 분야의 전문가인 예술가와 교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은 포토저널리즘을 했던 제게 적지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테크닉적으로도 그들과 함께 촬영하면서 찰나의 순간보다는 구성이나, 빛, 긴장감 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사진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거 같습니다. 가족을 잠시 떠나 깊은 산 속에서 홀로 외로움을 견뎌내는 아메리카 인디언 풍습인 ‘비전 퀘스트(Vision Quest)’ 성년식을 치르는 소년처럼 저 또한 제 자신에 대해 수없이 질문하고 사진가로서 정체성을 찾아갔던 통과의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Philippe Chancel-DPRK


북한 시리즈를 하게된 계기가 있었나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항상 금지된 지역 (Zone interdite) 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형화된 소재가 아닌 즉 사회에서 소외되고 주변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언더그라운드’에 이끌렸습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감춰진 뭔가를 드러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북한’이 갑자기 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기계같이 일치성을 자랑하는 군사 퍼레이드, 광적인 군중 시위, 북한 사회주위체제 홍보와 슬로건에 가장 잘 부합되는 대집단 체조이자 예술공연인 `아리랑` 등을 통해서 어떤 서커스적인 예술적 미학과 동시에 조직지도부가 북한 사회의 모든 조직에 사상적 통제를 가하는 이런 정치적 상황들이 닫혀있는 거대한 박물관처럼 느껴졌습니다. 리포터 자격으로 취재할 수도 있었겠지만, 언론 매체와 일을 해본 경험이 많은 저로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때 언론 기자 생활에 실증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북한을 촬영하면서 구체적으로 구상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 

2003-2004년도였는데요, 우선, 어느 누구에게서도 간섭받지 않고 오로지 제 개인 작업을 완성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같이 일했던 잡지에도 일체 접촉없이 조용히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가지 구상들이 구체화 되어있었습니다. 촬영한 작품을 책으로 출판할 것이고, 전시를 통해 소통하자 였습니다. 다시말해, 북한에서 촬영한 사진 작품을 책, 전시를 통해 알려지고 이후 언론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포토저널리즘에서 사진을 다루는 방식을 역으로 바꾼 접근이었죠. 당시 굉장히 야망에 찬 프로젝트였는데, 결국 제가 생각했던대로 이뤄졌던거 같습니다. 


또한, 당시 획기적인 캐논 풀프레임 디지털 카메라1 세대로 촬영하면서 미학적인 부분에서도 여러가지 테스트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사진에서 오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테크닉은 안정감과 균형미를 돋보이며 제가 생각했던 북한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던거 같습니다. 


 

ⒸPhilippe Chancel-KIM HAPPINESS


2015년도에는 북한주민의 일상생활을 담은 가 출판되었습니다. 이전의 <평양 아리랑 축전>과 시리즈가 북한 체제의 집단적 특성으로 바라봤다면, 이번엔 개인의 사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알고싶습니다. 

2015년도에 시카고 현대 사진 박물관 의 그룹전 ‘ North Korean Perspectives ’을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촬영한 사진을 보관해놓은 아카이브(archive)를 살펴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출판되지 않은 사진들이었지만, 북한 시리즈뿐만 아니라 대부분 제 사진들이 비슷한 특징이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촬영했던 사진인듯 한데, 이렇게 쌓이다보니 소소한 일상을 기록한 가족 앨범같아 보였습니다. 특히나, 매번 이렇게 촬영된 사진을 보고있자니 저를 미소(sourire)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웃음’ 뒤에 숨겨진게 무엇일까 궁금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에 ‘행복’이라는 의미가 존재할까하는 의문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의 영광을 보고 나타난 붉은 꽃이라 불리며 ‘행복’을 상징하는 김정일리아(Kimjonglia) 꽃을 보면서 ‘행복을 가장한 북한 주민들의 미장센’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영준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전시나 촬영 계획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남북한 시리즈를 통해 한국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작품과 한국에서 완성될 작품을 마치 쌍둥이처럼 한 세트로 출판하고 싶습니다. 같은 사이즈, 같은 디자인, 같은 스타일의 쌍둥이처럼 똑같이 말이죠. 거울에 비쳐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자세히보면 미세한 차이가 존재하는 그런 착시현상 (trompe l’œil)같은 그런 방식으로 말이죠. 

www.philippechancel.com



김영준 Kim young june 

홍익대 조소과 졸업 후, 프랑스 헨느(Rennes) 미술학교 조형예술 학사 (DNAP), 파리 8대학 사진과 (프랑스 유일의 대학으로서 ‛사진ʼ 전공 국가 디플롬 수여) 학사를 취득한 후, 2015년 Michelle Debat (이론), Arno Gisinger(실기)의 지도하에 같은과 대학원에서 ‛Une esthetique photographique de la sculpture 조각의 하나의 사진적인 미학ʼ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La ville d'Aulnay-sous-bois의 컬렉션에 작품 2점이 소장되었으며, 올초엔 전통과 권위있는 프랑스 사진 공모전 Le prix HSBC pour la photographie 2016에서 Diane Dufour (Le BAL 디렉터)에 의해 노미네이트 되었다. 


 
글 : 김영준(프랑스 통신원)
이미지 제공 : 
Philippe Chance


해당 기사는 2017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